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넘기

올해 3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온라인 국제심포지엄에서 독일 측 발제자 게레온 크레버(Gereon Krebber)가 들려준 자신의 고향 보트롭(Bottrop) 코로나 예방접종센터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이야기는 예술 기획에 대한 필자의 사고를 환기시킬 만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술계 활동은 전반적으로 온라인 활동으로의 전환이나 병행 혹은 거리두기 제도에 부합하는 정도의 활동에 머물렀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자연히 예술가와 예술작업이 설 수 있는 입지는 줄어들고 있었다. 전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 예술 생태계가 받고 있는 심각한 타격이 사회적 손실로 인식되기에는, 예술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것이 현실이었다. 예술계 현장에서는 이에 관한 우려 섞인 논의들이 왕왕 이어질 때였다.

조각가이자 뒤셀도르프 예술대학 교수인 크레버가 본래 계획했던 시립미술관의 초청 전시가 독일 정부 방침으로 작년 11월부터 보류되자, 보트롭시에서 백신 접종센터로 활용할 예정인 실내골프장 전시를 제안하여 성사된 전시라고 한다. 화재 안전 수칙으로 작품 선택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일반 미술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관객들을 만난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단다. 독일의 여러 도시들이 이어서 백신 접종센터에 전시를 유치하는 움직임들을 보였고, 그 선두에는 슈트라우빙(Straubing) 지역 미술협회의 리더십도 있었다. 매년 기획해온 정기 전시회를 준비하던 중에 정부의 제한적 폐쇄조치로 전시를 취소하게 되자, 예술가 42명의 작품을 돌려보내지 않기 위해 미술협회장은 발 빠른 움직임으로 인근 백신 접종센터와 협의하여 84개 작품들을 옮겨서 설치했다고 한다. 하루 반만의 일이다. 이렇게 백신 접종으로 방문하는 주민들이 대략 두 시간 정도씩 머무르게 되는 공간이 갤러리로 변신했다.

보트롭 백신접종센터에서 열린 게레온 크레버(Gereon Krebber) 개인전 스트라우빙 백신센터
보트롭 백신 접종센터에서 열린 게레온
크레버(Gereon Krebber) 개인전
출처: 게레온 그레버 홈페이지
스트라우빙 백신 접종센터
출처: The Art Newspaper, ©Erich Gruber


최근 국내에도 백신 예방접종센터를 활용한 예술기획 시도들이 줄을 잇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올해 ‘미술품 대여·전시 지원사업'에서도 부산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 두 곳에 갤러리이배가 매칭되었다. 충주시와 충주중원문화재단은 ‘생의 희망’과 ‘일상으로 복귀’라는 주제로 지역 작가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전시를 열었다. 부산 북구 예방접종센터도 공공미술 프로젝트팀과 협력하여 이상반응 모니터링실에 작품을 설치했다. 강진군 역시 ‘찾아가는 미술관’ 사업의 일환으로 ‘마음 치유 & 힐링전’을 예방접종센터 내에서 개최하여 강진의 풍경사진 20여 점을 접종 대기실과 접종 후 안정실에 배치해두었다. 본래 전시공간을 예방접종센터로 활용하는 순천대 국제문화컨벤션관에서도 접종 동선에 ‘머무른. 쉼’을 주제로 20점 정도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구성했다. 보건의 영역에 예술전시가 매개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리고 기획자나 큐레이터가 시민들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기대한 감정이나 관련성, 감응의 경험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기획의 확장: 더 다양하고, 더 광범위하고, 더 깊숙이

뉴욕에서는 일 년간 폐쇄된 극장들의 재개관을 9월로 계획하면서 뉴욕주지사 앤드루 쿠오모가 공연계 전문가들과 함께 예술가와 시민의 회복을 위한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500만달러의 보조금을 편성했다. 뉴욕팝스업(NYPopsUp)으로 명명한 이 프로젝트 페스티벌은 뉴욕시 모든 다섯 개 보로(Borough, 구)와 뉴욕주의 공원과 광장, 미술관, 지하철 승강장 등 곳곳을 임시 공연장 삼아 2월 말부터 공연을 올리고 있으며 8월 11일까지 수백 회의 공연을 목표하고 있다.

예술감독 잭 위노커(Zack Winokur)가 ‘기획해가고’ 있는 이 페스티벌의 특이점은 완성된 스케줄과 라인업을 토대로 운영되는 페스티벌이 아니라 몇 명의 예술가들을 위원으로 선정하여 협력 기획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각기 형성하고 있는 네트워크를 가동하여, 공연예술계가 축적해 온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들까지도 상상해볼 수 있을 정도로 폭넓고 다양한 예술가들이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중을 위해 예술가들이 기획한 페스티벌’에는 윈턴 마샬리스나 구겐하임, 링컨센터,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도 협력자로 참여하고 있는데, 명성 있는 연주자들과 아직은 그렇지 않은 연주자가 상당히 섞여 있다. 이들은 모두가 평등한 입장으로 같은 연주비를 받으며 참여한다. 리허설도 없이, 가게 앞, 백신 접종센터 대기실, 길거리든 어디든 무대로 삼는데, 무대의 경계도 임시적이거나 없는 경우도 있다. 공원 곳곳을 돈다거나, 백신 접종센터에서 도시 거리로 이동하는 등 동선과 연주의 즉흥성에도 경계가 없다.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건 도시와 주 곳곳에 있는 시민들을 만나러 일상 공간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는 데에 있고, 일상의 영역에서 음악가들과 연주에 우연히 닿는 시민들을 최대한 넓히는 데에 있다. 이를 이끄는 건 자신과 함께하는 연주자들의 의지에 달렸다.

뉴욕팝스업은 여전한 팬데믹 환경에서 확보되어야 하는 안전을 위해 공연 홍보도, 공연의 규모도 제한하고 있다. 오롯이 참여 예술가들의 숫자와 활동 범위로 확장성을 확보할 뿐이다. 예술가들은 도심 곳곳에서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시민들과의 친밀하고 상호적인 관계를 맺을 역할과 책임을 스스로 부여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선 예술가들의 연결망의 확장성은 도시만큼의 다양성을 반영해가고 있다. 도시 일상의 틈새에 공감과 위로, 에너지와 즐거움으로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또 사회적으로 발현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기획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엔 민과 관, 예술가와 예술가, 예술가와 시민 간의 상호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그 가운데에 형성될 문화는 각자에게 필요한 회복의 과정에 든든하게 동행하는 정서적 풍요로움으로 도시민들에게 이전될 것이라는 건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예측하고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뉴욕 유니온스퀘어(2021. 6. 9.) 뉴욕 오큘러스 몰(구겐하임 파트너십) 브루클린 뮤지엄(2021. 3. 19.)
왼쪽부터 뉴욕 유니온스퀘어(2021. 6. 9.), 뉴욕 오큘러스 몰(구겐하임 파트너십), 브루클린 뮤지엄(2021. 3. 19.)
브루클린 Fort Green Park(2021. 4. 28.) 브롱스 리틀이탈리아 지역(2021. 4. 13.) 플러싱 메도우파크(2021. 6. 18.)
왼쪽부터 브루클린 Fort Green Park(2021. 4. 28.), 브롱스 리틀이탈리아 지역(2021. 4. 13.), 플러싱 메도우파크(2021. 6. 18.)
출처: NYPopsUp 트위터 공식계정

예술가의 응답: 보살핌의 책임성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도시가 봉쇄되면서 곳곳에서 나타난 ‘발코니 연주’는 연주회를 위해 모일 수 없었던 환경 속에서 예술가들이 청중에게 보낸 메시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동네 주민을 위한 노래와 연주가 영상화되어 전 세계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했던 것을 아마도 기억할 것이다.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좀 더 능동적인 기획을 실현에 옮겼다. 공연장의 폐쇄로 시즌이 취소되자 단원들과 100여 명의 음악가들을 모아 소규모 단위로 픽업트럭을 타고 주민들의 생활 공간을 돌아다니며 공연 활동을 펼친 것이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에 3회, 8주를 이어간 이 프로그램은 한동안 인터넷을 통해서만 활동해오던 음악가들의 피로에서 나온 활동이라 관객과의 감응은 물론 동료와의 앙상블로 연주자들의 감격과 만족이 높았다. 작년에 오페라 싱어이자 프로듀서인 앤서니 로스 콘스탄조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뉴욕필 밴드웨곤’ 프로젝트는 거리두기의 안전성을 위해 미리 알리지 않고 뉴욕시 곳곳에 출현했고, 올해는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서 만든 이동식 무대로 밴드웨곤을 대체하였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공연을 몰고 나타나는 이들에게는 지역사회 주민들과의 관계 맺는 게 새롭고 소중하다.

국내에서는 경기문화재단이 예술가의 예술적 보살핌을 한 명만을 위해 대면으로 전달할 수 있는 <진심대면-한 사람을 위한 예술> 사업을 기획했다. 이는 그간 예술가와 관객 간, 무대와 객석 간의 거래적 관계로 점점 더 치달아온 예술 향유 논리 구조에 질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두고 예술을 통해 감응의 경험을 나누는 관계로의 전환적 향유는 예술가에게나 관객에게나 특별한 위로와 격려의 힘을 진하게 축적시키지 않았을까. 특히나 예술의 수월성을 좇기 급급하게 활동해 온 예술가들에게도 역시 향유자의 감응을 밀접하게 경험한다는 것은 일 년 반을 버텨내고 있는 활동 단절로부터의 회복과 다음 10년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을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밴드웨건 진심대면-한사람을 위한 예술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밴드웨건
출처: The New York Times
진심대면-한 사 람을 위한 예술
출처: 경기문화재단

미술관 쓰임의 전환 내지는 통합

앞선 사례들이 사람과 예술의 경계를 넘었다면,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 카스텔로 디 리볼리는 미술관이라는 공간 쓰임의 경계를 넘었다. 디렉터 캐롤린 크리스토브-바카르기브가 미술관 3층 전시실을 백신 접종센터로 활용하도록 시에 제안한 것이다. 2021년 1월 제안 이후, 이 프로젝트는 리볼리 시 정부와 지역 보건서비스 기관인 As1 To3, 미술관의 협력 파일럿 프로젝트가 되었고, 백신 접종 준비가 완료된 4월부터 가동되기 시작했다. 전년도 미술관 폐쇄조치 당시 진행되고 있던 기획전인 스위스 작가 클라우디아 콤트의 벽화 작업을 연장할 수 있도록 다음 전시 작가와 콤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콤트 작업에 대한 오디오 가이드도 새롭게 마련했다. 그리고 콤트로 하여금 사운드 작업을 작곡가에게 의뢰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12개의 벽면을 모두 활용한 대형 벽화 작업은 백신 접종을 받으러 온 시민들이 마치 초대받은듯한 마음으로 미술관을 방문해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작품 감상에 몰입했으면 하는 상상에서 비롯되었다.

“예술은 항상 사회를 보살피는 데에 기여해왔고, 기관의 목적과 미션을 위해 서비스를 다 하는 것”이라고 하는 디렉터의 리더십은 유럽 내에 다른 미술관으로도 확산세를 보인다. 밀라노에 타이어 공장을 개조하여 지은 앙가비코카 미술관도 그중 하나인데, 안젤름 키퍼의 전시실을 백신 접종센터로 내놓았다. 10년에 걸쳐 완성해 영구적으로 설치된 작품 <일곱 개의 천상의 궁전>(2005~2014)은 14~18m 높이의 7개의 탑과 벽면을 돌며 설치된 대형 캔버스 작품 5점이 백신 접종자들을 맞이한다.

Castello di Rivoli Museo d’Arte Contemporanea, Rivoli-Turin. Castello di Rivoli Museo d’Arte Contemporanea, Rivoli-Turin
카스텔로 디 리볼리 현대미술관 내외부 전경
출처: Castello di Rivoli 홈페이지
밀라노 롬바드주의 백신센터로 전환되어 활용되고 있는 피렐리 앙가비코카의 Anselm Kiefer 전시관 Anselm Kiefer 전시관 벽면 5개 페인팅 작품 중 ‘Die Deutsche Heilslinie(2012-2013)
밀라노 롬바드주의 백신 접종센터로 활용되고 있는 피렐리 앙가비코카의 Anselm Kiefer 전시관
출처: Pirelli HangarBicocca 홈페이지
Anselm Kiefer 전시관 벽면 5개 페인팅 작품 중 ‘Die Deutsche Heilslinie(2012-2013)
출처: 필자

새로운 시대, 공공 공간의 새로운 해석

뉴욕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이자 세계적 예술단체 10개가 상주하고 있는 링컨센터는 스타브로스 니아코스 재단(Stavros Niarchos Foundation)과 파트너십을 맺고 <아고라 이니셔티브>라는 프로젝트를 론칭했다. 급속도의 변화와 마주하는 이 시대에 공공 공간은 어떻게 시민들에 의해 새롭게 상상되고 적극적으로 가동될 것인가를 질의하며, 라이브 공연은 물론 시민들의 참여적 활동과 가족들을 위한 활동에 안전하고 환영받는 공간으로 시민들과 함께 구성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그 일환으로 < Restart Stages >는 야외에 10개의 리허설 및 공연 공간들의 프로그래밍을, < The Green >은 예술을 통해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하는 시도로 미미 리엔의 설치작업으로 캠퍼스를 잔디밭으로 전환했고, 7월에는 < You Are Here >라는 조각과 사운드, 라이브 퍼포먼스 설치가 연계된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코로나를 겪은 시민들이 경험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작업을 기획하고 있다. 링컨센터는 15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면서 시민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공간이 될 수 있게끔 프로그래밍에 노력을 기울였다. 상주하는 예술단체의 수월성 높은 프로그램 못지 않게 시민들이 공간 안에서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끼고, 참여하며,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또한 푸드뱅크, 헌혈센터와 협약하여 캠퍼스 내에서 음식 배급과 헌혈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투표소로 지정받는 등 시민들의 발걸음이 향할 수 있도록 하며, 모든 시민들의 소유지라는 메시지를 건네는 노력에 적극적이다.

미국은 코로나19와 함께 아시아계 대상 증오 범죄가 증가하던 시기에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종주의를 반대하는 사회운동이 촉발되었다. ‘Black Lives Matter’를 외친 비폭력 사회운동은 문화기관의 책임성과 참여성에 포괄되면서 공간 프로그래밍과 공연 기획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배너 캠페인이 뉴욕시의 인권상주예술가에 의해 시행되어 건물 곳곳에 포용과 평화, 안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면,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에게 큐레이션이 의뢰된 ‘Restart Stages’ 공연은 “우리의 시대는 지금입니다”로 아시아 커뮤니티와 흑인 커뮤니티가 겪고 있는 트라우마와 역경에 대한 시인과 피아니스트, 위촉곡들로 기획한 살롱 무대를 조지 플로이드와 인종 차별의 모든 피해자에게 바쳤다.

SNF 홈페이지 “The Green” (디자인: Mimi Lien, 렌더링: Timothy Leung)
‘Restart Stages’ 포스터
출처: 링컨센터 홈페이지
‘Restart Stages’의 일환으로 만든 설치물
‘The Green’
(디자인: Mimi Lien, 렌더링: Timothy Leung)
출처: SNF 홈페이지

코로나19와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새로운 방향

코로나19는 예술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동시에 인류애와 연대의 지각과 실천으로서의 예술 활동의 발현과 의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간 예술 향유를 위한 프로그래밍은 예술 자체의 숭고미를 전하는 접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을 위한 최고의 공간을 마련하여 예술을 경외의 대상, 향유자를 교육받아야 하는 대상으로만 두어 온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를 자각하여, 2000년대 후반에 들면서 예술 공간을 좀 더 공중의 일상 공간으로 열고, 예술 향유 경험의 궤적을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하도록 조력하는 예술기관의 노력들에 전환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에게 예술기관과 예술 프로그램은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누군가 다른 이들의 것이다. 그런데 재난 상황을 거치면서 예술가와 예술기관들은 일상의 숭고함에 대해, 타의적 고립에 따른 소외 문제와 연결과 관계를 향한 갈망에 대해, 또 쟁점화되는 사회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자유의지의 발현을 원천으로 한 활동들로 사회 곳곳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새로운 관계맺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백신 접종을 기점으로 회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접근은 점차 정책적으로나 조직적으로 기획되는 프로그램과 결합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예술가들은 삶과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한 의지와 관련성을 찾고 예술 활동의 본질에 대해 자의든 타의든 질의하는 기회를 대면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일상적 삶의 필수요소로서 예술의 존재를 직간접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예술은 백신처럼 즉각적으로 실용적인 결과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정의 연속인 삶에 중간지대로서 쉼이나 위로, 생각하지 못한 충돌이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상상, 비실용적인 실천에서의 새로운 앎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주는데에 능하다.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는 전시장을 “사회 체계에서 존재하는 거래와 다른 방식의 가능성들을 시사하는” 틈(interstice)의 개념을 연계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영역과 일상생활과 대비되는 리듬을 지닌 시간을 마련해주며, 이는 우리에게 일상에서 부과되는 '소통 영역'과는 다른 인간 간(inter-human) 상거래를 장려하는” 기능적, 존재적 정체성을 설명한 바 있다. 지금, 예술의 공간과 시간의 프로그램 기획에 필요한 생각이 아닐까. 그 어느 때보다도 개개인의 각자의 삶과 사회의 문제들을 직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때, 예술의 감응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과 실천으로서의 기획을 시작할 때이다. 일상과는 다른 리듬, 다른 소통, 다른 상상력을 제공할 예술과의 접점을 제공해야 할 동기가 가득한 시대가 아닌가. 시장지향의 거래를 개발하기보다 사람들의 삶에 필연적 공간과 시간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그러한 프로그램들로 삶의 동반자로서의 예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확대되고 생동력 있는 예술가들의 존재에 대한 낙관적인 상상이 현실이 되는 길이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 본 칼럼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서지혜
  • 필자소개

    서지혜는 공연기획사,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세종문화회관, 그리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을 속성으로 거친 7년에, 예술경영 연구와 컨설팅, 예술매개 사업의 기획과 실행을 주활동으로 삼은 16년을 보태고 있다. 작곡을 공부하다 예술경영으로 길을 전환했던 동기를 진화시켜가며 동력으로 삼고 있기에, 사람들의 삶에 예술적 경험을 좋은 자산으로 연계하고 매개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과 기회를 포착하여 기획하고 실천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호기심을 쫓아 새로운 리서치와 기획에 방점을 찍어왔다면, 이제는 다양한 영역과 사람들과의 연대와 협력으로 예술의 새로운 역할을 구현하는 데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인컬쳐컨설팅 대표,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숙명여대, 연세대에서 미래의 동료들을 만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형 엘 시스테마-아동청소년오케스트라 일궈가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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