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은 한국 대중문화가 고급예술과 전례 없이 밀착하려는 몸짓을 보인 시기로 기억될 듯하다. <바람의 화원>, <베토벤 바이러스> 같은 방송 드라마들이 이전에는 &lsquo;감히&rsquo; 생각지도 않았던 전통 회화와 클래식 등의 고급 장르를 다루는 고품격 마케팅을 펼쳐 대중들의 시선을 빨아들였다. 그런가하면 가수 서태지는 지난 9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영국 로열필하모닉과 &lsquo;서태지 심포니&rsquo;를 꾸려 국내 가요사상 처음 록-클래식 협연을 펼쳤다.

다큐물 <차마고도>와 영화 <천년학>의 배경음악으로 친숙한 뉴에이지 음악가 양방언도 최근 74인조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대작 온라인 게임 <아이온>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음반을 출시해 다른 게임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른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만남이 유력한 문화코드로 부상한 것이다. 이런 흐름이 단지 색다른 소재 찾기를 넘어 대중들에게 고급 장르에 대한 색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또 다른 문화 향수 바람을 일으킨 것도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접근은 서구에서는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마르셀 뒤상이 1910년대 변기를 예술품이라고 주장하며 현대미술에 개념 예술의 새 지평을 열어젖힌 이래 미국과 유럽에서는 앤디워홀의 팝아트와 산업화된 소재를 이용하는 누보 레알리즘 등을 통해 팝과 파인아트의 구분이 무력해지는 조짐이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화사가들은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비롯된 팝문화가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대접근 현상을 가져온다고 진단했고, 이런 팝문화의 열풍은 국내에도 번져 90년대 이래 미술, 패션, 인테리어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온 상황이었다. 순수예술을 향해 열렬히 구애하는 대중문화의 새 트렌드는 이런 흐름들이 나름대로 누적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분명한 건 이제 일반인들에게도 대중문화의 영역에 금기의 벽이 없다는 것이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루한 순수 예술장르 쪽으로도 대중문화의 상상력이 촉수를 뻗칠 만큼 넓어졌다는 말이다.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팝 담론을 넘어 대중문화 범주 속에 본격적으로 순수 예술장르의 요소들이 적극 수용되고 있는 양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바람의 화원>이 빚어낸 전통 회화 열풍은 이런 접근의 성과를 매우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장여자로 혜원의 성별을 설정하고 그가 단원과 연애를 하고 정조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이 드라마의 내용은 극적 재미와 별개로 혜원의 그림을 실제로 접해보려는 대중들의 열망을 불러 일으켰다. 드라마의 방영 시점과 맞물려 지난 10월 중순 열린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가을 기획전에는 출품작인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와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보려는 인파들이 10만 명 이상 몰려들었다. 평소 아카데믹한 분위기의 미술사 연구공간이었던 간송미술관은 넘쳐나는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루면서, 거꾸로 미술관이 좀더 대중지향적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을 받기도 했다.

마에스트로 강건우가 보통사람들의 아마추어악단을 조련시키는 곡절을 담은 <베토벤 바이러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배우 김명민이 분한 &lsquo;강마에&rsquo; 신드롬의 파급력은 기대 이상이다. 이 드라마의 연주 음악들을 편집한 컴필레이션 앨범은 10월2일 발매된 지 25일 만에 2만 5천장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고, 다른 클래식 음반들도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아마추어 악단 모집에 엄청난 지원자가 몰리는가 하면, 다른 아마추어 실내악단들도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음지에서 무관심을 체념해왔던 순수예술계나 학계 관계자들은 오히려 어안이 벙벙해진 가운데 이런 변화를 기대와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1920~30년대 베를린과 파리의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선지자의 눈으로 뜯어보았던 미학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글이 생각난다. 그는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이란 명저에서 복제 이미지가 판치는 대중예술의 혁명적 가능성을 주창한 바 있다. 사진, 영화, 같은 영상 예술이 대중과 거리를 둔 고급예술들의 고유한 아우라를 제거하고 대중들이 민주적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공유하는 구실을 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우리는 지금 그의 이런 명제를 고전 회화의 권위성을 탈각시켜 버린 <바람의 화원> 신드롬에서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문화산업이란 측면에서 이들 드라마의 성취 앞에 마냥 미소만 짓는 것은 곤란하다. 언제라도 콘텐츠 재활용과 소스의 전이가 가능한 고부가 문화산업의 명제에 이런 대중문화 트렌드의 산물들이 과연 부합할 수 있을까. 곧 롱런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인가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바람의 화원>의 경우 남성인 혜원 신윤복의 역사적 생물학적 진실을 완전히 틀어버려 역사왜곡 논란을 빚고 있을 뿐 아니라 상상력의 얼개도 단순하고 성기다. 18세기 조선시대 화풍과 사회상은 간판으로만 활용되고 있을 뿐 자극적 욕망이 분분한 픽션적 스토리와 서로 긴밀하게 삼투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베토벤 바이러스> 또한 개연성이 부족한 극 줄거리의 한계를 일부 주역 연기자들의 카리스마나 연기력에 덮으며 성과를 부지한다는 맹점을 드러내고 있다. 서태지 같은 대중가수들의 클래식 협연도 선구적 의미 외에 음악적 성취는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 나온다.

선구적 시도는 항상 논란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올 가을 한국 대중문화가 보여준 몇 가지 소중한 가능성들은 좀더 조탁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벤야민의 말처럼 테크놀로지를 어떤 방향으로 부릴 것인지가 문제다. 테크놀로지의 성취를 끌고갈 상상력의 밀도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노형석필자 소개
노형석 편집위원은 홍익대 대학원(미술사)를 수료했고,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 시사주간지 한겨레21 문화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겨레신문 문화부 대중문화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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