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2만 권을 읽고도 부족하다는 독서광이 있다. 중앙의 연극 무대에서 평생을 살아오다 얼마 전 고향인 포항으로 내려와서 지역의 문화재단에 뿌리를 내렸다. 모두 서울로 향하는 지금, 부모님과 이웃들이 함께 보고 즐길 수 있는 공연과 문화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지역으로 향했다. 포항문화재단 엄국천 팀장을 포항에 내려가서 만났다.

깊이, 더 깊이 파고들어라

엄국천 팀장이 살던 곳은 포항에서도 한참 더 시골이다. 하루에 버스가 몇 번 다니지 않는 곳이라 아침이면 수천 마리의 제비들이 집 앞 전신주에서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너는 공부해서 성공하라”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큰 도시를 나와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때 본 연극 한 편이 인생을 바꿔 놓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연극제에 출품된 <칠산리>라는 작품을 보고 연극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매일 교과서만 보고 갑갑하게 살아가던 소년의 마음속에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에 불이 지펴진 것이다.

아버지를 겨우 설득해서 연극학과에 입학하자 목마른 아이처럼 연극 무대만 찾아다녔다. 돈이 없으니 연극을 보기 위해서 하루에 한 끼만 먹던 날이 더 많았다. 새벽 2시의 대학로의 공기는 오후 7시와 달랐고, 사람들의 노랫소리, 발걸음 하나에도 시시각각 변해 갔다. 연극은 평생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삶의 전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연극을 보는 만큼 인식과 사고는 한층 깊어지고 있었다.

20대, 연극학과에서의 삶은 어땠나요? 학교 와서 한 해 동안, 대여섯 편의 작품을 소화할 정도로 미쳐서 살았어요. ‘연극이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 풀리지 않는 답을 찾기 위해서 보고, 참여하고, 글을 쓰면서 길을 찾던 시절이었어요. 특히 책 읽기는 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었죠. 소설가 장정일이 세상의 무지와 맞서기 위해 수만 권을 읽었다고 해서 그만큼 읽어 봐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어요. 장정일은 소설·시·희곡을 관통하는 사람이잖아요. 철학, 미학, 연극학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대학원 때 탐구의 주제를 ‘동양연극’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서양의 인식과 패러다임으로 보면 우리 판소리와 연극이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명말 청초의 공연 연출가이자 극작가, 이론가인 ‘이어(李漁)’가 쓴 <한정우기>를 대학원 시절 번역한 일이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시학>이나 <드라마의 기법>으로 분석이 되지 않는 우리 공연예술의 전통이 <한정우기>로는 명확하게 해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린 스스로의 문화적 현상을 우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의 틀이 없어요. 항상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그들의 시선에 포착되는 현상만을 학문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폐단이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전통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사유의 지평을 동아시아의 전통 예술로 확대하여 연결 고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나다운 것을 찾기 위한 열정

문헌을 찾을 때는 다 찾아보고 근거를 따지면서 깊이 들어가는 것이 엄국천 팀장의 방식이다. 작품을 만들 때도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해 낸 작품을 내놓았다. 대학교 4학년 결혼을 앞두고 부부가 처음 만든 작품이 <좀머씨 이야기>다. 엄국천 팀장이 기획·극본을 맡고 아내가 연출했고 학교의 동기와 후배들이 출연했다. 포항문화예술회관의 공연장을 빌려서 공연을 했는데 천 석의 공연장이 3회 모두 유료로 매진되는 성과를 보였다. 특히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국내에서 유명하기 전이라, 좋은 작품을 발굴해서 대중에게 알렸다는 데도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이던 99년 <단풍소리>라는 작품을 만들게 된다. 아시아네트워크연극제 공식초청작으로,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여자였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작품이다. 스승이신 최치림 연출가와 같은 대가들이 같이 작품을 하자고 할 정도로 당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대학원 시절 쓴 〈토마토 여인〉이라는 작품은 아직도 연극학과 학생들이 제작 공연으로 자주 올리는 작품이다.

만들었던 작품 중에서 기존의 틀을 깬 것이 있다면 어떤 공연이 있나요? 극단 ‘세발자전거’에 있을 때는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체험 연극을 만들었어요. 고구려의 고분 안에서 아이들이 연극을 본다고 가정한 거죠. 회당 30명만 들어오는 작은 텐트를 만들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고분벽화를 만지며 눕거나 앉아서 역사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나는 겁니다. 당시 대부분 아동극이 대극장에서 화려한 볼거리와 재미에만 치중되어 있었고, 아이들에게 규격화된 관람 문화를 강요하고 있었어요. 이 틀을 깨고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상상력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시도했고, 남들이 안 된다고 말한 것을 성공시킨 사례가 있나요? 안산문화재단에 있을 때 제작 PD로 <반쪽이전>을 만들었어요. 우리나라의 옛이야기를 복원하고 뮤지컬로 만들었는데, 지방의 문화재단이 상주 단체 없이 오디션을 봐서 작품을 만든 첫 사례였습니다. 사실 다들 안 된다고 했지만 초연 이후 몇 년간 무대에 올라가며 매년 매진될 만큼 안산시민의 사랑을 받았어요. 안산시민의 자부심이라고 불렸죠. 제작 첫해에 일본 블랙텐트와 프랑스의 아비뇽 공연도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안산문화재단은 지금도 제작 극장으로서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요.

아버지가 마을에서 볼 공연

서울예술단, 안산문화재단, 정동극장, 극단 ‘세발자전거’를 거쳐 2010년에는 한국공연예술센터(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의 공연기획부장이 되었다. 그곳에서 연간 400편의 공연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국가의 지원이 있다고 해도, 공연을 해서는 수익을 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다시 극단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아르코예술극장은 대학 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직장이었는데도 포기하고 ‘벼랑끝날다’라는 극단의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모든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렸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공연의 수익으로 40명의 단원에게 월급을 줬다. 그리고 경기도문화의전당 경기도립국악단 기획실장으로 재직하다 지난 2017년 3월, 고향인 포항으로 내려왔다. 포항문화재단이 신설되고 문화기획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골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어머니가 챙겨 주시는 밥을 먹는데, 포항 시내로 공부하러 떠난 지 35년 만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지역으로 내려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한다.

왜 지역으로 내려오겠다고 결심하셨나요? 어떤 것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프랑스의 아비뇽 축제가 세계적인 공연 축제가 된 것은, 그 지역에 예술가들이 살면서 오랜 시간을 통해 문화를 만들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모든 문화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요. 지역의 가치는 무궁무진하지만 그 가치가 잠자고 있죠. 포항은 철강 산업 이후에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상상하고 채울 콘텐츠가 필요한데, 여기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50년 후 세상을 그려 보려고 합니다. 마을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문화를 만들면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연극이 인생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후배들과 일을 할 때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싶어서 출근이 설렌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행복했습니다. 연극의 무대에는 작은 배역은 있어도 중요하지 않은 배역은 없습니다. 연출자의 생각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면 무대 위에서 그들은 저와 아바타의 세계처럼 교감하며 움직입니다. 연극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관이든, 극단이든, 저는 항상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한 명의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도 무대를 떠난 적이 없다”라는 고백처럼, 엄국천 팀장은 평생 오로지 무대만 생각하면서 무대 위에서 살았다. 그리고 무대는 마을로 확장되었다. 아침이 되면 제비가 지저귀고 뒷동산에는 온갖 열매와 꽃이 피는 곳으로 말이다. “이제는 다시 떠나지 않을 거예요. 지역에는 할 일이 더 많으니 인재들이 더 많이 내려왔으면 좋겠어요.” 지역의 마을에서 심은 문화의 나무가 10년 후에는 더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를 희망해 본다.

인생UP데이트

좋은 선배를 만났으면 합니다.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꿔 줄 존재를 만난다면, 5분만 얘기해도 그전과 다른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도 인식하지 못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다면 책을 펼쳐 보세요. 많이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면 근거가 없고 곧 한계, 즉 임계점이 찾아옵니다. 문지방을 넘어야 한다면 책을 밟고 살짝 넘어가길 바랍니다.

엄국천 프로필
약력
-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졸업
- 중앙대학교 대학원 연극학과 박사 수료

주요 경력
- 前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정동극장 직원
- 前 생생극단 세발자전거 대표
- 前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 공연기획부장
- 前 극단 벼랑끝날다 기획실장
- 前 경기도문화의전당 경기도립국악단 기획실장
- 前 중앙대, 국민대, 경희대, 인하대, 대진대, 청운대, 동덕여대 시간강사
- 現 포항문화재단 문화기획팀장

주요 활동
- 기획: 무협활극 〈조씨고아〉, 뮤지컬 〈무녀도동리〉, 음악극 〈카르멘〉, 역사체험연극 〈박물관은 살아있다〉, 가족뮤지컬 〈유열의 브레멘음악대〉, 국악뮤지컬 〈반쪽이전〉
- 극작: 〈좀머씨이야기〉, 〈토마토여인〉, 〈단풍소리〉, 뮤지컬 〈젤소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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