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예술의 힘〉이 촉발한 예술산업 정책

우리나라에서 중앙정부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예술산업’ 또는 ‘예술의 산업화’가 처음 논의된 것은 참여정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문민정부 시기 ‘문화의 산업화, 산업의 문화화’라는 명제 아래 ‘문화산업’ 지원 정책이 시작되었고, 국민의정부 시기 ‘팔길이 원칙’과 ‘문화의 국가기간산업화’라는 테제를 중심으로 콘텐츠산업 정책이 본 궤도에 올라섰지만, 이 두 정부는 예술의 산업화 또는 예술산업을 위한 정책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뒤를 이었던 참여정부는 2004년 『창의 한국』과 함께 『예술의 힘』이라는 정책 보고서를 발간한 바, 이 보고서는 예술 정책의 4대 기본 방향 중 하나로 ‘예술의 자생력 신장’을 설정하고, 이를 위한 14대 추진과제 중 하나로 ‘예술의 산업적 발전 지원’이라는 과제를 도출하게 된다.
『예술의 힘』이 제시한 ‘예술의 산업적 발전 지원’은 예술에 대한 일방적 지원에서 예술산업으로의 개념 확대를 꾀하자는 것, 이를 통해 예술계의 구조적 개선을 이루고 순수예술의 가치를 다양화하자는 것을 주요 방향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예술의 산업적 기반 구축’과 ‘예술 분야별 산업적 발전 지원’으로 예술시장의 기능을 강화하여 예술의 자생력을 확보한다는 비전이 설정되었고, ① 유통구조 개선 및 산업화 추진, ② 예술 관련 산업 정보교류 활성화를 위한 온․오프라인 기능 확대, ③ 문화산업진흥기금 활용, 예술 관련 산업 투·융자 재원 마련, ④ 전문성 확보를 위한 예술 관련 산업인력양성 및 전수 실태조사 실시, ⑤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국제교류 강화 등이 5대 추진 방향으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정책 지향의 직접적인 결과물이 2006년 1월 설립된 예술경영지원센터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정관은 여전히 『예술의 힘』이 설정했던 정책 목표와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16년, ‘예술산업 TF’가 이끈 예술창업 지원 정책 도입

‘예술산업 2.0’이라고 부를 만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 것은 예술경영지원센터 설립 이후 약 10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의 산업화’ 지원 정책은 전체주의적인 관점에서 예술의 상업화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며,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문화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등 예술의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는 가운데 “시장성 있는 일부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보조금보다는 투자적 지원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관점으로 2016년 예술산업 TF를 운영하였다. 문체부 예술정책과의 주도로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간사 역할을 맡았으며,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여러 전문가들이 TF 구성원이자 외부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예술산업 TF에서는 예술계 내부에서 제도론과 다원론의 등장으로 규범적인 예술이론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점, 새롭게 등장하던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외부 요인들로 인해 예술 창작과 유통의 패러다임이 근미래에 크게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문체부의 새로운 콘텐츠 진흥 정책으로 등장한 콘텐츠코리아랩(CKL) 등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예술 진흥 정책에도 필요하다는 점 등이 다각적으로 논의되었다. 그중에서도 예술계 내외의 환경변화를 바탕으로, 예술과 관련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예술의 산업화’ 정책 또는 ‘예술산업’ 정책을 더욱 공세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필자는 현재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박영정 박사와 함께 아래와 같은 ‘예술산업’ 지원을 위한 포지셔닝 방안을 TF 내에서 제시했다. 순수예술 지원 정책이라는 1층과 문화산업, 콘텐츠산업 지원 정책이라는 3층을 인정하면서, 양쪽 모두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2층을 예술산업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독자적인 성장은 물론 1층과 3층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으로 키워야 한다는 관점이었다. 1층과 2층 간에는 ‘예술가가 핵심자원이 되는 활동’이라는 공통점이, 2층과 3층 간에는 ‘수익 창출을 위한 산업 활동’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예술산업 육성 정책이 여럿 시도되었고, 예술 분야 창업지원 사업도 다양하게 출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블랙리스트 사태나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예술의 산업화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면서 당시 예술산업 TF의 구상이 충분히 공격적이고, 충분히 혁신적인 내용으로 실현되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산업화’ 지원 정책을 위한 예술산업 포지셔닝

정책 대상 주요 장르 정책 지원 핵심 진흥기관
3층 문화콘텐츠산업 텔레비전, 영화, 대중음악, 연예, 게임, 캐릭터 등 예술산업과의 컬래버레이션 및 융합 촉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영화진흥위원회
2층 예술산업
(영리 섹터)
뮤지컬, 옥션, 디자인, 공예, 장르문학 등 사업자금 투자, BM 개발 지원, 전․후방 연관산업 동반성장 지원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1층 기초예술
(비영리 섹터)
클래식 음악, 미술, 순문학 등 창작 지원, 판로 확대 지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 출처: 정종은(2016).

2022년, 아트컬처랩의 설립이 ‘예술산업 3.0’ 시대를 이끌 것인가?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하지만 단계적으로 싹을 틔우고 자리를 잡게 된 예술산업 정책의 새로운 도약이 올해, 즉 2022년에 일어날 수 있다고 필자가 기대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예술산업’ 지원 전담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체질 개선이 눈에 띈다. 그간 여러 가지 어려움의 원인이었던 인건비 관련 구조가 훨씬 더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개선되고, 전문인력 확충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었다. 그중에서도 2022년 기관 예산이 623억 4,100만 원으로 2021년 예산에 비해 123%가량 증액되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한 기운들이 조직 안팎에서 느껴진다. 둘째, 예술 현장의 경영전문가들과 연구 및 교육 현장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좌담회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예술창업과 예술기업에 대한 인식 공감이 최근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예술지원 사업과 창업지원 사업의 접점에서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창업의 매력’이 사회 전반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하이테크와 로우테크를 아우르는 예술인들을 위한 ‘기술개발 패키지’ 등의 필요성도 널리 공감대를 얻고 있는 상황이다. 셋째, 예술계 구성원들의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바, 예술산업 및 관련 정책에 관한 인식과 기대, 참여 의지와 수요 등이 지난 몇 년 사이에 크게 향상되었다.
2004년과 2016년의 변곡점이 원하는 결실을 낳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던 것과 비교할 때, 그간에 이루어진 기술 및 산업 환경의 변화, 대창업 시대의 개화, 새로운 세대의 등장 등이 맞물리면서 이제는 훨씬 더 당당하고 매력적으로 예술의 산업화를 추진할 여건이 무르익었다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요청했던 ‘예술산업 지원을 위한 종합적인 컨트롤 타워’로서 아트컬처랩의 출범에 필자가 특별한 주목을 하고, 기대를 거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웹진⟪예술경영⟫ 479호 기획특집에 주목하는 방법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이번 기획특집에 등장하는 꼭지들은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독자들은 각각의 원고를 읽을 때, 앞서 설명한 예술산업 1.0과 2.0 시대를 준거점으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올해부터 본격화될 예술산업 3.0 시대가 이전과는 진정 다른 흐름과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인지를 예측하면서 내용들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양혜원 연구위원의 글은 문화 영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분류체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도출한 범위와 정의의 규정을 모색하는 내용으로, 향후 법적 체계나 통계 산출을 위해 중요한 통찰들을 제공하고 있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현장 분야 좌담회’와 ‘정책 분야 좌담회’는 예술산업 실천과 담론의 최전선에 있는 분들의 생생한 경험과 관점을 풍성하게 확인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2022 예술산업 정책 수요조사』는 웹진⟪예술경영⟫ 구독자 중 213명을 대상으로 3월 10일부터 20일까지 온라인으로 조사되었는바, 예술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위한 소중한 의견이 가득히 담겨있다. 예술산업 3.0 시대, 도전과 혁신이라는 예술의 본유적 정신과 함께 부디 전국 구석구석에서 흥왕하기를!

  • 정종은
  • 필자소개

    정종은은 학부에서 미학과 종교학을, 석사과정에서 사회미학과 미디어경영학을, 박사과정에서는 문화산업 정책을 전공했다. ㈜메타기획컨설팅의 부소장을 역임했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대중화운영위원, 장애인정책 조정위원, 문화도시 컨설턴트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자체평가위원, 정부미술품 운영위원, 문화영향평가 전문위원, 한국예술경영학회 연구기획위원장, 원주 유네스코 창의도시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