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재미없나요? 왜 공연을 보면서 전혀 웃지 않아요?”

네덜란드 우롤축제에서 공연을 봤을 때이다. 옆에 앉아 있던 네덜란드 아주머니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에 “아마 문화적 차이가 아닐까요...”라고 말끝을 흐렸지만, 나 역시 공연 내내 박장대소를 하는 관객들이 꽤나 신경이 쓰였던 터였다. 도대체 뭐가 그리 재미날까? 유쾌한 공연이기는 했지만 시종일관 박장대소를 할 만한 공연은 아니었다. 비단 그 공연뿐만 아니라, 우롤축제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공연장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마치 과장된 리액션을 보여야 하는 코미디 프로그램 방청객처럼 즐거워하고 탄성을 질러댔다.

네덜란드의 우롤축제는 매해 6월에 테르쉴레잉(Terschellings)이라는 섬에서 펼쳐지는 거리극축제이다. 암스테르담에서 버스를 2시간 정도 타고 가서 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꽤 동떨어져있는 장소이지만 축제 기간에는 섬 전체가 공연장으로 바뀌고, 관객들 대부분은 캠핑을 하며 자전거를 타고 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본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축제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자, 이제 나는 즐겁게 공연을 볼 겁니다, 신나게 놀아볼까요?”

2007년 과천한마당축제한국에서 우롤 축제와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춘천마임축제가 아닐까 싶다. 춘천마임축제는 마임을 중심으로 하는 실내공연과 주말에 진행되는 미친금요일, 도깨비난장 등 축제성이 화끈하게(?) 발현되는 야외공연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아무래도 관객들의 시선을 확고히 끌어내는 요소는 2008년까지 고슴도치섬에서 진행된 미친 금요일과 도깨비난장이 아닐까. 새벽 5시까지 이어지는 마임, 무용, 음악 등 다양한 공연들이 관객들을 불러내는 매개체이지만 고슴도치섬이라는 공간은 그들을 밤새 앉혀놓는 놀이터인 것이다. 춘천마임축제의 그들 역시 우롤 축제의 관객들처럼 몸 바쳐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일상 공간들을 활용하는 도심형 축제들은 어떨까? 과천한마당축제를 예로 들어보자. 과천한마당축제는 인구 6만의 작은 도시에서 펼쳐지는 거리예술축제로 과천시내 공원과 평상시에는 방치되어 있는 넓은 공터를 주요 공간으로 삼는다. 또한 시내의 다닥다닥 붙은 빌딩 사이나 평상시에는 차량들로 점유된 왕복 6차선 차도가 무대가 되기도 한다. 과천은 우롤축제나 춘천마임축제에 비해서 공연할 장소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고 관객들 역시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 앞서 “자, 이제부터 축제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류의 관객들보다는 사전 정보를 토대로 보고 싶은 몇몇 공연들을 점검하고 공연장소를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공연 중심 관객과, 그저 출퇴근할 때나 장을 보러 가는 길어 잠시 멈춘 사람들도 있다.

프랑스 극단 제네릭 바푀(Generik Vapeur)의 2009 비바시테 공연장면
지난 6월 다녀온 비바시테(Viva Cité) 역시 과천과 비슷한 도심형 축제라고 할 수 있다. 비바시테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Rouen)에서 30분정도 떨어진 소트빌(Sotteville)이란 작은 도시의 거리예술축제로, 예술감독인 다니엘 앙드류(Daniel Andrieu)는 자신의 축제를 “유모차축제”라고 설명한다. 말 그대로 산책하듯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 단위의 소트빌 시민 관객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공연의 주된 장소는 다양한 오프 공연들이 쉴 틈 없이 펼쳐지는 공원이고 시내의 중앙차도나 골목 등에서는 주로 퍼레이드 공연들이 진행되었다. 관객들의 특성은 대략 과천과 비슷하여 관객들은 공연 위주로 움직이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왜 축제를 찾는가? ‘OO축제’를 찾는 사람들은 ‘OO’이란 콘텐츠를 접하기 위한 것이 주요목적이겠지만 더불어 축제성에 노출되고자 하는 기대감이 클 것이다. 그렇다면 거리예술축제에 있어서 ‘축제성’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축제성=흥겨운 난장’이란 공식이 성립되어있다. 더 깊이 들어가 ‘흥겨운 난장’에서 떠들썩함을 걷어내 보면, 축제성이란 일상적 공간이든 비일상적 공간이든 비일상적 ‘환경’에서, 공연자든, 함께 공연을 보는 관객이든, ‘타인과의 소통을 통한 해소’를 의미한다.

공연관람을 위해 함께 달리는 관객들. 2007년 과천한마당축제하지만 소통의 방법과 취향은 다들 제각각이다. 우롤축제의 관객들처럼 섬이라는 비일상적인 공간 안에서 공연과 함께 하는 일탈에 무게를 두는 관객도 있고, 비좁은 도심에서 공연자와 함께 달리면서 공연에 집중하는 관객도 있으며,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하듯 서성이는 관객도 있는 것이다. 관객은 군집명사다. 집합체 구성원 하나하나가 다르고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축제에 참여하고 소통한다. 그러므로 거리예술 관객을 마치 단일한 감성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집합으로 간주하는 것은 피해야 할 오류이다.

소통의 매개체를 만드는 것은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의 몫이지만, 관객은 각기 자신들의 의지로 다양한 소통의 방법을 선택하고 집중한다. 하여, 거리예술축제를 만드는 사람은 통념적 축제성에 대한 강박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공간과 콘텐츠로 진솔하게 프로그램하고 기다려야 한다. 관객들은 선택하고 반응하고, 이로부터 발생한 ‘소통’은 다양한 형태로 축제를 완성시킨다. 그것은 흥에 겨운 콧노래일 수도 있고 눈물 한방울일 수도 있으며 발견의 놀라움일 수도 있다. 축제는 관객을 관찰하고 그들의 선택과 소통방법을 존중해야 한다. 관객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말자.

프랑스 극단 ‘두 번째 참여그룹’의 예술감독 엠마 드루엥이의 ‘거리예술 관람객의 구분’이란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 약속 장소에 온 사람들, 결국 끝까지 남아있지 않는 사람들, 집에서 창문으로 또는 발코니에서 모든 것을 보는 사람들, 잡혀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잡혀가는 사람들, 잡혀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해는 못하지만 무료라서 남아 있는 사람들, 유모차가 들어올 수 있고 아기가 울어도 괜찮아서 온 사람들, 배우를 보고 전율하는 사람들,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 배우를 밀고 싶은 사람들, 너무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좋아하지 않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 모여 있어서 온 사람들, 핸드폰으로 통화 중이지만 다 보고 있는 사람들, 배우의 자리에 서고 싶은 사람들, 누가 돈을 내는 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 유혹의 기회를 엿보려는 사람들, 소매치기하려는 사람들, 배우를 방송에서 봤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이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쳐다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들, 쳐다보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사람들, 대본이 별로라 생각하는 사람들, 여기에 잘 서있는 사람들, 온 김에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이 기회에 자신을 돋보이려는 사람들, 이득을 보는 사람들, 자신의 웃는 모습을 들킬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난장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두려워하는 사람들, 바쁜 사람들, 꾸미고 나온 사람들, 애완동물을 집에 두고 나온 사람들, 아무것도 보지 못 하지만 다 듣고 있는 사람들, 온 김에 이웃사람을 구경하려는 사람들, 비평을 하는 사람들, 시작하기도 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결말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 처음부터 보지 못한 사람들,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 걷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 화면으로 보는 것 보다 늘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화해하려고 온 사람들, 차를 세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안 올 거라고 얘기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사람들

2007년 과천한마당축제 학술행사 ‘관객의 위치는 어디인가’ 중




황혜신

필자소개
황혜신은 영국 리버풀 공연예술 인스티튜트(The Liverpool Institute for Performing Arts)를 졸업하고 베세토연극제,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 등을 거쳐, 2006년부터 과천한마당축제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