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극장, 즉 프로듀싱 시어터(producing theatre)는 자체적으로 공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극장을 의미한다. 공연을 준비하고, 만들고, 운영하는 일련의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을 내부에 갖추고 있는 극장이다. 반면 프리젠팅 시어터(presenting theatre)는 극장 운영을 위한 핵심적인 기능만 내부에 남겨 두고 공연 생산 기능보다 유통과 향유에 집중한다. 프로듀싱 시어터와 프리젠팅 시어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작품의 프로그래밍이다. 자체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시즌제 운영과 일관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것이 프로듀싱 시어터의 장점이라면, 프리젠팅 시어터는 이미 검증된 외부 프로덕션의 콘텐츠를 선택하기 때문에 유연하게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각각의 단점도 있다. 프로듀싱 시어터가 필요한 역량과 조건을 조직 내부에 갖고 있다는 의미는 인력과 공간, 예산 등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 규모가 큰 만큼 변화와 혁신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반면 조직 운영이 훨씬 유연한 프리젠팅 시어터는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난 공공극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국 문예회관들이 전형적인 프리젠팅 시어터라고 할 수 있다. 상당한 운영비를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낮추면서 극장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프리젠팅 시어터를 표방한 첫 극장은 예술의전당이다. 이후 민간 부문에서는 2000년 개관한 LG아트센터가 대부분의 기획공연을 해외 화제작 중심으로 프로그래밍하면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표1. 프로듀싱 씨어터와 프리젠팅 씨어터
프로듀싱 시어터와 프리젠팅 시어터의 구분1)

우리나라 프로듀싱 시어터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극장 안에 전속단체를 두고 프로그래밍을 하는 극장인데, 국립극장이 대표적이다. 국립극장은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창극단 등 3개의 전속단체가 국립극장 시즌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국립국악원에는 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 창작악단 4개의 전속단체가 소속되어 있는데 국악이라는 장르에 특성화된 응집력 있는 프로듀싱 시어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프로듀싱 시어터의 유형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과거에는 프로듀싱 시어터의 조건을 극장 내 전속단체의 유무로 구분했지만 명동예술극장을 비롯한 두산아트센터, 우란문화재단 등은 전속단체 없이 운영되는 제작극장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서구의 전통적인 제작극장과 달리 우리 현실에 맞는 제작극장의 특성에 대해 허순자(2010)는 그의 논문「제작극장의 운영과 과제에 대한 사례연구」에서 그 특성 요인을 12가지로 짚었는데, ① 대관에서 제작으로 전환과 레퍼토리, 시즌제 운영, ② 시대에 앞선 작품과 국민 문화향수권 신장, ③ 도전적이고 예술적인 목표의 설정과 프로그램의 다양성 추구, ④ 창작예술인력 발굴, ⑤ 레퍼토리 선정위원회와 작품평가 위원회 등 예술감독 리더십의 공유와 분산, ⑥ 예술가 중심과 연간 제작편수의 확대, ⑦ 2개 이상의 전용극장 확보와 공간 규모의 경제성 증진, ⑧ 제작 핵심 공간확보를 통한 작품의 완성도 제고, ⑨ 기획과 제작 중심의 조직 구축, ⑩ 제작 예산 확보와 펀드레이징, ⑪ 목표 지향적(mission driven) 마케팅, ⑫ 신규관객 확보전략 마련 등으로 정리했다.
이번 글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해서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맞고 있는 공공 제작극장을 비롯해 민간 비영리 제작극장 사례 등을 비교하며 우리식의 제작극장 유형들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방향성과 함께 고민해볼 만한 과제를 제안하려 한다.

공공 제작극장

① 국립극장


국립극장 내외부 전경
국립극장 내외부 전경
출처: 국립극장 홈페이지

국립극장은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3개의 전속예술단체가 있는 대표적인 프로듀싱 시어터면서 ‘우리 전통공연예술에 기반한 동시대성을 담는 국내 유일의 제작극장’이라는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2012년 9월 시작된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은 국립극장이 본격적인 제작극장으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한 시발점으로, 현재 열 번째 레퍼토리 시즌제를 진행 중이다. 3개 전속단체의 신작 개발과 재공연 방식으로 ‘레퍼토리화’를 전제로 한 ‘국립 레퍼토리 시즌’은 유럽의 극장들처럼 9월에 시작해서 차년도 6월까지 이어진다. 13/14시즌에는 국립극장 전속단체가 아닌 외부 국립예술단체까지 포용하였는데, 시즌제의 이름도 ‘국립극장’이 아닌 ‘국립’ 레퍼토리 시즌이라 하여 ‘국립 예술단체’가 모두 참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2) 또한 전통예술에 기반한 동시대성을 담는 공연예술을 제작하고 있는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은 전통공연에 대한 선입견과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숙제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연극, 뮤지컬, 오페라, 연출가, 패션디자이너, 현대무용 안무가, 현대음악 작곡가는 물론 해외 안무가, 연출가까지 장르와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한 예술가와 작업을 선보이고 있으며, 작품의 무게 중심을 ‘동시대’에 두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마당놀이, 여우락페스티벌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으로 대중을 전통공연예술로 흡수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② 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 내외부 전경
명동예술극장 내외부 전경
출처: 국립극단 홈페이지

2009년 개관한 명동예술극장은 ‘명품화·대중화·세계화를 미션으로 삼는 제작극장’을 극장 운영의 방향성으로 잡았다. 이후 2015년 국립극단과 통합되면서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과 함께 국립극단이 운영주체가 되었다. 두 단체의 통합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국립극단 단원제 개편에 따르는 것이었다. 모든 공공 제작극장이 시즌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전속단체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체의 유무는 프로듀싱 시어터와 프리젠팅 시어터를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국립극단은 2010년 재단법인 출범과 함께 1962년부터 시작된 종신 단원제를 폐지하고 시즌단원제 개편을 발표했다. 단원들을 오디션을 통해 모집하고 일정기간 운영한다는 계획이었다. 올해 7월부터는 기존의 2년 단위로 배우를 모집하고 운영하던 것을 개편하여 활동기간을 1년으로 변경한다는 방침을 새롭게 발표하기도 했다. 재단법인으로 출범한 국립극단에 대한 현장의 기대는 단체의 활성화와 함께 제작편수의 증가였다. 이제 재단법인 출범 10년이 넘은 국립극단과 처음부터 제작극장을 표방했던 명동예술극장의 통합 이후, 그 기대에 부응하듯 명동예술극장은 가장 많은 작품 수를 제작하는 극장이다. 대관 없이 90% 이상 자체 제작을 진행하고 일부 민간·지역 연극단체와 협업을 확장하며 기획초청, 공동제작 방식으로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③ 남산예술센터


남산예술센터 내외부 전경
남산예술센터 내외부 전경
출처: 남산예술센터 디지털 아카이브

2009년에 개관하여 2020년 12월 31일까지 운영된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는 서울문화재단 산하 창작공간 중 유일한 정식 공연장이자 한국창작연극 제작의 산실로써 그 역할을 했다. 개관 초기부터 ‘컨템포러리’와 ‘뉴웨이브’ 그리고 ‘창작극’을 미션으로 내건 남산예술센터 역시 전속단체 없는 프로듀싱 시어터로, 예술가 중심의 공동제작 방식을 택한 점이 돋보였다. 특히 새로운 희곡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면서 신작과 젊은 작가를 발굴한 것은 동시대 문화적 다양성을 제시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새로운 공연 형식을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젊은 예술가들이 도전하는 장을 만들었던 남산예술센터는 11년간 119개의 현장 극단들과 200여 편의 작품을 제작하는 성과를 낳았다. 협력극단들은 남산의 창작환경 속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고, 보다 전문적인 극장의 홍보·마케팅 시스템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고, 해당 결과물을 아카이빙할 수 있었다. 서울문화재단은 남산예술센터 폐관 이후 옛 동숭아트센터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2022년 지하 공간에 새로운 극장을 운영할 계획을 밝히고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다.

민간 비영리 제작극장

①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좌) 및 Space111(우) 전경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좌) 및 Space111(우) 전경
출처: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대표 민간 문화재단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두산아트센터의 경우 프로듀싱 시어터와 프리젠팅 시어터가 혼합된 운영방식을 보이는 극장이다. 특히 2007년 개관 이후부터 ‘아트 인큐베이팅’이라는 전략을 지속하고 있는 두산아트센터의 제작 프로그램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민간 비영리 제작극장은 공공 제작극장처럼 공연예술 시장 발전을 위한 공공적 책임과 함께 기존 제작극장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위해 ‘아트 인큐베이팅’을 시도해 왔다. 두산아트센터는 이를 통해 신진예술가 지원 및 작품 개발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면서 기타 제작극장의 ‘아트 인큐베이팅’ 도입을 이끌었다. 단계적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이자,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실을 모티브로 진행하는〈두산아트랩〉과 3년 단위 중기 지원을 하는〈DAC 아티스트〉사업의 경우 내부 프로듀서의 재량권과 역량이 매우 큰 프로듀싱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테마가 있는 인문극장〈기획연극 시리즈〉, 지원금 1천만 원과 무료대관 형태로 진행하는 기획대관 사업〈블랙박스 공공〉, 교육사업인〈두산 아트스쿨〉등은 프리젠팅 시어터의 기획과 대관 형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② 우란문화재단


우란문화재단 외부(좌) 및 우란2경(우) 전경
우란문화재단 외부(좌) 및 우란2경(우) 전경
출처: 우란문화재단 홈페이지

성수동에 위치한 SK그룹 계열의 우란문화재단은 전속단체 없이, 소규모의 조직으로 운영하는 프로듀싱 시어터의 새로운 사례로 볼 수 있다. 주요 사업은 공연예술개발과 레지던시 연구 등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을 세분화해서 진행하는〈우란 이상〉과 기획·제작 중심의〈우란 시선〉으로 두 가지 큰 줄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우란 이상〉의 아티스트 섭외는 사전에 경력이나 지원 이유 등을 묻는 서류를 요청하지 않고 추천과 인터뷰, 미팅을 통한 방법으로 진행되어 기존 다른 문화재단의 프로듀싱 및 지원사업과 다르다.

한국식 제작극장의 과제

위에서 살펴본 대로 공연시장의 성장 속에 나타나기 시작한 한국식 제작극장은 해외의 제작극장과는 다른 형식으로 발전하며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특징이 있다. 처음 모델로 삼은 해외극장들은 제작극장의 기본인 시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인력과 구조를 갖추고, 최소한 2개 또는 그 이상의 크기와 형태가 다른 공간들을 갖추었다. 여기에 다양성 및 유연성을 허용하는 프리젠팅 시어터의 장점을 보완하여 제작극장의 생산적 가치를 높이는 조건까지 마련한 해외 사례와 달리 한국의 제작극장은 각기 다른 상황에 맞는 조직과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모색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듀싱 시어터인 국립극장은 여러 차례 전속단체 중심의 제작극장으로 변화를 도모하면서 유의미한 성과를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정작 많은 관객들에게 국립극장의 대표 레퍼토리를 인지시켰는가 하는 점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유민영은 2017년에 발간한 그의 저서, 『예술경영으로 본 극장사론』에서 국립극장이 제작극장으로 자리 잡는 데 실패한 이유로 열악한 재정과 창작 시스템의 부재, 그리고 기획 역량의 한계를 들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작 시스템 확보, 시대를 내다보는 작품의 방향성, 극장 예술가의 제작 몰입도, 극장의 기획력 등 제작극장 운영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이고 핵심적 요소에 대한 분석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안호상은 말한다.3)
폐관한 남산예술센터도 한국 창작연극을 발굴하는 새로운 시도로 유의미한 성과를 보였지만 200여 편이 넘는 작품 중 관객의 기억에 남는 대표 레퍼토리로 꼽을만한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다. 국공립극장 제작극장 중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미션에 맞는 레퍼토리를 선보인 명동예술극장은 서양 고전과 성공한 동시대 번역극을 주로 소개하면서 중장년관객을 극장으로 이끌었지만, 역시나 예술적 성취와 대중의 호응을 함께 얻은 작품이 있었는가 하는 점에서는 유보적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식 제작극장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끄는 민간 비영리 제작극장의 슬림화된 조직과 유연성, 새로운 제작 형식과 접근을 통한 시즌 프로그램 개발은 공공 제작극장에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프로듀싱 시어터든, 프리젠팅 시어터든 극장의 정체성은 작품으로 표현된다. 극장의 목표와 미션을 분명히 반영한 레퍼토리의 탄생은 다양한 제작극장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며, 관객이 극장을 찾는 이유이다. 훗날 극장이 없어져도 관객의 사랑을 받는 작품은 살아남을 수 있다.

1)이승엽(2020), 『극장에 대하여』 ,마인드빌딩, 187쪽.
2)국립극장, 국립레퍼토리시즌 2012-2013 시즌북, 국립레퍼토리시즌 2013-2014 시즌북
3)공공극장의 제작극장 복귀에 나타나는 가치혁신 차별화 양상에 관한 연구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사례를 중심으로- 안호상,〈우리춤과 과학기술 제 40호〉, 2021

※ 본 기사 내용 중 명동예술극장 운영 관련 내용은 국립극단의 확인을 통해 수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2021.10.21.)

  • 최여정
  • 필자소개

    최여정은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경기도문화의전당 공채 1기로 입사하여 공연장으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매일 밤 수많은 무대를 지켜보며 연극과 사랑에 빠졌다. 문화계를 달군 대학로의 ‘연극열전’에서 ‘연극’과 ‘흥행’을 놓고 고민하기도 했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에서는 한국 창작 연극을 알리는 일을 하며 공연에도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경영대학원에서 브랜드 MBA 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한-불 상호교류의 해’ 사무국을 거쳐 현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문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적인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2018), 『이럴 때, 연극』(2019), 『공연홍보마케팅 매뉴얼 A to Z』(2019)가 있다. 현재 출판도시문화재단 유튜브 채널〈문발살롱〉의 진행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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