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일 어디 잠깐 다녀올 것처럼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난 이채관은 평소 스스로를 ‘잡스런’ 문화기획자라 했다. 잡스럽단 말이 어울리는 게 축제, 전시, 공연, 인문, 문화연구, 문화관광, 문화예술교육, 사회적경제, 청년문화, 도시재생, 공공예술, 문화도시 등 문화예술 영역이 겹쳐지는 판에 그가 걸치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그는 톨스토이전이나 호크니전처럼 대형 전시를 기획 운영하는 주식회사 시월의 설립자였고 책을 주제로 하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 축제인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을 기획 운영하는 사단법인 와우책문화예술센터의 대표였다. 또한 숙명여대 예술행정대학원과 경기상상캠퍼스 다사리문화기획학교를 오가면서 교수이자 선배 문화기획자 혹은 동시대를 사는, 말이 통하는 친구로 청년들을 만나고 그들의 활동과 성장을 돕는 걸 정말 좋아했다. 제도권과 비제도권, 영리와 비영리를 오가면서도 자기 소신과 언어, 그리고 상대가 누구든 격이 없는 한결 같은 태도를 지키며 살았던 자유로운 영혼의 이채관이 바란 세상과 남기고 간 생각은 무엇일까?

출처: 이채관 대표 페이스북

그는 도시와 세상을 사랑했지만 이 사회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더 컸기에 지금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구조화된 기성질서에 균열을 내고 싶어 했고, 그건 문화기획만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우리는 세상을 살지만 실은 질서화된 문화권 안에서 사는 것이며, 지금 우리사회의 문화란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무의식화하는 상징화의 과정일 뿐이어서, 이를 비판적으로 반성하면서 구체적인 실천을 도모할 수 있는 새로운 자기언어를 획득하고, 기성질서에 포섭되지 않은 예술과 예술적 표현을 통해 자유롭게 실험하고 실천해야만 견고한 현재의 권력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를 바꾸고 싶은 모든 사람은 문화기획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실험과 실천의 과정은 주체성이 아니라 관계성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사회의 모든 주체는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달라 계급과 욕망의 위치와 크기 또한 다를 수밖에 없어서, 개별화된 주체의 욕망의 합이 아니라 서로를 환대하는 관계에서만이 함께 할 수 있는, 같이 살 수 있는 이유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놀이를 통해서 가능하다고도 말했다. 한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은 그의 우주를 담고 있어서 서로의 우주를 파괴하지 않고 결합하기 위해서는 강요하지 않는,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상호인정과 유쾌함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파트너를 인정해야만 하고 즐거움만이 목적이 되는 놀이의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비로소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그가 일하는 게 노는 것처럼 보인 이유일 것이며, 견고한 자본주의 경쟁사회의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사람들이 왜 서로 헐뜯고 경쟁하는지 모르겠다고 가끔 투덜댄 이유일거다.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성취를 빨리 획득하고 싶었던 욕심으로 벌인 대형전시가 흥행실패로 끝나고 예기치 못한 동업자의 죽음으로 실패의 책임마저 전부 혼자 안아야 했다. 그것을 극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은 경제적으로나 그의 성공을 기대하는 이들과의 관계에 있어 대단히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후배 문화기획자들이나 문화기획자의 길로 들어서려는 청년들에게 준비 안 된 한방 기획을 경계하고 가늘고 길게 꾸준히 활동하다 보면 그 경험들이 자산이 되고, 관계의 외연이 확장되고 연결되어 어느덧 원하던 걸 이룰 수 있게 된다고 자주 얘기했다. 그렇다고 실패가 두려워 우물쭈물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고도 말했다. 실패는 실패대로 자산이 될 것이며, 실패 이후의 안전망이나 인정체계는 자기와 같은 선배들이나 사회가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후배들이 걱정하거나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걸 혹시 못하고 있다면, 비판하고 뒤집으면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그가 ‘많은 돈을 벌고 싶지만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고 할 때 생겨나는 권력관계에 예민했다. 청년이나 예술가를 대상화하는 시혜적 정책에 비판적이었고, 스스로 요청하지 않은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는 말도 싫어했다. 그건 대상화된 이들의 판단과 자존을 무시하는 거라 여겼다. 만약 누군가에게 마음이 쓰이면 자주 만나서 사랑, 공부, 밥벌이, 우정, 미래와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서로 공부가 되고 힘이 된다고 여겼다. 거기에 같이 살 길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돈을 벌면 그것을 씨앗으로 문화예술 상호부조기금 같은 걸 조성해 누군가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문화예술활동을 하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활용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지난날처럼 개인적 인맥으로 감당하거나 혹은 감당 못 해 좌절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는 수많은 기호와 의미들의 관계로 생성되는 현상 혹은 풍경이며, 문화기획은 생활양식, 즉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풍경을 바꿔놓는 과정에서 기호와 의미들의 관계를 재배치하는 작업이라고 그는 오래도록 주장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문화기획은 그러한 문제에 맞서기 위한 기호와 의미, 관계, 현상 혹은 풍경을 혼합 변주하며 전환을 이뤄내는 일이라고도 했다. 그는 책이라는 기호가 개별 독자의 교양이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지는 독서문화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또 경제 논리로만 작동하는 대형서점 중심의 출판문화를 바꾸고 싶어했다. 그래서 책을 중심으로 저자, 출판사, 독자가 주체가 되는 축제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책이 개인적으로 소비하는 교양물의 수준을 넘어 함께 즐기고 나눌 수 있는 지식문화일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리하여 클럽과 힙한 카페로만 표상되던 홍대 앞을 디자인과 출판의 지식 생산이 이뤄지는 풍경으로 바꿔놓았다. 문화는 사회공동의 생산물이라는 것 또한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기획서는 카피레프트였고, 책축제를 기획하겠다는 기획자들에게 조건없이 제공됐으며, 그렇게 와우북을 모델로 하는 수많은 책축제가 전국 각지에 생겨났다. 홍대 앞을 좋아했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노는 걸 즐겼고, 비판적 지식의 힘을 믿었던 그의 사무실에서 기획된 축제는 책의 의미와 유통되는 관계를 바꾸고 홍대 앞 풍경을 바꾸고, 전국 각 지역의 풍경과 문화마저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는 얼마 전부터는 비판적 담론과 환대의 놀이로 사람들이 모이고, 계급화되고 구조화된 사회문화에 균열을 내고 유쾌하게 전복하는 문화기획의 실험장이자 창조적 공유지가 되는 연구소를 만들까 한다고 말했다.

그를 아는 이들이라면 그가 생각, 말, 행동, 그리고 사회적 실천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몇 해 전부터 그가 총괄기획자로 활동해온 ‘문화도시 수원’ 프로젝트를 추진함에 있어서도 그랬다. “문화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위로와 환대여야 한다”는 그의 평소 생각은 “우리가 사는 도시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도시여야 한다“라는 정책의 언어로 나타났고,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고 타인의 욕망을 들을 줄 알았고 이유없이(!) 사람의 힘을 믿을 줄 알았던 그의 성정은 문화도시 수원 프로젝트의 중심에, “도시의 운명은 시민의 주도성에 기반한 상상력에 의해 결정되며,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대를 통해 실현된다”며, 시민을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나쁜 짓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하며 살도록 둘 때 모두 행복해진다”고 생각한 문화적 자유민주주의자였다. 또한 그는 억압적 질서와 합리화된 권위를 싫어했고 우리 모두 감각과 상상의 권능 앞에 복종하며 살아보자던 로맨티스트였는데, 문화도시수원의 추진에 있어서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발현하는 문화적 전환의 상상들을 수용해 낼 수 있는 참여의 플랫폼을 구성해 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좋은 문화기획자란 자기언어와 스타일을 만들면서 노는 듯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도시 또한 마찬가지여서 좋은 도시는 “남의 것을 흉내 내고 따라하는 게 아니라 자기 것을 반성적으로 찾아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전환을 이뤄가는 도시”라 했다.


그는 떠났지만 나는 아직 그의 부재를 인정하기 어렵다. 그는 마치 지난 밤 아쉬운 술자리의 끝에 손가락으로 ‘피스’ 상징을 만들어 치켜 올리고는 “Yeah~~~”하며 밝게 헤어진 모습 그대로 그곳에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의 많은 친구들이 기대하듯 ”Oh~~~”하고 어디엔가 있을 자신의 근황을 SNS로 금방이라도 전해올 듯하다. 아니면 그가 좋아하던 신촌블루스의 ‘봄비’와 ‘아쉬움’, 들국화의 ‘행진’과 ‘제발’, 그리고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나 ‘빗속의 여인’을 어디선가 들으며 못다한 사랑으로 취해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는 좋은 행사와 장소의 기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사람들이 많이 보면 좋은 행사가 되는 거고, 좋은 사람들이 즐겨 찾으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거다.” 아직 이곳은 이채관이 없는 세상이 되면 안 되니, 나는 아직 그를 떠나보낼 수 없다.


  • 강원재
  • 필자소개

    강원재는 문화기획자로 이채관과 1995년 문화기획 <애야>의 공동창업자였다. 하자센터, 경기문화재단,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땡땡은대학을 거쳐 지금은 영등포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놀이를 위한 외침 “강구야~”로 불리기도 한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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