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지원심의의 구조와 의미

문화예술 지원의 논거는 유명한 시장실패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지만, 필자는 긍정적 외부효과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실패 이론에도 문화예술의 가치에 대한 소극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지만, 긍정적 (正의) 외부효과는 문화예술이 국가사회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실패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장실패가 일어나지 않는 문화예술은 지원에서 제외하여야 하느냐의 문제가 발생하지만, 외부효과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화예술의 가치와 효과의 측면에서 지원 대상을 모든 예술로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를 보면 2019년 기준 일반대학의 졸업자 중 예체능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10.9%에 달할 정도로 문화예술의 비중이 크다. 이들 모두가 예술인으로 직업 경로를 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매년 수많은 예술인과 예비 예술인이 배출되는데, 예술시장은 이를 자생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지원 수요는 많은데, 공공지원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민간지원은 활성화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공공지원과 이를 선별하는 지원심의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다양한 영역에서 정부가 공공지원을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의 공공지원은 다른 분야보다도 복잡한 구조와 쟁점을 가지고 있다. 정부 부처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보조금 규모는 5번째로 많지만, 보조사업 건수는 가장 많다. 2019년 기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 분야 내역사업수는 251개, 보조사업수는 15,107개, 보조사업 수행자 수는 10,128개에 달한다.1) 문화예술 지원사업은 매우 복잡한 전달체계를 가지고 있다. 필자는 이를 총괄적으로 4개의 유형과 5개의 경로로 정리하였다.2) 그러나 이것은 국고와 정부의 기금만을 대상으로 분석한 것이고,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문화재단 등 지역의 지원사업을 포함하면 더욱 복잡해진다.

지원을 하는 기관과 지원프로그램 유형이 매우 많고, 평균적으로 지원금액이 적으며, 지원심의 및 집행기준이 다양하다. 필자가 위의 연구과정에서 접한 가장 공통적인 현장 의견은 심의와 평가의 기준이 너무 다양하여 지원사업 수행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동일 단체에서 각각 다른 지원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경우 특히 예술단체의 행정 여건을 고려하면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 지원심의의 주요 요인

지원심의의 주요 요인과 변화는 다음과 같이 5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공공지원을 하는 기관과 지원프로그램이다. 기관별로 고유의 미션이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지원프로그램을 구성한다. 필자가 연구(2017)에서 분석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문화체육관광부 산하단체는 15개였으며, 지역에는 지자체, 광역문화재단(17개), 기초문화재단(110개)이 있다. 전체 지원프로그램수는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많고, 이에 상응한 지원목표, 지원심의 기준, 지원프로세스가 존재한다. 다수의 지원기관과 지원프로그램은 다양한 문화예술의 특성과 수요에 맞는 지원프로그램과 지원심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수요자인 예술인 관점에서는 지원프로그램 간 중복성과 함께 정보의 비대칭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수요자의 편의를 위하여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모든 지원기관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으며, 서울문화예술지원시스템처럼 지자체 등의 연계와 통합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둘째, 공공지원의 전달 체계이다. 지원기관이 다양하고, 지원프로그램 수가 많다 보니 전달 체계도 복잡하다. 이 과정에서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고 과도한 통제가 이루어지거나, 반대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전달 체계의 과정에서 간접비용으로 소요되는 거래비용이 많아 실제 문화예술인(단체)에 전달되는 재정의 축소를 가져온다.

셋째, 지원의 목표와 효과이다. 전체 지원프로그램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년 단위의 프로젝트 지원이다.3) 문화예술 지원의 가장 큰 목표 중의 하나는 지원을 통한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이다. 문화예술 생태계의 구조를 반영하여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단기 사업은 목표에 한계가 있고 그 효과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특히 1년 단위의 프로젝트 지원은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의 목표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4) 또한 대부분의 지원 프로그램이 단독 신청과 단독 지원의 구조이므로,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을 위한 협력과 연계가 어렵고, 경쟁과 차별화의 부작용이 발생한다.

넷째, 지원프로그램의 결정과 지원심의의 과정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합의제 기구로서 지원프로그램의 결정과정에 많은 예술인과 위원들이 참여하지만, 여전히 지원프로그램 및 심의위원 구성의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개방성의 확대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5) 합의제 기구가 아닌 다른 지원기관은 더욱 문제가 된다. 코로나19 위기 대응과 같은 긴급 지원프로그램 이외에 새로운 지원프로그램의 결정은 충분한 검토와 수요자인 문화예술인(단체)의 이해와 준비 등 수용성을 제고하기 위한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년도 말에 갑자기 지원프로그램이 결정되면 정보를 알거나 준비가 가능한 소수에게 지원이 집중되거나, 심지어 지원 규모에 비해 신청이 미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수시 지원사업 보다는 대부분이 정기공모를 통하여 지원이 이루어지는데, 짧은 기간에 지원심의를 하는 것은 효율성과 투명성은 우수하지만, 공정성과 타당성은 담보하기가 어렵다. 짧은 기간에 지원심의를 하다보면, 사업계획서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거나, 인터뷰 심의가 충실하지 못할 수 있다.6)

다섯째, 지원심의 기준이다. 지원기관과 지원프로그램에 따라 지원심의의 기준과 가중치가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기준은 ① 단체의 역량(활동실적), ② 지원프로그램의 우수성(기대효과), ③ 사업계획서의 충실성(예산 포함) 등이며,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④ 사업 정체성, ⑤ 협력/운영체계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지원심의 기준은 지원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불명확성을 제기한다. 대부분의 지원심의는 평가지표 등급별로 기준 점수를 부여하지만, 이를 준수할 의무는 거의 없으므로 정성평가 심의기준에서 지원심의 점수를 부여하는 기준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며, 이 과정에서 지원심의의 공정성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단체의 역량(활동실적)은 매년 축적이 되므로 동일한 단체는 심의 점수가 유사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사업계획서의 충실성은 예술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으로 예술인에게 창작자이자 기획자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지원프로그램의 우수성(기대효과)은 중요하지만, 정부의 요구에 따라 불필요하고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추가되기도 하고(일자리 창출 등),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예술지원의 기본원칙을 스스로 위반하는 모순을 가져온다.

문화예술 지원심의의 변화와 개선방향

지원수요에 비해 재원이 훨씬 부족한 문화예술 지원심의는 지속적인 개선을 하여 왔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정한 자격심사를 거쳐 무작위 제비뽑기로 선정을 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공정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대학 입시를 이러한 방식으로 변경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7) 그러나 예술을 지원할 가치가 있지만 모든 예술이 지원을 받아야 하는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제비뽑기식의 지원결정은 지원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아 재원 확대가 더 필요한 문화예술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지원심의의 공정성이 100% 담보되지 않는다고 운에 맡기는 방식이 반드시 공정하다고 할 수도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합의제로 전환한 이후, 전문심의위원 제도, 사후지원, 전년도 지원사업 평가결과의 반영, 1차 서류심사후8) 2차 인터뷰 심의, 지원심의 및 결정 시기의 앞당김, 지원심의 과정에 대한 투명성과 옴부즈만 제도(심의에 대한 평가), 분야별 지원심의 결정에 대한 최종 결정 과정 등의 다양한 제도가 강화되거나 새롭게 도입되었다. 그러나 전문심의위원 제도 및 사후지원은 현재 거의 모든 지원사업 심의에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제도의 시행을 위해서는 지원심의의 전반적인 신뢰도, 지원사업 구조와 문화예술계의 수용성 및 여건이 동시에 변화하여야 하는데, 지원심의 방식만 개선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지원심의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더 많은 서류를 요구하는 것은 기획에 대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문화예술인들에게 우수한 기획자이면서 동시에 우수한 창작자임을 요구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트디렉터와 파이낸셜 디렉터(financial director)가 별도로 존재하는 외국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서울문화재단 등의 기관은 연초부터 지원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심의를 앞당기기도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지원심의는 예산 확정 후에 이루어지다 보니 지원사업 수행 기간이 1년이 아니라 수개월로 단축되거나 지역에서는 지원사업이 특정 시기에 쏠리게 되어 경쟁 아닌 경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짧은 글에서 지원심의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기는 어렵다. 앞에서 정리한 지원심의의 문제 요인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전반적인 개선방안은 이미 방향이 제시되어 있다. 즉, 수요자의 관점에서 지원기관과 지원프로그램의 연계 및 단순화, 지원신청 및 프로세스의 통합 연계,9) 지원 전달 체계의 개편, 경쟁이 아닌 협력을 위한 연계협력형 사업의 확대, 문화예술 창작(준비 포함)-유통-소비의 구조를 고려해 단년간 지원에서 다년간 지원 중심으로 전환, 수시 지원사업 외의 정기 지원사업은 최소한 사업연도 4∼6개월 이전에 지원심의, 지원신청서의 단순화·모델화, 지원심의위원의 뱅크 및 사전교육제도 강화, 문화예술계의 여건과 연계한 전문심의위원 및 사후평가제도의 단계적 확대, 정성적 지원심의기준의 계량화 및 세부평가 기준의 확대, 모든 지원심의결과에 대한 통보10), 지원 성과계약의 확대 등이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으로 개선을 하더라도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예술지원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담보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민간지원이 활성화된 미국과는 달리 공공지원 중심이므로 미국식의 프로젝트 지원 모델 보다는 영국식의 단체/개인 지원 모델이 더 적합하다. 그것이 예술지원의 원칙을 구조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제도일 수 있다. 지원에 대한 평가에서도 컨설팅을 명분으로 단체나 사업운영 자체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에서는 성과계약 및 재정 운영의 투명성·책임성 이외에 각 지원사업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원사업 평가는 지원기관의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는 지원이 당연한 권리는 아니므로 반대급부로 공공성을 가져야 하며, 특히 재정에 대한 투명성·책임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여야 한다. 창의성이 가장 큰 특성인 문화예술은 아직도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단계이므로 공공성은 문화예술계의 공동운명체에 대한 최소한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1)장훈, 『지역문화 보조사업 전달체계 개선 연구』, 문화체육관광부, 2020.
2)정광렬,『지역문화사업 지원체계 현황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 문화체육관광부, 2017.
3)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중장기 창작지원, 공연장 상주단체 지원(2022 지역이관) 이외에 2022년도부터 문예지발간지원, 문학집필공간 운영지원. 시각예술창작산실 공간 지원 등이 다년간으로 지원된다.
4)다년간 지원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공연장 상주단체 지원, 지역사회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지원(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지역영화 네트워크 허브 지원(영화진흥위원회) 등 소수에 그친다.
5)한국문화예술위원회,「2020 ARKO 현장 대토론회 사후자료집」 , 2020.
6)일부 인터뷰 심의에서 하루동안 약 100개의 단체를 인터뷰 심의하는 경우도 있다.
7)마이클 샌델,『공정하다는 착각』(황규진 역). 와이즈 베리, 2020.
8)지원사업 유형에 따라 사전에 자격심사를 하는 절차도 있지만, 이것도 서류심사의 과정에 포함된다.
9)ACE의 정기지원사업은 다년간 사업으로 각 지역예술위원회와는 상관없이 지원신청서류를 한 곳에 접수하고, 사업유형도 단순하다.
10)단계적으로 지원 탈락에 대한 사유 통보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 정광렬
  • 필자소개

    정광렬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 원장직무대행, 경희대·한양대 등의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문화행정과 성과관리를 전공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설립준비단 위원, 문예진흥기금사업 평가 설계 및 평가책임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기타 문화관련 국공립기관의 평가제도 설계와 평가·컨설팅, 문화분야 정부의 법정 중장기계획, 지역의 문화발전계획 연구와 수립, 법·제도·조직, 문화복지·생활문화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국고보조금 관리위원, 지자체 합동평가위원, 문화체육관광부 및 문화재청 자체평가위원, 국립극장 책임운영기관 평가위원장 등 다수의 정부의 법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거나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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