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시냐”라는 안부 인사에 “숨만 간신히 쉬고 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제는 묻기도 겁난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얼어붙어 버렸다. 늘 위기가 닥치면 약한 고리들이 가장 피해가 크다. 엄동설한이 달동네에 가장 가혹한 것처럼. 코로나19가 본격화되면서 지금까지 시각예술계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한번 짚어봤다. 앞으로 변화 방향을 미약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취소 또 취소 국제 아트페어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낀 것은 아트바젤 홍콩의 취소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2월만 해도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에서 가장 심각했고, 홍콩에서도 확진자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에서는 몇 건이 보고되긴 했으나 섣부르게 ‘종식’을 바라볼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홍콩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자, 아트바젤은 3월 예정된 아트바젤 홍콩을 전격 취소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아트페어를 운영하는 주체가 이런 결정을 하자 한국의 갤러리들의 표정에도 ‘먹구름’이 꼈다. 아트바젤 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아트페어다. 단순히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갤러리의 수준도 아시아 최고다. 한국 갤러리 입장에서는 한국 작가를 셀링하는 기회이자, 세계 미술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할 수 있는 행사다. 더구나 시장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작가 섭렵에도 나선다. 괜찮은 작가의 작품을 ‘페어’ 가격에 구매해 한국에서 되파는 갤러리스트들도 상당수다. 이 모든 비즈니스가 아트바젤 홍콩 기간, 페어장은 물론 주변 갤러리와 각종 이브닝 파티에서 벌어지는데 이 모든 것이 일거에 취소됐다. 과장한다면, 상반기 장사를 못하게 된 셈이다.
아시아 페어들이 문을 닫기 시작할 때 막차를 탄 건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화랑미술제와 미국 LA에서 열린 프리즈 LA 정도였다. 특히 프리즈는 겨우 2회차를 맞는 행사였음에도 수많은 관객들이 몰리는 것은 물론 판매도 성공적이었다. “마침내 태양이 뜨는 것을 봤다”라는 평가가 프리즈 내부에서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코로나19가 4월부터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으로 퍼지자, 아트페어도 문을 닫기 시작했다. 5월 예정이던 프리즈 뉴욕은 취소를 선언했고, 6월 예정이던 스위스 아트바젤은 9월로 행사를 연기했지만, 결국 지난 6월 9일 취소했다. 아트바젤 측은 “온라인 뷰잉룸은 운영할 것”이라면서도 “해외여행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행사가 제대로 진행될지 우려스럽다. 참여 갤러리, 파트너, 컬렉터들의 건강과 보건을 최우선으로 놓고 고민해 이같이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각각 연기된 날짜를 발표한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과 미술전 출처: 베니스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 각각 연기된 날짜를 발표한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과 미술전
출처: 베니스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

미루던 비엔날레도 결국 취소 선언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한 메가 비엔날레들도 취소를 잇달아 선언했다. 당초 5월 23일부터 6개월간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주제로 열릴 예정이었던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은 3월 초 개막을 8월로 연기했으나, 지난 5월 내년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짝수 해 건축전, 홀수 해 미술전이 열렸던 것이 서로 바뀌게 됐다. 상파울루비엔날레는 9월 개막이 10월로 미뤄졌고, 각각 6월, 7월, 11월 개막 예정이던 헬싱키비엔날레, 리버풀비엔날레, 자카르타비엔날레는 내년으로 연기됐다.
연기가 아닌 온라인 행사로 대체된 비엔날레도 있다. 지난 3월 개막한 시드니비엔날레는 열흘 만에 조기 폐막하고 온라인 전시로 전환했다. 그 외 다카르비엔날레, 로스앤젤레스비엔날레 등 여러 해외 비엔날레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국내 비엔날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맏형 격인 광주비엔날레는 내년 2월로 개막을 늦췄다. 원래는 9월 4일부터 11월 29일까지 예정이었으나, 전시를 꾸리는 예술감독들과 광주에서 신작을 제작해야 하는 외국 작가의 입국이 사실상 힘들어져, 연기로 방향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비엔날레는 5월 개최에서 6월 17일로 개막일을 연기했다 다시 8월로 미뤘으나 최종적으로는 내년 개최로 결정했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도 올해 개최가 무산됐다. 대구사진비엔날레도 내년으로 행사 개막을 연기했다.
다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는 예정대로 9월에 개막한다. 두 비엔날레 모두 원격 화상회의와 이메일 등을 통해 소통하고 있으며, 행사에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리서치는 작가들의 질문을 받아 학예사들이 대신 진행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작품 설치도 원격으로 대체됐다.

김성연 부산비엔날레 총감독 겸 부산현대미술관 관장은 “코로나19 때문에 비엔날레는 또 현대미술의 전시 방식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비엔날레는 당대 이슈에 가장 즉각적,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이벤트"라며 "비엔날레마다 변화된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미술계 다양성을 보여줄 기회"라고 설명한다.
연기든 강행이든, 국내 행사든 해외 행사든, 비엔날레가 처한 상황은 같다. 국제적 교류가 기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의 비엔날레는 이전과는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폴 도나반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치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아트바젤이 개최한 온라인 토크 프로그램인 ‘Conversations: The impact of Covid-19 on the art market’에 참여해 “코로나19가 구조적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면서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변화들, 온라인 소매, 유연근무제, 세계화 대신 지역 제조 등이 그 예다.”라고 말한다. 시각예술계도 이 같은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광주비엔날레가 진행한 데프네 아야스와 나타샤 진발라 예술감독과의 원격 기자간담회 출처: 헤럴드 DB 광주비엔날레가 진행한 데프네 아야스와 나타샤 진발라 예술감독과의 원격 기자간담회 출처: 헤럴드 DB
광주비엔날레가 진행한 데프네 아야스와 나타샤 진발라 예술감독과의 원격 기자간담회
출처: 헤럴드 DB

코로나19 시대의 시각예술계,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만 숨죽인 게 아니다. 국공립 미술관은 지난 2월부터 5월 초까지 휴관했다. 서울 수도권의 국공립 미술관은 지역 감염이 빠르게 확산됨에 따라 5월 말부터 다시 휴관에 들어간 상태다. ‘전시장’이라는 형태로 관객과 접점을 만들어가는 대부분 시각예술의 통로가 차단된 것이다.
기회가 박탈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신진 작가들이다. 이미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한 작가들은 굳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작업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아트바젤이 오프라인 행사를 하지 못하게 되자 ‘온라인 뷰잉룸’이라는 플랫폼을 론칭했다. 온라인에서 값비싼 작품이 팔리겠냐는 우려와 달리, 아트바젤 홍콩 온라인 뷰잉룸에서는 개막 첫날 100만 달러가 넘는 작품 판매에 성공한 갤러리도 나왔다. 프리즈 뉴욕도 온라인 플랫폼에서 개막 첫날 61만 달러 작품이 판매됐다. 문제는 이 같은 작품은 대부분 유명 갤러리, 유명 작가들의 것이라는 점이다. 양극화는 온라인에서 더욱 심해진다.
코로나19가 무조건 기회를 없애버리는 것만은 아니다. 인스타그램에는 코로나19 이후 ‘방구석 아트챌린지’ 격인 명작 따라하기(투센 쿤스트 앤 쿠아란타인), 코로나와 연관된 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온라인 미술관(코비드아트뮤지엄) 등이 인기다. 그러나 여전히 액정을 통해서만 시각예술을 접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휴관을 지속중인 국립현대미술관 출처: 헤럴드 DB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휴관을 지속중인 국립현대미술관
출처: 헤럴드 DB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린 코로나19의 시대, 시각예술계의 기본적인 생각을 요약하면 ‘버티자’다. 백신이 나올 때까지,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그러다 보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여전히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지나가더라도 새로운 바이러스는 창궐할 것이다. 팬데믹은 앞으로 인류가 함께 살아가야 할 기본 조건이다. 이쯤 되면, 예술에서 공공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든다. 지금은 공중보건을 최우선으로 하기에 공공기관들이 문을 닫는 것이 당연한 선택으로 여겨지지만 이 같은 상황이 몇 개월이 아닌 몇 년간 지속될 때도 과연 휴관만이 답일까. 물론 온라인 전시, VR 전시 등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이미 있는 전시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늘리는 정도다.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동적 태도를 넘어서 언택트 시대에도 예술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과 소통, 접점을 늘리기 위한 적극적 태도와 고민이 이제는 필요하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코로나19 지원안은 한계가 명확하다. 언택트 시대의 예술 공공성 지원이 아니라 고용위기 극복과 경기부양이 목표기 때문이다. 총 3,399억 원이 편성된 3차 추경 예산의 목적은 공공 일자리를 확충하고, 할인 소비 쿠폰을 지원하는 것으로 내수경제를 활성화해 문화 분야의 '한국판 뉴딜'을 이뤄낸다는 데 있다. 특히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공공미술프로젝트' 사업(759억 원)을 통해 미술가·예술가 8,436명이 전국 주민공동시설, 복지관, 광장에 벽화·조각 등 작품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전시 관람의 경우에도 2, 3천 원 가량 할인을 지원한다. 여기에 편성된 예산은 미술관 52억 원·박물관 38억 원 규모다. 긴급 수혈도 중요하지만, 긴 안목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 이한빛
  • 필자소개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해당 분야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술계 머글(비전공자)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과정을 밟고 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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