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머지않아 저물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으로 인해 국내 공공문화시설이 문을 닫은 기간은 약 150여 일에 달한다. 집합 금지 시절을 겪는 미술관의 행보는 이제 전시장 밖을 향한다. 벽으로 둘러싸인 실내 공간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으며, 모든 접촉은 위험 신호를 보낸다. 전시장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없는 관람객들을 위해 미술관은 앞다투어 온라인 전시, 가상 전시 관람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방구석 1열에서 모니터를 통해 작품과 조우하는 당신, 안녕하신가요? 일찍이 전시장 밖에서도 왕성한 활약을 보여준 신보슬 큐레이터는 ‘길 위의 큐레이터’란 별명처럼 특유의 유쾌함으로 미술관 밖의 야생 환경을 즐길 줄 아는 이다. 1997년부터 전시 기획을 시작해서 미디어아트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현대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기획자로서 현재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전시를 만들어온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는 신보슬 큐레이터를 만났다.

‘큐레이터의 메모장’이라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블로그를 보면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긴다. 작가들의 작업 세부 과정에 포커스를 두는 관점도 신선하다. 창작의 파편을 통해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고, 현지 맛집 정보도 쏠쏠하다. 바쁜 업무 중에도 틈틈이 블로그를 운영하게 된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큐레이터 업무상 여러 지역을 다니게 되는데, 그 지역의 맛집 정보를 현지 분들이나 주변 예술가들로부터 모으게 되면서 함께 기록하게 되었다. 맛집 블로거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메인 콘텐츠는 함께 작업했던 작가들에 대한 작가론이다. 처음에는 작가론을 쓰고 나서 한곳에 잘 정리해 두지 않아 자꾸 없어지곤 해서 개인 블로그를 외장하드 삼아 시작하게 되었다. 블로그에 전시 리뷰를 쓰다가 미술 잡지에서 연락을 받아 게재되는 계기도 되었다. 전시 리뷰를 개인 PC에 저장해서 나만 갖고 있으면 그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지 못하지만, 블로그는 글도 올리고 작가나 전시를 소개하면서 ‘좋아요’와 댓글로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블로그를 통해 미술관 일을 하는 사람의 일상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은 기획자 지망생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출퇴근길에 글을 올리고 리뷰를 보는 것이 일상 루틴이 되었다.
돈을 못 버는 비영리 사립미술관, 이곳의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 작가와의 대화, 작업과 전시의 ‘비하인드(behind)’를 아는 재미 때문일 것이다. 관객에게 현대미술을 그냥 이해하라고 하면 어렵다. 전시의 어떤 지점을 오픈해주면 관객들이 더 재미있을지를 고민한다.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큐레이터의 모습은 매우 화려하고 세련된 전문직의 표상으로 쓰인다. 실제 큐레이터의 일상이 어떤지 소개해 달라.

갤러리 오너라면 모를까, 큐레이터에게 화려함이란 없다. 전시 오픈 직전까지 미친 듯이 달리고 나서 오프닝 행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순간은 잠깐이다. 드라마 속의 그런 말끔한 모습은 현실에는 거의 없다. 큐레이터들을 사진 찍어 보면 거의 검정 패션이다. 일과 출장이 잦아질수록 검정색 옷이 많아진다. 검정색 옷차림이라면 오프닝이 있을 때도 사무실에 힐과 스카프를 두었다가 잠시 두르면 되고, 또는 그 옷 그대로 장례식에 갈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불시의 여러 상황에 두루두루 대응할 수 있는 옷차림이 바로 블랙 슈트(black suit)이다. 큐레이터가 만나는 사람들의 계층 또한 다양하다. 덴마크 여왕을 독대하고 작품 설명을 한 적도 있고, 전시 설치 작업을 할 때는 일용직 노동자들과도 거리낌 없이 소통해야 한다. 왕족을 만나든, 정치계 수장을 만나든 큐레이터라는 전문가로서 대등하게 상대하기 때문에 이를 화려하다고 볼 수 있겠다. 큐레이터는 머리뿐만 아니라 육체노동도 불사하는 전천후 인력이다. 이 일을 하면서 페인트칠에 소질 있다는 칭찬도 들어보았다. 페인트 사장님에게 큐레이터 월급보다 훨씬 많이 주겠다며 스카우트 제의도 받아보았다.

그동안 기획했던 프로젝트들을 보면, 흔히 말하는 화이트 큐브 전시장 밖으로 나가는 도발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 같다. 가령 <로드쇼>프로젝트 기획도 미술관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야생 프로젝트다. 어떻게 출발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하고, 지금까지 지속해온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지 나름의 평가를 해달라.

토탈미술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안전한 플랫폼을 찾은 느낌이다.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왔다. 사실 미술계에서 한 기관에 오래 일하는 기획자가 별로 없는데, 나는 이곳에서 오래 일하면서 다양한 기획을 할 수 있었고, 작가들의 역량을 굳이 전시에만 한정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로 작가란 신기한 생각을 하는 다른 인류 같다. 이러한 작가들을 어떻게 전시장 밖으로 나오게 해서 관객들과 매개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로드쇼> 프로젝트의 발상은 2011년에 몇몇 작가들과 모여 4대강 이야기를 할 때이다. 그중 정작 누구도 4대강에 가본 적이 없었고, 매체를 통해 보고 들은 것밖에 없었다. 직접 가보자고 여정을 계획하면서, 처음에는 순진하게 4대강이니까 4곳만 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4대강이 점처럼 찍어서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가볼 곳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럼 1곳이라도 가보자고, 그렇게 낙동강이 첫 <로드쇼> 출발 지점이 되었다. 국내외 작가들과 낙동강 지천에서 하구까지 여행하고 강을 건넜다. 둘째 날이 되어서 괜히 시작했단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해외 작가들을 위해 계속 영어 통역을 하면서, 작가들 20여 명 규모의 이동과 식사, 숙소도 챙겨야 했다. 다녀오고 나서 다신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지금 10년째 하고 있다. 작가들과 24시간 함께 있는 상황이 힘들어도 너무 재미있었다. 작가들과 친밀해지면서 작품이나 작가 관점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후에는 제주도 강정마을, 인천 백령도, 연평도, 경주, 7번국도 등 대한민국 곳곳을 국내외 작가들과 함께 다녀왔다. 이슈가 있는 곳에 작가들이 간다는 것이 <로드쇼>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문예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해외 인도, 르완다에도 다녀왔고, 특히 <로드쇼-르완다> 편은 영화로 제작해서 2017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 한국경쟁부문에 올라 발표되기도 했다. <로드쇼>는 여정을 마친 후 전시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에게 “나랏돈으로 여행하냐?”라는 지적도 받았었다. 여행이 맞다고 답했다. <로드쇼>는 예술가와 기획자가 함께 여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접하고, 서로의 예술 세계를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도록 팍팍한 일상으로부터 예술가와 기획자를 일탈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시도된 형식이다. 기획자로서 볼 때, 열흘간 <로드쇼>에 다녀와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일견 거짓 같았다. 대신 기록 영상을 촬영했다.
<로드쇼>는 1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갔다. 지난해에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임시정부가 있었던 8곳을 모두 다니고, 상하이 주재 한국문화원에서 지원받아 전시까지 할 수 있었다. 올해는 군산에 상해 임시정부가 자리했었다는 기록을 보고, 8월 15일에 작가들을 긴급 모집해서 다녀왔다. 간 김에 군산 짬뽕은 먹었지만, 그곳에는 임시정부의 빈터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로드쇼2019> 포스터(좌)와 전시장(우)
출처: 로드쇼2019 페이스북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한 문화예술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프로젝트도 소개해 달라. 미술관 밖에서 해외 원조 부문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큐레이터로서의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예술가가 사회에서 더 액티브(active)해지면 좋겠다. 작가가 작업실에만 갇혀 있지 말고, 전시에서 작품으로만 말하지 않고, 작품 밖에서도 다른 사람을 만나는 지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예술가의 섬세함과 예민함에서 오는 파급효과가 분명히 있다. 작가들은 윤리적 결벽증이 있어서, 자신이 무엇을 가르치는 입장을 불편해한다. 가난한 나라에 가서 뭔가를 가르쳐주는 우월적 입장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돕는다는 접근이 훨씬 수월하다.
2016년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ODA 지원사업으로 인도네시아 청소년들과 <바틱(Batik) 스토리>를 진행했다. ‘바틱(Batik)’이란 인도네시아의 전통 수공 염색 기법이자 문화인데, 학생들이 자신의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잘할 수 있는 장점을 스스로 살려서 성장하길 바랐다. 토탈미술관과 참여 작가들은 바틱(Batik)의 친환경적 제작 프로세스 및 스토리텔링의 가능성 확장을 통하여 현대적인 응용 및 문화상품 패키지나 자체 제작 시스템 구축 등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매주 줌(ZOOM) 미팅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학생들의 자립이 빨라졌다. 곧 ‘바틱 스토리’라는 브랜드를 내려고 한다. 브랜드 수익을 그 친구들이 나누고, 협동조합 방식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3년째 진행하면서 중간에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곳은 이제 바틱(Batik) 빌리지가 되어, 현지 모범 사례로 유명해졌고 정부지원금도 받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예술가라는 사람이 사회와의 접점이 많아진다면 많은 변화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하게 되었다. 미술관의 플랫폼 확장을 많이 고민한다.

2015년~2019년 <바틱스토리> 현장 사진들
출처: 토탈미술관 홈페이지

시각예술, 전시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교육, 사회, 삶에 대한 호기심이 깊어 보인다. 예술과 사회의 연계에 대한 관심이라고 보이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기획의 방향은 무엇인가?

장래 희망이 작가 팬클럽 회장이다. 작가에 대한 팬덤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작가 팬덤이 생겨서, 작가의 전시마다 늘 찾는 관람객 5명이라도 확보된다면 작가는 너무 신이 날 것이다. 이 5명의 팬이 작가가 창작을 계속할 수 있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기획자 학교 교장 선생님도 꿈꾼다. 토탈미술관이 1992년에 사립미술관 1호로서 처음 개관했을 당시만 해도 해외 미술 전시를 할 수 있는 곳들이 국내에 별로 없었다. 지금은 모든 국공립미술관들이 해외 전시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제 예산이 부족해서 어렵다. 그럼 사립미술관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시 횟수는 많이 줄이고, 대신 미술관 역할의 여러 지점을 탐색하고 있다. 결국 교육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된다. 기획자 과정, 큐레이터 코스를 만들어서 토탈미술관이 전시를 만들어 온 여러 가지 노하우나 역사 등을 가르치고 싶다. 대학에서는 주로 이론 과정만 이수하고 그치기 때문에, 미술 현장에 왔을 때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작품 패키징과 운반, 작품 보험까지 체계적으로 트레이닝하는 학교가 필요하다. 작가들도 대학에서 작품 실기 수업을 하지만, 실제 전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순서조차 모르는 작가들도 많다. 기존 기획자 양성 과정에서 대부분 선배 큐레이터를 데려다가 본인들의 예전 전시 기획 사례 얘기를 하는데, 현재 시점에 적용하기 힘들고, 모두 지난 사례이다. 펜데믹 이후의 미술계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몇 해 전 전라도 순천 인근에 있는 전교생 40여 명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큐레이터 과정을 진행했었다. 아이들의 전시를 만들어 달라는 교장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시작된 사연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그들의 전시를 준비하도록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학교가 적극 동의하면서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큐레이터가 되어 공동기획 전시를 열 수 있도록 멘토 역할을 했다. 큐레이터가 된 학생들은 엑셀 프로그램 대신 공책에 업무 리스트와 업무 분장을 일일이 기록하며 준비했고, 관람객에게 아이들이 직접 전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까지 진행했다. 재미있었던 건, 아이들에게 뮤지엄 에티켓을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이 직접 전시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작품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관람 에티켓을 갖추게 되더라.

현대 예술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편견 없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획에 관심이 높아 보인다. 관람객 외연의 확장에 대한 고민을 말해준다면?

토탈미술관의 전시는 대중 친화적 전시도 아니고, 전시가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람객의 외연 확장을 위해서 컬렉터 개발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시를 보러 와서 셀카 찍는 관람객에게 확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명품 백을 소비하면서도 미술 작품을 구입한다는 생각은 많이 못 한다. 소품이라도 작품을 한번 구입하게 되면, 자신이 소장한 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그 작가의 전시 소식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된다. 지속적인 관객층이 생기게 된다. 어떻게 관람객과 작가를 만나게 하고, 관람객이 작업에도 관심을 갖고, 작품을 컬렉션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 중이다. 미술관 멤버십은 그 구매 비용만큼 본전을 뽑는 게 아니라, 미술관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차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미술관은 훨씬 프라이빗(private)한 방식으로 작동할 것 같다. 관람객 외연 확장이 단순히 숫자 증가 이상으로 전시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는 지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해외 아트페어에 가보면 관람객들이 작은 소품이라도 구매한다. 작가와 관람객이 이렇게 맺은 인연이 지속될 때 작가도 힘을 얻는다. 단발적으로 소비되는 전시가 아니라, 라이프 사이클을 함께하는 미술관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단순 관람객 숫자의 증가보다는 좋은 인식을 가진 관객층의 개발이 고민이다. 예술가 팬덤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미디어의 지형이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손바닥 안에서 동시대 문화를 섭취하고 소화하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큐레이터로서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발을 딛는 전시 경험에 대한 생각과 예술의 사회적 역할, 책무에 대한 질문을 드린다.

미술관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다. 온라인상에서 보는 VR 전시와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전시 경험은 전시장에서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전날 밤 꿈에서부터 시작한다. 같은 전시를 여러 번 보러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혼자 전시를 볼 때 작품 레이블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획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미디어아트 전시는 한 번에 모두 보지 않고, 하루에 한 작품만 본다.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전시를 보는 방식은 저마다 다양할 수 있다. 시험 보듯이 모든 작품을 다 보겠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경험일 수 있다. 전시를 보러 가는 동선, 옷차림, 그날의 날씨 등 모든 과정이 전시 경험에 포함된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작품을 보고 울었던 적이 있는데, 그건 그 작품 앞에 직접 섰을 때만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 경험은 구글 아카이브로는 불가능하다. 작품 정보를 주지만 감상 경험이 되기 어렵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는 순서도 중요하다. 전시장에서의 직접 경험은 미디어 매체가 발달할수록 점점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현대미술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 작품 재료에 폴리 같은 현대에 개발된 질료가 쓰이는 등 작업의 재료 측면, 디지털프린팅 기술에 따른 사진 작업의 대형화 사이즈 추세 등 모두 현대 디지털 기술 발달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관객들이 기가 막히게 이런 지점을 다 포착한다.

〈THE SHOW MUST GO ON〉예술가의 포트폴리오 가방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뒤샹(Marcel Duchamp)의 여행 가방 작품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뒤샹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현대의 예술계의 생리를 고려한 영민하고, 대단히 쓸모있는 가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 해달라.

원래 뒤샹(Marcel Duchamp)에게서 착안한 게 아니다.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을 보다가 ‘R’이 적혀있는 서류가방을 들고 뛰는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저런 가방 안에 작품을 넣고 여기저기 찾아 다니면 너무 재밌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다. 한창 베니스비엔날레 전시를 쫓아 다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도 저 행사에 기획자로 참여 못할 것 같고, 주위의 내가 아는 좋은 작가들도 초대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 우리가 직접 해보자고, 베니스비엔날레에 작가들의 작품 가방을 들고 가서 자체 전시를 했다. 베니스 현지 호텔의 공식 홀을 렌트해서 ‘프로젝트’라 스스로 네이밍 붙여서 진행했다. 베니스비엔날레측은 모르는 우리만의 특별전이었다. 작가들의 가방 안에는 작품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작가 각자의 사연이 있는 가방 케이스를 픽(pick)하기도 한다. 할머니의 여행가방이라거나 아버지의 낡은 서류가방 등 작가와 가방의 관계성이 드러나는 하드웨어도 있었다. 〈THE SHOW MUST GO ON〉은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작가의 작품 가방을 해외 큐레이터에게 보내면, 한달 동안 그 큐레이터가 곁에 두며 작업에 대한 코멘트를 적고, 이 작업을 좋아할 만한 또 다른 큐레이터를 추천해서 그 다음 큐레이터에게 전해주는 식이다. 그렇게 처음 나의 국제 네트워크에 가방을 받은 해외 큐레이터들 각각의 네트워크가 더해지면서 교류가 확장될 수 있다. 〈THE SHOW MUST GO ON〉은 작가 에이젼시도 생각할 수 있는 전시였다. 이후 바르샤바 한국문화원의 제안으로 작가들의 가방을 모아 전시했었다. 큰 예산없이 작가를 해외 여러 지역에 계속 소개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많고, 잠재력도 큰 프로젝트이다. 이번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되고나니, 의도하진 않았지만, 국제교류가 원활하지 못한 이 상황에서 맞춤 프로젝트로 적용할 수 있었다.“예술가의 가방”이라는 타이틀로 인천아트플랫폼과 공동 협력으로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크리스티의 ‘ONE: A Global Sale of the 20th Century’ 온라인 경매 장면
2018년 바르샤바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전시전경
출처: 신보슬 큐레이터 블로그

토탈미술관의 영상채널, 톹뮤직, 톹서관 등 톹티비(ToT tv)를 운영하며, 채널의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사립미술관 큐레이터로서 관람객들과의 접점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이라 본다. 미디어 변화와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나름의 판단 기준이 있다면?

큐레이터 일이 재미있어서 버티는 것 같다. 그럼 왜 재미있는지 고민해 봤는데, 비하인드(behind) 때문이다. 작품 뒤에 있는 작가와의 관계, 작품이 만들어지는 이야기, 이런 에피소드를 알기에 재미있다. 처음 톹티비 채널을 만들 때 ‘견큐’, 일명 강아지 큐레이터를 만들어 강아지 시점에서 작품을 소개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실행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쉽고 편하게 보여주는 방향으로 잡았다. 다른 전문 큐레이터들의 유튜브 콘텐츠는 매우 유익하기는 하지만, 재미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내 맘대로 ‘톹티비’ 경쟁사는 ‘tvN(티비엔)'이다. 미술관에 전시가 없을 때 인디 뮤지션의 연주 영상을 촬영하기도 하고, 수요일에는 작가 인터뷰, 목요일에는 책 소개 등 요일마다 다른 영상을 업로드한다. 토탈미술관이 어떤 곳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미술관의 다른 모습들도 노출하고자 했다. 브이로그(Vlog)는 인턴이 경험하는 미술관, 이를테면 청소 일상부터, 작품을 설치하는 작가들의 뒷모습 등 캐주얼한 장면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요즘 내가 방송국 PD인지 미술관 큐레이터인지 가끔 헷갈린다. 사람들이 미술관을 너무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립미술관 큐레이터로서 공공 섹터의 전시 기획과 나름 차별화가 있다면?

공공 섹터에서는 기획의 범위가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특정 작가들과 연속적으로 프로젝트를 반복 진행하는 것도 공정성 시비로 어려울 수 있고, 참여 작가 공모부터 밟아야 할 수도 있다. <로드쇼> 프로젝트 같은 연속 프로젝트는 진행하기 힘들 것이다. 공공미술관은 공식적이고 대표성을 담는 무게로 인해, 새로운 역할을 견인하기에는 평균에 수렴되는 한계가 있다. 사립미술관은 그런 부분에서 작가 선택 등 기획의 자율성이 크다.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오히려 공공 섹터보다 더 깊게 고민하게 된다. 공공미술관은 현재 전시 역할을 많이 하고 있는 반면, 사립미술관의 실상은 예산 상황도 어려워서, 전시 외의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우리가 문화예술 ODA사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술관의 역할이 전시에만 있지 않다. 예전에는 작품 소장이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어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전시나 작품 밖에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작가에게 다시 주목하고 있다. 작가를 통해 미술관이라는 플랫폼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19 이후의 예술계 국제교류 사업에 대한 전망과 그 틈새 파고들기 전략에 대해 조언해 준다면?

앞으로 국제교류의 의미가 점점 축소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펜데믹 상황이 호전되어 교류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겠지만, 이 상황에서 국제교류, 국제전시를 계속 쥐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코로나19 이후의 미술계는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재난 상황을 겪으며 해외보다 우리나라가 더 선진적임이 증명되지 않았나. 굳이 미국을 가고, 유럽을 가야 할까?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대면 환경에 직면하면서 모든 콘텐츠들을 자꾸 온라인화하고 있는데, 사실 문제도 많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온라인 콘텐츠를 저장하는 서버에 데이터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기본 플랫폼이 바뀐다면 운영이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 많은 데이터가 지구온난화 환경에 부담도 될 수 있다. 오히려 오프라인에서 작은 전시들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극단적일 수 있지만 비엔날레 시대가 끝났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펜데믹 상황을 계기로 오히려 국제교류에 대한 강박을 놓아도 되지 않을까? 강제적인 상황이지만 우리가 ‘국제 강박’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굳이 국제교류를 이 시점에 억지로 하기보다, 차분하게 여기서 무엇인가를 하면서, 비축하는 시기로 삼는 것이다. 막연했던 해외 협업과 국제교류에서 오는 거품을 걷어낼 수 있는 계기라는 생각이 든다.

  • 변순영
  • 필자소개

    변순영은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미술교육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교육에 관심을 두고 문화기획을 실천해 왔으며, 인천문화재단에 입사한 후, 예술창작 레지던시 공간인 인천아트플랫폼 개관준비팀장을 거쳤다. 지역 문화예술 공공지원의 영역에서 자기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면서 성장하는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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