지난 7일 아트선재센터에서는 플랫폼 2009 두 번째 퍼블릭 프로그램 ‘공공미술 : 미술기관에서의 일시적 공공 프로젝트’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랄프 루고프(Ralph Rugoff)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 관장이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진행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강연과 객석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되었다.

강연 앞부분에서 랄프 루고프는 헤이워드 갤러리의 현대미술 설치 프로젝트는 갤러리 안팎에 설치된 현대미술 작업들을 통해 대중들의 경험상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예술기관이 가진 인습으로부터 자유롭고 도전적인 예술 작업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대중의 지성을 각성하고자 하는 과정이라 소개 했다.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맥락은 현대미술의 가장 기본적 미덕이자 핵심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바로 헤이워드 갤러리의 일시적 공공 미술 프로젝트는 다름 아닌 현대미술, 작가와 작업 그 자체라는 메시지이다.


거대 도시공간에 대한 작가들의 상상력과 다중의 경험

플랫폼 2009 <공공미술 : 미술기관에서의 일시적 공공 프로젝트> 현장
강연은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진행된 다양한 현대미술 설치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로 이어졌다. 갤러리 옥상에 설치되어 온도와 풍향 등에 반응하는 네온 타워, 빌보드 광고판에 붙여진 당나귀 사진을 소개했다. 또한 사람 모양의 오브제가 헤이워드 갤러리를 바라보는 형태로 주변 건물의 옥상, 다리 위 등에 설치되어,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도시의 경관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도 했다. 실제로 하루에 한번 정도는 사람 모양의 오브제가 자살시도를 하는 것으로 착각한 시민들의 신고전화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가 하늘 한번 제대로 올려보지 못한 채 거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상황에서, 우리 옆에 존재하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은 혹은 죽은 공간에 대한 인식을 환기한다. 이러한 부분은 바로 예술 작업을 통해 우리 삶과 세계에 대한 상상력과 의미를 재확인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도심 공간의 분수라는, 공공기관의 권위, 자본, 통제의 상징을 건축적 경험의 제공을 위한 공간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테마로 만들거나 폐기물을 재활용해서 인간에게 나오는 갖가지 분비물이 나오는 익살스런 모습의 설치로 제안했다. 한국의 경우, 서울시청 앞 분수가 시민들에게 인기 있다 싶으면 똑같은 모습으로 전국 공공기관이나 광장에 세워지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템스강변 유원지 근처에 놓여있으나 늘 비어 있던 깃대에 주목했고 예술가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깃발을 제작해 일정 기간 설치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경우, 경제학적으로도 비용대비 효과가 탁월한, 개념적 작업이 공공성을 가진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갤러리 테라스 중 일부에 물을 채워 보트장을 만들기도 하고 재개발로 건물이 해체된 곳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조각을 만들고 서구 역사에 주요한 공공 오브제인 기마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조각을 설치했다. 서구사회에서 중요한 크리스마스트리가 가진 전형성을 탈피하는 새로운 조명 설치작업을 도심 거리에 제시하기도 했다.

대부분 작업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장소인 거대 도시공간에 대한 주체적이면서 다중적 인식과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작가들의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사례는 화이트큐브를 제외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설치 작업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디렉터가 발표 도중 가장 강조했던 부분 역시 아티스트 중심의 현대미술 작업이라는 것이다. 김홍희 경기도 미술관 관장은 한국의 공공미술이 영구오브제의 유지보수 등의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헤이워드 갤러리의 프로젝트는 그러한 부분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필자의 입장에선 헤이워드 갤러리의 프로젝트는 협소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라기보다는, 현대미술의 핵심을 잘 드러낸 좋은 작업들의 설치(설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것을 지향한다.)의 과정과 결과에서 예술의 공공성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국의 공공미술 문화정책이나 대규모 프로젝트에 의해 생겨나는 영구 오브제(특히 일명 &lsquo;1%법&rsquo;에 의해 생겨나는 것들을 포함해서)와는 맥락이 다소 다르지 않나 싶다.


헤이워드 갤러리 프로젝트와 한국 공공미술 담론의 간극

그러나 강연에 이어 객석에서 나온 헤이워드 갤러리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들은 이러했다. &ldquo;공공 미술이 가져야 하는 지역적 맥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rdquo;&ldquo;이러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실행할 때, 소위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끝까지 점유하려는 태도를 가지진 않는가?&rdquo;&ldquo;미디어아트 중 기술적인 입장에서의 인터랙티브한 부분이 공공미술과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rdquo;&ldquo;공공미술의 커미션을 주는 공공기관과의 관계 설정과 예산은 어떻게 마련하는가&rdquo; 강연의 내용과는 달리 &lsquo;한국적&rsquo; 공공미술과 연결된 질문이었다. 아마도 강연주제에 대한 홍보나 실제 내용의 동상이몽,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공미술이란 맥락을 사회적 소수자 및 일종의 로컬 프로그램을 수반해, 예술창작자와 기획매개자들에게 과도한 책임감을 부과하려는 태도를 갖기 때문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랄프 루고프의 대답은 시종일관 간결하지만 분명했다. 특정한 커뮤니티와의 프로그램 과정이 아닌, 작가와 작업 중심의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업은 갤러리 내외에 집중되어 있다. 불특정 다중들을 상대로, 화이트큐브라는 제도 공간의 내외부에서 진행된 설치 작업들이기에 어느 정도 일시적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50%정도의 예술위원회 지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체적인 재원조성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헤이워드 갤러리의 프로젝트는 한국적 상황에서 지난 몇 년간 몰아쳤던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맥락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현대미술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lsquo;좋은&rsquo; 작업이 가장 공공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오히려 주제나 기획의도는 단순하지만, 다중의 경험과 상상의 여지는 충분히 남겨 두었다. 적은 예산에 소위 말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없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상상과 실천을 지향한다.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전경, 헤이워드의 설치작품 분수시리즈


지속가능성에 대한 강박에서 거리두기

최근 한국미술계에서는 공공미술을 통해 일명 1%법에 의해 왜곡되었던 미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현실적 조건 안에서 확장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간과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시각예술로써 미술이 가진 가능성을, 좋은 작업이 프로젝트나 프로그램 혹은 과정의 중요성 안에서도 여전히 주요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과정 중심 속에서 지역적 맥락과 장소성이라든가 소외지역의 커뮤니티와의 관련된 부분이 주요한 만큼, 작가적 상상력과 퀄리티가 그 자체로 공공적 경험을 통해 대중과 조우할 수 있는 부분 역시 주요하다고. 따라서 예술 작업 자체로 공공적 맥락을 드러낼 수도 있고, 다양한 다중들과 교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현대미술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맥락은 여전히 좁고 단선적이다.

이번 강연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것은, 소위 공공미술, 공공프로젝트를 창작, 혹은 기획, 매개하거나 향유하는 입장에서 문화정책이나 예술경영상에서 한시적이나 일시적인 것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일으키며 어떻게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일련의 자본주의적 강박에서 벗어나는 거리감이다. 왜냐하면 고정적이거나 지속가능성에 집중하는 만큼 우리의 삶과 예술은 제도와 자본에 대해 긴장감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식상한 문구가 침체에 빠진 공공 프로젝트의 새로운 상상력을 복원하는 가능성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채은영

필자소개
채은영은 도시의 일상 공간에서 자본과 제도와 건강한 긴장관계를 가진, 다른 시각예술의 지속적 상상과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는 독립큐레이터다. www.slowrush.org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