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예술이 함께할 충분한 이유

사회는 복잡하다. 물질뿐 아니라 에너지와 같이 보이지 않는 물질까지 얽혀 있으니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한편 이성과 합리로 정의되는 근대 과학은 모든 물질을 해체하고 분별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나아가 산업사회는 근대 과학의 지원을 받아 시장을 위해 모든 것을 개별적 존재들로 구조화했다. 개인이나 사회가 예술을 만나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예술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 것도 고립된 시장구조 안에서다. 여기서부터 지역은 지역이고 예술은 예술이다. 지역과 예술은 함께하기 어렵고 서로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진화생물학계에서 인류를 포함한 생명 진화의 비밀을 협력으로 밝히기 전부터, 우주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으로 살아간다는 게 오랜 인류의 지혜였다.

지금 지역은 지방 소멸, 한계 지역 등으로 설명되듯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 제러미 러프킨(Jeremy Rifkin), 세르주 라투슈(Serge Latouche) 등 많은 학자는 오히려 지역이 지금 인류 앞에 놓인 기후변화, 불평등의 절박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라고 한다. 그동안 양적으로 성장한 예술에 성장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예술이 꼬리표처럼 달고 있는 배부른 예술, 상품화된 예술, 엘리트 예술이라는 라벨을 떼어내고 예술의 근원과 사회 가치를 회복해야만 예술이, 예술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지역은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를 상상할 예술이 필요하고 예술은 예술의 생명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자원이 필요하다.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얇아질 대로 얇아진 예술가들의 생활을 바꿀 기회도 지역에 있다. 이렇게 지역과 예술이 함께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지역과 예술이 함께하려면 지금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예술(가)은 지역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역은 예술(가)을 어떻게 생각할까?” 주위 예술가들을 보면 지역은 작품의 주제가 될 뿐 창작의 장(場)은 아닌 것 같다. 여기서 장(場)은 창작의 소재보다는 창작을 위한 사건이 충돌하고 작동하는 동적(動的)인 공간을 말한다. 예술가 자신도 세계의 1/n이 되어 끊임없이 생겨나는 규범과 충돌하는 비선형적인 파동의 장(場)이다. 문화재단에서 문화관광재단으로 갑자기 이름을 바꿨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에서의 예술은 관광산업과 지역 재생 등 지역이 필요로 하는 성장과 행정의 도구로 사용된다. 더 깊고 넓게 예술이 가진 근원적인 아름다움의 가치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과 예술(가)에는 꼭 필요한 욕구지만, 그 욕구가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는 히든 니즈(Hidden Needs)가 있다. 도시재생과 지역 활성화 등으로 30조 예산을 썼고 지방소멸대응기금, 로컬 브랜딩 사업으로 계속해서 예산은 쓰고 있지만, 주민과 지역에 뚜렷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 놓인 지역. 상업화된 예술시장에서 예술로 살아가기 어려운 예술가. 지역과 예술가 앞에 놓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중구속 상황을 가로질러 해법을 찾아가는 프로젝트가 ‘예술로 지역활력’이다. 지역에는 새로움을 창조할 상상력이 필요하고 예술가에게는 예술 생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이 재구성되는 메타모델 [노플랜워크숍 : NOPLAN workshop]

이러한 실험은 ‘예술로 지역활력’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진행한 서울문화재단 도시문화사업LAB ‘뭐든지 예술활력’이 ‘예술로 지역활력’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이 작업 과정을 22년 겨울에 ‘예술로 지역활력’이라는 워크북으로 출판하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비예술인 발굴육성 지원사업에서는 ‘뭐든지 예술활력’ 워크숍 프로그램을 재정리한 [노플랜워크숍 : NOPLAN workshop]이라는 메타모델(Meta Model)을 개발해 진행했다.

탈근대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현대사회를 유동하는(액체) 세계로 설명하며, 현대사회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규범이나 상식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빠르고 불규칙하게 변해가고 있고 흐르는 물처럼 불가해한 액체를 닮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노플랜워크숍 : NOPLAN workshop]은 선형적 모델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에 따라 프로그램이 유동적으로 재구성되는 메타모델(Meta Model)이다. [노플랜워크숍 : NOPLAN workshop]에는 핵심적인 구성요소와 지켜야 할 약속 그리고 [노플랜워크숍 : NOPLAN workshop]을 작동시키는 사회과학모델과 이론이 있다. 핵심적인 구성요소 다섯 가지는 ‘개성’, ‘과정’, ‘공개’, ‘탄력’, ‘자기주도’이며, 복잡한 과정에서 창발이 된다는 ‘믿음’과 새로움을 창조하는 차이의 ‘협력’이 약속이다. 방법으로는 마케팅이나 혁신생태계에서 주목받는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 애자일(Agile), 서클(Circle),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 : Actor Network Theory), 복잡계 이론(Complex System Theory)을 융합하여 사용한다.

‘예술로 지역활력’ 프로젝트에 참가할 청년예술가를 모집하면서 소개한 [노플랜워크숍 : NOPLAN workshop] 설명에 그 특징적인 내용이 들어있다.

[노플랜워크숍 : NOPLAN workshop]

[노플랜워크숍 : NOPLAN workshop]은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과 경험을 자원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하여 지역을 활성화할 콘텐츠를 발명하는 방식이다. [노플랜워크숍 : NO PLAN workshop]은 사전에 계획한 과정과 목표에 따라서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프로그램 기획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직관과 영감(靈感)이 발현할 기회(배치)를 제공하며 비선형(Nonlinear)으로 지도를 그려가는 다이어그램 방식의 워크숍이다. 한마디로 ‘비어 있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역설의 메타(meta) 모델링’이다.

[노플랜워크숍 : NO PLAN workshop]은 오롯이 참여자들의 자기주도로 진행되며 워크숍 진행자는 촉진자(moderater)와 안내자(steward)의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러한 [노플랜워크숍 : NO PLAN workshop]은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을 기본으로 애자일(Agile)과 서클(Circle), 행위자 네크워크 이론(Actor Network Theory), 복잡계 이론(Complex System Theory)을 기반으로 구성되고 배치된다.

[노플랜워크숍 : NO PLAN workshop]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주도적 경험으로 내발적 역량을 양성하고 정형화된 목표에서 벗어나는 방식이다.

청년예술가들이 작품 발표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자기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한 점과 프로젝트 과정에서 느꼈던 ‘용기, 예술가치, 실험, 자신감, 융합 등’의 성취감에서 [노플랜워크숍 : NO PLAN workshop]이 ‘예술로 지역활력’에서 기대했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있지만, 특히 예술가들에게는 자기 내면의 창작 에너지를 발산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비선형적 과정의 [노플랜워크숍 : NO PLAN workshop] 작동의 핵심은 ‘생성하는 배치’이다. 선형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생성하는 배치’로 낯섦과 혼란스러움 속에서 청년예술가들의 아이디어 창발이 가능하도록 준비된다. 참가자들은 기획된 시공간의 환경 배치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영감(靈感)과 아이디어가 창발이 되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협업 프로젝트임에도 그 시작과 주체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고정되지 않고 생각이 흔들리는 각 개인이다.

‘생성하는 배치’의 씨줄이 지역이라면 날줄은 워크숍이다. 씨줄과 날줄이 만나 예술로 지역의 활력을 넘치게 할 콘텐츠가 갖가지 무늬로 직조된다. [노플랜워크숍 : NO PLAN workshop]의 유일한 가이드라인은 지역 파트너들이 요구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발상의 제한이라기보다 직조되는 무늬의 패턴을 형성하고 아이디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노플랜워크숍 : NOPLAN workshop]으로 탄생한 작품

‘예술로 지역활력’ 시나리오는 참가자 선발 인터뷰부터 지역 나눔과 팀 구성, 지역 워크숍, 피칭 데이(Pitching Day), 작품 제작, 작품 발표, 활력 파티로 구성된다. 이 과정은 언제든 현장과 팀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될 수 있게 열려있다.

주관사 아트브릿지와 ‘예술로 지역활력’ 참가자를 선발하고 지역과 팀을 나누고 있는 모습

보통 선발 인터뷰와 지역 나눔, 팀 구성은 워크숍 사전 준비 정도로 진행되는데, ‘예술로 지역활력’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콘텐츠가 생성되는 배치를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하며 기획한다. 선발 인터뷰에서 신청자들의 예술 활동 경험과 협업에 필요한 태도, 자기 주도성을 파악하고 지역과 팀 구성에 반영한다. 선발된 참가자는 자기가 사는 지역 이외의 지역으로 배정하고 장르와 개인 성향을 고려해 다르지만 융합될 수 있는 예술가들로 팀을 구성한다. 이 과정을 통해 78명의 신청자 중에서 최종 24명이 선정되었으며 이들은 9팀으로 구성되었고, 지역별로는 8명씩 3팀이 구성되었다.

통영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된 [노플랜워크숍 : NO PLAN workshop]에서 지역의 발명 방법을 안내하는 모습

통영 동피랑에서 지역 선배 예술인에게 지역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지역에서 [노플랜워크숍 : NOPLAN workshop]이 진행되는 3일 동안은 지역이 가진 자원으로 영감(靈感)이 일어날 수 있게 프로그램에 따라 시공간을 바꿔가며 진행한다. 워크숍 장소와 장식도 중요하고 식사와 숙소도 신경 써야 한다. 첫날 본격적으로 지역 소개와 지역 발명 방법, 국내외 예술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은 사례를 들은 후에 와칭(Watching)이라는 지역 관찰에 나선다. 이튿날은 주민 및 관계자 인터뷰를 진행하며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생성될 수 있게 한다. 빈 시간에도 참가자들은 팀별로 지역 곳곳을 둘러보고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수집한다. ‘예술로 지역활력’에 참여하려면 체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바쁜 일정이다. 마지막 3일 차에는 팀별로 첫 번째 아이디어 섬네일(Thumbnail)을 발표하고 지역 파트너(코치 역할)와 기획자, 다른 청년예술가들이 발표한 아이디어에 대한 질문과 의견을 제시하는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한다. 라운드테이블은 'But' 대신에 ‘Yes'를 사용하는 픽사(Pixar)의 혁신적 회의 방식인 브레인트러스트(Brain Trust)와 단정하지 않고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안을 제시하는 연찬 방식을 사용한다. 라운드테이블에서 충분한 의견을 듣고 난 후 모든 결정은 팀이 내린다. 모더레이터와 지역 파트너(코치 역할), 다른 청년예술가 모두 개인의 느낌과 생각을 말할 뿐이다. 팀원 사이에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작품을 위해 의견을 나누고 하나로 정하는 것도 팀의 책임이다.

최종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피칭 데이를 거친 후 2개월 동안 작품을 제작한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는 공식, 비공식 채널을 만들어 1주 단위로 팀별 진행 과정을 파악한다. 지역이라는 현장에서 작품을 실현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모더레이터, 지역 파트너(코치), 운영진들과 끊임없이 협의하고 스스로 해결해가도록 지원한다.

부산 ‘우리는 나발을 불어’가 발표된 ‘전포연가’ 앞에서 술병으로 만든 작품을 든 청년예술가, 모더레이터, 지역 파트너, 운영진

드디어 10월 말과 11월 초에 ‘예술로 지역활력’이라는 이름으로 통영, 영덕, 부산진 각 지역에서 총 9개 작품이 발표되었다. 통영에서는 통영 주민들의 꿈이 추상적인 심상(心象)이 된 ‘몽夢환’, 통영이 기억하는 예술을 설치작품으로 표현한 ‘[ㅌㅇ:ㅁ] 예술로 통하는 문’, 소외되는 통영을 다시 소환하는 ‘뮤지엄_메모리 오브 통영’이라는 작품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영덕에서는 영해의 사연을 담은 라디오 음악극 ‘영해쌀롱’, 늘 같은 자리에 있어 의식하지 못하는 파편화된 존재를 담은 ‘제3영해’, 영해를 걸으며 오감으로 느꼈던 바다와 바람, 하늘을 노래한 ‘파도의 속삭임과 인간의 시간’이 발표되었다. 부산진에서는 ‘나’를 잃지 않도록 누군가의 앞에서 노래하는 ‘너의 앞에 서면’, 떠다니는 사람들의 인파(人波) 사이로 유영(遊泳)하는 ‘서면에서 유영(遊泳)하기’, 서면의 술집에서 내가 비운 술병이 오늘은 악기가 되어 연주되는 ‘우리는 나발을 불어’라는 작품이 발표되었다. 이들은 다원 창작 작품들이다. 음악 작품 중에는 작품 준비 과정에서 이미 발매를 준비하는 작품도 있고 회화 작품 몇 점은 현장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통영 작품들은 준비 단계에서 통영영화제로부터 참가 요청을 받아 영화제 프로그램으로 참가했고 작품 발표와 함께 바로 통영과 경남지역 축제에 초대받기도 했다. 이렇게 발표된 작품을 통해 각 팀과 개인들은 지역을 모티브로 불연속적인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의 잠재성을 현실성으로 발명하는 예술가

“지역은 예술가에게 또 다른 영감(靈感)을 준다.”, “지역은 예술이 가진 시원(始原)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활동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지역에 있다.” 등 청년예술가들의 소감처럼 ‘예술로 지역활력’은 예술가와 지역이 만나는 첫 번째 사건이 되었다. 지역과 예술가들의 경험이 다시 어떻게 발현될지는 모르지만, 지역에서의 규범화된 현재를 뛰어넘는 도약을 기대할 만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모방(재현)하는 미메시스(Mimesis)를 예술의 핵심 개념으로 설명했다. 지역을 모방해 지역의 잠재성을 현실성으로 드러내는 활동은 예술가의 몫일 수밖에 없다.

지역을 발명하는 예술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단비뉴스에 인구가 급격히 줄고, 근대 산업시대의 영광이 사라진 대만 타이난시 외곽 지역인 옌슈이(鹽水)가 소개되었다. 옌슈이는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존중하면서 예술을 지역 활성화 정책 차원으로 활용하는 예술가와 행정의 협업이 성공적으로 실현되는 지역이다. 타이난시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물자의 집성지에서 인구 2만 4천 명이 사는 시골로 변한 옌슈이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모래와 진흙이 쌓인 위에진강을 복원하고 위에진강에서 열리는 축제 운영을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부탁했다.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위에진강에 펼쳐진 ‘옌슈이 등불 축제’가 주민과 외부인들에게 주목을 받자, 예술의 힘을 경험한 타이난시는 예술가 그룹 ‘유유스튜디오’와 옌슈이를 벽 없는 전시장으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간다. 프로젝트를 맡은 ‘유유스튜디오’는 누구보다 주민들이 옌슈이의 문화적 맥락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역 생활환경을 예술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길가 교차로나 차량 방지석, 리모델링된 용청극장 등을 옌슈이를 상징하는 토끼와 달, 우주 조형물로 장식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은행 건물을 노란 달 모양을 지붕에 얹은 ‘치투 매뉴팩토리’라는 복합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주민들을 위한 공연장, 전시장, 예술 수업 공간, 술집과 카페로 사용하고 있다. 또 주민들은 ‘위에진 미술관’이 진행하는 ‘토끼 인형 섬유 재생 프로그램’에 참여해 인형을 직접 디자인하고 손수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옌슈이 주민들은 다시금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활력을 갖게 되고 지역은 문화도시로서 풍요로움을 발전시켜가고 있다.

타이난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집단 유유스튜디오가 옌슈이 등불 축제에 설치한 작품 ‘무관(Unrelated)’
(출처 : 유유스튜디오 누리집)

노란 달 모양의 예술품이 장식된 치투 매뉴팩토리(한자 표기: 적토제조소(赤兎製造所))모습
(출처 : 단비뉴스)

지역을 발명하는 예술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단비뉴스에 인구가 급격히 줄고, 근대 산업시대의 영광이 사라진 대만 타이난시 외곽 지역인 옌슈이(鹽水)가 소개되었다. 옌슈이는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존중하면서 예술을 지역 활성화 정책 차원으로 활용하는 예술가와 행정의 협업이 성공적으로 실현되는 지역이다. 타이난시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물자의 집성지에서 인구 2만 4천 명이 사는 시골로 변한 옌슈이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모래와 진흙이 쌓인 위에진강을 복원하고 위에진강에서 열리는 축제 운영을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부탁했다.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위에진강에 펼쳐진 ‘옌슈이 등불 축제’가 주민과 외부인들에게 주목을 받자, 예술의 힘을 경험한 타이난시는 예술가 그룹 ‘유유스튜디오’와 옌슈이를 벽 없는 전시장으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간다. 프로젝트를 맡은 ‘유유스튜디오’는 누구보다 주민들이 옌슈이의 문화적 맥락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역 생활환경을 예술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길가 교차로나 차량 방지석, 리모델링된 용청극장 등을 옌슈이를 상징하는 토끼와 달, 우주 조형물로 장식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은행 건물을 노란 달 모양을 지붕에 얹은 ‘치투 매뉴팩토리’라는 복합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주민들을 위한 공연장, 전시장, 예술 수업 공간, 술집과 카페로 사용하고 있다. 또 주민들은 ‘위에진 미술관’이 진행하는 ‘토끼 인형 섬유 재생 프로그램’에 참여해 인형을 직접 디자인하고 손수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옌슈이 주민들은 다시금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활력을 갖게 되고 지역은 문화도시로서 풍요로움을 발전시켜가고 있다.

국내에서 포항, 목포, 군산, 강경, 인천, 부산 등 근대 문화유적이 남아있는 원도심 재생을 행정이 주도해서 차이 없고, 서사(Narrative) 없는 사업으로 진행하는 것과 달리, 옌슈이는 예술가들에게 지역 축제와 프로젝트를 부탁하고 예술가들은 지역을 지역답고 활기차게 발명하고 있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영향을 받은 도시전략전문가 찰스 랜들리(Charles Landry)와 도시계획학자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창조도시연구자 사사카 마사유키 모두가 창조성의 실질적 매개체로 문화예술을 꼽고 있으며, 지역재생의 열쇠는 생산시설의 유치보다 창조적인 인재를 어떻게 지역에 유인할 수 있을지에 달려있다고 한다.

복잡하고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하고 변덕스러운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문제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은 예술이 가진 도약적인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는 예술가들의 초능력에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에서 춤이, 허리 굽은 돌섬 밭에서 시가, 고양이가 졸고 있는 골목에서 영화가, 문 닫힌 가게를 훑어가는 바람에서 음악이, 나와 사회가 마주하는 갈등에서 연극이 나올 수 있다. 예술이 가진 위대함은 이런 것이다.

앞으로 지역은 예술가를 어떻게 지역으로 초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역을 재생하는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다.

※‘예술로 지역활력’ 프로젝트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주관사 아트브릿지에서 24년 1월에 간행할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필자 소개

    2013년부터 기획자, 디자이너, 카피라이터,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마케팅커뮤니케이션협동조합 살림’ 부설 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에서 활동하며,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등의 책을 쓰고는 근대 산업 문명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불평등 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 발명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고 있다. 특히 예술가들을 추앙하며 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즐긴다. 무엇보다, 내일만큼 아름다운 오늘을 살고 있다.
    (happyyeori@gmail.com)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