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주부전을 알고 있는가. 만약 용궁에서 무탈하게 잘 살고 있는 나에게, 어느 날 용왕님이 토끼의 간을 구해 오라는 명령을 할 때 자라의 기분이 어떨까? 육지라는 땅에 가 본 적도 없고 친·인척도 없는데 토끼를 어이 만나고, 오장육부 중에 가장 귀하다는 간을 어찌 달라고 한단 말인가. 별주부의 울고 싶은 심정은 퓨전 국악 ‘난감하네’라는 곡으로 태어났다.

익히 알고도 예상치 못했던 스토리의 이면을 파고들어 새롭게 구성하는 능력!
판소리는 어렵다는 편견이 깨지도록 흥겹게 대중의 귀를 사로잡는다.

세모의 앵글 속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충우 대표

대중이 원하는 음악으로 다가서다

한참 공연 연습 중이었다. 반바지 차림의 남자, 음악보다는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면 더 어울릴 듯한 모습이다. “자 한번 더 가 보자. 스피커가 0.5초 정도 늦게 나오는 것 같아” 오늘 공연에서 리듬의 중심이 되는 타악기 카혼(cajon) 위에 앉아 손바닥을 펴서 가볍게 두들긴다. 퉁퉁. 무심한 듯 예리한 표정으로 스태프들을 지휘하고 있다.

이충우 대표는 10년째 ‘에스닉 팝 그룹 락(RA:AK)’을 이끌고 있다. 동양의 전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대중음악으로 국악 위에 기타 선율, 라틴음악을 더하고 판소리를 입혔다. 락(RA:AK)은 2006년 전통음악의 대중적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결성되었다. 가야금, 퍼커션, 베이스, 건반, 피리, 대금, 드럼, 해금, 판소리 등 각자 분야에서 젊고 실력 있는 뮤지션들의 집합체로, 팀 자체적으로 작곡·편곡 및 녹음, 프로듀싱을 모두 진행하고 있다. 락(RA:AK)은 관객과 함께하는 ‘신나는 파티’ 같은 공연을 진행해서 인기가 높다. 그룹이 10년을 넘어가니 단단하게 결합되고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지는 느낌이 드니, 이충우 대표는 요즘 새삼 팀워크 안에서 행복을 느낀다.

락이 무대에 오르기 전 완벽한 무대를 위해 작은 부분까지 확인한다

이충우 대표는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타악을 전공한 전통 국악인이다. 국악에서 출발해, 연극과 영화, 뮤지컬 등으로 음악의 지평을 넓혀왔고, 재기발랄한 대중지향적 행보로 국악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긍정과 부정의 메시지를 함께 받아 왔다. “전통의 새로운 해석이다”라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지만, “국악은 이래야 해”라는 질서와 관념에서 한참 비켜서 있으므로 보수적인 국악계에서 따가운 시선을 느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에스닉 팝그룹 락의 공연모습

UP: 전통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말을 듣는데, 기존의 전통음악과 무엇이 다른가요 이충우: 사실 전통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점을 중점에 두고 음악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게 국악이다, 아니다가 아니라 어떤 선율로 다가설 것인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더 관심을 가지고 집중을 해 왔습니다. 저희가 해 왔던 일련의 작업들이 그러합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뮤직비디오도 대중들에게 국악이 조금 더 쉽게 다가서기 위해 만들었어요. 대중적인 접근을 다양하게 모색해 온 거죠.

UP: 클레이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는 영상 프로젝트인데 전통음악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이충우: 우연치 않는 기회에 클레이 애니메이션 감독님과 만나게 되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관객들은 노래로 된 판소리 사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가사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와 자막을 영상으로 만들어 제작하게 되었어요. 이를 계기로 드라마 음악, 영화 음악, 다큐멘터리 제작 등의 의뢰가 추가로 들어오면서 뮤직비디오 제작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UP: ‘난감하네’, ‘이~ 몽룡아’처럼 고정관념을 깨는 곡들이 많은데 어떻게 작곡하게 되었나요 이충우: ‘이~ 몽룡아’는 제가 작사한 곡이에요. 성춘향이 옥중에서 낙방하고 돌아온 이몽룡을 보고, ‘아 내가 결정을 잘못한 거 아닐까?’ 고민하는 내용이에요. 혼자 사는 우리 엄마를 위해 차라리 열녀보다 효녀가 되는 게 더 윤리적이고 가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하는 내용이 담겨있죠. 누구나 한번 해 봤음직한 고민이잖아요. 심청이 입장이 되어 보는 거에요. 과연 그것만 정답일까하고 한번 더 생각해보면 거기에 재미난 발상의 전환이 있어요.

마구잡이로 섞는 것은 융합이 아니다

‘락’은 국악과 재즈, 국악과 아프로 쿠반(Afro cuban), 국악기와 월드 퍼커션(world percussion) 등 국악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다양한 음악을 섞어 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충우 대표는 ‘융합’이라는 단어에 신중하다. 융합이란 마구잡이로 섞는 것이 아니라는 소신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온전해야 섞여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

UP: 대학교에서 국악(타악)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다른 분야의 타악기를 배우게 됐나요 이충우: 대학교에서 국악과(타악 전공)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 국악기를 이해하게 되었지만 외부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아 답답함과 어려움을 느꼈어요. 해군 홍보단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다양한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이때의 생활이 지금까지의 음악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어요. 제대 후 라틴 퍼커션을 3년간 레슨을 받았고, 10년 정도 활동을 하면서 월드뮤직을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UP: 전통예술이 지켜가야 할 전통의 가치와 창의성은 공존할 수 있을까요 이충우: 국악계는 보수적 성향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대중 지향적 음악에 대한 좋지 못한 시선이 있습니다. 조금 덜해졌다고 해도 말이죠. 요즘은 같은 국악이라도 분야가 세밀해져 창작 작업(창의적인) 단체와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연주하는 단체가 나누어져 있어요. 목적과 방향성은 나누어지더라도 기본적으로 연주 기량을 갖춰야 음악적 의미를 이뤄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락(RA:AK)과 같은 창작음악인들도 전통 예술에 대한 기량적, 음악적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어요. 그래야만 전통의 가치 위에 창의성을 더할 수 있을 겁니다.

이충우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로, 그루누이라는 주인공이 뛰어나 후각을 이용해 자신만의 향수를 만들어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좋은 작품으로 남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선을 견지하면서 살아가는 것, 이충우 대표가 그루누이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 카혼 위에 앉아 리허설 중인 이충우 대표

북소리가 마음 한 켠을 울린다

이충우 대표는 순수예술분야에서도 탄탄하게 입지를 굳혔다.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39호인 처용무의 이수자이자, ‘광해, 왕이 된 남자’, ‘왕세자 실종사건’ 등 연극 무대에서 전공인 북을 치며 극적인 긴장감을 연출했다. 그는 재즈계에도 폭넓게 활동을 했는데, 전제덕, 나윤선, 박상민 등의 세션으로 참여했다.

UP: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음악을 맡으셨는데 어떻게 진행됐나요 이충우: 연극 음악은 무대에서 배우들이 살아있게 만드는 장치에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역사극인 만큼 현대적인 소리를 배제한 국악기 연주에 집중했어요. 큰 북을 치면서 대사 안에 숨어 있는 의미와 분위기를 표현하며 연극의 긴장감을 높이고, 목숨을 건 개혁과 도전 앞에서 두근거리는 주인공 허균의 심장소리를 표현했어요.

이충우 대표는 앞으로도 연극과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대중에게 소외된 전통음악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활동의 외연을 더욱 넓혀나갈 것이다. 활동의 중심에는 대학시절 전공했던 타악기, 북이 있다. 그러나 마흔이 넘은 지금, 언제까지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20년 넘게 북을 쳤더니 어깨가 아파요. 3개월 가까이 한방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무대에 올랐다. 그의 어깨에 신명이 올라탄 것일까? 관객을 들썩이게 하는 축제의 한판이 벌어진다. 인간사를 뚫어 보는 북소리가 공연장에 시원스레 울려 퍼진다. 관객들의 박수 속에, 웃음 속에 이충우 대표가 거기 있다.

인생UP데이트 멘토링

남의 음악을 따라 하거나 경제적인 이윤만을 목적으로 둔다는 건 자기 살을 조금씩 갉아먹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가요 음악 시장에서 세션 활동으로만 연주 활동하시는 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자기음악을 하라고, 남의 음악만 하는 건 뮤지션이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예술가란, 본인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을 하나씩 얻어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예술가로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이충우 대표 프로필 - 추계예술대학교 타악 전공
- 추계예술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악교육석사
- 중요무형문화재 39호 처용무 이수자
- 2007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대상
- 2011~201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예술인력집중육성사업자” 선정
- L.A musicion institute 수료 - 연극 <광해>, <왕세자 실종사건>, <죽도록 달린다>, <청춘 18:1> 등 연극음악
- 現 에스닉 팝 그룹 락(RA:AK)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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