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역에서 나왔을 땐 하늘이 살짝 흐리고, 빗방울이 보슬보슬 흩날렸다. 잰걸음으로 아트코리아랩(Arts Korea Lab)으로 향했다. 유선형으로 흐르는 듯한 트윈트리타워가 보였다. 어떤 모습일까? 궁금함과 함께 살짝 긴장도 됐다. 왜 긴장이 되었는지는 이 글의 마지막에 밝힐 예정이니 끝까지 읽어주시면 좋겠다.1)

트윈트리타워 A동으로 들어서자 1층 미디어월에 옅은 블루와 핑크빛이 섞인 아트코리아랩의 키비주얼인 영롱한 버블(Bubble) & 리플렉션(Reflection)이 둥실 떠올라 있었다.

트윈트리타워의 전경 (출처: 아트코리아랩 프레스키트)

아트코리아랩 개관 페스티벌 포스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리셉션 장소인 6층으로 향했다. 밖에서 목적지인 층수를 누르고 안에서는 층수를 누를 수 없는 중앙제어식 엘리베이터였다. 한번 타면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는 엘리베이터가 왠지 다른 세계로 통하는 포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분주한 모습의 AKL 아고라가 나타났다. 마침 <사운드X테크놀로지 : 사운드의 확장과 경계넘기> 콘퍼런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한쪽 모퉁이에 자리한 바에서 받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의 사회로 사운드 아트와 테크놀로지가 접목된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국내, 그리고 해외 연사들의 발표를 들었다. 소리를 통해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만들어내고, 음악, 미디어아트, 데이터, 퍼포먼스 등 다양한 표현 방식과 접목하여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아트코리아랩(AKL) 아고라에서 콘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콘퍼런스가 계속 펼쳐질 동안 내가 신청한 공간투어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이는 장소로 가는 와중에 포토매틱 기계가 보이길래 인생네컷을 찍었다. 사진은 역시 조명발이다.

아트코리아랩은 임대 공간이기 때문에 전체 건물을 쓰는 것은 아니고, 교육 및 네트워킹 영역인 6층과 7층, 창업성장 영역인 16층과 17층, 창·제작 테스트베드 영역인 지하 1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트코리아랩의 공간 구성

공간투어는 6층부터 시작되었다. 6층에는 네트워킹과 행사가 이루어지는 ‘AKL 아고라’ 외에도 ‘강의실’, ‘쇼룸’,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창작 및 교육공간인 ‘미디어랩’, 영상 및 오디오 편집/렌더링 공간인 ‘편집실 A/B’가 위치해 예술산업아카데미 프로그램, 다양한 워크숍, 네트워킹 이벤트가 가능하다. 예술가와 예술기업이 자유롭게 만나 새로운 대화와 담론을 이끌어 갈 ‘허브 스페이스’라 할 수 있다. 개관 페스티벌에서는 콘퍼런스 외에도 각 강의실에서 주제별 소규모 라운드테이블인 아트랩 클럽과 XR 이머시브 콘텐츠의 시연, 기후 위기를 테마로 기후상담소, 환경게임방, 기후전망대, 전시 노이즈, 전시 에너지 맵핑 등을 내용으로 한 <솔라비전> 주제 전시도 함께 열리고 있었다. 워낙 XR 이머시브 콘텐츠를 좋아하는지라 2개의 콘텐츠를 직접 체험했다. 바로크 예술가 중 한 명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는 XR 기술의 한층 더 발전된 공간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패치 월드(개드 힌키스 감독)>에서는 내 목소리를 소스로 악기를 만들고 손과 연결된 스틱으로 나만의 리믹스 음악을 만드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XR 이머시브 콘텐츠 시연 모습

미디어랩

강의실과 톡톡룸(회의 및 네트워크 공간)에서 펼쳐진 <솔라비전> 주제 전시 모습

7층은 비정기적 공용 업무공간인 ‘공유 오피스’와 ‘회의실’ 외에 공연·시각예술 범 장르적 융합 실험이 가능한 창·제작 실험공간으로 구성되었다. 크로마키와 모션캡처 등 영상 촬영이 가능한 ‘다목적 스튜디오’, 이머시브 사운드 디자인과 시연을 할 수 있는 ‘이머시브 사운드 스튜디오’에는 전문 테크니션이 상주하며 예술가들을 돕는다. 예술가 대상 비즈니스 컨설팅과 입주기업 성장지원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비즈센터(Biz center)’, 쉼터 공간인 ‘라운지’도 있었다.

공유 오피스

다목적 스튜디오

비즈센터

이머시브 사운드 스튜디오

16층과 17층은 인큐베이팅 영역으로 주로 창·제작을 기반으로 사업화를 추진하는 예술기업이 안정적으로 창업,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입주공간’, ‘창·제작 시설’ 등으로 구성되었다. 시제품 제작 시설의 경우 예술기업 특성에 맞춘 목재/금속 등의 가공이 가능한 3D 프린터, 3D CNC 조각기 등이 있는 ‘메이커 스튜디오’와 다양한 형태의 출력이 가능한 ‘프린팅 스튜디오’가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이 공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라운지 창문으로 환하게 보이는 경복궁과 청와대 경관 뷰인데, 마침 가을이라 빨갛고 노란 단풍이 곱게 물든 경복궁과 북악산의 모습은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왠지 퐁퐁 솟아날 것 같았다.

메이커 스튜디오

프린팅 스튜디오

라운지

개관 페스티벌 기간에는 ‘오픈 스튜디오’가 진행되어 아트코리아랩에 입주해있는 기업들의 오피스도 살짝 엿보았고, ‘미니 피칭’을 통해 입주기업들이 어떤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이날은 델로, 웨이고, 엘디프, 오디오가이, 넷스트림, 다이브인그룹, 사운드울프의 미니 피칭이 있었다. 특히 국내외 호텔과 파트너십을 맺고 기존 객실을 갤러리형 숙박 공간으로 재창조하고 있는 몰입형 아트 플랫폼 ‘다이브인그룹’의 피칭이 인상적이었다. 국내 38개 아트스테이 객실을 비롯해 국내 5성급 호텔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해외 호텔과도 관련 협의를 이어가는 중이며, 최종적으로는 국내외에서 5천 개 이상의 아트스테이 객실을 오픈하고 이를 통해 국내외 예술 콘텐츠 교류까지 이뤄내는 유통 플랫폼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입주기업들은 아트코리아랩에서의 피칭 등을 통해 그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 이들의 피칭을 보면서 아트코리아랩이 이렇게 참신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패기를 가진 예술기업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오픈 이노베이터(open innovator)가 되어 주길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입주기업 오피스의 모습

오픈스튜디오의 일환으로 입주기업이 미니 피칭을 하는 모습

지하 1층은 예술가·예술기업의 창·제작 실험 작품들을 시연할 수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연·시각예술 범 장르적 융합 실험이 가능하며, 전시 및 시연, 행사가 가능한 4개의 중소규모 창·제작 스튜디오(시연장 A, B, C, D)가 있어 예술가와 예술기업들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선보일 수 있다. 개관 페스티벌 기간에 시연장 B/C에서는 김민아, 고휘, 윤제호, 브뤼더샤프트, 디지털 세로토닌, 클로드(Claude)/신혜진, 한국전자음악협회의 사운드 테크놀로지 쇼케이스가 진행되었다.

시연장 A

시연장 A

시연장 B/C

미디어월

‘김민아’ 작가의 쇼케이스 모습

‘윤제호’ 작가의 쇼케이스 모습

미디어월(시연장 D)

시연장 D

이외에도 직접 참관하진 못했지만, 개관 페스티벌 기간에 아트코리아랩 융합예술 테스트베드 지원사업 <수퍼 테스트베드> 과정에 참여한 멘토와 멘티들이 프로젝트 과정을 공유하고 지원사업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 디제잉 파티를 겸한 캐주얼 네트워킹, <예술, 과학 기술 그리고 포스트 휴머니즘>과 <예술산업, 콜라보레이션 4.0 장르를 넘어서>를 주제로 한 콘퍼런스도 개최되었다. 일렉트라 몬트리올 예술감독, 소나르 페스티벌 +D 큐레이터, 조엘 게딘 류이스 Universal Everything 인터랙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워릭 차이 C-Lab 퓨처비전랩 기술감독 등 해외 인사들도 참여하여 자리를 빛냈다.

아트코리아랩을 나와 근처에 있는 곰장어 식당에서 함께 온 지인과 한잔 술을 나누었다. 2021년에 수행했던 연구 결과가 2년 뒤 이렇게 현실로 구현된 것을 보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뿌듯했다.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는 빗방울이 좀 더 굵어졌다. 우산을 펴며 생각했다. 아트코리아랩이 예술인과 예술기업에 이 우산 같은 곳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예술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의 시도와 실현이 이루어지는 예술거점 실험실(Lab)로, 예술의 산업화와 자생력 제고를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예술산업의 요람으로, 예술인, 단체, 예술기업 등의 생존과 성장, 공유와 협업을 지원하는 네트워크 허브로 역할을 해주길.

비가 점점 더 세게 떨어졌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욱 경쾌해졌다.

  • 필자 소개

    양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연구본부장)
    학부에서는 사회학을, 석·박사는 행정학을 전공했으며, 문화예술의 아우라에 사로잡혀 이 분야 정책 연구자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2011년부터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재직하며 예술정책, 예술인복지, 문화복지, 지역문화정책, 문화예술교육정책, 생활문화정책, 문화영향평가 등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예술이 가진 고유한 가치와 가능성을 신뢰하며, 정책과 현장의 매개를 통해 그 작동 과정에 동참하고자 한다.

각주
  • 1) 앞서 긴장했던 이유는 필자가 2021년 아트코리아랩의 조성 방향에 대해 다룬 <아트컬처랩 조성 기본연구>를 수행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아트코리아랩’이라는 명칭이 확정되기 전 정책 아이디어 단계에서의 잠정적인 이름은 ‘아트컬처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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