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숍이라는 이름

우리에겐 ‘아트숍’이라는 명칭으로 익숙한 뮤지엄숍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관람객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 중 하나가 된 듯하다.1) 주요 소장품과 전시 관련 상품, 서적 등을 판매하는 이 상점은 대개 미술관의 로비나 주요 출입 동선상에 위치한다. 관람객은 관람을 마친 후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유물의 이미지가 담긴 엽서, 미술관 방문을 기념할 수 있을 만한 상품들을 고르는 재미로 관람을 마무리하는 셈이다. 좀 더 진지한 관람객의 경우에는 전시 도록을 비롯해 특정 소장품이나 작가에 관한 전문 서적을 탐독하며 관람 경험을 확장하기도 한다. 특히 외국이나 다른 지역의 미술관이라면 숍에 머무는 시간은 좀 더 길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하 The MET)의 ‘The MET Store’,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이하 V&A)의 ‘V&A Shop’과 같이 미술관 이름 뒤에 상점을 뜻하는 ‘숍’이나 ‘스토어’를 붙여 뮤지엄숍의 이름이 만들어지는데, 판매 상품의 종류와 품질이 고도화됨에 따라 숍의 기능과 성격을 세분화하거나 특정 마케팅 전략에 따라 특징적인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뉴욕현대미술관(이하 MoMA)은 미술관 로비에 있는 ‘Museum Store’ 외에도 MoMA Design Store를 뉴욕 2개소와 도쿄 등 아시아 3개소에서 운영한다. 국내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존의 미술관 내 오프라인 뮤지엄숍 역할을 하는 ‘아트존’과 서점인 ‘미술책방’, 온라인숍 ‘미술가게’를 분리하여 운영하고 있다.2) 하지만 일반적이든 특화된 것이든 뮤지엄숍은 공통적으로 미술관의 설립 목적과 임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뮤지엄숍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은 미술관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기획되고 선정된다. 뮤지엄숍은 관객이 미술관에서의 예술적, 지적, 문화적 경험을 관람 이후로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템 개발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중의 디자인 상품점이나 관광 기념품 상점과 차별화될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온라인숍 ‘The MET Store’ 메인화면
출처: The MET Store 홈페이지

‘아트숍’이라는 이름에 흔적이 남아 있듯이, 뮤지엄숍은 미술관이 소장한 예술품의 복제품 상점에서 비롯되었다. 지금의 뮤지엄숍은 엽서나 포스터 등의 작품 관련 인쇄물부터 노트나 연필 등의 문구류, 에코백 등의 생활용품, 장신구 등 패션용품, 공예품, 복제품, 기본적인 미술관 브랜딩 상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군으로 구성되지만, 초창기 뮤지엄숍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뮤지엄숍의 대부 격이라 할 수 있는 The MET가 판매한 최초의 상품은 소장품 복제 이미지였다. 19세기 말부터 소장품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던 The MET는 ‘The MET Store’의 시초 격인 안내데스크 한편에서 전속 사진가들이 촬영한 소장품 사진들을 판매했다. 즉, The MET 최초의 ‘아트 상품’은 미술관 소장 회화 작품의 흑백사진, 슬라이드, 엽서였다. 이후 다양한 소장품의 컬러사진, 소장품에 관련된 서적 등이 추가되었고, 1950년대에 이르러 엽서 판매대는 ‘Art and Book Shop’이라는 이름의 상점으로 독립 설치되어, 철저한 복제 독점권 관리하에 평면 작품 외에 도자나 장신구 같은 소장 유물의 복제 상품 제작도 시작한다.3) 1979년 상점 규모 확대, 1990년대 지점 확대 및 컴퓨터 시스템 도입 등 꾸준한 확장을 거친 ‘The MET Store’는 현재, 5천 년 역사를 아우르는 소장 유물 복제품을 비롯해 서적, 장신구, 스카프, 각종 프린트, 포스터, 카드, 실내용품, 기념품류 등을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에서 판매한다.
물론, 뮤지엄숍은 기념품 상점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제 여행자들에게 미술관은 문화 체험을 위한 필수 관광지 중 하나이며, 뮤지엄숍에는 수준 높은 예술품의 복제품이나 미니어처, 미술관의 로고가 새겨진 가방이나 문구류 등 매력적인 상품이 넘쳐난다. 같은 값이라면 어느 관광지에서나 구할 수 있는 기념품보다는 선망하던 도시의 유명 미술관 방문을 인증하기 좋은, 좀 더 고상해 보이면서도 문화적 향기가 깃든 상품을 선택할 것이다. 미술관은 가장 전문적으로 문화를 소개하는 장소이자, 다양한 대중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문화 마케팅의 최적지인 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어떤 국가나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미술관 뮤지엄숍에 소장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그 나라의 대표적 예술품이나 문화 관련 상품이 공통적으로 입점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별도의 국립 기관이 국가의 문화 자산으로서 주요 미술관의 소장품 및 관련 상품 라이선스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경우, 뮤지엄숍은 개별 미술관의 소장품 및 전시, 정책에 따라 개발한 고유한 상품을 판매하는 동시에 해당 국가의 문화재 상품점의 기능도 하게 된다.4) 상품의 전반적인 품질이 평균 이상으로 관리되고, 어느 미술관에서나 그 나라의 대표적 예술품 관련 상품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뮤지엄숍은 일종의 문화 관광의 종점 역할을 소화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국립박물관-그랑팔레 연합(RMN-GP)은 소속 국립미술관 소장품의 상업적 활용과 관련된 사업을 통합 관리하는 기관이다. 연합은 19세기 말, 루브르 박물관이 제작한 소장품 동판 인쇄물과 복제 조각 판매를 시작으로, 1930년대에는 상설전 및 특별전 도록, 소장품 관련 엽서와 박물관 안내서 등 인쇄물 관리와 제작을 담당하다 1991년부터는 시청각 자료로 그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1999년부터 연합 온라인숍 ‘부티크드뮈제(Boutiques de musées)’를 통합 운영하며 프랑스 전역의 소속 미술관 뮤지엄숍의 서적과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 오르세 미술관 등 각각의 미술관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뮤지엄숍은 그랑팔레 연합에서 관리하는 상품들을 항상 구비하고 있고, 부티크드뮈제에서는 연합 소속 미술관의 대표 상품들 가운데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예술품 및 프랑스 문화 관련 상품을 한데 모아 판매하는 구조이다.5)

뮤지엄숍의 확장

뮤지엄숍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뮤지엄숍은 소위 ‘아트 상품’의 품질을 관리하고, 미술관의 재정 확충에 기여하며, 관람객 혹은 소비자를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뮤지엄숍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품질은 미술관의 독자성이나 소장품의 가치와 직결되는 요소로서 진본성과 함께 가장 중요하게 추구되는 기준이다. 또한 미술관 운영 및 마케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뮤지엄숍은 수익 창출의 기능을 수행하며, 동시에 도록 및 전문 서적을 비롯해 관람 경험을 미술관 밖으로 연장·확장하게끔 하는 매개물들을 판매함으로써 관람객 교육이라는 목적을 수행한다.
그렇게 미술관에서의 문화 경험이 관람객의 삶 속에서 지속되고 확대될 수 있게 하기 위한 뮤지엄숍의 핵심 과제는 결국 상품 자체의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상품들을 통속적 기념품과 차별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은 전시실에서 감상할 수 있는 유물이나 예술품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아이템을 선보이기 위해 상품 개발과 창의적 마케팅에 힘을 쏟는다. 소장품 혹은 전시 작품의 매체와 형식이 다양해짐에 따라 뮤지엄숍의 상품군 역시 종류와 범위가 다양해지는 한편, 예술가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협업을 서슴지 않는다. 상품 디자인과 품질 수준도 계속해서 높아짐에 따라, 기념품 역할을 하는 고전적 아트 상품과 나란히 실생활에서 미적으로나 실용적으로 사용 가능한 품목들이 뮤지엄숍을 채워 나가고 있다. 더불어 상품과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관람객의 관람 경험을 확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뮤지엄숍은 주요 기능을 상보적 방식으로 수행하며 점차 미술에서 삶으로, 미술관 안에서 바깥 세계로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는 듯 보인다.

① 컬렉션에서 라이프스타일로

V&A는 근현대 공예와 디자인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소장품을 자산으로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상품 개발을 이어왔다. 특히 영국 빅토리아 시대 물질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던 미술공예운동을 대표할 만한 드로잉, 벽지, 가구, 텍스타일, 주얼리 등의 소장품이나 화려한 쿠튀르 소장품을 십분 활용해, 굵직한 패션 기획전 및 주요 소장품과 연계한 다양한 상품군을 개발하고 기획 상품전을 박물관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전개한다.6) 독자성과 대중성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고 있는 연계 상품의 품목은 사진을 비롯한 소장품 이미지로 제작한 오리지널 프린트나 포스터부터 의류, 주얼리 및 패션 소품, 공예품, 가정용품, 전시 관련 도록 및 미술, 공예, 디자인 분야 전문 서적, 문구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각 전시마다 다양한 버전으로 특별 제작되는 10파운드(약 1만 6천 원) 이하의 토트백 형태의 에코백은 V&A 숍의 효자 상품이다. 2019년 4월부터 2020년 3월까지 V&A 토트백은 21만여 점이 팔렸고, 서적류는 20만7천여 권이 팔렸다. 그리고 토트백과 더불어 V&A에서 발간한 전시 도록과 서적류 역시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미술 상품’ 기획 분야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 2020~2021년 V&A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감염병으로 인한 셧다운 상황 속에서도 주요 패션 전시와 관련된 출판물의 판매량이 (특히 온라인에서) 증가했다고 한다.8) 이는 미술관의 교육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뮤지엄숍의 주요 기능을 고려할 때, 소장품 및 전시 관련 도록과 전문 연구서의 출간이 획기적이고 개성적인 고품질 상품을 개발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환기시켜 준다.

② 로비에서 온라인으로

The MET는 이미 1920년대에 아트 상품의 우편 판매를 시작한 바 있다. 온라인 생활환경에서의 전자상거래가 일상적 활동이 된 시대에 세계 주요 미술관이 온라인숍을 운영 중인 것은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오프라인숍만큼 비중 있게 온라인숍을 운영한 것은 최근 수년 사이의 일이다.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개점 휴업 상태인 미술관들은 온라인 뮤지엄숍의 운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추세이다. V&A는 2020년 6월 아트 상품 쇼핑과 입장권 구매, 후원금 기부 및 미술관 멤버십 가입 서비스를 통합한 플랫폼으로 리뉴얼한 온라인숍을 공개했다. 방대한 근현대 공예·디자인 작품들을 소장한 미술관답게, 온라인 ‘V&A Shop’은 화려하고 매혹적인 상품들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장신구나 패션 카테고리는 상품 수도 방대하고, 전시와 연계하여 디자이너나 예술가, 특정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제작한 독점 상품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퐁피두 센터 역시 온라인숍을 운영하고 있다. 퐁피두 센터의 로비층에는 유럽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 전문 도서관이 있는데, 같은 층에 있는 뮤지엄숍은 다른 미술관들과 비교해 별다른 특색이 있지 않다. 이러한 미술관의 정책은 온라인숍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서적이 제일 첫 번째 상품군으로 정렬되어 있으며 현대미술, 건축, 디자인, 영화, 퐁피두 소장품 등을 아우르는 350여 종의 예술 전문 서적을 판매한다. 그리고 종이·문구류, 인쇄 서비스 등이 뒤를 잇는데, 상품 카테고리 중에서 환경친화적 디자인 상품들을 ‘Eco-Responsible’ 카테고리로 따로 분류한 점은 뮤지엄숍이 미술관의 운영 철학이나 윤리 강령을 따르는 사례로 주목해 볼 만 하다.
MoMA는 건축·디자인 학예실을 처음 설치한 미술관답게 디자인에 방점을 둔 오프라인 ‘MoMA Design Store’ 6개소와 함께 온라인숍도 같은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주로 가정이나 사무 공간용 가구, 식기류, 텍스타일, 각종 생활 소품들, 의류와 장신구를 비롯한 패션 소품들로 구성되며, 디자이너의 가구나 특별 제작한 독점 상품들이 목록에 포함되다 보니 상품의 평균 가격대가 다른 숍에 비해 높게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MoMA Design Store’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미술관 학예사들이 상품 기획과 스토어 마케팅의 주요 의사결정자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MoMA Design Store’는 총 8가지 범주에 의거해 상품을 선별하는데, 이에 따라 1차 선별을 거친 후보군은 학예실의 검증을 거쳐 최종 입점 여부가 결정된다.9) 그리고 각각의 범주는 모두 미술관의 미션과 학예실의 기조, 혁신과 좋은 디자인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미술관의 소장품, 디자이너 또는 작가, 해당 장르나 시대에 대한 전문 지식과 감식안을 가진 학예사가 뮤지엄숍 상품 기획과 선정에 참여함으로써 “MoMA의 디자인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은 동시대 상품 기획”을 실현한 ‘MoMA Design Store’ 는 전문가와 대중 모두에게 각광받는 전문 상점이 되었고, 관람객이 아닌 해외 소비자까지 끌어안으며 온라인숍 해외 지점(일본, 홍콩)을 개설하기에 이른다.

미술관 밖의 미술 상품 : 작은 사례들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 가운데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한 뮤지엄숍의 목록은 계속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뮤지엄숍의 문화 관광 마케팅과 관련해서는 라익스 뮤지엄(Rijksmuseum Amsterdam)을 비롯한 네덜란드 국공립미술관을, 상품의 정통성과 품질 관리, 작품과 상품 라인의 구분 전략에 관해서는 로열 델프트 박물관(Royal Delft Museum), 지역 공예가 및 제작자의 작품 유통 기능과 관련해서는 워커 아트 센터(Walker Art Center), 소장품 관련 상품이나 대량생산된 상품 외에 독특한 수공예품의 구성에 초점을 맞춘 사례로 브룩클린 미술관(Brooklyn Museum)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뮤지엄숍의 기획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좀 더 획기적이고 과감한 시도들은 오히려 미술관 바깥에서 만날 수 있다. 여기서는 아트숍이나 뮤지엄숍의 경계와 개념을 확장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써드 드로우어 다운(Third Drawer Down)은 2003년 멜버른의 작은 창고 공간에서 시작한 아트숍이자 예술가 협업 상품 전문 기획사이다. 처음에는 미술 작품 이미지를 린넨에 인쇄한 리미티드 에디션 행주를 제작하는 소박한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알렉스 카츠, 쥬디 시카고, 신디 셔먼, 키키 스미스, 게릴라 걸스, 데이비드 슈리글리, 야요이 쿠사마를 비롯해 세계의 걸출한 현대미술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와 함께 신선하고 재치 있는 미술 상품을 기획·제작하며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미국에도 회사를 설립해 더 넓은 시장에서 소비자를 만나며 명실공히 미술 상품 기획 분야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선보이는 상품들은 기념품을 연상시키는 뮤지엄숍 상품들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가졌다. 누군가 한입 베어 먹은 거대한 옥수수 모양 스툴처럼 현대미술의 주요 어법을 차용한 오브제나 예술가와의 협업으로 생산하는 ‘Third Drawer Down Studio’ 에디션 생활용품들, 특정 미술관의 커미션으로 소장품을 재해석해 제작한 상품 컬렉션 등, 써드 드로우어 다운이 전방위로 ‘창작’해내는 미술 관련 상품은 소위 고급예술과 대중을 쉽고 유쾌한 방식으로 연결한다. 문화 마케팅과 기능적인 미술 상품 기획 분야의 선두에서 이들은 자체적인 상품 기획 활동 외에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시카고 현대미술관(MCA Chicago),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빅토리아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을 비롯한 전 세계 유명 미술관을 위해 미술 상품을 기획·공급하기도 한다.

호주 멜버른에 있는 써드 드로우어 다운(Third Drawer Down) 매장 전경(좌),
온라인숍 메인화면(우)
출처: 써드 드로우어 다운(Third Drawer Down) 홈페이지

한편, 2005년 뉴욕에서 시작한 예술 공간이자 상점인 키오스크(Kiosk)는 좀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관객과 사물을 연결하는 실험을 해오고 있다. 키오스크는 사람들이 미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운영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2014년까지 상점을 함께 운영했고, 이후로는 MoMA PS1, 해머 미술관(Hammer Museum), 런던, 마르세유 등지의 미술관이나 미술·디자인 전시에서 장소에 맞는 컬렉션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해 왔다. 지금은 온라인숍의 형태로 오브제 및 상품을 판매하고는 있지만, 이들이 판매하는 물건의 대부분은 미술 상품이 아니라 그들이 수집한 생활용품이다. 덴마크산 그릇 솔, 일본산 대바구니, 독일산 줄자 같은 물건들에 길고 창의적인 설명을 덧붙여 판매하는 식이다. 키오스크는 “가장 흔한 것에서부터 대단히 보기 힘든 것에 이르는” 다양한 사물이나 예술품을 보고, 배우고, 만지고, 그에 관해 이야기하는 공간이며, “작업실이자 상점이고, 설치물이자 해프닝”인 곳이라는 설명처럼, 이들은 핀란드, 이탈리아, 루마니아, 멕시코, 콜롬비아, 인도 등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오브제에서 이야기와 가치를 발굴하고 긴 해설과 함께 전시하고 판매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공산품, 수공예품, 디자인 상품, 예술가의 작품, 심지어 푸아그라나 국수 같은 식품까지, 아름다움과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기꺼이 수집하고 그것의 가치를 지극히 주관적인 ‘상품 리뷰’와 함께 관객-소비자에게 전달한다. 목적이나 형식 면에서 아트숍과는 거리가 먼 상점이지만, 키오스크의 관점은 문화 상품 마케팅, 미술 상품에 대한 우리의 고정 관념에 작은 흠집을 내준다. 복제와 재생산, 판촉이나 기념품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생각을 환기시키고, 감각을 일깨우고, 문화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넓혀주며, 유머와 지적 자극을 유발할 수 있는 사물들을 미술관 한켠에서 만나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아트’의 복제품을 파는 상점이 아니라, 장소 그 자체가 예술이자 문화가 되는 상점은 어떤 모습일지 말이다.

키오스크(Kiosk) 뉴욕 상점 전경
Ⓒ Elizabeth Felicella
키오스크(Kiosk) 온라인숍 아카이브 페이지
화면
출처: 키오스크(Kiosk) 홈페이지

나가며 : ‘컬처 스토어’의 꿈

수년 전, 국내 한 국립기관의 개관 준비 사업 중 아트숍 기획을 담당했던 적이 있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큐레이터·예술감독의 마스터플랜을 국내 문화와 공공기관의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았었다. 가칭 ‘컬처 스토어’로 명명한 그 사업의 골조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예술과 문화를 집약한 독특하면서도 예술적인 상품들을 선별하고, 국내외 예술가·디자이너·건축가와 협업해 기관의 미션과 정체성을 뒷받침하면서도 예술적 가치를 지닌 상품을 개발하고, 상품과 함께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사업은 기관 내외부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실행 단계까지 발전되지 못했고, ‘컬처 스토어’를 계획했던 곳에는 여느 미술관에서 볼 수 있을법한 아트숍이 들어서 있다. 비록 실현되지 못한 꿈일지언정, 다양한 문화권의 물질문화와 예술, 공연, 지식을 아우르는 문화 경험을 확장하면서도 그와 별개의, 독립적인 예술 경험과 지식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는 개념은 당시에도 상당히 실험적이고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소장품 복제품이나 관광 기념품 일색의 뻔한 뮤지엄숍 구성과 범주를 벗어나 그 자체로 미술관 내외부의 프로그램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문화를 생산하고, 또 그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 기능에 방점을 둔 상점. 복제품이나 재현물, 박물관 로고 플레이에 그친 기념품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문화예술 활동을 재료 삼아 만든 사물들, 디자인, 생활양식, 프로그램,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섞이는 공간.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총체적 경험으로서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문화 상점은 우리가 여전히 꿈꿀 수 있고, 꿈꾸어야 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이 글에서는 미술관·박물관에서 운영하지 않는 아트숍과 구분하기 위해 뮤지엄 스토어, 갤러리숍, 뮤지엄숍 등, 미술관 내에서 ‘아트숍’ 기능을 하는 상점을 지칭하는 용어로 ‘뮤지엄숍’을 사용했다. 또 지면 절약을 위해 박물관을 특정해야 하는 경우 외에는 미술관·박물관을 미술관으로 줄여 썼다.
2)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아트존’은 “국립현대미술관 도록, 전시 상품 및 디자인 문화 상품, 공예품, 섬유 상품 등 판매”하고, ‘미술책방’은 “전시 도록을 포함한 국립현대미술관 출판물과 국내외 다양한 예술 서적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을 표방한다. 그리고 이 둘의 기능을 온라인에서 통합한 것이 ‘미술가게 MMCA SHOP’이다.
3)Farr, Brecca Rhea, "Museum stores: Curators and marketers of culture" (2000). Retrospective Theses and Dissertations. 12682, 19-21. Farr에 따르면, The MET는 1870년부터 다른 미술관 소장품을 포함한 소장품의 복제를 관리하기 시작했고, 19세기 말에는 미술관 소속 사진가들이 미술관 내 스튜디오에서 미술관의 신규 취득 소장품을 촬영하도록 했다. 소장 유물의 이미지 사용권이 아트 상품, 출판과 함께 뮤지엄숍 운영의 3대 수익 활동 중 하나라는 점에서 19세기부터 The MET가 복제권을 인식하고 관리해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4) 국립박물관 뮤지엄숍 상품들의 기념품화는 문화 상품에 대한 국가주의적 인식, 뮤지엄숍에 대한 민족지학적 접근방식에 깃든 식민주의적 관점은 별도의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주제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5) 국립박물관-그랑팔레 연합 홈페이지부티크드뮈제 홈페이지 참조
6)최근 개최된 패션 관련 전시로는<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2019) <Mary Quant>(2019-2020). 영국의 오랜 잡화 브랜드 멀버리의 후원으로 기획된 가방 특별전 <Bags: Inside Out>(2021-2022)등이 있다. 그 밖에도 V&A는 대중문화 스타들을 조명하는 전시도 개최한 바 있는데, 2016년 타계한 영국 대중문화의 상징 데이비드 보위 관련 아카이브(사진, 음반 표지 아트워크, 기타 수집품 등)에 기반한<David Bowie Is>(2013)의 연계 판매전에서는 해당 전시의 순회전시 기념 도록, ‘Fine Art Print’ 레이블로 판매하는 한정판 프린트 등을 판매하고 있다. Victoria & Albert Museum Annual Report and Accounts 2020-2021, 15-16 참고.
7) Farr, 앞의 글, 16.
8) Victoria & Albert Museum Annual Report and Accounts 2019-2020, 15.
9) MoMA 디자인 스토어의 8가지 상품 분류 기준은 MoMA 소장품 관련성, MoMA 전시와의 관련성, 혁신적 재료, 혁신적 기능, 혁신적 기술, 어린이를 위한 교육적 디자인, 혁신적 섬유미술, 디자인 아이콘으로 요약할 수 있다. MoMA Design Store 해당 웹페이지 참고.

  • 문유진
  • 필자소개

    문유진은 공공기관 행정 시스템과 미술 현장에 대한 폭넓고 균형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동시대 미술과 공예를 탐구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여러 국공립 기관에서 학예사로 재직하며 세 차례의 비엔날레를 비롯한 국제 전시·학술 행사를 다수 기획했고, 2011년부터는 각 분야 전문가·예술가와 팀을 구성하고 해체하는 방식으로 전시·출판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주요 기획으로는〈포스트모더니즘과 현대 도자〉(2009),〈Clay Art Film Festival〉(2009),〈Croisements vers la communication〉(파리, 2010),〈Lake Sound Performance〉(2013),〈돌을 닦다〉(2014~2016),〈의문형의 희망〉(교토·서울, 2016~2017),〈Polish It Up 108〉(브로츠와프, 2019),〈Polyrhythmic〉(2019),〈상상동물도〉(2020),〈思物寫物〉(2021) 등이 있다. 예술과 사회적 조건의 관계, 양질의 예술 경험 확대를 위한 합리적·윤리적 기획 시스템 구축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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