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고용보험이 도입된다. 지난 5월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지난 6월 9일 공표를 거쳐 오는 12월 10일부터 시행된다. 6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제도를 마련하고, 시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 사이 조율도 만만치 않은데 단일화할 수 없는 예술인들의 노동 현황에 관련 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와 7개 문화예술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코로나19로 야기된 예술 현장의 다양한 문제와 고민을 공론화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코로나19 예술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이 중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7월 28일 2회차 포럼에서 앞서 언급한 예술인 고용보험을 중심으로 ‘예술인의 복지와 사회 보장’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제2회 코로나19 예술포럼
<코로나19 이후, 예술인의 복지와 사회보장>

일시/장소: 2020. 7. 28.(화) / 실시간 온라인 중계

사회: 박소현(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기조발제: 차민경(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
패널: 이씬정석(뮤지션유니온 전(前) 위원장), 정안나(연극인복지연구소 대표),
진형민(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운영위원장),
김용제(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 양영미(근로복지공단 적용확대추진TF팀 팀장)

새로 공표된 예술인 고용보험이란?

예술인 고용보험이란 쉽게 말해 예술가들에게 특화된 고용보험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예술인들의 노동은 프로젝트 단위, 용역 계약, 계약직 혹은 임시직 형태가 많다. 특히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프리랜서’ 신분이 전체 예술인 중 76%에 달한다. 상시적으로 출퇴근하여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 필요가 발생할 때 예술인 고용이 일어난다. 이렇기에 매달 고용보험료를 납부하는 일반적인 고용보험에는 예술인을 포함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용역계약은 근로계약과 달리 사회보험 가입 의무가 없기에 프리랜서는 4대 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예술계에서는 예술인들이 적어도 일반 국민과 비슷한 수준으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속에 들어가고, 외적인 이유로 예술 활동을 포기하지 않도록 예술인 고용보험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2014년부터 임의가입 형태로 예술인 고용보험이 추진됐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었다. 오는 12월 10일부터 시행되는 예술인 고용보험은 ‘의무가입’이다.

출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유튜브 출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유튜브

다만, 모든 예술인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직 전 24개월 중 9개월 이상 고용보험료를 납부한 가입자만 해당된다. 일반 근로자는 18개월 중 180일 이상이지만, 상시 고용이 아닌 예술인에게는 이보다 완화된 기준이 적용된다. 실업급여는 이직 전 1년간 평균임금의 60%, 실업급여에 상한액과 하한액이 있다. 현재 근로자는 상한액으로 기초 일액, 하한액으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두고 있고, 예술인의 경우는 상한액과 하한액 기준을 별도로 정할 예정이다.
이 같은 예술인 고용보험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있다. 발제를 맡은 차민경 박사는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의 기준이 되는 계약서가 필요한데, 현재 사용하는 표준계약서는 고용보험 논의 이전의 계약서라 고용 ‘기간’이 아닌 완성품의 ‘납품일’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고용보험은 용역비에만 적용되는데, 예술계는 저작권이나 대여비 등 혼합계약 체결이 많고, 용역수행의 비용까지 포함한 통계약도 흔하다.”며 “계약서상의 기간과 용역비 표시가 명확해야 하며 실제 노무 제공 기간과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더불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표현되는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예외도 예술인 고용보험 정책 시행 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차 박사는 “다양한 사례를 개발하고 관련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제도 실효성을 높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출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유튜브 출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유튜브

예술인 고용보험의 공연·시각·문학 분야 적용 주요 쟁점들

그렇다면 현장의 평가는 어떨까. 정부의 바람대로 문화예술계에 ‘큰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발표된 예술인 고용보험은 시작 전부터 비판과 우려에 직면해 있다. 법안의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실효성과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그리고 여전히 남는 사각지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아주 구체적인 질문이 고개를 든다.
공연예술의 경우, 대표자 한 명을 지정해 ‘팀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일반적인 기업의 ‘하청’과는 개념이 다르다. 일시적으로 팀을 구성해 한 명이 대표로 계약을 할 뿐, 팀은 갑을 관계가 아닌 모였다 흩어지는 스팟 조직의 성격을 띤다. 대표자는 말 그대로 대표일 뿐, 용역비를 받으면 나누고 헤어진다. 회사의 사장과는 거리가 멀다. 원청과 1:1 계약을 진행한다면 현재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행정 처리에 시간이 길어질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시각예술의 경우, 작품을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내는데 이것은 어딘가에 ‘고용’돼서 그 대가로 지급받는 형태가 아니다. 갤러리와 ‘전속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도 월급을 받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판매에 대한 독점권과 매니지먼트를 맡기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프리랜서도, 특수고용도 아닌 개인사업자에 가깝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시각예술가들이 사회보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소득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라서, 이들에 대한 안전망 확보는 여전히 필요한 실정이다.
문학은 공연 및 시각 분야와 또 다르다. 출판사와 계약금 혹은 인세를 받는 작가는 출판사에서 발행한 자신의 책 부수만큼 정해진 비율로 저작권 사용료를 받는다. 진형민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운영위원장은 “작가들은 노무 계약이 아닌 출판권 설정 계약을 한다. 글 쓰는 일이 분명한 노동 행위임에도 고용노동자가 될 수는 없다”며 “현안은 고용될 수 있는 예술가와 저작권 수입 그룹인 창작자를 고용예술보험이라는 하나의 그릇 안에 다 담아버렸다”라고 지적한다.

출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유튜브 출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유튜브
출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유튜브

근본적인 쟁점들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의 연 평균 수입은 1,281만 원으로 국내 임금 근로자 평균 연봉(3,634만 원)의 3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숫자만 봐도 예술인은 사회안전망에서 취약계층에 속한다. 생계를 위해서 ‘투 잡’을 뛰는 건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예술인 고용보험에서는 동일 기간 예술인과 일반 근로자로 동시에 근무했을 경우에 대한 정확한 시행령이 나오지 않았다. 실업급여의 기준이 되는 이전 1년의 평균 보수를 1,200만 원으로 계산하면, 월 100만 원의 60%, 즉 60만 원을 받는 셈이다. 이씬정석 싱어송라이터는 “이것으로 생활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이러면 소속 제한에 걸려 지급대상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예술인들도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가 많고, 겸업마저도 프리로 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특고나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을 고용보험 대상에서 제한다면 결국 예술인 상당수가 대상에서 다 빠지는 상황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고용보험료는 용역을 수행하는 예술인과 이들을 고용하는 원청이 각각 50%의 비율로 부담한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국가에서 관리하며, 지급한다. 대규모 적자가 나더라도 모두 국가 책임이다. 주체인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배제되는 근본적인 불일치가 발생한다. 정안나 연극인복지연구소 대표는 재정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프랑스의 앵테르미탕(Intermittent) 대신 북유럽의 ‘겐트 시스템(Ghent system)’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에서 도입한 ‘겐트 시스템’은 노동조합이 실업보험 기금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정부 인가를 받은 노조가 경쟁 방식으로 조합원을 모집하고 실업 보험료와 행정 운영비를 징수한다. 노조가 실업자에게 급여를 제공하는 자발적인 실업보험 제도다.”

출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유튜브 출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유튜브

고용이 일어나야 고용보험도 가능하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나왔다. 대학로 150개 공연장 중 현재 가동률이 30% 미만인 상황이라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김용제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은 “고용보험 제도는 충분히 받아들이고 해내야 할 가치지만, 그 이전에 과연 코로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앞으로 문화예술 공연의 형태들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고용보험의 성패가 달려 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남은 과제들

“왜 예술인들한테만 이렇게 (특혜를) 줘야 하느냐”
포럼 중 달린 부정적 댓글을 요약하면 이와 같다. 정책의 실행보다 가장 큰 산은 바로 일반 국민과 공감대 형성이다. 사회적 취약계층이라 예술인만을 위한 ‘고용보험’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면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최종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다. 진형민 운영위원장은 “예술가들의 삶이 빈곤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문 인력으로서 공공선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그들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예술인도 직업인이다. 예술도 하나의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기를’. 예술인 고용보험의 출발점이다.

  • 이한빛
  • 필자소개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해당 분야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술계 머글(비전공자)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과정을 밟고 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

참고링크
제2회 코로나19 예술포럼 <코로나19 이후, 예술인의 복지와 사회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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