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야기된 지역 예술인의 보편적 복지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세상을 전복시키며, 새로운 세상(New Normal)을 열고 있다. 문화예술의 속성은 늘 그랬듯이 변화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었다. 1934년 미국의 대공황 시기 공공 예술이 뉴딜 정책에 포함되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던1) 것처럼,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지구촌 문화예술이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가운데, 각국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정책은 각 지자체와 문화재단이 시행하고 있는 ‘예술인 긴급지원제도’이다.2)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생태계의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예술인 안정망(The Artist's Safety Net)'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각 지역별로 예술인 긴급지원제도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정책의 신속성은 위기 시 가장 필요한 요소다. 다만 신속성 못지않게 정책의 효과에 대한 검증과 반성 역시 필요하다. 이른바 정책의 PDCA(Plan-Do-Check-Action)인 것이다. 본 기고를 통해 지난 4개월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던 정책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를 평가하고 환류해 본다. 특히, 현장에서 과제로 나타난 ‘전업예술인’과 ‘생활예술인’의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에 관한 쟁점 역시 제기한다.

코로나19 부산예술인 긴급 생계지원 사업 개요 ※출처: 부산문화재단 홈페이지 코로나19 부산예술인 긴급 생계지원 사업 개요
※출처: 부산문화재단 홈페이지

부산의 긴급 예술인 지원 사례를 살펴보자. 지난 5월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은 ‘코로나19 부산예술인 긴급생계지원’ 사업 계획을 신속하게 발표하며, 재원으로 16억 원의 재난기금을 확보하였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활동증명’3)을 받은 문화예술인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편리’하고 ‘신속’하게 2차례에 걸쳐 지원하였다.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 포인트를 1인당 50만 원씩 2회에 걸쳐 8월 10일까지 신청 및 선정되는 자에게 지급 예정이다. 지역 최초의 보편적 예술인 복지가 역설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실시된 것이다.
지원 계획과 실행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가운데,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적절한 지원 수혜 대상인가라는 정책 효과에 대한 검증 역시 필요하다. ‘경제적 피해가 전혀 없는 예술인이 긴급지원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문제와 정책 집행의 보편적 복지에 대한 과제가 현장 실무 단위에서 나타났다. 지원 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한 주요 제출 서류인 예술활동증명확인서, 주민등록등(초)본,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만 분석해봐도 정책 수혜자들과 정책 목표상의 괴리를 확인하게 된다.

현장에 비치된 긴급 생계지원 사업 안내사항 현장에 비치된 긴급 생계지원 사업 안내사항

전업예술인과 생활예술인, ‘긴급’의 차이

현장에서 우리는 긴급생계지원 대상 예술인들을 ‘전업예술인’과 ‘생활예술인’으로 분류한다. 예술 활동을 평생 전업으로 하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는 이들을 ‘전업예술인’이라 칭한다. 당연히 이들은 긴급생계지원의 최우선 대상이다. 이번 코로나19 긴급지원을 통해 밝혀진 전업예술인들의 상황은 ‘가난한 예술인의 삶’이라는 정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신용 불량자,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하는 등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놓인 예술인들을 현장에서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 생계 자체가 곤란하다 보니 아쉽게도 생각보다 많은 전업예술인이 지역에서 사라져 가거나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반면 양적으로 상당수를 차지하는 또 다른 그룹이 있다. 이들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예술 활동 이외의 직업에 평생 종사한 비전공자로, 개인의 기호재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1인 창작 활동의 대표 장르인 문학과 미술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한번 들어보자. ‘전직 공무원, 경찰, 의회 의원, 교사, 사업가 출신으로 문화예술 동호회 활동을 오랫동안 해 왔다. 퇴직 후 각종 문화예술 협회에 가입하여 작품 활동을 해 오고 있다. 가끔 몇 년에 한 번 문화재단으로부터 창작지원금을 지원받아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고,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협회의 요청으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인 활동증명까지 받아 놓았다. 연금 생활로 풍요로운 노후에 예술 활동은 삶의 질, 웰빙, 정신 건강 유지를 위한 기반이 되고 있다.’ 현장에서 우리는 이들을 '생활예술인'이라 부른다. 지역 문화생태계에서 생활예술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생활문화 진흥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이들의 양적 확대는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생활예술인이 긴급지원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4개월 동안 현장 동료들이 느끼는 가장 큰 딜레마였다. 긴급예술인 지원의 목적을 생각해 보자. 생계를 보조 해줌으로써 이들이 창작의 의지를 꺾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활예술인들의 창작 의지는 전업예술인들과 그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긴급 예술 지원으로 과연 불요불급한 생활예술인들의 생계 보조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예술인 복지법에 따라 ‘직업 예술인’임을 확인하는 제도인 예술인 활동증명에 대한 현상적 불일치를 야기할 수도 있다.

선택적, 장르별 긴급지원과 역할 간 시스템 구축 필요

추후 유사 위기 상황 발생 시 예술인 사회 안전망과 예술인 긴급지원제도의 개선 방안을 제시해 본다. ‘보편적 예술인 긴급지원인가? 선택적 예술인 긴급지원인가?’에 대한 정책적 함의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단계별로는 전업예술인에 대한 선택적 복지로 우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전업예술인 조건에 대한 세부 기준 마련도 시급하다. 가능하다면 전업예술인 중에서도 피해와 소득에 따른 선택적 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결국, ‘긴급 생계지원’이라는 정책 취지를 감안한다면 예술인의 선택적 복지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전업예술인과 생활예술인의 분리 지원뿐만 아니라 장르별 선택적 복지 역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1인 창작 위주 장르와 다인 협력 창작 장르는 피해 규모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생활예술인들의 자발적 기부 행위를 유도하는 제도 역시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른바 예술인 동료 의식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관점에서다. 오늘날 문화정책의 주요 화두는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에 의한 문화를 통한 공동체 회복이다. 혼란의 시기에 대응하는 우리 예술인들의 예술인 동료에 대한 공동체 의식, 동업자 정신은 위기를 극복하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근원적으로는 전업예술인과 생활예술인의 분리를 통한 맞춤형 지역문화예술지원 제도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예술적 수월성(excellence)의 창작지원과 접근성(accessibility) 향상의 생활예술 활성화라는 지역 선순환 체계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운영 중인 긴급 생계지원 사업 상담 창구 모습 운영 중인 긴급 생계지원 사업 상담 창구 모습

긴급예술인 지원을 통해 드러난 지역문화재단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간 업무 공유 시스템 역시 반드시 구축되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향후, 지역 예술인 복지 정책 역시 지방자치단체 사무로 이양하여 지역에서 ‘전업예술인’과 ‘생활예술인’의 활동증명 관리를 체계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 피해는 예술인에 한정되는가?’에 대한 논의 역시 필요하다. 예술인뿐 만 아니라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는 분야는 예술인의 작품을 지원하는 연관 산업 분야일 것이다. 예컨대, 공연예술만 하더라도 공연기획사, 무대업체, 홍보 대행업체 등 관련 분야 산업 종사자들이 비록 예술인은 아니지만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 해외 공연 취소로 막대한 계약금 손실의 피해를 입고 있는 대형 공연기획사, 공연이 중지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무대, 음향, 조명 스태프들까지 그 피해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이들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 역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며, 민관 위기 대응 관리 시스템 구축도 반드시 필요하다.

끝으로 사족을 더한다. 그동안 예술인들의 긴급지원 정책에 대한 불만과 민원 세례를 친절과 사명감으로 헌신한 지역문화재단, 지자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모든 감정 노동자들(?)에게 동업자 정신으로 경의를 표한다.

1)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공미술 프로젝트(Public Works of Art Project, PWAP)로 명명된 정책을 실시한다.
이른바 문화 뉴딜 정책이었다. 1934년 첫 4개월 동안 약 3,478명의 예술가를 고용하여 전국의 정부 건물을 대상으로
15,663점의 회화, 벽화, 판화, 공예, 조각 작품을 제작하였다. 당시 총 1,180,400$의 예산이 집행되었으며 한 작품당
평균 76$ 정도 지원되었는데, 그 당시 예술가들에게는 꽤 좋은 수입이 되었다고 한다.
2) 광역문화재단의 사례를 중심으로 예술인 긴급지원 제도를 살펴보자. 서울문화재단은 45억 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여, 예술인 예술단체, 기획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창작 사업을 중심으로 지원 대책을 마련하였다. 인천문화재단은 20억 원
규모로 인천 예술인 긴급재난지원금 지원(중위소득 100% 이하인 자)을 통해 1가구당 30만 원을 지급하였으며,
대전문화재단은 예술활동 증명이 완료된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초 창작 활동비 지원의 명목으로 1인당 100만 원 이내로
지원하였다.
3)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 보호를 위해 ‘예술인 복지법’에 따라 직업 예술인임을 확인하는 제도로 문화예술진흥법에
규정된 12개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 누구나, 최근 일정 기간의 예술 활동 혹은 예술 활동 수입 내용으로
신청이 가능하다.

  • 조정윤
  • 필자소개

    조정윤은 영국과 일본에서 문화정책과 예술경영을 연구한 후, 공공영역에서 주로 근무하고 있다. 민간 공연기획사(PMG Korea), 지역문화재단(부천, 마포, 부산), 고양시 문화예술 전문위원으로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 민선 7기 부산시 문화정책 보좌(문화정책협력관)로 파견 근무 후, 현재는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장으로 복귀하여 지역문화정책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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