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형 코로나19 예술백신 프로젝트

창궐의 시대다. 역병은 연결 사회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고리를 끊었고, 그 고리 속에서 생존을 영위하던 사람들을 ‘궁지’로 몰았다. 가뜩이나 뒷전이고 약한 고리였던 지역 예술계는 ‘비대면’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강제 속에 속수무책 ‘사지’로까지 몰렸다. 경기 권역은 이미 지난해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으로 시작해 올해 코로나19로까지 이어지면서 근 10개월간 공연, 전시, 예술교육, 축제 등 장르를 불문하고 지역 예술 활동과 행사가 중단되었고, 미미하게나마 이어온 활동 수입 자체가 끊겼다. 병사(病死)보다 아사(餓死)가 더 걱정이라는 자조는 지역 예술계에 현실이 됐다.

지난 4월, 경기문화재단은 위기에 봉착한 도내 지역 예술계의 긴급 처방을 위해 여러 부서의 인원을 모아 TF팀을 구성했다. 경기도 추경예산 확보가 여의치 않자 총 50억 원 규모의 자체 긴급 재원을 편성하고 ‘경기도형 코로나19 예술백신 프로젝트’라는 지원책을 내놓으며 긴급 수혈에 들어갔다. 이 프로젝트는 크게 다섯 분야로 ①소규모 공공예술 프로젝트 ‘백만 원의 기적’, ②비대면 공연예술 프로젝트 ‘드라이빙 씨어터’, ③전업 시각 예술인 ‘긴급 작품 구입 및 활용’, ④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문화예술 영상 콘텐츠 제작 지원’ ⑤지속 가능한 예술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예술인 조합 공공예술 지원’ 사업으로 구성되었는데 타 지역이나 일반적인 코로나19 대응책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경기문화재단 ‘예술백신 프로젝트’ 안내문 경기문화재단 ‘예술백신 프로젝트’ 안내문

예를 들어 예술인 활동증명을 기준으로 한 단순 소득 지원이나 안정자금 단기 대출과 같은, 일반적인 코로나19 지원 사업의 형식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모든 프로젝트의 지향점을 공공가치로서의 예술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는데 두었다. 긴급 활동 지원이 예술인의 생계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곧바로 공적 문화예술 활동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예술인과 도민 모두가 그 결과를 나눌 수 있도록 실효성을 확장하려 했다.

‘예술백신 프로젝트’ 중 하나인 ‘드라이빙 씨어터’ 프로그램 안내문 ‘예술백신 프로젝트’ 중 하나인 ‘드라이빙 씨어터’ 프로그램

다음으로는 긴급 재원 마련에 있어 재단 창립 이래 처음으로 ‘기본재산’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1997년 창립 때부터 조성된 1천 220억 원의 기본재산은 재단 문화예술진흥 사업을 위한 ‘성역화’된 종잣돈으로 23년간 한 번도 활용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재단이 코로나19를 예술인들에게 그 어떤 때보다도 긴박한 ‘재난’ 상황으로 인지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지원 신청과 심사, 정산 절차를 과감히 최소화했다. 시의성이 생명인 긴급 사업인 만큼 지원 심사는 신청 사업의 질적 평가보다는 코로나19 극복이라는 사업 취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방점을 두고, 내부 심사로 지원 가부를 결정하고 별도의 증빙 서류 없이 결과물 제출로 정산을 대체하는 등 기존 문화예술 공모 지원 방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행정절차와 비용을 최대한 간소화하는 방안을 택했다.

재단의 ‘코로나19 예술백신 프로젝트’에 대해 경기 지역 예술계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먼저 소규모 공공예술 프로젝트 ‘백만 원의 기적’은 1백만 원의 소액 지원임에도 공고 기간 내내 문의 전화가 폭주했고, 재단 홈페이지 단일 게시판으로는 처음으로 1만여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끝에 1,133건이 지원 신청되었다. 시각 예술인 긴급 작품 구입 프로젝트는 250건의 작품 공모에 현재 1만여 건의 조회수를 보이고 있다. 다른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붕괴된 지역 예술계의 목마름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새삼 보여주고 있다.

사 업 명 사업비
(백만원)
사업 내용
백만 원의 기적 2,000 · 문화예술의 장르, 활동 방식, 연령과 관계없이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인과
단체가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도내 전역에서 도민의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내용으로 기획 실행하는 모든 소규모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지원
· 코로나19 극복 기획서(아이디어) 공모 선정 시 1백만 원을 우선 지원하고
프로젝트 실행 후 결과물 제출 시에 1백만 원을 추가적으로 지원
드라이빙 씨어터 1,000 · 코로나19로 인해 당초 계획이 취소 또는 연기된 공연이나 코로나19 극복
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신규 기획 공연 등 40개 팀의 작품 지원
· 판로가 막힌 독립영화 작품 50편의 상영권(1회 200만 원)을 구매하여
경기도 내 자동차 극장에서 총 4회의 비대면 공연 행사로 추진
긴급 작품 구입
및 활용
500 · 코로나19로 심각하게 판매가 위축된 미술 작품을 구입(1인당 1점, 3백만
원 이내)하고 이를 수요처에 대여함으로써 코로나19로 지친 도민들에게
예술 작품을 통한 치유의 경험 제공
예술인 참여형
콘텐츠 제작
1,200 · 연극, 음악 등 공연 예술 분야와 영화, 시각예술, 예술교육, 건축, 디자인 등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온라인 영상 콘텐츠(총 40건) 제작 지원
예술인 조합
공공예술 지원
300 · 예술인의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창작 활동 도모를 위해 예술인 조합이
스스로 제안하는 공공 예술 특화 프로젝트 심사를 통해 1차로 건당 5백만
원을 지원하며, 이후 사업계획(PT 발표) 심 의로 최종 선정 후 건당
최대 4천만 원 지원

경기문화재단 ‘경기도형 코로나19 예술백신 프로젝트’

광역 및 기초 문화재단 코로나19 관련 대응책 현황

우리나라는 1997년 경기문화재단 설립에서 시작해 올해 광역 단위로는 마지막으로 경북문화재단이 설립되면서 전국 17개 광역 시·도 모두 문화재단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들 문화재단은 해당 지역 예술인의 생계유지를 위한 자금 지원부터 창작 활동과 일자리 지원까지 코로나19 대응책으로 약 53개 사업에 235억 원(서울 60억, 경기 50억, 부산 31억, 인천 20억, 대전 16.6억 등) 규모의 긴급 예산을 편성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광역문화재단이 내놓은 프로젝트 중 예산 규모 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코로나19 대응책은 기존 정기 문화예술 공모지원 사업 외 추가적인 <긴급재난 예술 활동 공모지원 사업>이다. 총 8개 재단이 실행하며 사업비 94억 원(서울 42억, 경기 20억, 인천 13억, 부산 7.7억, 경북 6억 등)이 투입되었다. 다음으로는 <긴급재난 지역 예술인 생계 소득지원형 사업>으로 1인당 30만 원에서 최대 1백만 원까지 지역 특성과 여건을 감안하여 지원하고 있다. 총 7개 재단이 추진하며 사업비는 51억 원(부산 16억, 대전 14억, 대구 10억, 경남 4억, 울산 3억 등)이다.


세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로젝트는 예상대로 <온라인 예술 활동 및 영상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으로 총 10개의 가장 많은 재단이 진행하며 사업비는 36억 원(경기 12억, 서울 6.8억, 충북 4.5억, 인천 4억, 광주 4억 등)으로 파악된다. 위 세 가지 프로젝트는 17개 광역문화재단의 코로나19 대응 사업비의 77%를 차지해, 대부분의 광역문화재단이 비슷한 고민과 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기타 특이 사업으로는 ‘예술인이 재난을 대하는 가지가지 비법’ 기획 공모(서울, 4억), ‘코로나19 극복 예술배너 사업 <300, 소리없는 아우성>전’(광주, 1억) 등 각 문화재단의 특성을 담은 참신한 아이디어 사업이 실행되고 있다.

광역문화재단 외 전국에는 올해 4월을 기준으로 시·군 기초자치단체가 설립한 총 90개의 기초문화재단이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 기초문화재단은 지역의 공공 공연장 및 전시 시설과 같은 문화공간 운영과 이를 활용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사업 중심으로 운영되는 특성을 가진다. 이들 기초문화재단은 광역문화재단과는 달리 비교적 열악한 재정 형편상 코로나19 대응책으로 대부분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코로나19 이전에 계획된 문화예술 사업을 재난 위기 상황에 맞추어 무관중 랜선 콘서트 또는 온라인 공연 및 전시 콘텐츠 사업 위주로 전환하여 추진하고 있다. 경기 권역 기초문화재단을 살펴보면, 용인문화재단의 ‘우리동네 발코니 음악회’가 언론의 주목과 함께 지역 주민의 호평을 받았고, 수원문화재단은 이탈리아 오페라 명장면을 영상 콘텐츠로 제작해 온라인 TV로 생중계했다. 부천문화재단은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와 강사들이 참여한 ‘방구석 연주회’로 시민들에게 희망을 전했다. 성남문화재단은 자체 주요 기획공연 시리즈를 무관중 무료 공연으로 진행하는 등 대부분의 기초문화재단은 자체 기획 공연과 콘텐츠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제작하고 이를 무료로 시민에게 공개하는 대응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긴급지원의 빛과 그림자

코로나19에 대한 지역 문화재단의 긴급 대응책이 설 곳을 잃은 지역 예술인들의 생계와 예술 활동에 최소한의 숨통을 틔운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나 지역 문화재단을 통한 긴급 지원 사업 예산의 추가 투입으로 통계 수치상으로는 오히려 예년보다 지원 사업 수나 예산이 대폭 증가했고, 이를 통해 예술인들의 지원 신청 기회의 폭을 넓힌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지역민들은 답답한 시국에 가족들과 집에서 편안하게 한동안 볼 수 없었던 공연과 전시를 선택해서 즐길 수 있어 좋았다는 호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편 지역 예술인 입장에서 이번 코로나19 대응책을 통해 문화재단이 숙고해야 할 새로운 과제도 파생됐다. 예술위나 지역 문화재단이 여전히 긴급지원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지원 신청 과정과 영수증빙 결과물 제출 등 기존 정기 공모지원사업에서 요구했던 행정절차를 동일하게 요구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또 가장 많이 지적되고 있는 점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장르인 공연예술과 예술교육 분야 대부분의 지원 방향이 ‘온라인 영상 작품제작 지원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그동안 온라인 제작 환경과 프로세스에 익숙하지 못한 지역 공연예술 단체나 예술교육 강사는 공모 지원 경쟁에서 밀리거나, 선정되었다고 해도 제작된 영상 콘텐츠의 퀼리티가 낮을 수밖에 없어 경쟁력 있는 온라인 매체에 활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느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 단체 대표자에 따르면 과연 지금의 위기가 코로나19 때문인가라는 자조 섞인 질문을 하는 예술가들이 있다고 한다. 지역 예술계에서 예술가가 공공 지원금 수혜를 받지 못하는 환경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이나 이후나 비슷하게 열악하다. 문화재단의 코로나19 대응책은 긴급했고, 그래서 일시적이고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이번 코로나19가 예술인이 예술 활동만으로 온전히 생존을 영위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지역 예술 생태계의 변화의 담론을 이끌어내는 뜻하지 않은 기회가 됐으면 한다. 역병은 또 창궐한다.


  • 원준호
  • 필자소개

    원준호는 여의도 금융가에서 첫 직장을 가졌으나 IMF 이후 경기문화재단으로 이직하였다.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 참여한 이후로는 주로 경영기획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정책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메일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