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스테이 비우다’는 문화예술콘텐츠 기획자인 권지민이 기획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문화예술 기획자로서 머무는 행위와 복합문화를 연결한 공간을 상상하고 현실화하면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 균형감 있게 걸어온 과정을 들어 본다.

불안정한 시간을 다독이며

전통음악 피리를 전공하고 공연 기획을 부전공으로 한 데 이어서 문화콘텐츠까지 다방면으로 공부했다. 실기를 전공했다고 모두가 연주자의 길을 걸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연주자는 전공의 틀 안에 갇혀 있기 마련인데, 다른 장르와 결합하거나 연결해서 활동하기에는 기획 쪽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냉정하게 판단해서 자신의 전공에서 톱이 될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잘하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남는 건 아니더라고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사람이 마지막에 살아남는 거예요. 사실 연주자는 실력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자기 자신의 연주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원동력으로 한결같이 꾸준히 힘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연주가 늘 부족해 보이고 아쉽기만 했고 그런 생각들로 인해 지치는 과정이 반복됐던 것 같아요.” 지금 일을 하면서 그가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은, 결국 자신을 지치게 하지 않는 법을 아는 사람이 자기 일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비교적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시고 프리랜서로 활동하셨더라고요. 맨 처음 문화마케팅 회사에 있다가 국립국악원으로 자리를 옮겨 직장 생활을 했어요. 그곳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눈이 아파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그만두게 되었어요. 5~7개의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하고, 계속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기분이었죠. 그래서 사업 기간이 짧은 걸 해 보자는 생각에 5년 정도 공연 기획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2년 동안은 매주 장르에 구애 없이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전시도 많이 봤고요. 소속감이 없던 프리랜서로서 불안한 시기를 잘 다독이며 보냈던 것 같아요. 일본에서 2년 정도 있을 때도 건강을 더 챙기고, 여러 다양한 전시도 많이 봤어요. 그렇게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불안한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한 밑거름이 되는 것 같아요.

‘제주스테이 비우다’를 만든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서울에서 기획자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공간의 문제였어요. 내 공간을 갖기가 너무 힘들다는 거였죠. 공연 기획을 하려면, 연주자가 있어도 공간을 먼저 찾고 공간에 맞춰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서울은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싸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죠. 2011년 우연히 제주도에 오게 된 후, 서울에 살아야 할 이유와 제주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적어 보니 굳이 서울에서 살 이유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2012년 쯤 제주에 정착을 결정하면서 공간도 구체화했지요.

나만의 색을 잃지 않을 것

공간에 대한 구상은 길지 않았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빨리 캐치업 하는 편이죠. 제가 좋아하는 말이 ‘니즈(needs)’예요.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질적인 니즈뿐 아니라, 사람의 감정이 필요로 하는 니즈를 파악하고 그 부족감을 충족하는 무언가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문화예술 기획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는 니즈가 포착되면 바로 실행할 방안을 모색하고 현실화한다. 기존의 것도 새롭게 보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바꿔보는 것이다.

숙박과 복합문화공간을 함께 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제주에 예술가들이 오면 가장 큰 문제가 수입이죠. 제주가 개발 붐이 심하게 불긴 해도 서울보단 살기 좋거든요. 예술가나 기획자가 기금을 받아 공연한다고 해도 수익이 생겨 나눠 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잖아요.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려면 다른 곳에서 일정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그리고 제주에 지인이나 친구들이 왔을 때 매번 집에서 재울 수는 없다 보니 공간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수입이 있어야겠다는 니즈와 기획자로서 내 공간이 있어야겠다는 니즈가 만난 거죠.

공간 기획과 운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의 색깔을 잃지 않는 것이요. 두 가지 니즈가 만났지만, 기획자로서 제 색깔이 잘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이곳은 층이 많은 감귤나무밭이었어요. 보통 이런 곳에 건물을 세운다고 할 때 층진 형태를 다 메워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층진 형태를 유지하고 싶었어요. 저는 공간이 작품 속에 들어가 머무는 느낌이 있었으면 해서 그렇게 건축가에게 의뢰를 했어요. 공간을 건축하는 발주는 제가 했지만, 많은 작가 분들이 문패, 글씨, 가구, 패브릭 등에서 협력해주셨어요. 그리고 이곳 ‘채우다’는 공연장이 중심이에요. 카페가 공연장을 빌려 쓰는 개념이죠. 보통 카페에서 공연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엄연히 달라요. 공간을 운영하다 보면 무엇보다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많지만, 가급적 제 색깔을 잃지 않는 선에서 균형을 맞춰 가려고 해요.

2013년 7월 하우스콘서트, 첼리스트 문웅휘 공연 2013년 7월 하우스콘서트, 첼리스트 문웅휘 공연 2016년 7월 하우스콘서트, 첼리스트 이정란 공연 2016년 7월 하우스콘서트, 첼리스트 이정란 공연

기획자에게 꼭 필요한 감각

예술을 품는다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제주도에 오면서 그가 가장 많이 생각한 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걸 나누는 일이었다. 전통음악을 전공했지만, 지금 하는 것은 현대적인 작업이 많다. 전통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공간이 가진 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한다. 한국적이지만 외국인에게 불편하지 않고, 새롭지만 익숙하게 균형을 맞추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아이템으로 풀어내려고 한다.

가장 의미 있었던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세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작가, 연주자와 함께 돈보다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보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제가 공간을 가지고 있으니까 일단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서 레퍼런스를 만들자고 했죠. 그래야 나중에 더 크게 하더라도 재원 조성을 하지 않겠냐며 시작했던 게 <한글 토크 콘서트>예요. 많은 분들이 기여한다는 의미로 함께해 주셨죠. 한글의 글자와 활자에 관한 포럼도 진행하고, 그릴 것인가 쓸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이어 가면서 깊이 있는 문제들을 다루었어요. 너무 흥미 위주로 가다 보면 콘텐츠는 있는데 깊이가 없어지게 돼요. 의미 있고 깊이 있는 프로젝트는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고 봐요.

활동하시는 데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늘 재원이 문제이지 아이디어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도 공공 기금이나 외부 지원을 받지 않으려 해요. 왜냐하면, 소액 다건으로 효과적인 사업 수행도 어렵고, 지역 작가 포함 부분 등에서 제가 하고자 하는 방향을 잃어버리겠다 싶더군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포기가 아닌 수용을 하려고 해요. 처음에는 공간의 디테일을 읽어 주지 않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최근엔 조금씩 공간을 잘 느끼려 하는 분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도시에서만 살던 제가 이렇게 흙을 좋아하고 식물을 좋아하는지 몰랐었어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오는데, 그때 자가 치유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잖아요. 힘들 때 제가 키우는 식물들을 보면 많은 치유가 돼요. 식물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사람 관계랑 비슷해요. 식물의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로 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해하고 공생하는 거죠. 햇빛, 물, 공기, 바람만으로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걸 보면서 저도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해요.

처음 제주도에 공간을 만들기로 했을 때, 장소는 일주일 만에 결정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감귤밭에 층이 많이 나 있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땅이었지만, 그는 한눈에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틀에 박힌 패턴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보지 못했을 새로운 형태의 가치가 그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 안에서 새롭게 아이템을 구성하는 센스가 기획자에겐 필요하다.

인생UP데이트

젊은 청년 입장에서는 경력에 대한 조급증이 생기기 마련인데, 어쩌면 시간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기술이 있는 거 같아요. 사람들 각자의 감정이 있고, 캐릭터가 있어서 그걸 매뉴얼처럼 말하기는 어렵죠. 그래도 말씀드린다면, 경계를 경계해야 한다고 봐요. 탈장르 시대에 스스로 한계를 둔다면 전형적인 틀 안에 들어가게 되니까요. 그리고 만약 저처럼 중간에 공백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면 자신을 잘 다독이고 다음 스텝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그 시간을 잘 보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권지민 프로필
학력
-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기악과, 무용원 이론과 예술경영학 부전공
- 일본외어비지니스전문학교 졸업
- 고려대학교 응용언어문화학 문화콘텐츠학 석사 졸업

주요 경력
- 국립창극단 국가브랜드공연 <청> 홍보·마케팅 협력 업무(2007)
- 국립국악원 장악과 기획홍보팀(2007)
- 現 Co-produce artist : Park Kyungso/ Gayaguem(2008~)
- 現 JEJU STAY BIUDA / 총괄 Creative Director & CEO(2012~)

주요 공연
- 이것은 가야금이 아니다 / 박경소 / 북촌창우 별별페스티벌 우수작(2012)
- 첼리스트 문웅휘 (One Day Festival 참여공연)(2013)
- 한글포럼 <한글 조형, 그 원형을 생각하다>(2013)
- 내면에 흐르는 물 / 박경소 / 무형문화재전수회관(2013)
- 가야금 이미경 / 박경소(2014)
- 가장 아름다운 관계 / 박경소(2015)
- 첼리스트 이정란 (One Month Festival 참여공연)(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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