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뮤지컬 시장 규모가 최초로 4,000억 원대에 들어섰다. 다른 예술 장르가 팬데믹의 후유증에서 서서히 회복한 반면, 뮤지컬은 팬데믹 이전 시장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2023년 뮤지컬 시장도 작년의 성취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전반기를 채 끝내지 않은 6월 16일 기준 2023년 뮤지컬 시장 규모는 2,120억 원(KOPIS 통계)을 달성했다. 공연 성수기인 연말 시즌을 포함한 하반기 공연시장은 보통 전반기 시장보다 1.4배 이상 크다고 볼 때, 2023년 뮤지컬 시장은 5,000억 원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세계 공연 관객이 모여드는 미국과 영국 시장, 1억 2천 명 인구의 일본 시장 다음으로 세계 4대 시장에 포함된다. 5천만 명 인구로 이뤄낸 성취로서는 놀라운 결과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지금 수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한국 뮤지컬 시장은 뮤지컬의 본산지인 브로드웨이에서도 주목하는 시장이다.

한국 뮤지컬 산업의 시작, <오페라의 유령>

한국 뮤지컬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하는 작품이 2001-2002년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이다. 1990년대부터 한국 뮤지컬은 놀랍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에이콤, 신시뮤지컬컴퍼니(현 신시컴퍼니), 서울뮤지컬컴퍼니 등 뮤지컬 전문단체가 등장하고, 대기업 계열인 삼성영상사업단이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어 뮤지컬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오페라의 유령> 이전인 2000년 한국 뮤지컬 시장 규모는 대략 140억 원 정도로 추정한다. 대형 뮤지컬이 2주 이상 공연하기 힘들었고 대형 뮤지컬 제작비가 5~8억 원 정도 하던 시기였다. <오페라의 유령>은 1천 석이 넘는 대극장에서 7개월간 공연하여 제작비 120억 원, 매출액 192억 원을 올리는 믿지 못할 성과를 이루어낸다. <오페라의 유령> 한 작품의 매출이 당시 일 년 전체의 뮤지컬 시장보다 높았던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 이후 한국 뮤지컬 시장은 완전히 다른 시장으로 변한다. 뮤지컬 관련 투자가 활발해지고 전용 펀드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뮤지컬만 장기 공연할 수 있는 전용 극장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투자자들이 뮤지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예전에는 도전하기 힘들었던 대형 뮤지컬들이 2000년대에 시도되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히트하고 있던 대형 작품들이 한국 시장으로 빠르게 들어왔다. 최고의 흥행 주크박스 뮤지컬인 <맘마미아!>와 디즈니 뮤지컬 <미녀와 야수>가 2004년 국내 시장에 소개된다. 2005년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 공연이, 2006년 최대 토니상 수상작 <프로듀서스>와 뮤지컬 빅4 중 하나인 <미스 사이공>, 그리고 디즈니 최고 흥행작 <라이온 킹>이, 2007년 세계적인 아트 서커스 태양의 서커스의 <퀴담>이 공연되는 등 영미권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흥행하는 뮤지컬이 장르와 형식을 가리지 않고 한국 무대에 올랐다. 전 세계에서 수십 년 동안 만들어낸 대표 흥행작들을 불과 몇 년 사이에 한국 무대에 선보인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 (출처 : 클립서비스)

2008~2009년 1차 침체, 금융위기와 과열 경쟁의 부작용

<오페라의 유령> 이후 2007년을 정점으로 한국 뮤지컬은 매해 20%를 넘게 가파른 성장을 이어왔다. 2007년 한국 뮤지컬은 1,000억 원을 막 넘긴 수준으로,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대중들의 뮤지컬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았다. 대형 뮤지컬 개막 전 해외 프레스 투어가 일반적인 마케팅 방식이었고, 시사지나 패션지에서도 뮤지컬 소식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뮤지컬을 실제로 관람하는 관객은 지금에 비해 적었지만, 뮤지컬은 대중들이 선망하는 장르였다. 2008년 이러한 분위기가 금융위기로 꺾이면서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에 돌입하게 됐다. 기업 단체 공연 관람 판매에 의존 비중이 컸던 대형 뮤지컬은 직격탄을 맞았고 경제가 경직되자 문화 소비부터 닫기 시작했다.
2008년, 2009년 침체기를 겪은 후 2011년 이후 2014년까지 한국 뮤지컬 시장은 빠르게 회복하며 상승 그래프를 그렸다. 이 당시 뮤지컬 시장의 성장을 주도한 것은 뮤지컬 전용 극장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 이후 장기 공연이 가능한 전용 극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지만 제대로 된 뮤지컬 전용 극장이 건립된 곳은 2006년 샤롯데시어터이었다. 이후 2011년 대성산업이 서울 서부권인 신도림역에 대형 뮤지컬 전용 극장인 디큐브아트센터를 건립했고, 같은 해 인터파크는 한남동에 1,766석과 1,379석의 블루스퀘어를 개관한다. 특히 블루스퀘어는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한남동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았고,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구 삼성전자홀)은 1,700석 규모로 대극장 중에서도 박스가 큰 편이라 수익률이 높았다. 개관 이후 <조로>, <엘리자벳>, <위키드>,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등 대형 뮤지컬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흥행 극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블루스퀘어는 개관 2년 만에 100만 관객을 유치하는 등 한국 뮤지컬 시장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양의 서커스 쿠자 (출처 : 마스트미디어)

2014년 침체기를 깬 창작뮤지컬의 부상

2014년까지 꾸준히 성장해온 뮤지컬 시장은 양적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다. 뮤지컬 시장이 과열되면서 대관료, 인건비, 특히 배우 개런티가 크게 상승했고 이로 인해 제작사들의 수익률이 낮아졌다. 끊임없이 양적 성장은 이루어냈지만, 과열 경쟁 속에서 뮤지컬 제작 환경은 점점 열악해졌다. 2014년 대형 제작사 BOM코리아가 제작한 공연이 개런티 미지급으로 중단되더니, 결국 제작사가 말 그대로 야반도주하는 일이 발생했다. 게다가 <쓰릴 미>, <스프링 어웨이크닝>, <넥스트 투 노멀>, <키다리 아저씨>, <번지점프를 하다> 등 작품성 있는 라인업을 갖춘 중견 제작사 뮤지컬해븐이 법정 관리 절차를 밟았다. 뮤지컬 축제인 한국뮤지컬대상, 더 뮤지컬 어워즈가 거의 동시에 사라졌던 것도 이 무렵이다.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가파른 성장세를 멈추지 않았던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양적인 성장도 멈췄다. 2014년 2,800억 원 규모의 시장이 2017년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대형 참사와 메르스 등 전염병 유행이 성장의 정체 내지는 침체에 일조했다.
이후 3년간의 침체기를 깨고 2018년 뮤지컬 시장은 큰 폭으로 상승한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언론을 비롯해 전문가들이 한국 뮤지컬 시장을 3,500억 원 시장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티켓 매출만 판단했을 때 한국 뮤지컬 시장이 3,500억 원을 넘어선 것은 2018년이 유일하다. 2018년 시장의 성장 이유로 2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태양의 서커스의 <쿠자>가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쿠자>가 매출액 향상에 크게 기여했지만, 2017년부터 서서히 비중을 높여가는 창작뮤지컬의 부상을 주목해야 한다.

출처 : 월간 공연전산망 1호 (2021, 예술경영지원센터)

2016년 26%에 불과했던 창작뮤지컬 비중이 2017년 이후 36% 정도 수준으로 상승한다. 인터파크 연간 판매 순위 상위권에 좀체 들지 못했던 창작뮤지컬이 2016년부터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마타하리>(3위), 2017년 <영웅>(2위), <마타하리>(3위), 2018년 <프랑켄슈타인>(3위), <웃는 남자>(예술의전당, 4위), <웃는 남자>(블루스퀘어, 5위), 2019년 <그날들>(3위), <벤허>(4위)가 판매 순위 상위권에 들게 된다. 여전히 라이선스 뮤지컬의 시장 점유율이 높지만, 점차 창작뮤지컬이 부상했다. 이것이 뮤지컬 시장의 새로운 성장을 추동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뮤지컬 시장은 곤두박질했다. 코로나19 3년여 동안 OTT를 비롯한 다양한 대체재가 발전하면서 팬데믹이 끝난다 해도 공연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팬데믹 이후 대면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공연시장의 빠른 회복과 성장을 가져왔다. 2018년 3,600억 원 최고치를 기록한 후 지난해 뮤지컬 시장은 4,250억 원대 최고 매출액을 올렸다. 그리고 올해는 5,000억 원대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경기 침체에도 이러한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평균 티켓값 상승과 팬데믹 기간에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공연을 지속해 오면서 새로운 젊은 공연 관객층을 확장한 것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이러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양적 성장과 더불어 질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업계가 협력해야 한다. 더불어 창작뮤지컬 활성화를 통한 해외 시장 개척이나 온라인 상영 등 부가 수익을 활성화해야 한다. ‘양적 성장을 어떻게 질적 성장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우리 뮤지컬계가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숙제이다.

  • 필자 소개

    현 공연한오후 대표. 전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 전 <공연전산망> 편집장. 대학에서 뮤지컬과 공연산업에 관해 강의하고 있으며, 한국일보 ‘박병성의 공연한 오후’ 및 다양한 지면에 공연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뮤지컬 탐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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