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별 문화재단 설립이 가속화되면서 문화예술제도 정책에서 문화재단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된 지역협력형 사업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예술지원제도와 정책에서 문화재단의 역할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곧 예술환경의 주요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weekly@예술경영]은 문화재단의 설립 현황을 살피고 운영 현황을 통해 문화재단의 역할을 가늠함으로써 변화되는 예술환경을 전망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연재순서: ① 총론
문화재단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고 운영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안전장치,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재정지원, 지역 여건을 잘 이해하고 행정과 문화예술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있는 유능한 인재 채용 등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재단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지역문화예술계의 합의를 전제로 할 때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근 2~3년 간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재단 설립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기왕에 광역자치단체가 설립한 서울, 경기, 인천, 강원, 광주, 제주 등의 문화재단과, 기초자치단체가 설립한 부천, 고양, 성남, 부평, 전주, 서울 중구의 문화재단 이외에 최근 들어와 설립되었거나 설립 검토 중인 문화재단만도 상당한 숫자이다. 올해 초 부산문화재단이 출범하였고 대구는 2009년 6월 현재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마무리하고 직원을 채용 중이다. 대전 역시 10월 출범을 목표로 설립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경남과 전북, 충북 역시 문화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접한 바 있다.


기초자치단체 가운데에는 최근 서울의 구로와 마포, 경남 창원 등이 문화재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으며 안양, 춘천과 원주 등에서도 설립을 구체적으로 추진한다고 들은 바 있다. 지금 나열한 지역 이외에도 문화재단 설립을 준비 중인 곳이 더 있을 수 있다. 인천의 한 기초자치단체도 문화재단 설립 방침을 확정하고 설립 추진에 대한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다. 아마 공식적으로 조사해본다면 분명 위에서 언급한 지역 이외에도 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더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문화재단 설립은 이제 하나의 정책적 트렌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문화재단 설립 붐의 두 축, 민간주도와 지방이양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우선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이 민간주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큰 흐름 속에서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설립을 비롯해서 중앙과 지방 모두 문화예술 영역을 민간의 전문기구에 위임함으로써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이 문화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민간 중심의 문화재단이 과거 지방정부가 담당했던 역할을 일정부분 이관 받음으로써 공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민과 관의 바람직한 협치 모델로 꼽아도 좋을 것이다. 실제 기존에 설립된 문화재단들은 저마다 지역 특성에 어울리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발굴함으로써 중앙 위주, 혹은 관료 중심 문화정책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문화가 갖고 있는 자율성과 전문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주장도 설득력을 얻으면서 이제는 각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문화재단 설립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정책 흐름이다. 정부의 권한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막대한 재정 운용권인데, 최근 문화 영역에서는 중앙정부 및 문화예술위원회의 일부 정책 집행, 즉 재정의 집행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중앙정부나 기구의 재정이 지방으로 넘겨져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들에 투여되는 방식이 지방분권의 한 방식이라고 이해할 때, 지역의 문화재단은 그런 사업을 하기에 적절한 시스템이라고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지방에서 문화재단 설립을 서두르는 데에는 이런 재정 지원의 혜택을 받아보자는 의도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좌로부터 <서울문화재단>, <부산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로고



중앙정부나 문화예술위원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지역에 기반을 두고 문화적 전문성을 갖춘 공적 기구가 있을 때 그 기구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정책 효과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을 법하다. 그런 까닭에 문화체육관광부나 문화예술위원회의 입장에서는 문화재단이 설립되어있는 지역에 더 많은 재정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지방정부에서는 문화재단이 있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설립을 서두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재단을 설립하면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을 더 받을 수 있겠다는 판단을 지방정부도 하기 시작한 셈이다. 여기에 다른 지역도 재단을 설립하니까 우리도 있어야 되겠다는 경쟁심리가 발동하는 면도 없다고 할 수는 없겠고, 일부에서는 지방정부 수장들의 자리 늘리기를 위해서 재단이 설립되는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광역과 기초, 기금사업과 시설운영


그런데 정작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과연 문화재단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지역사회의 합의이다. 재단 설립을 서두르면서도 과연 문화재단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누가 운영할 것인지를 두고 동상이몽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게다가 광역자치단체가 설립한 문화재단과, 기초자치단체가 설립한 문화재단 사이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해가 상충되고 혼란을 겪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광역자치단체의 문화재단이 해야 할 역할을 기초자치단체의 문화재단을 향해서도 똑같이 요구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현재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르면 특별시장과 광역시장, 그리고 도지사는 지방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위원회 또는 재단법인(이하 위원회 또는 재단을 재단으로 통칭)을 설립할 수 있게 되어있으며 국가는 지방문예진흥기금 일부를 매년 이들 자치단체 또는 재단에게 교부하고 있다. 따라서 광역자치단체에서 설립한 문화재단은 법에 명시된 문예진흥기금 지원 사업을 중심으로 지방의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여러 사업들을 하고 있다. 여기에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는 자체적으로 조성된 문예진흥기금을 관리, 운용하는 일을 재단에 위임하고 있기도 하다.


구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구로아트밸리, 창원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성산아트홀


그러나 기초자치단체가 설립한 문화재단은, 지방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이런 사업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문예진흥기금의 규모도 크지 않거나 아예 없는 자치단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앙정부로부터 기금의 수혜를 받는 것도 아니므로 기금 사업에 주력하는 것에서 자기 역할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현재 설립된 기초자치단체 출연 문화재단의 경우는 문화시설을 관리, 운영하는 데 주요한 기능이 맞춰져있는 상태이다. 부천, 성남, 고양, 부평, 서울시 중구 등 비교적 초기에 출범한 문화재단들은 공연장, 박물관, 기타 문화기반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며, 이후 설립된 마포와 구로 등의 문화재단도 마찬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다소 도식적으로 구별하자면 광역자치단체가 설립한 문화재단이 문예진흥기금을 토대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면 기초자치단체 출연 재단은 문화기반시설을 운영하는 형태라고 정리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명확히 대별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광역 기반의 문화재단들도 문화기반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으며 일부 기초자치단체 출연 재단들도 크지는 않더라도 기금 지원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역자치단체 기반 재단들의 존립근거가 기금에 있다면 기초자치단체 재단의 존립근거는 문화시설에 있다고 해도 아주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여러 지방정부에서 설립 준비 중인 재단 역시 이런 틀에서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역 문화예술계를 넘어 광범위한 합의 필요


그렇다면 문화재단 운영 방식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재단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고 운영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제도적 안전장치의 마련과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재정 지원, 지역 여건을 잘 이해하고 행정과 문화예술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있는 유능한 인재 채용 등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재단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지역 문화예술계의 합의를 전제로 할 때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오랜 관행 탓에 재단 설립을 아전인수 격으로만 이해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여기에 재단 설립에 따른 과도한 기대감마저 작용하게 되면 오히려 재단 설립이 지역문화를 후퇴시키고 문화예술계의 반목과 갈등만 초래하는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특정 그룹이나 단체가 문화재단의 주도권을 놓고 다툼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며 마치 재단을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로만 이해하는 측면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재단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문화예술인들이어야 하고 재단의 수장 자리도 문화예술인들이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재단이 지역문화 진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질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따져보는 일이다. 자칫 본말이 전도되면 문화재단은 갈 길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도 많다. 왜냐하면 문화재단이야말로 지역사회 내에서 문화와 관련된 핵심적 지형이 변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다 보면 자리다툼과 이권 갈등의 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현실로 바뀔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재단 설립은 서두를 일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충분한 토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추진하는 것이 옳다. 행정편의주의에 기반해서 성과를 내기 위해 관 주도로만 추진되어서도 안 될 일이며 공공의 합의 없이 특정 그룹이 주도해서도 될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교문 만들기, 인천시청역[인천문화재단 공공미술 프로젝트]


문화재단은 지원금의 배분, 문화시설의 효율적 활용 등 문화를 둘러싼 문화예술계의 핵심적인 문제들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화예술계만을 위한 지원금과 문화시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궁극적으로는 시민과 지역 주민의 문화향수권을 확대하고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창작역량을 키움으로써 그 혜택을 지역의 주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사실, 지역의 예술인들이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은 자신의 예술적 역량과 예술가로서의 가치 지향을 어떻게 창작으로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에 대한 고민 역시 그것과 먼 거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치열한 예술적 활동이 자연스럽게 시민들에게 향유되고 이해됨으로써 예술가들은 다시 자신의 창작활동에 더욱 전념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된다. 그것은 더 넓게 보면 우리 공동체의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일이고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교양 있는 성숙한 시민사회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문화와 예술을 일상적으로 향유하고 누릴 줄 아는 시민, 치열하게 창작활동에 전념하는 예술가들이 많은 사회가 교양이 넘치는 성숙한 시민사회일 것이다.




관심과 애정은 갖되 과도한 기대감 비워야


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은 그런 바탕과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지원 사업을 합리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며 문화시설이 어떻게 지역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이다. 지역의 문화재단은 자신이 가야할 길,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을 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재단이 이런 임무를 방기하면 오히려 지역문화예술계를 반목의 길로 끌고 갈 수도 있다. 아울러 재단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관료와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 모두 관심과 애정은 갖되 자신의 마음은 비울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태도를 가질 때 그것은 결국 지역문화를 살찌울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현식

필자소개
이현식은 1966년에 태어나 줄곧 인천에서 성장했다. 연세대 영문과,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7년 계간 [문학과 사회](문학과지성사)의 추천을 받아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인천발전연구원 문화정책 담당 연구위원으로 일했고 2005년부터 현재까지 인천문화재단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추계예술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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