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일 만에 공연이 개최되었다!

2021년 4월 2일 첼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켈시 루(Kelsey Lu)의 공연이 500평 남짓의 더 셰드(The Shed) 실내 공연장에서 150명의 관객들과 함께 펼쳐졌다. 386일 만에, 그러니까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하고도 20일이 지난 후, 처음으로 관객을 대면하며 실내에서 개최한 역사에 남을 정식 공연이었다. 그리고 4월 3일 코로나19 이후 최초로 재개된 브로드웨이 공연이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36분간 진행되었다. 이어서 같은 달 14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정확히 400일 만에 실내 공연장에서 청중을 마주하고 연주했다. 최근 뉴욕 공연계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400일 만에 실내 공연을 펼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400일 만에 실내 공연을 펼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출처: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Sara Krulwich

2020년 3월 12일,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브로드웨이 공연을 비롯한 500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 중단을 발표했다. 그리고 4일 후 중소규모를 포함한 모든 공연 또한 중단한 이래 무려 386일 만인 지난 4월 2일, 실내 대면 공연이 재개된 것이다. 작년 3월 중순만 해도 링컨센터, 카네기홀 등 뉴욕의 공연기관들 대부분은 ‘그래도 4월부터는 괜찮아지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이 코로나19 최대 피해 지역으로 정점을 찍는 등 상상도 못했던 심각한 사태로 접어들면서 뉴욕 공연계는 잇따른 공연의 취소와 중단, 연기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타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전환하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시행했지만, 워낙 수준급의 영상 아카이브를 많이 보유하고 있던 메트 오페라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연기관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재정뿐 아니라 인력 또한 감원되기 시작하면서 온라인 프로그래밍 운영조차도 힘겨워했다. 당시 뉴욕에선 대면 공연은 고사하고 모임 그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최소한 온라인 공연을 위한 모임은 가능했던 한국의 상황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2001년 9·11 테러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입을 모았던 뉴욕 공연계는 사상 처음 맞닥뜨린 사태에 나사들이 여기저기 빠진 채 힘겹고도 어렵게 굴러갈 수밖에 없었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공연 취소와 중단 기간 연장, 아티스트와 직원들의 해고 소식에 안타까운 탄식과 깊은 한숨들만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한숨과 무력감으로 보낸 1년 끝에 드디어 백신이라는 희망이 생겨나고 백신 접종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1년여 만에 제대로 된 공연장에서, 그것도 실내에서 관객들을 마주하고 정식 공연이 개최되었다. 물론 여전히 서로의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지고 서로 간의 간격은 떨어진 채였지만.

제대로 존재감 드러낸 뉴욕 정부, 그리고 ‘뉴욕팝스업’

15년 가까이 뉴욕에 살고 일하면서도 지난 1년만큼 뉴욕주지사를 비롯한 뉴욕주와 뉴욕시 정부가 이렇게 불도저처럼 일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것을 본 적이 없다. 뉴욕이 워낙 관(官) 주도가 아닌 민간과 자본이 사회와 경제를 이끌어가는 민간 주도의 도시이다 보니 특히나 정부에서 펼치는 문화예술 관련 행정력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난 상황에서, 그리고 백신 등장 이후 뉴욕의 정상화를 위해 펼치는 뉴욕 정부의 움직임은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마치 슈퍼히어로물 영화처럼 갑자기 어디에선가 괴력을 부여받은 것 마냥 엄청난 추진력과 속도를 장착한 트랜스포머로 급변하여 정상화를 위한 온갖 행정력을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 극명히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년간 실업자가 된 예술가들을 돕는 정책을 힘주어 추진해 온 뉴욕 정부는 암울했던 뉴욕이 되살아나면서 이제는 “문화예술의 일상으로의 회복”을 모토로 뉴욕 공연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위해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뉴욕시 문화국(DCA)은 코로나19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소규모 문화예술기관을 포함하여 1천여 개의 뉴욕시 비영리 문화예술기관을 대상으로 총 4,700만 달러(약 526억 원) 상당의 기금 지원을 하였고, 뉴욕주 정부는 공연 산업 지원을 위해 2022년도 예산안에 세금 공제 혜택 1억 달러 등 10억 달러(약 1조 원) 상당의 지원금을 책정하는 등 공연예술 분야의 정상화에 나서고 있다.

또한, 뉴욕시 정부는 5월 6일, ‘시티 아티스트 집단(City Artist Corps)’ 프로그램을 론칭한다고 발표하고 2,500만 달러(약 28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라이브 공연, 공공미술 프로젝트 설치 등을 위해 1,500여 명의 뉴욕 예술가들을 고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이라는 한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 지원 기구인 미 국립예술기금(NEA)의 올해 예산이 1억 6천2백만 달러(약 1,815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뉴욕시의 이번 프로젝트가 뉴욕 예술가들을 위한 상당한 규모의 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부의 강력하고도 적극적인 추진에 영향받은 뉴욕의 비영리 공연기관들도 저마다 다시 일어서고자 다양한 문화 재생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뉴욕주 정부 주도의 민관 파트너쉽 정책인 <뉴욕 예술 부흥(New York Arts Revival)> 론칭의 일환으로 지난 2월 20일부터 시작된 ‘뉴욕팝스업(NYPopsUp)’ 행사이다. 앞서 얘기한 켈시 루와 뉴욕필의 음악 공연도,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36분간 펼쳐진 공연도 모두 뉴욕 팝스업의 일환으로 개최된 것이다. 뉴욕 팝스업 행사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배우 휴 잭맨, 재즈 뮤지션 윈튼 마살리스 등 유명 아티스트들도 함께 참여하여 오는 9월까지 뉴욕주 곳곳에서 팝업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6월에는 트라이베카 영화제 20주년 기념행사와 새로운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는 리틀 아일랜드의 신규 개장 행사 등도 앞두고 있어 더욱 기대를 모은다.

‘뉴욕팝스업’ 5월 7일 행사 인스타그램 라이브 캡처
‘뉴욕팝스업’ 5월 7일 행사 인스타그램 라이브 캡처
출처: 뉴욕팝스업 인스타그램 @NYPopsUp

2021년 하반기 및 그 이후 전망: “돌아오고 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은 올해 1월 초, 북미공연예술인협회(Association of Performing Arts Professionals) 주최의 가상 콘퍼런스에 참석하여 1) 백신 가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2) 공기 청정 및 환기시스템 등 공연장 내 여건이 잘 갖추어질 경우, 올해 가을 중 공연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의 예상은 과연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공연은 더욱 빨리 관객 곁으로 돌아와 주었다. 아직은 제한적이지만 야외는 물론 이미 실내 대면 공연들도 진행이 시작되었고,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Shakespeare in the Park)’ , ‘서머스테이지(SummerStage)’ 등 뉴욕을 대표하는 여름 페스티벌들은 “위 아 백!(We are back!)”을 외치며 공연 라인업을 발표하기도 했다.

뉴욕을 대표하는 공연장인 링컨센터에서도 ‘세계 보건의 날’인 4월 7일부터 획기적인 야외 공연 프로젝트, ‘리스타트 스테이지(Restart Stages)’를 시작했다. 리스타트 스테이지는 침체됐던 뉴욕시의 문화예술 활성화 및 부흥을 목적으로 오는 8월까지 링컨센터 야외 캠퍼스 곳곳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행사로, 링컨센터 상주기관인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줄리아드 오케스트라, 뉴욕시티발레단 등의 라이브 공연은 물론,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이벤트들이 펼쳐진다. 뉴욕한국문화원 또한 링컨센터의 중요 파트너 기관으로 선정되어 오는 8월, K-pop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링컨센터 ‘리스타트 스테이지’ 일러스트레이션
링컨센터 ‘리스타트 스테이지’ 일러스트레이션
출처: 링컨센터(Lincoln Center), ©Illustration_Ceylan A. Sahin Eker

뉴욕시장, “7월 1일, 뉴욕의 정상화” 목표 선언

뉴욕의 18세 이상 성인의 1회 이상 백신 접종률이 60%에 근접하면서 뉴욕시장은 지난 4월 말, “7월 뉴욕의 정상화”를 선언했다. 레스토랑, 뮤지엄, 공연장, 체육관, 상점 등의 수용인원 100% 허용, 전면 재개를 회복하고 팬데믹 이전의 뉴욕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뉴욕의 경제 견인차, 브로드웨이도 과연 컴백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12일 브로드웨이에는 백신 접종소가 개소되었다. 연극·뮤지컬 등 시어터계 종사자들을 위한 백신 접종소를 설치한 것이다. 이는 라이브 연극·뮤지컬 공연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침 중 하나였고, 백신 접종에 대한 일반인들의 수요가 몰려 기존 접종소 예약 자체가 어려웠던 시기의 이러한 조치는 공연계 회복을 바라는 뉴욕시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큰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최근 뉴욕 정부는 5월 19일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성 또는 백신 접종 완료 확인이 가능한 경우에는 공연장 내 수용인원도 100%로 확장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브로드웨이 뮤지컬계도 9월 중순부터 공연 재개를 발표했다. <위키드>, <라이온 킹>, <해밀턴>, <시카고>가 9월 14일부터 공연을 재개하고, 이어서 브로드웨이 최장수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이 10월 컴백을 계획 중이다. 또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품으로는 사상 최초로 공연 이전에 넷플릭스를 통해 10월 1일부터 영화 버전으로 스트리밍할 예정인 뮤지컬 <다이애나(Diana)>가 12월 1일 프리뷰 공연을 예정하고 있으며, 이처럼 리허설 등 준비가 필요한 작품들이 순차적으로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티켓 판매는 이미 5월 6일부터 시작되었고, 5월 11일(뉴욕 현지 시간), 브로드웨이 제작자·극장주협회인 브로드웨이 리그(Broadway League)의 오프닝 관련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하니 41개 브로드웨이 공연장들의 향후 계획에 귀추가 주목된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뉴욕 타임스퀘어와 브로드웨이 극장의 모습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뉴욕 타임스퀘어와 브로드웨이 극장의 모습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뉴욕 타임스퀘어와 브로드웨이 극장의 모습

뉴욕 공연예술계의 진정한 정상화?

소위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일컬어지는 뉴욕. 그중에서도 브로드웨이는 뉴욕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산업 중 하나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 2019년도 시즌을 살펴보면, 브로드웨이는 티켓 판매, 관련 레스토랑, 호텔 등 관광 수입을 포함하여 약 150억 달러(약 16조 원)의 지역 경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10만 명가량의 인원을 고용하는 등 브로드웨이 문화산업은 뉴욕 경제 견인을 위한 큰 역할을 해 왔다. 즉, 브로드웨이가 정상화되기 전까진 사실상 뉴욕이 진정한 정상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는 9월부터 브로드웨이가 컴백할 계획이라고 해도 여전히 숙제는 산재해 있다. 공연 시작 전후로 밀집될 수밖에 없는 관객 동선 관련 대응책도 마련되어야 하고, 오래되어 낙후된 공연장의 환기 시스템 시설에 대한 업그레이드도 필수적이다. 뉴욕 정부는 브로드웨이 공연이 성공적으로 재개될 수 있도록 관계자들과 방역 지침 등 관련 매뉴얼 수립 진행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한다.

사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와중에도 뉴욕 정부는 새로운 정책들을 발표하고, 공연기관들은 올 하반기 시즌 프로그래밍을 발표하는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소식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뉴욕 공연계는 지난 1년간 잃어버렸던 공연들에 대한 갈증을 마치 여름날 폭포수 아래에서 입을 한껏 벌려 해소하듯이, 그야말로 폭발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코로나 팬데믹은 여전히 마침표를 찍지 않았고 집단면역은 앞으로도 성사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가 생겨나서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팬데믹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라이브 공연은 준비에서부터 실행까지, 시간도 비용도 노력도 많이 들어간다. 팬데믹까지 겹친 상황에서 더욱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가운데 민간 차원에서는 물론, 뉴욕 공연계의 복귀를 위해 뉴욕 정부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지원, 추진하는 모습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뉴욕이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이라는 위치를 점하고 있는 키 포인트에는 분명히 ‘국제문화교류’라는 요소가 있고, 팬데믹 이전과 같은 활발한 국제문화교류의 회복은 절실히 필요하다. 예측 불가한 사항은 차치하더라도 세계 각국에서 온 공연 작품들이 뉴욕 무대에서 펼쳐지고, 각국의 예술가들이 뉴욕에서 만나 함께 교류와 창작을 할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뉴욕 공연계의 진정한 의미의 정상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뉴욕 정부도 이점을 유의하고 있으며 국제적 교류 활성화를 위한 여러 방책을 제시하고 있다. 외국인 여행자에 대한 격리 해제를 넘어서 이제는 뉴욕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 제공을 고려 중이라는 것 또한 이러한 시책의 일부이다.

희망이 보인다

확실히 뉴욕의 공연예술계는 현재 회복기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변이 바이러스 문제 등 회복을 방해하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뉴욕의 모습은 1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희망적이다. 뉴욕은 팬데믹 이전처럼 매일 저녁 수없이 많은 공연들이 다시 펼쳐질 것이며 국제적 문화 교류 또한 조만간 다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 본 칼럼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차우진
  • 필자소개

    한효는 뉴욕한국문화원 공연디렉로, 공연예술 그 자체와 공연장이 주는 매력에 여전히 빠져있다.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공연예술행정학을 공부하며 뉴욕예술재단, 뉴욕시티오페라, 미국오케스트라연맹, 브루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BAM) 등 다양한 예술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에서 2010-2011년 제주 해비치 아트 페스티벌 및 국제교류 분야를 담당하기도 하여 한국 및 뉴욕 공연계를 두루 경험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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