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공간, 단체, 작품이 제 고유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다. 하여 '특성화'는 담론이라기보다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당위'가 아닐까. 그럼에도 경영의 현장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성공적'으로 구현한다는 것은 여전히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면서 또 가장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weekly@예술경영]은 창작단위(단체, 개인 아티스트)와 환경(축제, 공간)을 키워드로 예술경영의 현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실지형을 살핌으로써 특성화의 '당위'를 확인하는 데에서 나아가 예술경영의 현 단계를 점검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④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보여주는 좋은 공간, 작품을 홍보할 수 있는 시스템, 컬렉터를 관리하고 작품 판매를 맡아줄 딜러,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해석해 줄 수 있는 큐레이터 등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을 100% 충족시킨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미술계 구조상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미술계의 시스템은 그 브족함을 나름대로 보완하면서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근래의 경향이다. 미술시장의 호황 속에서 기존의 화랑제도를 보완하여 작가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보다 긴밀하고 효율적으로 채워주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몇몇 독립 큐레이터 및 딜러들이 이 분야의 전문가임을 자처하고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스템은 미술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개념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상업화랑의 전형적인 ‘전속작가’의 개념을 보다 전문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생성된 것이다. 이러한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의 전문성은 미술계의 시스템을 정확히 파악하고 작가의 활동과 작품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만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참조 이미지 - 갤러리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화랑에 전속되어 있는 작가들만이 모종의 관리와 지원을 받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준이 전문적이라고 하기에는 화랑 자체의 애로가 많았었다. 우선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바탕이 되는 전문인력이 부족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내에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에 관련된 교육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에 모범이 될 만한 선례도 없거니와 작가 스스로도 미술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활동해오고 있기 때문에 상호 부족한 여건 속에서 그 모양새만 갖추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현 상황에서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의 특성화를 논의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는 적절해 보인다. 미술시장이 이미 일정한 규모로 자리를 잡았고 작가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컬렉터들의 잠재력이 드러난 지금, 이 분야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도 되짚어보아야 하고 이미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과연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인지 숙고할 필요도 있다. 이 글에서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가 필요한 미술계 구조상의 이유와 이를 실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부분들, 그리고 이러한 제도의 특징에 대하여 필자의 현장에서의 활동을 토대로 한 소견을 서술하고자 한다.




시장 확장 그리고 다양성 실험성을 이끌어가는 기획자들의 등장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미술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95년에 처음으로 광주비엔날레가 만들어지면서 세계 속의 한국미술을 직접 목격할 수 있게 되었으며 1999년에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대안공간이 설립되며 젊은 작가의 등용문이 새로운 방향으로 열리게 되었다. 이는 상업화랑이나 대관 화랑에서 보여주었던 전시의 성격과는 완전히 달랐고, 다양한 작가 군이 생성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기획자의 전문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 작가들, 특히 젊은 작가들의 활동 무대가 보다 넓어지면서 다양성과 실험성을 이끌어 나가는 기획자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는 지난 몇 해 동안의 한국 미술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활발히 소개될 수 있는 기틀이 되었고 그 활동 영역뿐 아니라 작품의 판매 성과는 고무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지난 2~3년간 한국의 화랑 수도 급증하였고, 컬렉터 층도 갑자기 수직 상승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 일반인들에게 ‘미술투자가치’에 대한 구체적인 선례를 보여주는 몇몇 놀라운 판매기록에 따른 시너지 효과이기도 하였다. 미술작품 구입에 대한 관심은 이분화 되었던 미술계의 영리 활동과 비영리 활동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실험과 도전의 상징이었던 어린 작가들의 작업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혹은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기 위해 픽업하는 경향이 일반화되었다. 이는 나이가 어릴수록 낮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고, 아직 기성 화랑에 소속되지 않았을 때는 판매 가격이 높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격이 비싸지 않으면서 대중들이 많이 살 수 있는 작품의 경향은 집에 걸 수 있는 평면 페인팅,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사실주의 회화 등으로 그 작업 성향이 몰리게 된 것이다. 상업화랑과 딜러들은 발 벗고 대중의 요구를 찾아내는 역할을 하였고, 어린 작가들은 이런 취지로 자신의 작품이 픽업되는 것이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픽업된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작가들과는 달리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들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상업화랑에서도 젊은 작가들을 등용시키기 위하여 미리 작가를 선발하는 경향이 활발해지자 자신의 작업 정체성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판매를 위한 작업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해도 되는지, 그렇게 해도 누군가가 자신의 작업을 잘 관리하여 평생을 좋은 작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인지 작가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자연스럽게 필요해진 것이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의 개념이고, 실제로 이를 실행하고자 하는 소위 전문인력이 등장한다.




미학적 안목, 작가 포지셔닝, 홍보ㆍ마케팅, 스폰서 활동 및 콜렉터 관리,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의 전문성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교육 모습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전문인력이 부족한 미술계에서 개인이 이 모든 전문 분야를 갖추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상론으로 출발하여 아직은 턱도 없는 선진화된 시스템을 그리다 보면 지금 상황에서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고, 이에 대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보완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몇 가지 필요한 요건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특정 작가의 작품을 다루기 위해서는 작품을 읽는 눈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미술사나 미학적 지식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며 현 사회를 파악할 수 있는 폭넓은 사고력도 요구된다. 작가 및 작품을 현 시대 상황에 비추어 이해하고 그 발전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하며, 실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조언과 격려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정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이 있어야지만 지속성과 적극성도 있을 것이다.



또한 미술계의 시스템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미술현장에서 작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깨닫고 있겠지만, 전시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시스템과 공간에 따라 그 성격과 방식이 매우 다르다. 전시가 가능한 공간의 성격과 어떤 작가의 작업 성향이 맞는 것인지, 작가를 ‘포지셔닝’ 해 주는 것도 중요한 업무가 될 것이다. 미술계의 시스템은 그 자체로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가령 일정 기간의 활동을 거쳐야 미술관 전시를 입문할 수 있다는 인식은 요 몇 년 동안의 기획전시들을 통하여 깨졌다. 미술관에서도 대안공간이 그 역할을 했던 신진작가 등용문을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검증되지 않은 작가를 상업화랑에서 픽업하는 등 미술계의 시스템은 특정 단위로 분화된 상태에서 다시 섞이고, 압축되었다. 특정 수상을 거쳐야만 인정을 받는 시대도 아니다.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다양화 되었다. 이는 상업 활동을 통해서도 가능해졌고, 대안공간을 통해서도, 심지어는 대중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가장 효과적으로 작품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홍보 · 마케팅 능력 또한 필수적이다. 작품을 홍보하여 더 많은 기획자들이나 평론가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홍보하고 노출시키는 능력은 작가의 작품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활동이다. 그리고 인터넷 등 매체의 발달로 일반인들이 전문인에 못지않은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에 작가가 경력을 쌓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어 판매로 연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전문 능력이 갖추어지더라도 결국에는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스폰서 활동을 주선하거나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컬렉터들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나 요즘 미술계에는 컬렉터 교육 프로그램도 증가하고 있다. 컬렉터들은 일차적으로 작품 자체에 시각적 관심을 나타내지만 작품 이면의 작가 활동 사항과 컬렉션 기록, 판매 기록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보들이 충족되었을 때 콜렉터들은 작품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 지속적인 컬렉션을 위하여 작가의 활동 사항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그 정보를 컬렉터들에게 제공하는 역할 또한 필요하다. 작가와 호흡을 맞추고 상호간의 이해를 통하여 형성된 관계라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필요 요소들을 충족할 수 있는 여력은 꾸준한 자금력이나 인맥관리에서 보완되어야 한다. 때문에 이 또한 결국 상업성을 배제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화랑 소속 작가 시스템의 한계와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의 미래


작가는 복잡한 미술계의 시스템 속에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처해 나갈 것인지 아마도 대학 교육 과정에서 배워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영역이 어디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도 많이 있다. 작가가 작품에 온전히 열중할 수 있게끔 누군가가 옆에서 작품의 행방, 판매, 전시 등을 관리해주는 시스템에 대한 필요성은 자연스럽게 작품 판매활동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판매하는 활동을 꺼려하는 미술계의 정서적 요인에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기존에는 작가 관리의 개념이 전속작가의 개념이었고, 이러한 기능을 화랑에서 맡았다. 갤러리가 전속작가 제도를 통해 특정 작가를 지원, 홍보, 작품 판매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 판매량에 따라 작가별로 차별화되는 경향이 있어서 상업화랑에 소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컬렉터의 취향에 맞지 않는, 즉 당장의 수익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그 관리가 소홀해진다. 또한 젊은 작가를 어느 수준 이상 키워 나가기보다는 이미 판매가 잘 되는 작가를 찾아 ‘모셔오기’ 경쟁을 하여 사실상 잠재력 있는 작가들을 성장시키는 역할이 그리 중요시 되지 않았다.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이에 반해 2002년도에 설립된 아라리오 갤러리는 그러한 의미에서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낳으며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2006년도의 권오상 개인전을 시작으로 이 갤러리는 작가 매니지먼트에 대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속 작가들에게 작업실과 작품 제작 지원비를 제공하고 전시를 개최하며, 중국 베이징과 미국 뉴욕에 갤러리를 지어 직접 프로모션이 가능한 공간을 설립하여 그야말로 이상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투자 활동이기도 하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갤러리 측에서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들로서는 그만큼 심리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자본력이 그만하지 못한 갤러리나 개인으로서는 또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지금 개별 화랑들은 각각의 세부적인 역할이 어찌되었던 간에 큰 줄기에서 볼 때 소속작가의 전시와 홍보, 그리고 판매 등을 관리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타 기획에 참여하는 전시 스케줄도 관리하는 등의 역할도 한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했듯 모양새는 갖추었을지 모르겠지만 내용적으로 탄탄한 전문인력의 부족으로 그 실행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단적으로, 아직도 전속작가 계약서나 판매 계약서 등의 상호 계약 관계가 명확한 곳이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작가 매니저의 개념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개인이 뛰어들어 작가와 ‘함께 작업하는’ 개념으로 작은 것부터 활동하고 있는 개인들도 있다. 그들의 전문성과 경험치로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하지만 이를 통한 시행착오와 경험의 축적이 앞으로 한국 미술계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은 확실하다.




김인선

필자소개
김인선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의 아트디렉터이자 이화여대 겸임교수이다. 1999년 대안공간 루프를 시작으로 큐레이터 활동을 해왔다. 부산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코디네이터를 거쳐 국제갤러리 부디렉터,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사무국장, 부산비엔날레 큐레이터, 대림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하면서 미술계의 다양한 시스템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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