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다가 출판사까지 덜컥 내고 매년 책을 출판하며, 연극·공연과 관객을 책으로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예술가로서 프로젝트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면서 텍스트와 공간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인생UP데이트 프로젝트의 작가로도 활동했던 허영균 대표를 만났다.

책과 공연과 밀접한 삶

토요일이 되면 비디오 앞으로 달려가서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녹화 버튼을 눌렀다. ‘EBS토요명화’를 녹화하는 일은 허영균 대표가 집에서 맡은 즐거운 숙제였다. 녹화된 테이프에 라벨을 붙이고 이름을 적는 일이 좋아서 자청했는데 덕분에 어려서부터 영화와 연극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집에는 책과 자료들이 넘쳐 나서 항상 곁에 두고 탐독했다.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독서는 ‘침묵하되 다른 사람과 말하는 것’으로 눈으로 읽은 것이 청각으로 재현되고, 감각이 전이되는 순간을 사랑했다.

학창 시절에는 어땠나요? 중학교 때는 연회, 사물놀이 등 장르에 상관없이 대회에 나갔고, 방학 때는 합주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저 정도 열정이라면 반드시 국악을 전공할 거라는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해 버렸어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영화, 책, 공연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했죠. 그리고 대학에서는 영문학과 일문학을 전공했어요. 대학원에서는 공연예술학(석사), 예술학(박사)을 공부했고요. 대학원 석사 시절 LIG 문화재단의 계간지 〈interVIEW〉의 에디터로 활약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엮어 내는 법을 배웠어요. 이 책은 원래 사보처럼 발행되었는데, 외부 편집자를 영입하고 예술적 내용을 심화해 3호까지 발행됐죠. 그러다 (재)국립극단 학술출판팀에서 인턴·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기획하고 책을 편집하는 일을 했고, ‘월오다(월요일 오후 5시)’, ‘관객학교’ 등을 비롯한 여러 인문학 강좌를 진행한 경험도 있어요. 책 만드는 것이 좋았고 재미있었지만 출판사를 설립하게 된 건 다소 즉흥적이었어요. ‘1도씨’의 탄생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죠.

어떻게 출판사를 운영하게 되셨나요? 국립극단을 그만두고 대학로에서 신인 연출가들이 모여서 페스티벌을 했고, 그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어떻게 세상에 선보일까 난항을 겪던 참이었어요. 그래서 좀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 녹취 풀고 작업을 하던 중에, 인터뷰 내용이 유익하고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은 것이 의미 있겠다 싶었어요. 지금까지는 자기 목소리를 많이 내지 않은 신진 예술가들이어서 그 내용을 출판물로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아보니 출판사가 있어야 정식으로 유통이 가능해서, 그길로 종로구청에 가서 출판사 등록을 했어요. 아직 1인 출판사입니다.

잘 읽히는 책을 만든다는 철학

전공자가 아니라도 교양이나 취미로 읽을 수 있는 공연예술 전문 서적은 없는 걸까? 희곡이 소설처럼 읽힐 수 있는 그런 책은 없는 걸까? 전공자들도 어쩔 수 없이 보는 올드한 책들 속에서, 예술공연출판사 ‘1도씨’는 변화를 바라본다. 그리고 ‘독자가 될 관객을 기다리고, 관객이 될 독자를 기다리는 출판사’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책-독자-공연-관객이 교류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간한 희곡집들에 대한 소개를 해주세요. 희곡선, 추적선, 비평선이 3대 시리즈물인데 지금까지 바코드를 달고 세상에 나온 책이 6권이에요. 일 년에 2~3권씩 부지런히 발간한 셈이죠. 어떻게 발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끝나지 않아서 비평선은 아직 못 내고 있어요. 《10분릴레이희곡집1(26편)》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서울연극센터에서 공모한 희곡을 묶어서 낸 것으로, 희곡 작가가 데뷔할 기회가 적으니 세상에 알린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던 책이었어요. 이후 책의 반응이 좋아 《10분릴레이희곡집2(29편)》로 증간 발행했고, 서울시립대 앞 어느 책방에서는 자발적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독자들이 모여 ‘1도씨 희곡낭송’ 모임을 가지신다고 해요. 29편을 모두 완독했다고 하니 좋은 책을 찾고 1도씨를 알아주는 독자가 늘어나는 것 같아 뿌듯해요.

1도씨의 희곡선이 만들 때 가졌던 남다른 철학이 있나요? 잘 읽히는 책을 만들자 결심했어요. 함께하는 편집 디자이너가 책을 정말 많이 보고 읽는데도 희곡만큼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어요. 그래서 “당신이 읽기 편한 방식으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요청했어요. 희곡을 자주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처음 희곡집을 읽으려고 할 때 어떻게 읽어야 할지 불편함을 느끼죠. 희곡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시각화하거나, 상황에 따라서 지문의 베리에이션이 달라지게 하고, 판형에 따라 텍스트를 어디에 몇 번째 구성할 것인가 등 미묘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고 책을 만들었어요.

추적선을 만들면서 작년에 처음으로 적자가 났다고 하는데, 어떤 상황이었나요? 추적선은 공연예술을 만들었던 그 과정을 추적하고 기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공연을 하나 올릴 때까지 생산적인 논의를 하고, 부침을 겪으면서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데 극이 끝나고 나면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게 되잖아요. 현재형이니, 공연 아카이빙(?)쯤 될까요? 작년 조아라 씨에게 인터랙티브 공연아트의 과정을 담은 원고 기고를 받아 책을 냈는데, 적은 수량을 인쇄했지만 500부를 모두 소진하진 못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적자가 나고 하니까, 취미의 연장이 아닌 작업으로서의 출판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어요. 제가 기꺼이 무언가를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좋았어요.

프로젝트 그룹

허영균 대표는 자신의 회사를 두고 독립출판사라고 명명하지 않는다. 독립출판사는 작가 개인이 만들어서 유통하는 것이라면, 1도씨는 원고 기고를 받아 디렉팅을 하는 것이니 엄연히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예술공연출판사 1도씨’라고 정의한다. 외부에서 의뢰받은 프로젝트들은 비공식 시리즈로 책을 발간하고 있다. 아직은 직원이 없이 혼자서 책을 만드느라 바쁘지 않을까 싶은데, 꾸준히 공연도 발표하고 있다.

1도씨에서 하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들이 있나요? 2016년에만 3개의 공연을 소화했어요. 인천아트플랫폼 상주 작가로 연출, 극작, 무대 디자인, 음악가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멜팅다츠’를 만들어서 〈Melting Bar〉를 창작하고 출연도 했고요. 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는 <보물섬>이라는 드라마터그를, 우란문화재단의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멘탈 트레블러>라는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어요. 많은 분들이 어떻게 2D의 책, 3D의 공연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창작하는지 궁금해하시더라구요.

허영균 대표는 두 개의 연출 과정은 같다고 말한다. 책을 예를 들자면 내용, 이야기 구성, 표지 선정 등 모든 것이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서 움직였던 방식대로, 공연에서도 동일한 과정이 적용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에 관해 기본을 세우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잇고 붙이면 된다.

전공이 지금 하는 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공연예술을 하게 됐을 때, 다들 갑작스런 방향 선회라고 느꼈지만, 저는 그런 반응이 더 놀라웠어요. 영문학, 일문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면서 가장 중립적인 예술이 문학이라고 생각했어요. 문학은 가장 중립적인 예술이고, 문화의 모티브가 될 만한 문화적 유산들이 텍스트로 정리되어 있어요. 선택은 제가 자발적으로 했지만, 기초 학문으로서의 중요성 때문에 영문학을 부모님이 추천해 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1도씨가 어떻게 될지, 내일은 어떤 삶을 살지 누구도 알지 못하고, 허 대표도 관심이 없다. “오늘만 산다”라는 단순한 대답처럼, 오늘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직은 청춘이고, 인생의 온도는 1℃ 올라가고 있다.

인생UP데이트

예술을 전공하는 분들 가운데 ‘어쩔 수 없어서’ 혹은 ‘마땅히 흥미로운 것을 찾지 못해서’ 해당 전공을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전공으로 삼았을 때는 각각 남다른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품었던 꿈이 바뀌거나 사라져 버리고 마는 때가 올 수도 있고, 그런 상황에서의 방황과 고민은 상당히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술 전공생들이 진로를 바꾸거나 적성 자체를 의심하는 일에 죄책감까지 종종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균형이 깨져야 더 큰 균형을 잡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어요.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나왔던 대사인데, 매우 공감하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순간의 빈틈으로 다른 많은 것들을 발견하시면 좋겠습니다.

허영균 프로필
학력
- 영문학, 일문학 전공
- 성균관대학교 예술학협동과정 박사 재학

주요 경력
- 前 LIG 문화재단 계간지 〈interVIEW〉 에디터
- 現 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주요 활동
- 출판 : 1도씨 희곡선 《레드 채플린》, 《10분릴레이희곡집1》, 《10분릴레이희곡집2》, 1도씨 추적선 《어쩔 수가 없어》 외 다수
- 공연 : <멘탈 트레블러> 드라마터그 (우란문화재단, 프로젝트박스 시야), <보물섬> 드라마터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인천아트플랫폼 상주작가 공연 창작 및 출연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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