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지속 가능성의 방법론으로 크라우드 펀딩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윤성욱 이사에게 문화예술 기획 매개자들이 신뢰 자본을 만들 때 생각해야 할 전제와 과정을 듣는다.

각기 다른 업종에서 능력과 실력을 쌓다

2000년대 초, 당시만 해도 경영학과를 졸업하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당연한 코스라 여기던 분위기였다. 하지만 윤성욱 이사는 복학하면서 영화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연스럽게 콘텐츠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영화 시사회 진행도 하고 설문 조사도 하면서 영화 콘텐츠를 만들고 마케팅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마침 그 당시 막 시작한 작지만, 맨파워가 좋은 신생 영화 투자 배급사가 있었어요. 그 회사에서 경영학과 출신의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고 그래서 이쪽 일을 시작하게 됐죠.” 그때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붐이 막 일던 때라, 명문대 졸업생도 많이 지원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2000년도 중반에 들어서면서 투자 시장이나 제작 환경이 안 좋아지자 많은 친구가 다른 업종으로 자리를 옮겼다.

콘텐츠 금융 관련한 경력은 어떻게 쌓으셨나요? 영화 콘텐츠의 밸류 체인을 보면, 기획사, 제작사, 유통사, 대관 업무를 하는 회사 등이 있어요. 전 공교롭게도 이 모든 과정을 다루는 회사에 있었죠. 영화 투자 배급사, 일반 대기업 광고 대행사, 벤처 캐피탈, 금융 회사에 있다가 지금은 스타트업 회사로 오게 됐는데, 결과적으로 하는 일이 똑같았어요, 콘텐츠 금융과 관련된 업무였죠. 어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자금을 조달하고 공정하게 배분하고 정산하는 업무를 했어요. 그게 제 경력 관리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회사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업무에 집중해 경력을 쌓아 왔다고 생각해요.

회사를 옮길 때 고려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하는 일은 거의 변함이 없어요. 투자를 기획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배급하는 업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죠. 저는 돈 때문에 직장을 옮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어떤 조직에서 인정받으려면 업무 능력 이외에도 조직 내에서 신뢰를 쌓아 가는 게 중요한데, 그런 업무 능력과 신뢰를 한 조직에서 쌓는 것과 다른 업종에서 쌓는 것은 차이가 크다고 봐요. 제 직무는 줄곧 콘텐츠 금융 업무였지만, 다른 업종에서 능력과 신뢰를 쌓아 간 케이스죠. 재미있는 건, 업종마다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가 달라 혼선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중간에서 조정해 주고 커뮤니케이션을 해 주는 일을 하며 저만의 전문성을 갖게 됐어요.

집단 지성의 플랫폼, 크라우드펀딩

그는 회사를 옮기더라도 전혀 새로운 업종으로 가는 것보다 자신이 쌓은 지식과 노하우가 도움이 될 만한 곳을 선택했다.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을 택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스타트업 회사였지만,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해서 회사가 가려고 하는 방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들어서다.

스타트업 회사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은행에서 근무 중일 때 마침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문화콘텐츠 분야에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집단 지성의 플랫폼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싶어 지금의 대표님을 만났어요. 만나 보니 크라우드 펀딩의 작동 원리가 상당히 사회관계학적이고, 자금의 수요와 공급에서 있어서도 현실의 문제를 넘어설 비전이 있더라고요. 와디즈가 하려고 하는 일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팀원으로 합류했어요.

문화예술에서 크라우드펀딩을 새로운 파이낸싱의 대안으로 찾고 계신데, 어떤 의미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누군가에게 돈이나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려면 꽤 오랜 시간 그 사람을 관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신뢰를 쌓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죠. 조직이나 업종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건 결국 신뢰를 얻는다는 건데, 그게 크라우드펀딩에서 이야기하는 ‘신뢰 자본’과 맞닿아 있어요. 문화예술은 창작 기반 시장이라서, 창작자가 쌓은 신뢰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결국 그 신뢰 관계로 먹고살 수 있는 거예요. 그런 관계를 제가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하죠.

‘좋은’ 사람과 ‘좋은’ 기업과 ‘좋은’ 투자자를 연결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셨는데, ‘좋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좋은’은 굉장히 중의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이죠. 좋은 기업가라고 해도 투자할 수 있는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예요.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한국 사회에서 무너진 신뢰 프로세스를 만드는 일이에요. 신뢰가 없는 사회에서 신뢰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거든요. 그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죠. 저희가 선의로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자금이 투자되면, 좋은 게 실력이 되고, 기회비용이 되죠. ‘좋은’의 의미는 사업 성과, 평판, 능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거예요.

3년, 신뢰를 쌓는 데 필요한 시간

윤성욱 이사는 어떤 회사든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고 신뢰를 쌓기 위해서 최소한 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3년을 일했는데도 좋은 지지자나 레퍼런스, 신뢰하는 동료가 생기지 않는다면 결론은 하나다. 그 일에 실력이 없거나 재능이 없는 것이다. 냉정하게 판단해서 그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

회사에서 동료와 어떤 관계를 갖는 게 중요할까요? 동료는 단순히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수직적 관계로 보면 안 돼요.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가 생기면, 역할의 차이가 있는 것뿐이죠. 같은 업무, 같은 취향, 같은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동료예요. 그런 동료가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죠. 저희처럼 조직이나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경험들이 모여 새로운 금융 플랫폼을 만들어 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동료라고 생각해요.

이 직업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보통 금융 회사에서는 정량적 평가를 하기 마련이잖아요. 좋은 아이디어나 기술, 사회적 가치가 있거나 좋은 성장성에 대한 판단을 기존 금융 시스템에선 하기 어려운 일이죠. 투자자들이 무조건 돈을 생각하고 투자하진 않아요. 다양한 주관적 판단으로 투자를 하죠. 좋은 기획 의도를 가졌는데,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성실하게 수행할 것인지 투명하게 결과 등을 판단하죠. 주변에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돈으로 입증이 되는 거예요. 돈이 증명하는 거죠. 그래서 창작자 분들에게 기다리면 연결된다고 말씀드려요. 이게 될까 싶은 것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연결하는 거죠. 그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는 것, 더 성장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직업의 전문성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모든 의사 결정은 문제 해결이 필수적이죠. 그래서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해야 하고 아울러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요구해요.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적절한 레퍼런스 라인이나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그걸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합니다. 적어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정확한 상황 인식을 하는 건 전략적으로 필요해요. 그게 진짜 실력이죠. 실제로 저희 회사에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증권 회사, 마케팅 회사, 디자인 에이전시, 게임 회사, 로펌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지만 그들이 현재 하는 일은 그전의 업무와도 연관되어 있어요. 그동안 해 온 핵심 업무를 기반으로 그걸 새롭게 응용해서 지금 회사에서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일했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건 아니다. 기업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떠나서 규모가 크든 작든, 어떤 회사의 시스템에서 일해 본 경험은 또 다른 일을 해 나가는 데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분야를 정해서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는 일, 개인의 크레디트를 쌓는 과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인생UP데이트

모르거나 문제가 있거나 하면, 주변에 물어봤으면 해요. 인터넷 검색은 더 이상 좋은 레퍼런스가 아닙니다. 물어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상황을 빨리 인식해야 문제를 해결해서 벗어날 수 있어요. 문화예술은 한곳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적지만, 그래도 꾸준히 3년 이상은 해 봤으면 해요. 그러면 자신의 레퍼런스나 지지자가 생기게 되고, 그렇게 신뢰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일의 전문성과 자세, 자신에 대한 신용을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인가를 생각해 봤으면 해요.

윤성욱 프로필
학력
-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주요 경력
- 前 쇼이스트 한국영화팀
- 前 한컴 콘텐츠투자팀
- 前 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
- 現 와디즈 비즈니스실

주요 참여 작품
- 영화 <올드보이>, <주먹이 운다>, <사마리아>, <타짜>, <블라인드>, <명량>, <군도>, <신의한수>, <연평해전> 등 다수
- 뮤지컬 <미드나잇>, <캣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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