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950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공공극장의 역사가 70년이 되었다. 극장(theater)은 그리스·로마,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오며 발달한 서구 문명의 산물이긴 하지만, 우리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제는 어느 정도 공공극장의 역사를 축적했다. 2050년이면 우리나라 공공극장의 역사는 100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지난 70년 우리나라 중앙, 지방정부는 공공극장을 어떻게 인식해왔을까?”, “국가행정이 극장(theater)을 만났을 때, 지금 우리는 어떤 극장 정책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며, 제한된 지면이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가 공공극장을 어떻게 인식하고,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보고 싶다.

극장(theater)에 대한 개념 조정의 필요

논의에 앞서 상기 질문을 이어가기 위해 ‘극장(theater)’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극장(劇場)을 ‘연극이나, 무용 따위를 공연하거나 영화를 상영하기 위하여 무대와 객석 등을 설치한 건물이나 시설’로 언급하고 있다. 영화 상영을 제외하고 보면, 한국어 사전은 극장을 ‘공연을 하는 건물이나 시설’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극장’을 그리스 문명부터 사용된 영어 단어 ‘theatre(theater)’로 보면 의미의 폭이 넓어진다. Dictionary.com이 설명하는 ‘theatre’의 의미 중 공연과 관련된 것은 ① 공연을 올리는 건물, 건물의 일부 또는 야외공간, ② 공연 관객, ③ 공연단체, ④ 예술장르로서 공연예술, ⑤ 공연 작품으로 설명하고 있다. 시어터를 하나의 단순 시설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 ‘예술을 통해 삶을 조직하는 예술가와 관객 그리고 작품’을 통칭하여 극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공연단체 이름으로 댄스(발레) 시어터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또한 시어터(theatre)의 어원인 ‘테아트론(théātron)’은 ‘보다(théā)’와 ‘장소(tron)’가 합쳐진 객석, 범위를 좀 더 확장하면 관객을 지칭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극장(theatre)의 개념은 시설로서 극장을 포함하여, 그 안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함께하는 관객, 극장을 기반으로 생성되는 예술작품 전반을 포괄할 필요가 있다.1)

우리나라 공공극장의 변화 흐름

범 국립극장의 분화와 특징

먼저 확장된 ‘극장(theater)의 개념’인 시설로서의 극장, 예술단체, 예술장르의 관점을 함께 가지고 중앙정부 주도의 범 국립극장의 분화를 개략적으로 살펴보겠다.

범 국립극장의 분화
범 국립극장(theater)의 분화

1950년 법률을 기반으로 만든 대한민국 최초의 공공극장이 생겼다. 현재 서울시 의회 건물로 사용하는 당시 경성부 ‘부민관(府民館)’ 시설을 기반으로 국립극장이 생기고, 국립극단이 창단되었다. 같은 해 국립국악원 조직의 직제가 만들어졌다. 국립국악원은 전쟁 중이었던 1951년 부산에서 개원하여, 이후 종로구 운니동 청사에 둥지를 튼다. 국가정책의 관점에서 근대적 산물인 극단을 포함한 국립극장과 조선시대 왕립음악기관의 전통을 이어가는 국립국악원으로 공공극장 정책의 두 축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국립극장은 현 명동예술극장 공간을 기반으로 1962년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오페라단을 창단한다.

1950년에서 대략 25년이 지난 1975년 시점에 첫 번째 큰 변화를 맞이한다. 시대의 아이러니처럼, 1972년 10월 유신 전, 1971년 대통령 취임사 최초로 "전통예술과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문예와 학술의 적극적인 창발로 문화한국 중흥에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다할 것"임을 밝혔다.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되고 1973년 문화예술진흥원이 생기면서 문화정책의 기틀이 구축되는 시점이었다. 이때 장충동 남산 터에 큰 규모의 국립극장(1973)을 건축하고 국립국악원도 그 공간에 함께 들어가게 된다. 이때, 국립발레단과 가무단2)(1973), 합창단(1974)이 추가로 만들어지면서 장르별 예술단체가 1차 완성된다. 이 시점의 국립극장은 현재 세종문화회관에 9개 예술단체가 있는 것처럼 다양한 장르의 예술단체가 속해 있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의 국립극장은 국악원과 극단, 창극단, 무용단, 오페라단, 발레단, 합창단 등이 함께하면서 지금의 비대해진 세종문화회관과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25년이 지난 2000년까지 국립극장은 시설공간과 예술단체, 예술작품에서 크게 3개의 덩어리로 분화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신 국립극장으로 볼 수 있는 서울 예술의전당이 만들어지고, 국립국악원 서초동 청사가 개관되었다. 이후 2000년까지 국립오페라단, 발레단, 합창단은 재단법인화 하여 예술의전당 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에 병행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근현대 극장 원각사를 잇는 정동극장이 국립극장 분관으로 설립(1995)되고, 같은 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마지막으로 창단된다. 국립정동극장은 2년 뒤 재단법인으로 독립한다. 그리고 2000년 이후, 크게 삼분할 된 범 국립극장 정책에서 국립극단이 국립극장에서 나와 2010년 재단법인화 되고, 명동예술극장과 통합하여 운영하면서 추가 분화가 이루어진다. 이후 2015년 기존 국립극장과는 다른 유형의 모델로 광주를 기반으로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이 개관한다. 범 국립극장 70년을 전체적으로 요약해보면, 처음에는 하나의 극장 시설공간을 기반으로 장르별 예술단체가 생성되었고, 이후 이것이 시설공간, 예술단체, 예술장르별로 분화되는 흐름을 보인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국립극장 정책은 국립남도국악원(2004), 국립부산국악원(2008),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사례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서울 중심으로 만들어진 경향성은 있었다. 우리나라 공공극장 100년을 내다보았을 때, "국가행정이 극장(theatre)을 만났을 때, 지금 우리는 어떤 극장 정책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국립국악원의 분원 사례처럼 국립중앙극장, 예술의전당, (재)국립극단(명동예술극장), 국립정동극장과 국립예술단체들의 과도한 서울 집중성을 극복할 수 있는 큰 틀에서의 정책설계와 방향성을 잡아볼 필요가 있다.

기초지자체 문예회관의 양상

상기 중앙정부 차원의 범 국립극장 정책 흐름과 병행하여 전국 문예회관 망사업이 1970년부터 전개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하는『2020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기준으로 현재 전국 광역·기초 문예회관은 총 256개가 있다.

문예회관 설립연도와 평균 운영기간
문예회관 설립 연도와 평균 운영기간

1970년 수원시민회관이 가장 먼저 생겼고, 서울 세종문화회관이 1978년 만들어졌다. 서울에 ‘문화회관’이 생기면서 1980년 중반부터 후반까지 전주, 진주, 부산 등을 중심으로 주로 ‘문화회관’이라는 이름으로 25개의 공공극장이 만들어졌다. 1990년 이후 이러한 흐름은 가속화하여 수원, 춘천, 대구, 울산 등 전국적으로 총 68개의 공공극장이 추가되었고, 1999년까지 약 100여개의 문예회관이 생겼다. 2000년 이후에 설립된 문예회관은 예술의전당과 LG아트센터 등에 영향을 받아, 전당 혹은 아트센터 이름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안산, 고양, 성남, 대전 등에서 1천억원 이상의 건립비가 소요된 공공극장을 포함하여 10년간 총 94개의 문예회관이 개관하였다. 2010년 이후 꾸준하게 64개의 문예회관이 추가되면서 현재 전국적으로 256개의 문예회관이 생겼다. 행정구역으로 전국 광역지자체 17개, 기초지자체가 226개 있는 상황에서 문예회관의 양적인 인프라는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조사 수행한 『2020 공연예술조사』에 따르면 문예회관 프로그램 가동률은 38.4% 수준이고, 운영주체는 자치단체 다시 말해 행정인 직영이 58.6%, 재단법인 30.1%, 지방시설관리공단 7.8% 등이다.

전국 문예회관 연도별 설립 수-운영기간
전국 문예회관 연도별 설립 수-운영기간3)

여기서 시설공간의 관점에서 추세적으로 주요한 문제점은 2000년 이전에 생겨난 100여개의 문예회관은 평균 28년 사용되었고, 최대 50년이 넘은 극장도 있다는 점이다. 노후화로 인한 리모델링 등이 필요한 기준을 25년 이상이라고 가정한다면 2021년 기준으로 79개가 되고, 앞으로 10년 내 2030년에는 166개가 해당된다. 이러한 흐름은 지방 도시의 구도심 문제 혹은 오래된 아파트 등의 주거시설 재건축 이슈와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문예회관의 경우 지자체 직영 혹은 지역문화재단, 시설관리공단을 통해 운영되고 있는데, 단기간 많은 예산이 필요한 노후 극장 재생과 리모델링 예산을 기초자치단체에서 전액 마련하기는 어렵다. 이 부분에서 중장기 계획과 실행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필요가 있다.

70년 역사를 가진 공공극장의 주요 문제

공공건축은 예술인가, 시설인가

승효상(2012)은 건축은 ‘공간의 조직’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공간의 조직이란 우리가 ‘사는 방법’을 의미한다. 집의 거실과 주방, 침실 등을 얼마만큼 크게 하고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사는 방법이 달라진다. 건축설계라는 것은 우리 삶을 조직하는 일이며, 건축은 그래서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극장 건축도 마찬가지다.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이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예술가와 관객 그리고 만들어질 작품에 맞게 무대와 무대시설, 객석, 연습실 등의 크기와 조건들이 달리 필요하다.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공공극장은 건설 붐과 함께 마치 3BAY 시범아파트를 찍어내듯이 시설로서의 양적 팽창을 해왔다. 도시행정의 결과는 건축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진다. 이 부분에서 ‘공공의 공간’으로 주요한 건축은 공공극장, 공공도서관, 공공미술관, 공공박물관이 있다. 이곳에 오면 삶의 여유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문예회관은 해당 시청, 구청, 군청 등에 인접해 위치하며, 건축적으로도 공공기관으로 톤을 맞추며 안팎으로 행정의 냄새를 내는 경우가 많다. 지역 문예회관의 경우 행정인 중심의 지자체 직영비율은 무려 58.6%에 이른다. 행정인 중심의 직영비율이 높다는 의미는 아파트를 지어놓고, 내 집처럼 사는 사람은 적은데 아파트 관리소만 있는 형국이다.

3BAY 시범아파트처럼 찍어내듯 만들어진 공공극장 건축의 배경에는 국가 발주의 공공건축이 ‘턴키(Turn-Key)’4) 방식으로 건축가와 시공자를 패키지로 묶어 시행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큰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자에게만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해 시공을 맡긴다. 턴 키 방식은 공무원의 공공건축에 대한 전문성 결여와 책임소재 관리 등 업무추진의 수월성 때문에 선택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을 맡기는 공무원과 시공자는 공공극장을 ‘시설’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이곳을 사용할 예술가들과 관객의 삶을 깊이 있게 조직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예술가인가?’라는 질문에서 문화예술진흥법에서 정의되는 ‘문화예술’에는 음악, 무용, 연극, 영화, 국악 등과 함께 ‘건축’도 포함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256번의 문예회관 설계를 경험했으면서도 공공극장 건축경험을 가진 동시대 예술가를 잘 떠올리지 못할까.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건축가 김석철 구미문화예술회관- 건축가 김수근 유작
건축가 김석철이 설계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출처: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건축가 김수근의 유작인 구미문화예술회관
출처: 영남일보 기사

물론 우리에게도 30대에 세계적 건축가와 경쟁을 이기고 ‘예술의전당’을 설계한 김석철,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의 붉은 벽돌 건축물과 ‘공간사옥’ 등을 빗어낸 김수근 등이 있었다. 하지만 젊고 유능한 예술인 건축가는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도 있을 것이고, 이들의 역할이 앞으로 공공극장 정책에 필요할 것이다. 공공극장이 꼭 랜드마크가 되어야 하거나 지역 행정의 힘을 과시하는 도구가 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극장에서 살아가는 예술인과 지역주민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객석의 숫자가 많은 큰 극장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공간이 커지면 채워야 할 것도 많아진다. 예술실험이 필요하다면 오히려 필요한 것이 잘 갖춰진 작은 극장이 좋은 경우가 많다. 앞으로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해온 결과물 위에 공공의 관점에서 기존 극장을 재생하거나, 사회적 가치의 중심 공간으로 시설을 넘어 장소성을 가진 건축적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때, 같은 예술인으로서 동시대 패기있는 젊은 건축가들에게도 기회를 주면서, ‘공공극장 재생’이 ‘예술’과 ‘지역사회’와 어떻게 만나게 할지에 대한 문화정책의 장기적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공극장 미션의 획일적 동형화(同形化)

우리나라 공공극장의 미션과 비전은 정부 중심의 문화예술 ‘진흥’과 문화예술 ‘향유기회’를 강조하는 관용어를 반복하며 닮아있다. 아래 중앙정부 차원의 예술의전당과 서울시 관리 감독을 받는 세종문화회관의 미션은 ‘국민’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이 바뀌어도 크게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공공극장도 함께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지, 이러한 미션의 획일적 동형화는 전국적으로 비슷하다.

주요 공공극장 미션 및 설립목적
주요 공공극장 미션 및 설립목적

미션은 설립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시설을 넘어 확장된 ‘극장(theater)의 미션은 어떤 예술가와 함께하고, 어떤 예술작품을 지향하고, 어떤 관객을 주로 만날 것인가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공공극장의 미션에는 어떤 사회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지가 빠져있다. 행정의 가치만 뭉뚱그려져 있는 비슷한 미션은 적당한 평균에 수렴하는 ‘김밥○○’과 같은 공공극장을 양산하게 한다. 해당 극장의 내부자에게 조직의 미션을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핵심적인 이유는 극장의 미션을 설정하는 주요 의사 결정 과정이 예술인과 기획인이 주도하며 참여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 「문화행정 의사결정 영향요인에 관한 실증연구: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 집단 비교분석」(장석류, 2020)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공극장은 행정이 의사결정의 끼치는 힘이 지나치게 과도하여, 예술인과 기획인 중심으로 극장의 미션을 설정하고, 경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우리나라 공공극장에는 예술인과 행정인 중 누가 더 많을까

아파트를 지어놓고, 관리사무소만 있다면 어떨까? 다소 비약적인 비유일 수 있지만, 적어도 아파트가 지어진 이유를 생각했을 때, 그 공간에서 사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극장(theater)’의 개념에는 예술단체와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극장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도 이곳은 예술가와 관객이 주인이 되는 공간이다. 지역 문예회관의 경우 예술인력과 무대기술인력이 제대로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국립오페라단의 경우는 해외 오페라단과 같은 소속 예술단원이 한 명도 없는 작품 프로젝트 기반 오페라단이다.

2018-2019년 시즌 파리 국립 오페라 인력(명)
2018-2019년 시즌 파리 국립 오페라 인력(명)5)

파리 국립 오페라는 파리에서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와 오페라 가르니에 등 두 개의 오페라 하우스를 운영하는 프로듀싱 시어터다. 역사와 환경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위의 표 ‘2018-2019 시즌 파리 국립 오페라 인력을 보면,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극장 인력의 규모와 비율의 당연함이 깨질 수 있는 데이터가 될 수 있다. 당장 파리 국립 오페라와 똑같은 제도를 갖추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공공극장이 제대로 된 극장의 역할을 하려면 예술인력과 무대기술인력이 어느 정도 규모로 필요한지 참고가 된다. 우리나라 공공극장은 지역 문예회관으로 갈수록 숙박 시설처럼 예술인이 손님이 되어 대관료를 지불하고, 잠깐 사용하고 나가는 시스템이 많다. 극장의 주인 역할은 카운터를 잡고 있는 행정인이 한다. 지역 공공극장 정책은 꼭 전속단체 모델이 아니어도 지역 예술인이 공간을 기반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 정책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양상의 주요 문제는 국공립 극장에 전속 혹은 상주하는 국립, 시립, 도립 예술단체가 시설의 노후화 문제와 비숫하게 단원들이 점차 고령화되고 있다. 예술단원과 공연작품을 분리하여, 작품을 만드는 노동자로 볼 수도 있지만, 예술단원의 역량 그 자체를 예술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술가(노동자)와 공연작품(생산 재화)은 잘 분리되지 않는다. 장르마다 차이는 있지만, 국립발레단 등에서도 이전에는 무대 위에서 기량 유지가 힘들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단원들이 명예퇴직 등을 하는 조직문화도 있었다. 하지만 순수예술 분야의 경우 당장 나가서 먹고 살기 쉽지 않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는 단원들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현 노동정책의 기준과 동일하게 정원을 유지하며 단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둘 경우 시설의 노후화 문제를 방치하는 것 이상의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현 제도에서는 전속단체 단원들의 특수성을 고려한 일자리 제도가 제대로 설계되어 있지 못하다. 무조건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그대로 둘 수도 없다. 이 문제는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문화부, 고용노동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정부 정책의 관점에서 풀어주지 않으면, 각각의 개별 공공극장과 예술단체의 내부 갈등은 더욱 격해지면서 향후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나가며 : 공공의 공간을 국가가 가꾸어야 하는 이유

주택 혹은 주택단지는 사유공간이다. 그 사유공간의 격차로 사회적 갈등과 개인 간의 삶의 질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 바뀔 것 같지 않은 사회적 흐름 위에서, 잘 만들어진 ‘공공의 공간’이 더 필요해지는 시대이다. 좋은 ‘공공의 공간’은 사유공간의 질적 차이를 좁혀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공공극장도 그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책이 대학을 만났을 때, 교수자와 학생,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와 수업을 제외하고 시설만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면서 대학정책을 수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공극장 정책도 국어사전이 정의한 시설을 넘어, ‘예술을 통해 이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가치’를 바라볼 때가 되었다. 처음에 물었던 “국가행정이 극장(theater)을 만났을 때, 지금 우리는 어떤 극장 정책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우리는 답이 될 수 있는 어떤 정책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논의를 통해 극장이 좋은 ‘공공의 공간’으로, 예술인의 일자리, 예술적 도전과 성취, 지역주민과 취향의 동반자들의 연대감, 사회적 스트레스와 혐오의 치유 등 다양한 욕구가 충족되는〈가치의 중심지〉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극장 100년을 내다보며 국가행정이 극장(theatre)을 만났을 때, 지금 우리가 준비할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1)이승엽(2020) 극장에 대하여. p17∼21을 참고하여 재구성.
2)1961년 10월 서울시가무단이 창단되었다가 1960년대 말에 해체, 1972년 국립가무단이 재창단됨. 이후 1977년 세종문회회관이 개관하며 국립가무단을 인수하여 서울시립가무단이 창단되었고, 1999년 7월 현재의 명칭인 서울시뮤지컬단이 되었음(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3)『2020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 기준 도준태(2020) 분석표, 수정 후 사용
4)턴키란, 시공자가 사업의 시작부터 건축설계와 시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비스를 조달, 완료하여 제공함으로써 발주자는 열쇠만 돌리면(turn-key) 바로 건축물의 사용이 가능해진다는 사업방식이다(양상현 순천향대 건축과 교수, 2013년 경향신문 칼럼)
5)이승엽(2020), 『극장에 대해여』, p188쪽 재인용

  • 장석류
  • 필자소개

    장석류는 학부 때 연극영상학부에서 연출을 전공했고, 조직과 연결망 중심의 사회학(M.A), 협력적 거버넌스 영역을 중심으로 공공문화 행정학(Ph.D) 분야에서 연구를 해왔다. 정동극장에서 13년 동안 다양한 포지션으로 근무했고, 최근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시드앤파트너스 이사, 서울문화재단 예술청 운영위원,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문화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문화정책 연구와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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