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전공한 큐레이터 심소미. 건축에서 미술로, 지역 대안공간과 상업 갤러리에서 독립 큐레이터로, 화이트 큐브에서 도시 공간으로, 그 경계에서 느리지만 집요하게 첨예한 관찰자로 있는 그의 다른 시선을 따라가 본다.

건축의 한계를 미술적 상상력으로 풀다

최근 한국에서 건축을 공부한 큐레이터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심소미 큐레이터는 특이한 케이스로 주목받았다. 건축 공부를 하다 보면 풀어야 할 여러 가지 도시 문제나 답답한 상황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갤러리와 미술관을 다니며 해답을 찾았다. 건축에서 느끼는 한계점을 미술적 상상력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건축을 공부하셨는데, 미술 분야의 일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건축을 공부하면 미술 전시도 많이 보게 되고 그러다 미술사 공부도 하고 자원봉사나 인턴을 하면서 기획자로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미술이 건축 분야의 한계들을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하게 풀어내는 자발적 상상력의 여지가 더 많으니까요. 그러면서 점차 건축과 미술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어요.

비전공자로서 경력을 쌓기가 어려웠을 텐데요,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2003년에 안양의 대안공간 ‘스톤앤워터’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현장을 경험했어요. 건축 전공자이다 보니 공간에 접근할 때 화이트 큐브보다는 도시 맥락을 가지고 있는 곳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때 지역 대안공간으로 유일하게 ‘스페이스 빔’과 ‘스톤앤워터’가 유일하게 도시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었고, 서울에는 ‘사루비아다방’이 있었죠. 그래서 이들 공간에 지원서를 보냈는데, 스톤앤워터에서 제 특이한 이력을 보고 뽑아 주셨어요. 그 당시 지역 대안공간이 막 생겨난 때라서 지역의 신진 작가들을 지원하고 지역 담론을 만드는 일을 경험했는데,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 진학해 예술학을 공부했어요.

화이트 큐브 밖으로 나온 유의미한 실험들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기 전까지 ‘갤러리 스케이프’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국내의 대안적 상업 갤러리가 없는 시기에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미술시장에 진출시키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진, 조금은 특이한 공간이었다. “갤러리 스케이프는 좀 더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 저처럼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고, 저도 그런 의미에서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 많았어요.”

하지만 전시를 구성하고 시각화하는 과정과 결과에서 화이트 큐브가 가지고 있는 맥락적 한계를 느끼게 됐다. 그 스스로도 큐브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규정된 공간에서 상상력을 펼치는 것보다는 스스로가 밖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해서 독립 큐레이터로 나오게 되었다.

최근 전시나 프로젝트 중에 의미가 있는 것을 소개해 주세요. 도시 맥락에 대한 관심 때문에 <모바일홈 프로젝트>(2014), <신지도제작자>(2015)를 하고 2016년에 <마이크로시티랩>을 기획했어요. 도시 공간이 전시 사이트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전시 방법을 고민하는 프로젝트였죠. 보통 전시장 안에서 관람하는 형태가 미술의 보편화된 전시의 구성 형태잖아요? 그런 조건에 대해서 저는 딴지를 걸고 싶었던 거죠. 전시 방법론 자체를 건축적인 이슈로 풀어서 전시 사이트로서 외부 공간을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 도시적인 상황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달라지겠죠. 예를 들어 전시장 밖으로 나가면 작품이 좀 더 퍼포밍하게 등장할 수 있고, 전시가 아닌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고요. 작품을 관객에게 드러내는 방식에서 실험적이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미술과 건축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갤러리가 아닌 실제 도시 공간에서 전시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도 생길 텐데요? 처음부터 기획에 따라 세팅된 전시가 아니라 장소에 개입하는 방식이라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벌어져요. 한번은 멕시코 작가가 피아노 연주자를 초대해 백화점 앞 거리에서 폐점 시간에 나오는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공공공간과 상업공간의 경계에 주목한 것이죠. 연주하는 30분 동안 노숙자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라고요. 거리를 지나다니는 대부분의 사람은 무관심한 상황에서, 노숙자들은 끝까지 듣고 나서 잘 들었다고 연주자와 악수까지 하고 돌아가더군요. 너무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당시에는 아무런 대처를 못 했죠. 이후에 ‘장소에 개입하는 작가와 소통하는 관객은 누굴까’라는 고민을 안게 됐어요. ‘도시에서 개입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시민은 누구인가’ 등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기획자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죠.

첨예한 관찰자로서 경계에 있다는 건

경제적인 면에서 지속력이 떨어진다는 건, 많은 독립 큐레이터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건 작가도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독립 큐레이터라는 신념으로 강하게 버티고 있지 않으면 느슨해지기 쉽다. 무엇보다 모든 상황을 스스로 조직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하고 싶은 기획을 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기획을 구체화하고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봉착하게 되는 어려움과 아쉬움이 늘 있다.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면 공간에 대해 생각을 할 텐데 어떻게 해결하세요? 요즘에 부쩍 주변에서 그런 조언과 걱정을 많이 듣고 있어요. 아무래도 독립으로 일하면 자기 공간에서 하는 것보다 집중도가 떨어지고, 뭔가 쌓이지 않는다는 것도 있고요. 매번 모든 걸 새롭게 기획하고 조직해서 실행해야 하는 게 정말 어렵긴 하죠. 기금을 받는다고 해도 부족한 부분을 혼자 책임져야 하고요. 예전에 ‘갤러리 킹’이라는 대안공간을 공동 운영한 적이 있어요. 서른 살 안팎의 친구 네 명이 모여 미술에 대한 열정만으로 함께했죠. 네 명이었기 때문에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가면서 많은 시너지를 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 공간을 지속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공동 운영이 해체되고, 한 친구가 공간을 더 이끌어 나갔어요. 공간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인지 아직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크지는 않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립 큐레이터가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첨예한 관찰자로서 어디에 속해 있지 않고 경계에서 있을 수 있다는 점이죠. 그러면서 양쪽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걸 작가들과 함께 풀어낼 수 있고요. 화이트 큐브 전시와 도시 공간 속 공공 미술 프로젝트 사이, 또는 로컬과 인터내셔널 사이에서 우리가 사는 도시 공간의 다른 개입과 실천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획의 전문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기획자는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기에 공부를 병행하며 자신의 관점을 구체화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하지만 학위를 위한 제도적 공부는 안 하려고요. 셀프 스터딩(self-studying)이 셀프 오거나이징(self-organizing)의 시작인 것 같아요. 제가 독립 큐레이터를 하려 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공부를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거든요. 그런 방법의 하나로 사회,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소규모 세미나 그룹에 참여하면서 서로의 리딩 방식을 공유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다른 영역의 언어를 경험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10여 년을 기획자로 활동해 오면서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미술계의 모든 것이 점점 더 스펙터클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을 하더라도 연구를 하면서 하고 싶은데, 미술관에서조차 그런 게 잘 안 되는 부분이잖아요. 창작, 기획, 향유가 스펙터클 안에서 돌아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그는 느긋하면서도 좀 더 집요하게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속도도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다.

인생UP데이트

건축에서 미술 쪽으로 진입했던 방식이나 갤러리에서 일하다가 독립 큐레이터로 나오게 된 계기를 살펴보면 항상 그 사이에 제가 보고 경험했던 많은 것들이 관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보고 찾아다니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전시뿐 아니라 도시를 보는 방식은 물론 무엇이든지 그걸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과 보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심소미 프로필
학력
-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졸업

주요 경력
- 前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 前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 前 스톤앤워터 큐레이터 역임
- 現 독립 큐레이터 / 미술 및 건축 저술가

주요 전시
- 모바일 홈 프로젝트 (송원아트센터, 서울)(2014)
- 신지도제작자 (송원아트센터, 서울)(2015)
- 마이크로시티랩 (인디아트홀 공/ 서울시 외부공간, 서울)(2016)
- 프리-마이크로시티랩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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