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체구와 반짝이는 눈빛을 가지고 노래하듯 이야기하는 사람, 무대에 설 때 삶의 에너지를 느꼈다는 김현진 대표를 보고 있으면 프랑스의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생각났다. 김 대표는 ‘바람꽃연극놀이터’를 통해 연극으로 현실에 다리를 놓으려 한다. 그리고 연극이 가진 치유의 효과와 성찰을 일으키는 힘, 도전 정신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한다. 동화 <재크와 콩나무> 속의 콩나무처럼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찐콩 선생님과 함께하면, 무대 위에서 너와 나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예술과 교육이 만날 수는 없을까

김현진 대표의 학부 전공은 기독교 교육학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신학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정붙일 곳을 찾기 위해서 연극반(창조극회)에 들었다. 오디션에 가서 덜컥 합격했는데, 알고 보니 지원자가 한 명뿐이었단다. “강수연 주연의 영화 <씨받이>에서 애 낳는 장면을 연기하라고 했어요. 알고 보니 숫기 없는 저를 놀리려던 거였어요.” 어찌됐든 합격했고 대학 생활의 전부 같았던 연극반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다른 사람이 되어 무대 위에서 살아 보고, 다른 자아를 가져 보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아동청소년극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느 날 연극반 선배가 신청해 놓은 워크숍에 우연히 참여하게 됐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M.F.A 연기과 아동청소년극 전공 1기생들이 열었던 연극놀이(Creative Dreama) 워크숍이었어요. 매주 1회, 12주 이상 하는 프로그램으로 제가 아동청소년극에 눈뜨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어느 날 워크숍을 끝내고 전철 타러 가는 길에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빨간 신호등 불을 보는 순간 갑자기 불덩이 같은 게 가슴을 탁 치는 것을 느꼈어요. ‘내가 찾던 게 이건가? 그래 연극을 하고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면서 갈이 열렸고 당당히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진로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삶이 단순하게 정리된 이후 다른 일에 곁눈 한 번 주지 않고 뚝심 있게 걸어오고 있다. 이런 자신을 두고 김 대표는 “한번 빠지면 완전히 몰입하고 그것만 하는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전공이 지금 하는 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전공이 교육학이니 다양한 교육 세미나를 찾아다녔고, 당시 유행하던 대안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교육 동아리 ‘도토리’에 들어가서 선배들과 스터디도 하고 대안학교도 찾아다니고, 여름과 겨울에는 캠프도 열면서 공부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걸 두 가지 꼽으니 연극과 교육이더라고요. 연극에 교육을 결합할 수 있었던 것도 교육학을 전공했기 때문입니다. 저답게 연극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어요.

연극을 통해 치유되는 아이들

대학원에서 아동청소년극을 공부하고 졸업한 후, 2009년 정식으로 ‘올리브와 찐콩’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었다. 이 팀의 창단 멤버로 서울문화재단,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파라다이스복지재단 등에서 지원을 받아 예술교육 분야의 괄목할 만한 일들을 해냈다.

이미 대학원 입학 전부터 아동청소년극 전공 1기 선배들과 워크숍을 한 이후 ‘연극놀이연구회 놀者’를 함께 만들고 활동해 오고 있었다. 연극놀이연구회 놀者에서는 전공생들로부터 배우는 입장이었다면, 올리브와 찐콩에서는 전공생들과 주체적으로 팀을 꾸려 가면서 즐거움과 일의 성취감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찐콩은 김 대표의 애칭이다. 어린이 동화 <재크와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성장하는 진짜 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2012년 독립해서 바람꽃커뮤니티씨어터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었다. 특히 김 대표가 개발한 교사 직무 연수 과정은 일선 학교에서 인기를 끌었다.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어 보는 수업으로, 학교별 상황에 맞게 논의 후 제작되는데 길게는 일 년 동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선생님도 아이들도 낯설어했다. 하지만 수업을 함께 진행한 교사들 사이에서 효과가 높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수업 요청이 연이어 들어오고 있다.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받은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1년간의 일정이 단 일주일 만에 다 차다니 그 인기를 가늠케 한다. 학교로 수업을 가면 복도 저 멀리에서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뛰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저절로 웃게 된다고 말한다.

김현진 바람꽃 어린이연극 <호박 컨테스트>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지금도 제가 학교에 다닐 때와 비슷한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일선에서 변혁을 하기란 쉽지 않아요.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모두 연극을 경험함으로써 예술이 주는 가능성을 경험하기를 바라죠. 연극을 통해 묻혀 있던 아이들이 보석처럼 드러날 때 참 사랑스러워요. 수업은 교과와 구체적으로 연계하기도 하고, 연극 자체의 즐거움을 충분히 경험하게 하거나 학부모와 동료들에게 발표를 위한 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창작을 할 경우 커다란 틀 안에서 자신의 상상을 덧붙여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창조해 가도록 하면서 결정권에 대한 기회를 아이들에게 넘겨줘요. 연극의 주인은 그들이니까요. 결말이요? 창작할 땐 정해져 있지 않고 그들이 만들어 가는 거죠. 연극을 통해 자신의 삶을 시도해 보는 거죠. 이런 과정을 통해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치유되는 걸 많이 목격했어요.

공간을 열어 연극으로 현실에 다리를 놓다

창업 후 3년간 폭풍처럼 일했다. 안양과천의왕교육청에서의 학교문화예술교육, 교사 직무 연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경기문화재단의 지원 사업 등 많은 일을 수행했다. 3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김 대표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기획하고, 그에 맞는 방법과 전략을 세워 가며 일하면서 논문 이후의 작업이 더 깊어졌다고 회상한다. 추구하는 가치를 연극으로 구현하면서 많은 성과와 자신감을 얻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 ‘바람꽃연극놀이터’라는 공간을 안양에 마련했다.

높은 천장 아래 조명과 소품까지 지금 당장 공연 한 편을 올린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공간으로 김 대표가 공간의 작은 것 하나에도 신경을 쓰며 애정을 쏟았다. 이곳에서 연극 아카데미 <연극놀이터 바람꽃>을 열고 있다. 연극을 통해 아이들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심화 교육 과정으로, 국어, 영어, 수학처럼 입시와 관련된 것이 아니면 관심 없는 세상에서 연극교육을 상품으로 만들어서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임대료보다 아카데미의 수입이 못하다.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수시로 들 정도로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지역에서 왜 공간을 열었고 어떤 것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2015년 공간을 갖게 되면서 이름을 ‘바람꽃커뮤니티씨어터’에서 ‘바람꽃연극놀이터’로 바꾸었어요. 연극놀이터라고 지은 것은, 연극으로 즐겁게 놀며 만나는 곳이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연극, 현실에 다리를 놓다!”라는 문구처럼 바람꽃은 연극 자체의 미학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에 참여해 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고 있어요. 연극을 경험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예술 경험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될 만한 공간이 꼭 필요하죠. 연극과 사람, 사람과 지역을 이어 주는 매개체가 되고 싶어요.

김현진 바람꽃아카데미 <두우물과 강>

연극을 통해 세상과 사람이 치유되고 변화한다는 걸 경험한 적이 있나요? 쉼터, 대안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과 4년간 만나서 연극을 했어요. 가정환경에 어려움이 있는 이 친구들과 울고 웃으며 온 힘을 다해 연극을 만들었는데, 제18회, 제20회 안산청소년연극제에 나가서 금상, 연기상, 지도자상 등을 탔어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이들이었고, 스스로도 그럴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않았던 아이들이었기에 정말 기적처럼 느껴졌어요. 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사람들은 다음에 또 시도하고, 다른 불가능에 도전해서 결국 그것을 넘어선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이 과정에서 오히려 제가 더 치유되고 강해졌습니다.

김현진 대표는 아직 출발선에 있다. 가야 할 길이 멀다. 공간을 활성화하고, 연극 아카데미도 홍보·마케팅해서 사람들이 찾도록 해야 한다. 꽃이 피려면 세찬 비바람을 견뎌야 하듯이 이 또한 성숙해 가는 과정으로 즐겁게 받아들이겠단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나섰으니 외롭지 않다. 2017년, 불가능에 도전하고 깨지면서 또 이뤄 가기를 희망해 본다.

인생UP데이트

저도 매번 깨우쳐 나가는 중이라서 조언할 입장이 아니에요. 그래도 나누고 싶은 말이라면 ‘포기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무모한 도전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좋은 것만을 하라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지금까지 자신이 해 왔던 도전 혹은 일, 예술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자원이 될 수 있어요. 나 자신과 지금 여기(here & now)의 필요성과 자신이 지금껏 하고 있는 예술이 만난다면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요. 나의 존재 이유는 누군가의 필요에서도,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예술에서도 모두 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저 역시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을 지금도 찾아가고 있어요. 포기하지 말고 즐겁게 해 봅시다!

김현진 프로필
학력
-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학 전공
-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연극원 M.F.A. 연기과 아동청소년극전공 졸업, 4기

주요 경력
- 前 한국예술영재 교육연구원 주관 ‘숨어있는 예술 영재를 찾아라, 예술영재발굴 프로젝트’ 강사
- 前 경인교대 초등교사 직무연수 <연극을 활용한 교육과정 재구성>
- 前 지혜나눔사업 ‘당신의 꿈, 당신의 이름’: 어르신들과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연극프로젝트
- 前 문화가 있는 날-청소년문화예술교육 탭TAP탭TAP <심쿵에 귀기울이면!> 예술감독
- 現 바람꽃연극놀이터 대표

주요 활동
- ‘20회 아시테지 어린이여름축제’ 참여연극 <탈무드> 연출(2012)
- 1~4회 삘릴리청소년연극제 연출(2013~2016)
- <풍파>, <리어카> 연출(2015)
- 바람꽃 어린이연극 <호박 컨테스트>, 연출(2016)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