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커져간다. 점점 더 많은 문화재단이 생겨난다. 때문에 문화재단에 대한 상상과 고민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한다. 하지만 ‘삶의 조건’으로서 문화재단에 대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만나기 쉽지 않다. 일하면서 마주쳤던 문화재단 실무자들, 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조금 더 천천히 들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문화재단의 조직문화를 조망해보고 싶은, 어느 정도라도 구조화해서 이해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한 인터뷰 참여자가 말해준 ‘케바케 사바사(case by case, 사람 바이 사람)’라는 말처럼 그렇게 일반화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숫자에 담을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으로 글의 목적을 바꾸었다.

아래 이미지의 내용처럼 아마도 익숙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탕비실에서, 술자리에서, 옥상에서 수없이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이제 지면에서, 포럼에서, 공론장에서 더 많이 나누어졌으면 한다.

직장 정보 앱 ‘블라인드’에 공유된 모 문화재단에 대한 의견

인터뷰는 직장 정보 앱 ‘블라인드’에서 개발한 블라인드 지수(BIE)를 토대로 문항별 응답을 확인한 뒤, 응답 값에 대한 부연 설명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업무 특성을 고려하여 <업무 중 내가 사고를 친다면 조직이 대신 책임져 줄 것이다>라는 질문을 추가하였다. 인터뷰 후반에 <지금까지 응답한 내용에 대해 코로나가 미친 영향>과 <지금까지 응답한 내용에 대해 문화도시 사업이 미친 영향>을 물었다. 하지만 대부분 응답자는 이 질문 전에 코로나와 문화도시에 대해 언급했다. 이 두 항목을 추가한 이유는 코로나와 문화도시가 최근 문화재단 업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요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고의 방향이 바뀌면서 개별 항목에 대한 응답 값은 부분적으로만 사용하였다.

시 단위 ◯◯문화재단 A의 이야기

A는 미술대학 졸업 후 디자인 회사에서 몇 년간 일했다. 그 뒤로는 공방을 차려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디자인 작업을 병행했다. 고향에 문화재단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A는 지원사업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고 함께했던 문화기관들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도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새로 생기는 재단에 지원서를 썼다. 계약직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정원 내 직원이며, 1년 뒤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들어가 보니 조직은 기존에 마주했던 문화기관과는 좀 달랐다. 문화도시 선정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정규직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조직의 리더는 시장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리더는 ‘큰’ 사업에만 관심이 있었다. ‘자잘한 사업에 힘 빼지 말라.’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꿈을 가지고 합류했던 팀장급 직원들이 모두 떠났다. 인력 보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년 A는 재단 경력 1년차에 3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책임지고 운영해야 했다.

계약 갱신 기간이 다가올 때까지 재계약에 대한 언급이 없던 재단의 리더는, 계약 종료 하루 전 6개월 계약 연장 계약서를 내밀었다. A는 정관을 뒤졌다. A는 동료들과 노동청에 노무 분쟁 신청을 했다. 월차를 쓰고 사비를 털어 노무사 상담을 받았다. 본의 아니게 싸움의 중심에 서게 됐다. 문제가 커질 때쯤 어머니께 전화를 받았다. “누가 집에 찾아오셨다는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좁은 지역의 가지가지 관계망을 타고 설득과 회유가 이어졌다. 싸움은 계속되었다. 계약 분쟁은 직원들의 갑질 신고로 이어졌고 그동안 녹취는 직원들의 일상이 되었다. 물론 각자 맡은 사업들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야근을 하며 싸워야 했다.

상위 기관에 정식으로 상황을 전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근로계약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 사이 재단 리더는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단은 자신의 직원들을 상대로 한 노무 분쟁에 승리하기 위해, 재단의 예비비 대부분을 노무사 비용으로 소진했다. 아직도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문화도시센터가 생겼다. 그런데 확보된 문화도시 예산은 센터 구축 및 인건비 정도밖에 없다. 때문에 재단의 다른 사업비를 이관해서 문화도시 사업을 진행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올해도 ◯◯문화재단은 수많은 새로운 신규 공공사업에 선정되었다. 대부분 떠나간 리더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했던 사업들이다. A는 사업 추진이 왜 어려운지 설명했지만, 선정된 사업을 추진하지 않으면 돌아올 불이익에 대한 이야기만 계속 됐다.

A는 <삶의 전반적인 행복도>를 물었을 때 100점 만점에 70점이라고 답했다. ‘사실은 어쩌면 마이너스겠지만 그렇게 말하면, 정말 더 낮아질 것 같아서’ 70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직장의 전반적인 만족도>는 20점이라고 했다. <나는 나의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항목에는 ‘웃프게도’ (10점 중) 8점을 답했다. 업무역량은 말 그대로 ‘폭풍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1도’ 모르던 노무부터 인사까지, A부터 Z까지 부딪히며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스타트업에서 잠시 일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번엔 비슷한 헤딩을 훨씬 더 빡빡하게 정해진 틀 안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고 한다. 진짜 스타트업에서는 지역 업체와 계약해야 한다거나, 증빙을 위한 수많은 서류를 작성해야 되는 일들은 없었으니까.

A는 최근 인근 지역 재단들이 모이는 인사·노무 관련 원탁테이블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 재단이 진짜 막 하고 있었구나, 절차와 법들이 무시되고 있었구나.’ 매번 깨닫는다고 한다. 재단이 외부 감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 단위 ◯◯문화재단 B의 이야기

B는 두 곳의 문화재단에서 5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다. 몇 년 전 새로 출범하는 재단의 첫 공채에 기록적인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 인생 첫 정규직이 되었다. 팀원 대부분이 여러 문화재단을 계약직으로 돌다가 정규직으로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허니문 같은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모두 함께 조직의 방향과 문화를 스스로의 속도로 만들어가고, 행정 시스템의 문제를 하나하나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공유하던 시간이었다. 오래가지 않았다.

B는 문화도시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문화도시 사업으로 의회를 설득해 생긴 조직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했다. ‘그 과업이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우리의 속도, 에너지를 다 삼켜버렸다’고 했다. 외부 기준에 부합하여야 선정되는 사업이 기관의 중심에 있다 보니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외부의 평판, 의원들과의 관계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부 문제는 쉬쉬하는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하게 되었다. “공모와 경쟁의 방식이 일하는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한다. 우리가 돼야 하니까... 도시를 상상하고 천천히 가더라도 우리 도시만의 내용을 만들어내길 바랬는데, 문체부의 프로세스는 너무 구조화되어있고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국영수 과목별로 점수 따듯이 진행할 수밖에 없다. 두세 번 만나면 MOU 맺고 사진 찍고 하는 식이다. 이러다보니 이렇게 1년 더는 절대 못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몰아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B도 곧 문화도시 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 이후 원래 잠을 잘 자는 사람이었는데 새벽에 꼭 한 번씩 깬다고 한다. B는 자신을 ‘사업의 의도 같은 게 완전히 동의되지 않으면 일이 잘 안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 강도보다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다고 한다. B는 <나의 상사는 내가 업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 준다>라는 항목에 (10점 중) 4점이라 답했다. <나는 회사 생활을 할 때 동료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는 항목에는 5점을 답했다. ‘일단 각자 업무에 치이고 있어서 스페어타임이 전혀 없기 때문에 상사에게 멘토와 같은 모습을 기대하고, 질문을 해주기를 바라지만 그런 토론은 고사하고, 코로나19 이후에는 최소한의 감정적인 교류도 어려워 졌다.’고 했다. 펑크를 내면 메워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링거를 맞고도 돌아가서 일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나는 나의 의견을 회사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라는 항목에 7점을 답했다. 이야기는 충분히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B는 사업에 자신의 색을 담으려는 욕심이 큰 편이라 상사에게도 제안을 많이 하는 편이고 조직에 그러한 의견 개진을 막는 분위기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B가 진단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재단의 특성상 연초에 사업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결정이 되면 연말까지 그냥 가는, 과정에 변경이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그나마 1년 사업의 주요한 방향은 위에서 대부분 위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본인의 스타일을 담을 수 있는 것은 홍보물 디자인 정도인 것 같다며 웃었다.

B는 <지난 1년 내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한 적 있다>, <나는 지난 1년 내 이직을 생각한 적 있다>는 항목에 대해 모두 10점으로 답했다. 그 이유를 코로나와 조직의 업무 방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단은 코로나의 진행 추이를 지켜보느라고 모든 사업을 보류하다가 9월부터 11월 사이에 1년 치 사업을 모두 진행했다는 것이다. B는 ‘사람들이 너무 다 아파요. 그게 너무 속상해요.’라고 말했다. 출근하면 다들 예술경영지원센터 구인 페이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문화계에 이렇게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은 재단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B는 소셜 섹터로 이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B는 <나는 우리 회사의 복지 제도에 충분히 만족한다>는 항목에 3점이라고 답했다. ‘보수체계가 안 좋은 것은 이 바닥에서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이고, 그것보다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이나 직원들이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이 더 안타깝다’고 했다. 스트레스는 사기업보다 오히려 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 잘하고 돈 잘 벌면 끝나는 게 아니라 민주적인 방식, 과정의 의미 같은 우리 사회에서 완성되지 않은 가치를 함께 지켜야 하다 보니 고민도 더 크고 스트레스도 더 많은데 이런 부분을 보듬어 주는 케어 같은 게 전혀 없다. 사기업의 작은 이벤트 같은 것도 없고 결과적으로 참 삭막하다’고 했다.

B의 <직장의 전반적인 만족도>는 60점이었으나, 의외로 <삶의 전반적인 행복도>는 85점이었다. B는 이에 대해 ‘회사와 나를 분리하면서 다시 행복해졌다. 회사를 통해 뭔가 기대하는 것이 헛된 희망이라고 정리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받는 것을 상수로 놓고, 그 이외 시간에 회사에서 마이너스된 행복을 플러스하는 데 전념한다’고 설명했다.

광역시 구 단위 ◯◯문화재단 C의 이야기

C는 다른 광역 문화재단에서 2년 정도 계약직으로 근무하다가 4년 전 ◯◯문화재단의 정규직 공채로 입사했다. 예술교육에 관심이 많아 예술교육 사업을 위주로 일했다.

C는 <직장의 전반적인 만족도>에 대해 75점이라 답했다. 플러스 요인은 뿌듯함이 가장 크다고 했다.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한 뒤에 참여자들이 즐겁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화예술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향유자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일상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일상의 문제들보다 더 오래 고민하고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하다 보니까,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수준의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고 답했다. 마이너스 요인으로는 인사 적체와 작고 귀여운 월급에 비해 높은 업무 강도를 뽑았다. 직급에 따른 업무값이 아니라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투입될 때마다 스스로 고갈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재단의 구조적 역할의 한계도 언급했다. 현장의 상황과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중앙정부, 지자체 등의 제도적인 관리지침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며 때로는 상위기관과 현장 사이에 낀 ‘정’이 된 기분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C는 <나는 나의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항목에 9점이라고 답했다. 첫 번째 이유는 광역문화재단에서 일할 때는 대체로 지원이나 관리, 행정업무가 컸는데 기초문화재단에 오니까 직접 기획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번째로는 리더의 스타일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 조직의 리더는 담당자가 생각하는 사업의 비전이나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는 스타일이었다. ‘사업을 어떻게 계획대로 추진할까?’라고 현재만 고민하던 자신이 토론의 시간을 통해 어느새 ‘이 사업이 중장기적으로는 어떻게 발전해 나아가야 할까?’라고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업 기본계획 한 건의 결재를 받는데도 수개월이 걸린 경우도 있었다. 매년 정해진 일정이 있기에 계획수립이 늦어지면 현장에서 운영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C의 고민에 리더는 ‘세세한 사업과정보다 참여자의 능동성을 찾을 수 있는 방식을 고려해야한다’고 사업의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말하곤 했다. 항상 내선전화로 부르지 않고 꼭 직원들의 자리로 찾아와 말을 거는 리더였다. 그 과정에서 함께한 고민의 시간들이 예전보다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C는 <나의 상사는 내가 업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 준다>와 <나는 회사 생활을 할 때 동료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항목에 모두 8점으로 응답했다. 앞서 말했던 리더의 스타일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 바이 사람이지만 다행히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만났던 상사들은 C가 스스로 생각하는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주었고, 경영팀이나 행정 절차에서 막히는 문제들, 대외적인 문제들을 기꺼이 해결해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내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한 적 있다>, <나는 지난 1년 내 이직을 생각한 적 있다>의 질문에도 모두 8점으로 높게 답했다. 주의 12시간은 기본적으로 초과근무를 하고 심할 때는 새벽까지 일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것은 비단 C만의 업무량은 아니라고 했다. 재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자칭 ‘문화소외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었지만 업무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기에 집중해서 일을 해도 어쩔 수 없이 초과해서 일을 해야 하는 부분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 보상휴가, 대체휴가 등의 제도가 있지만 연차도 거의 쓰지 못하는 터라 이 경우는 자원봉사 하는 식이 돼버린다고 한다. 노동시간 단축이 정착되려면 인력 충원이 필수적이고, 업무의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C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이나 광역문화재단 같은 곳에서 넓고 다양한 사업들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화도시 사업을 맡게 되면서 이 부분에 대한 갈증이 많은 부분 해소되었다고 했다. 업무 영역이 확장되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도시 사업을 맡고 업무량은 3배 가량 늘었다고 한다. 물리적인 양이 많이 늘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 때도 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문화도시 때문에 조직이 변했는가?> 라는 질문에는 ‘변해야하는데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나름 오래된 조직이라 행정, 관리지침이 강력하게 잡혀있고 타 기관보다 행정 절차가 까다로워 때로는 경영팀과의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C는 조직의 가장 큰 장점과 단점의 원인이 모두 ‘오래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구력이 쌓인 탄탄한 조직’이라는 장점이 오랜 세월 수정·보완을 통해 만들어 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리 잡혀있는 관행들로 인해 일을 위한 일이 많다고 했다. 공공기관이라는 특성 때문이겠지만 업무 프로세스를 효율화하면 훨씬 다양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며 조직 내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군 단위 ◯◯문화재단 D의 이야기

D는 타 분야의 공공기관에서 일하다가 ◯◯문화재단에 5년 전 공채로 입사했다. <직장의 전반적인 만족도>에 대한 대답이 93점으로 전체 인터뷰 대상 중 가장 높았다. D는 <나는 나의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항목에 9점, <나는 지난 1년 내 이직을 생각한적 있다>에 0점으로 답했다.

“작년 1년 동안 알을 깬 느낌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업무로도 그렇고 회사생활로도 그렇고. 내가 나쁘지 않게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들을 받았었고. 그게 나의 생각만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자주 이야기 해주고. 그러다 보니 성장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더 커지고. 그런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내가 이 정도를 하는구나 하는. 작년에 조직 내에서 저를 ‘해결사’라고 평가해줬어요. 급하게 꼭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내는. 여러 가지 분야에서. 건물도 짓고, 사람도 만나고 이렇게 업무 영역을 확장해 나가면서, 막혀있는 사업들을 뚫어내고 하다 보니 도전적인 느낌을 넘어서, 게임에서 퀘스트를 깨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결국 가장 큰 보상은 인정이고 그게 승진으로도 이어지고. 다시 내적 동기도 커지고. 그러다 보니 회사 안에서 당당해지고, 무게감이 실리고, 의견을 내면 받아들여지고...”

D가 지난 1년을 매진한 사업도 문화도시 사업이었다. 이렇게 자신이 성장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연초 비수기에 진행된 내부 교육프로그램을 뽑았다. 조직원들과 긴 시간 함께 고민하면서 스스로의 생각이 정리되고, 표현이 자연스러워지고, 사업 하나를 쳐내는 게 아니라 왜 해야 하고 어떤 사업으로 어떻게 연결시켜 나갈지, 맥락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문화도시 전까지 이곳이 제가 그냥 일하는... 생계를 유지하는 조직이었다고 하면, 그 이후에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일과 나의 삶을 분리해서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요즘은 오히려 일과 삶이 너무 밀접해진 것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과몰입 이랄까... 특히 가족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렇지만 일을 일로만 하면 괴롭잖아요. 그렇게 생각 안하고 하다보니까. 얻어가는 게 늘어나는 것 같아요. 그러서 그게 낫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인생에 회사생활이 대부분인데 그 시간들이 괴롭기만 하면 어떻게 살겠어요.”

D는 <나의 우리 회사의 복지제도에 충분히 만족한다> 항목도 8점으로 높게 응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 ‘물론 대기업 같지는 않아요.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해주려는 시도들이 계속 보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야근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3일 10시 정도까지 하는 편이라고 했다. D는 조직에 초과근무 수당, 대체휴무, 탄력근무제도 등은 잘 갖추어져 있지만, 자신은 활용을 잘 안 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중간 관리자, 중간 나이대의 약간의 희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내 업무량/일정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항목의 답변은 5점으로 상대적으로 낮게 답했다. “아직 조직에 업무 숙련도가 높은 사람이 부족해서, 특정 중간 직급에게 몰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물리적으로 업무량이 많아서 조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기존 업무에 치고 들어오는 업무라던가, 네 일도 내 일도 아닌 것을 메워야 하는 일들이 꽤 많거든요. 예측 불가능한 업무 발생 비율이 높은 것이죠.” D는 <지난 1년 내 이직을 생각한 적 있다>라는 항목에 0점으로 답했다. 본인 외에도 조직에 다른 조직으로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은 적어보인다고 했다.

광역시 구 단위 ◯◯문화재단 E의 이야기

E는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했지만 외식업체에서 근무하다가 타 시 단위 문화재단에서 2년간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문화재단에 작년에 홍보담당자로 입사했다. 이곳의 홍보팀은 대부분 정규직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부분이 공공극장이나 공연기획사처럼 유관기관에서 계약직으로 홍보 업무 경력을 쌓았던 사람들이다.

E는 사기업에서 일할 때 보다 현재를 훨씬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평가했다. 사기업에서 오너의 눈에 들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각자 업무에 찌들어 있는 상사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10년 뒤 모습을 생각해봤을 때 ‘이건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었다. 재단이라고 그런 게 아예 없지는 않지만 공공성이 담보되어 있고, 대표도 임기가 짧고 계속 바뀌는 구조다 보니 그런 문제가 훨씬 덜하다고 느낀다. E는 문화재단에 공무원 조직 같은 상명하복의 문화나 몰아치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군 경험도 일정 부분이만 조직 적응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삶의 전반적인 행복도>를 85점으로 답하면서 가장 큰 이유를 ‘아무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이 안정적이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직장의 전반적인 만족도>에는 70점으로 답했다. E는 급여보다도 출퇴근 거리를 가장 큰 마이너스 요인으로 뽑았다. 급여가 높지는 않지만 무언가 포기할 정도는 아니고 따라서 각각의 일들, 저축이나 소비를 조금씩 줄이면 해결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가장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E는 <내 업무량/일정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나의 상사는 내가 업무를 완수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 준다>, <나는 회사 생활을 할 때 동료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항목에 모두 10점으로 답했다. ◯◯문화재단은 홍보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고, 순환보직의 영향도 잘 받지 않는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같은 조직에서 홍보팀에만 10년, 6~7년 일해 온 선배들이 여러 명 있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할 때면 필요할 때면 선배들이 직접 콘텐츠를 채워주기도 하고, 작업 방향에 대해 함께 논의할 시간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홍보 업무에 경력이 길지 않은 E의 입장에서는 배울 것도 배울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또한 업무 일정도 큰 틀로만 정해지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 지는 대부분 조절 할 수 있다고 한다.

야근은 마감이 있는 경우를 중심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열시까지 한다고 했다. 하지만 기본 보수가 적고 야근 수당이 월 25시간까지 인정되기 때문에 야근에 대한 불만은 크게 없었다. ◯◯문화재단도 얼마 전 가지는 35시간까지 초과근무가 인정되었으나 최근부터 10시간이 포괄임금으로 포함되어 25시간까지 인정되게 되었다고 한다. 팀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껄끄러워하는 경영팀과 의회 이외에 기자들이라는 강적들이 있고, 그들 앞에서 ‘병’, ‘정’이 되어야 하는 점도 업무의 애로점으로 뽑았다.

특별시 구 단위 ◯◯문화재단 청년 F의 이야기

F는 인터뷰 대상 중 유일한 20대였다. 지역문화 전문인력 사업을 통해 작년부터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예술경영을 공부했던 F는 대학 때부터 도시재생 사업, 마을 만들기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문화예술계에서 평생 일하겠다고 결심했는데 가장 먼저 행정 경험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사업에 참여했다.

F는 <삶의 전반적인 행복도>, <직장의 전반적인 만족도> 모두 70점이라고 응답했다. 행복도의 긍정 요인에 대해서는 우연히 코로나19 시기에 걸쳐 일을 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다들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우울감을 덜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래가 불안한 20대고, 기간제이다 보니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점수가 낮아졌다고 한다. 직장 만족도 관련해서는 기관이다 보니까 52시간 근무제 같은 부분이 잘 지켜져서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점을 장점으로 뽑았다. F는 근무 후 시간을 활용해서 협동조합을 만들고 올해 연말에 행안부 예비 마을기업 지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F는 <나는 나의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항목에 대해 7점으로 응답했다. 하지만 그 성장이 조직 내부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재단이 출범한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에 10년 이상 된 조직이나 광역에서 배웠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지역문화 전문인력 과정에는 정기 내부 멘토링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많다 보니 외부 교육 프로그램을 스스로 찾아보고 자주 참여하는 편인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직의 협조는 원활한 편이다.

F는 <나는 회사 생활을 할 때 동료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의 항목에 9점으로 높게 답했다. 사수나 팀장들에게 업무 요청을 드리지 않는 편이지만, 가까이 있는 선배들과는 업무처리에서부터 크게는 조직생활 사회생활에 대한 질문을 자주 하는 편이고, 많은 조언을 얻는다. 특히 사기업에서 이직한 선배들이 ‘적당히 도전적이고, 적당히 안정적인 문화재단이 답이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선배들 사이에 출범한지 얼마 안 되어 체계가 없다는 말’이 자주 오간다. 그리고 선배들 간에 갈등이 종종 눈에 띈다. 사무실에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잘은 모르지만 시설관리공단에서 흡수된 측과 문화재단이 출범하면서 고용된 측 간에 갈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F는 <업무 중 내가 사고를 친다면 조직이 대신 책임져 줄 것이다>라는 질문에 7점으로 답했다. 민원이 길어지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팀장이나 본부장이 투입되어 해결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고, 회의 때도 그렇게 지침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회사에 부정행위가 생길 경우, 우리 회사는 합당한 조취를 취할 것이다>라는 질문에는 6점으로 답했다. 앞의 ‘사고’는 보다 공적인 것이라 생각했고, 뒷 질문의 ‘부정행위’는 사적이거나 내부적인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답변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내부의 문제를 더 가볍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 기간제 동료들이 처우 문제 등으로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경우 문제를 공론화 시키지 않고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생활문화 자체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생활문화의 수요가 정말 있는 것인지, 주민들이 정말 문화 그 자체를 원하기는 하는 것인지. 생활문화팀에 있다 보니 주민들을 만날 기회는 많고, 마을 활동을 10년 이상 해온 분들을 만나면 늘 ‘재단은 제발 일을 덜해라. 기획은 민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현실적으로 주민분들이 기획서를 가지고 재단을 찾아오시지는 않으니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재단에서 근무하는 것이 맞는지도 고민이고 그래서 협동조합을 점점 더 생각하고 있다. 주민들과 직접 무엇인가 해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전히 20대에는 조직에서 일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다.”

‘케바케사바사’를 넘어

‘세상일 케바케사바사’라고 하지만 그렇게 넘겨선 안 되는 일이 있다. 첫 번째로 언급했던 A조직의 리더를 ‘사바사’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또 다른 조직에서 경영팀장이 비용을 줄이겠다고 사원증을 지급해주지 않아 공연장 티켓부스에 지원근무를 나가는 계약직 직원이 다른 정직원의 사원증을 빌려 자신의 증명사진을 오려 붙이고 일한 케이스도 ‘케바케’라고 넘어가야 할까?

고용불안정, 과도한 초과근무와 스트레스, 계약 형태에 따른 차별, 성과위주의 단기적 사업 추진, 임원의 전문성 부족이나 낙하산 인사...이런 문제들이 문화재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입으로는 ‘과정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문화조직에 일하는 사람들이 겪는 아픔은 더 커보였다.

문화도시 사업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사업이다. 이 글의 문화도시에 대한 언급들이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밤낮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미리 사과드린다. 다만 문화도시라는 좋은 사업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수적 피해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모두 청년이었다. 점점 더 많은 문화재단이 생기고,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삶의 첫 직장으로 문화재단을 만난다. 그들이 서로에게 문화재단도 ‘케바케사바사’ 지만 적어도 모든 문화재단이 ◯◯하다고, ◯◯는 지킨다고, ◯◯한 태도를 공유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이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혹은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세대들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나마 이 동네에서 가장 먹고 살만한 친구들의 배부른 소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을 특정하려는 노력이 아닌, 조직의 문제점을 특정하려는 고민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아는 ‘사람’ 같다면 그건 기분 탓이다. 하지만 우리 조직의 ‘문제’ 같다면 그건 아마도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 주성진
  • 필자소개

    주성진은 (주)메타기획컨설팅에서 8년간 배우고 일하며 조직을 덜 고상하게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명칭을 고민하다가, 용역으로 가득한 프로필을 보며 스스로를 <문화용역 주성진>으로 칭하였다. 모든 것에 쉽게 중독되며 특히 맛있는 것과 즐거운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여 도파민 분비 체계의 이상이 의심된다. 최근에는 다수의 문화기획 교육과정에 관여하며 멘토를 사칭하고 청년들에게 문화기획을 배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여전히 매년 20%씩 일을 줄여 50살에 은퇴하고 탁구로 전국을 제패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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