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대표는 배우의 끼는 없었지만, 자신이 기획자로서 새로운 일을 만드는 일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2014년 창작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시작으로 흥행에 성공한 HJ컬쳐는 2016년에만 열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제는 브로드웨이를 뛰어넘을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HJ컬쳐의 한승원 대표는, 공연을 향한 진심을 쌓아 세계로 향하고 있다.

누군가를 웃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

“어머니가 어려서 자주 아프셨어요. 의사처럼 누군가를 치유하고 웃게 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의사가 안 된다면 뭐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진도에서 자란 섬 소년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어른이 되어 이런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막연히 꿈꿨다. 서부영화를 보고 자란 탓인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장풍을 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치유하는 힘을 영화와 연극에서 찾았다.

“교회에서 성극을 짜고 무대에 올리는 것이 재미났어요. 방송 사회자, 쇼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막연한 동경으로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지만, 동기들과 비교했을 때 끼를 직업으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졌다. 배우로서 끼가 없어서 그만둘까 고민하던 청년은, 프로듀서로서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고 일이 재미있어서 기획을 도맡아 했다. 연극영화과 학생회장에 이어 예술대 학생회장까지 역임했고 학생들로 구성된 공연기획팀 ‘놀다’를 만들었다.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행사를 수주하며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학교나 교회 등에서 전공을 살려 많은 일들을 하셨는데요. 졸업 후에는 어떻게 현장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졸업 후에 작은 극단에서 일했는데 극단의 형편상 연속성을 가지기가 어렵더라고요. 극장 사람들에게 가끔 서러움도 느꼈고, 큰 세상에서 능력을 쌓고 다시 이 업계로 돌아오자고 마음을 먹고 공연 시즌이 없을 때, 면접을 봤어요. 그때 얼마나 순진했는지 극장의 관계자들은 준공무원이라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일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6시에 퇴근하면 다시 극단에 가서 공연을 올리겠다는 마음을 먹었죠.(웃음). 그렇게 첫 번째로 취직한 곳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국립박물관 문화재단)이었는데 기획자였고 직장생활은 처음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최종 면접을 볼 때, 훌륭한 기획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표를 잘 파는 사람이요, 객석을 꽉 채우는 사람이요”라고 대답했어요. 다들 면접이니 추상적으로 말하는데, 저는 현실적으로 대답했죠. 돈을 벌지 못하면 수익을 나눠 가져야 하는 극단 관계자들이 더 힘들어지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어떻게든 수익을 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극장 용’이라는 이런 완벽한 환경에서 망하면 절대 안 된다고, 돈을 벌어서 예술을 하면 배고프다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연극영화를 전공한 것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공동 제작사를 위해 마이너스가 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마인드는 연극영화과 출신이니까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었어요. 연극영화과에 가서 제가 어디에 소질이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 현재 프로듀서로 살 수 있는 거겠지요. 그리고 공연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의미가 있어요. 관객에게 사랑받는 공연을 만드는 제작자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죠.

원아시아마켓 네트워크 컨퍼런스 원아시아마켓 네트워크 컨퍼런스

브로드웨이를 뛰어넘는 작품

퇴근 후 집에도 가지 않고 밤새 남아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좋은 공연을 만들고 수익을 남겨서 연극계가 자생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5년 정도 근무하고 극장을 떠나기로 했을 때 다들 만류했다. “네가 기관에 있어서 그렇지 다른 곳에 가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HJ컬쳐는 언제 만들었나요? 만들게 된 계기도 듣고 싶습니다. 아직은 현업의 기획자로 왕성하게 일하고 싶은 욕심이 커서, 모 신문사 문화사업팀과 대형 뮤지컬 제작사로 옮겨서 뮤지컬을 제작하는 업무를 맡았어요. 그런데 정부 산하 기관과 대형 제작사를 경험하며 “공연으로 정말 수익이 나긴 할까” 싶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배우와 제작자들이 생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기에, 그 갈증은 더 컸고요. 그때 입학한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문화콘텐츠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저의 업(業)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공연 제작자로서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 창업이었어요. 2010년 문을 연 HJ컬쳐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의미로 ‘Human’과 ‘joy’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창작뮤지컬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나요? 창작뮤지컬을 한다고 하니 다들 말렸어요. 미쳤다고 했죠. 한국의 뮤지컬 시장이 이미 포화인데다 창작뮤지컬로 수익을 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브로드웨이를 뛰어넘을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래도 불안하니까 사업하다가 빚을 질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딱 2년 만이라도 해보자 하고 시작했어요.

스타마케팅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특정 배우의 힘에 기대면 나중에 그 배우가 출연하지 않을 경우 타격이 클 수 있어요. 회사가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회사가 존속할 수 있는 좋은 콘텐츠가 우선이라 생각해요. 스타마케팅이 저희랑 맞지도 않고요. 설립 초창기부터 장기 전략으로 ‘W액팅스쿨’이라는 배우 아카데미를 병행하고 있는데, 배우 월급제를 실시해 잘 훈련된 배우를 작품에 기용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결국,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일

무사히 2년을 넘겼다. 그뿐 아니라 뮤지컬 <파리넬리>, <셜록홈즈>, <빈센트 반 고흐> 등을 제작했고 ‘한국뮤지컬대상’, ‘더뮤지컬어워즈’, ‘예그린어워즈’ 등에서 수상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모두 한 대표가 기획한 작품들로 한국 뮤지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는 마니아 관객이 많은 공연으로 인정받고 있다. 천재 음악가로 명성이 자자하던 라흐마니노프가 야심 차게 내놓은 교향곡 1번의 실패 후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었던 3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픽션 뮤지컬이다. 역사적 사실의 뼈대 위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재해석하고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2016년 초연 무대에서 좌석 점유율이 96%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관객의 사랑을 받은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렇게 올린 작품이 지금은 마니아 팬을 가진 작품이 되었죠. 44회 공연이 됐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신 관객이 있어요. 오늘은 몸이 너무 피곤하지만 공연장으로 향한다는 글을 보고 오히려 저보다 이 작품을 더 사랑하는구나 싶고, 그들을 공연장으로 계속 이끌게 하는 의무감은 무엇일까 궁금했어요. 연극의 3요소에 왜 관객이 들어가는지 생각하고, 그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감탄하게 되죠.

프로듀서로서, 대표로서 어떤 성장통을 겪었나요? 2016년 상반기에만 7개의 작품을 올렸어요. 좋은 작품만 향해 달렸고, 무리했죠. 대표로서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작품을 잘하는 것 못지않게 회사를 회사답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요즘 계속 생각하는 말이 ‘축적의 시간’이에요. 모든 것은 축적의 시간 위에서 꽃피운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돌이켜보면 척박한 시장에서 창작뮤지컬이 성공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함께한 스태프들의 축적된 노하우가 거름이 되어 주었다. 그는 “HJ컬쳐는 왜 존재하는가, 관객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한다. 관객을 즐겁게 하는 작품을 하자! 이런 선의와 진심이 모여 세계인이 주목하는 작품으로 더 높이 비상하길 기대해 본다.

인생UP데이트

내가 빛나고 싶으면 이 길을 가기가 어려워요. 관객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사람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죠. 절대 돈과 명예를 주지 않으니까요. 예술만이 유일하게 인간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숭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위로와 격려, 기쁨을 느끼고 갈 수 있도록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가 깊이 숙고할 수 있는 사람이 창작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한승원 프로필
학력
-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부 졸업
- 단국대학교 문화예술학과 석사 졸업
- 동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 수료

주요 경력
- 더뮤지컬 어워즈, 예그린어워드, 한국뮤지컬 어워즈 등 수상 경력 다수
- 한국프로듀서협회 올해의 프로듀서상 수상(2004)
- 문화관광부 장관상 표창(2006)
- 現 HJ컬쳐 & W액팅스쿨 대표
- 現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이사
- 現 한국뮤지컬협회 이사

주요 작품
-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살리에르>, <파리넬리>, <마리아 마리아>. <리틀잭>, <라흐마니노프>
- 연극: <만추>
- 쇼&넌버벌: 외 다수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