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문화 예산 비중은 국가 차원의 문화 투자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2020년 예산안 기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전체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 정도인데 이는 2000년 이후 소위 ‘문화예산 1% 시대’를 연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수준이다. 총액 기준으로 본다면 2020년 문체부 예산은 크게 특별할 것도 없이 국가 재정 총규모의 증가폭에 따라 순증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예산은 순증한다. 본예산 기준으로 2010년 292조였던 국가 예산이 2020년에 513조 원의 규모가 되었듯이 같은, 기간 4.1조였던 문체부 예산은 6.4조가 되었다. 따라서 예산의 증감은 크게 의미가 없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개요 이미지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개요 이미지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그럼에도 2020년 예산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우선 블랙리스트 이후를 보여주는 예산안이라는 것과 더불어 새 정부의 국정과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거의 마지막 시기라는 점 때문이다. 2018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결과가 공개된 후 다양한 조직적, 제도적 변화의 요구가 제시되었고 실제로 2019년도 예산까지는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 예산은 그 이후 이런 과정을 어떻게 제도상에서 내부화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예산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새 정부의 문화공약 달성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2022년 5월까지의 임기 중에서 중반을 넘어서는 시기로, 현재까지 제대로 추진되고 있지 못한 공약들이 2020년 예산안을 통해서 시행되지 않으면 사실상 실현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조건이 놓여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 현황을 공개하고 있는 문재인미터에 따르면 예산 수반이 필요한 공약 중에서 ‘예술인의 창조적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 강화’,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안정적 재원 확보’, ‘청년예술인을 위한 창작주거 인프라 조성 및 안정적 일자리 확충’, ‘민간 비영리 예술공간 지원’, ‘국민의 기초문화생활 보장’, ‘문화균형지수 개발, 낙후지역 우선지원’, ‘지역문화진흥기금 확충’, ‘체육인 복지증진과 체육지도자의 처우개선’ 등의 내용이 아예 평가가 안 되거나 혹은 지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울 것이 없는 2020년 예산안

결과적으로 보면 2020년 문체부의 예산은 지난 정부에 비해 구조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보도 자료를 통해서 내세우는 핵심적인 사업들을 보면, 우선 683억 원이 편성된 한국어 진흥 기반 조성 사업은 해외의 한국어 기관인 세종학당의 수를 늘리는 것이 골자다. 518억 원이 편성된 예술인 창작 안전망 구축 사업은 기존의 창작 준비금 사업의 확대와 올해 시범 실시한 예술인 생활안정자금 융자의 확대를 담고 있다. 창작 준비금의 경우 2019년에 166억 원 수준이었던 것을 2020년에는 362억 원 규모로 늘린다. 비슷하게 예술인금고 사업의 파일럿이라 할 수 있는 생활안전자금 융자 사업도 올해 85억 원에서 190억 원으로 늘어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사업이 모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인데 이렇게 확대된 지원사업의 규모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기관의 개선이 있냐는 점이다.

VR을 활용한 실감형 콘텐츠 개발이나 한류 확산을 위한 예산을 골자로 하는 콘텐츠 분야의 경우에는 19% 정도 늘어난 9,977억 원이 편성되었는데 이 역시 지난해, 더 나아가 지난 정부의 예산과 차별성이 있는 부분이 아니다. 세부적으로 미술관과 박물관에 VR시설을 넣는 데 200억 원이 신규 편성되었고, 현재 체조경기장을 케이팝(K-POP) 공연장으로 보수하는 데 171억 원이 신규 편성되었다. 문화누리카드의 경우에는 개인별로 연간 8만 원이었던 것을 9만 원으로 인상하면서 현행 915억 규모의 예산이 1,033억 원으로 증액되었다. 대상자는 전년 대비 1만 명 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제하고 있어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국민의 기초문화생활 보장’이라는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한국의 문화 예산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쟁점은 예술 예산의 독립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예진흥기금의 건전성이다. 2003년 문예진흥법상의 특별부담금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결정이 내려진 이후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특히 해당 위헌 판단은 특별부담금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징수 대상과 해당 재원을 통한 사업 간의 관계가 불분명해서 ‘포괄입법’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위헌성을 개선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 법 개정의 의지가 없이 관광진흥기금이나 체육기금으로부터의 전입을 통해서 기금을 유지하는 임시방편적인 미봉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자체 수입은 전체 재정 운용 규모에 비춰보면 12%에 불과해서 사실상 기금으로서 존치할 기본 요건, 그러니까 국가재정법 제5조에 명시하고 있는 기금의 규정인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자금을 신축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을 때” 설치한다는 요건 자체가 충족되지 않는 상태다. 사실 재원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과 같은 예술지원기구의 운영상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2019년에 비해 기금으로의 전출액은 늘어났으나 이것은 정부의 사업에 따른 것으로 문예진흥기금이 문체부의 사업 이관을 위하여 재원을 경유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 특히 보전지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커지고 정부 자체의 전입금은 도리어 줄어들어서 장기적인 기금구조의 건전성은 나아졌다고 보기 힘들다.

자금조달 자금운용
합계 533,410,000,000 원 합계 533,410,000,000 원
ㅇ 자체수입 66,079,000,000 원 ㅇ 사업비 262,208,000,000 원
ㅇ 정부내부수입 282,824,000,000 원 ㅇ 기금운영비 21,487,000,000 원
ㅇ 차입금 - 원 ㅇ 정부내부지출 5,000,000,000 원
ㅇ 보전수입 184,507,000,000 원 ㅇ 보전지출 244,715,000,000 원

<2020년 기금운용계획(안) 중 문예진흥기금 자금계획(안)>


강화되는 정책 소비자주의

오히려 2020년 예산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성과계획서와 관련한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성과주의 예산 체계를 채택한 정부의 예산은 성과계획서를 바탕으로 하는 성과 목표를 중심으로 정책사업-단위사업이 연계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산에 대한 평가는 개별 정책사업이나 단위사업의 결과가 성과계획상의 지표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2020년 문체부의 성과계획서에 따르면 6개 전략 목표에 78개의 단위사업 구조를 가지고 세부사업에 따른 예산이 편성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문화와 예술정책에 대한 전략 목표인 ‘삶의 질을 높이는 국민문화환경을 조성한다’와 ‘문화예술의 창조적 역량을 강화한다’가 대부분 산하 기관의 운영을 통한 프로그램 지표로 나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해외문화홍보원이나 국민민속박물관이나 중앙극장, 현대미술관 운영 자체가 성과계획의 중요한 수단으로 제시되어 있다.

창작지원사업의 경우에는 수혜자 만족도를 중심으로 하는 성과 지표가 거의 모든 장르에서 확인된다. 이런 성과 지표의 변화는 블랙리스트 이후 예술지원 정책의 현장성 강화라는 예술계의 요구가 어떻게 문체부 사업으로 내부화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문체부는 사업의 집행 방식이나 운영 과정에서 예술인들을 사업의 협치 혹은 거버넌스 파트너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만족감을 주어야 하는 정책의 소비자로서 여기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정책 소비자주의의 일반화가 성과계획서상의 신규 성과 지표를 통해서 확인되는 것도 2020년 예산안이 가지고 있는 주요한 특징이다.

이를테면 예술창작역량 강화라는 프로그램 단위사업에는 3가지 성과지표가 새로 도입되었다. 그중 지난 시기 공정성 논란 중 가장 첨예했던 문예기금의 공정성 관련 지표가 설문조사 결과로 갈음되어 있다. 하지만 문예기금 지원사업의 공정성은 단순히 지원당사자가 체감하는 공정성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심사과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이 더 핵심 요소일 수 있다. 그런데 블랙리스트 이후 새롭게 등장한 2018, 2019년 성과지표들은 만족도조사를 넘어사지 못하는 성과지표로 구성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성과
지표
가중치 실적 및 목표치 측정산식 또는
측정방법
자료수집
방법/
출처
분야
구분 ’16 ’17 ’18 ’19 ’20
(3) 문예기금
공정심의
인식도 (점)
0.3 목표 신규 신규 신규 신규 69.2 공점심의 절차
공정성에 대한 긍정
답변 빈도 수/
전체 설문조사 빈도 수
이메일을 통한
자기기입식 설문조사 실시
일반
재정
실적 신규 신규 62.8 (65.9) -
합계 10 - - - - - - - - -

<‘예술창작역량 강화’ 성과지표 중 일부>
출처: 2020년 성과계획서, 문화체육관광부, 226쪽


이런 특징은 예산 운영체계에 대한 혁신 없이 블랙리스트 이후의 예술계 의견을 형식적으로 수용하려는 엇박자가 빚어낸 촌극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예산이나 재정운용구조의 개방성 없이 사업집행 과정의 개선이 가능할 리 없다.

숫자 너머의 예산

예산을 본다는 것은 예산서의 숫자보다 그 재원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배분되고 실제로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짚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문체부가 2020년 예산안을 수립하기 위해 어떤 공론 과정과 숙의 과정을 거쳤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이미 일선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참여예산제 등 예산 편성 과정에 예산의 당사자인 시민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문체부가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개방적인 편성 과정을 제도화할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다. 또한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지원과 수혜의 이원적인 관계가 아니라 함께 집행하는 거버넌스의 과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2020년 문체부 예산은 눈에 띄는 몇 가지 부분에도 불구하고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오히려 블랙리스트 이전의 문화예산 편성의 관성을 보여주는 예산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 김상철
  • 필자소개

    김상철은 2012년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행사를 통해서 만들어진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으며 민간재정연구소인 나라살림연구소에 적을 두고 참여예산과 재정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밖에 아르코혁신TF 위원과 1기 아르코 현장소통소위 위원으로 활동했고, 예술인생활안정자금관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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