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극장에서 예술가와 관객의 자리는 무대와 객석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극장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사람들이 좀 더 친근하게 극장을 드나들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고안하거나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예술가 새로운 작업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극장은 공연예술생태계의 거점이자 사회적 소통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weekly@예술경영]은  월간 고양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월간 [누리]와 공동기획으로 공연예술생태계의 거점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가는 극장의 운영사례를 싣는다./ 편집자 주
리스모어 씨티홀은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데 지역 예술가나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있다. 이 지역은 뉴사우스웨일즈주에서 문화예술분야 종사자의 증가율이 가장 빠른 곳이며, 극장은 이러한 지역의 높은 창작 열정과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리스모어(Lismore City)는 호주 동부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주 북쪽 끝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브리스번(Brisbane)과는 차로 3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1960년대 호주 대도시에 살던 많은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아름다운 자연, 영적인 영감, 저렴한 거주지를 찾아 작은 도시나 마을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화창한 날씨, 뛰어난 자연경관, 해변가 등을 갖춘 리스모어도 이들이 찾아든 곳 중에 하나였으며, 새로운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1964년 리스모어 씨티홀이 건립된다.

리스모어 씨티홀은 1993년까지 리스모어시 소유로 운영되었다. 소규모 지역행사, 국내순회공연 등에 장소를 대관해주는 역할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리스모어 지역주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1993년 ‘노파’(NORPA, Northern Rivers Performing Arts)라는 공연단체가 설립되었다. 지역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노파’는 지역문화를 반영한 작품을 만들고 공연하는 것뿐만 아니라 리스모어를 비롯한 인근지역의 중심 문화공간인 리스모어 씨티홀을 운영하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단체가 설립된 해에 ‘노파’는 리스모어 씨티홀의 운영을 맡게 되었고, 리스모어 씨티홀은 새로운 지역 극장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리스모어 씨티홀 외관



시 극장 운영하는 민간 공연예술단체, 노파NORPA

예술감독 줄리언 루이스‘노파’는 민간 공연예술극단이면서 시의 극장을 운영하는 독특한 단체이다. 예술감독,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등 ‘노파’의 스탭들이 극단과 리스모어 씨티홀 두 곳의 운영과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다. ‘노파’의 작품들이 리스모어 씨티홀에서 공연되지만, 리스모어 씨티홀은 ‘노파’의 전용극장은 아니다. ‘노파’의 예술감독인 줄리언 루이스(Julian Louis)는 극단과 공연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것에 대해, 이는 공생관계와 같으며 각각의 역할이 서로를 보완해준다고 말한다. 특히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한 창작활동에 중점을 주는 ‘노파’가 극장 운영을 맡으면서, 리스모어 씨티홀은 지역 커뮤니티와 밀접한 극장으로 탈바꿈 할 수 있었다.

‘노파’는 호주에서 앞서가는 지역 공연예술단체 중 하나로도 손꼽힌다. 1993년 설립 이래, 220개가 넘는 공연작품을 선보였으며, 호주의 주요 아트센터 및 축제를 비롯하여 호주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펼쳐왔다. 2001년 호주 공연예술계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호주에서 가장 명성 있는 공연예술상인 ‘시드니 마이어 공연예술 그룹상’(Sydney Myer Performing Arts Group Award)을 수상했다. 지역 공연예술 단체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았다. 이 외에도 오스트레일리아시안 저작권협회와 호주 뮤직센터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상을 수상했다.(APRA/Australian Music Centre State Award)


지역 예술가 주민 참여로 만들어지는 혁신적인 작품들

리스모어 씨티홀은 지역 커뮤니티에 의미 있고, 지역의 문화정체성과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지역에 위치한 극장이라는 제한적 조건에서 오히려 독특하고 새로운 극장 운영의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다. 리스모어 및 인근 지역의 다양한 관객을 개발하기 위해서, 지역과 관련된 혁신적인 작품을 제작하고 선보이며, 장소 특정적인 사업(site specific projects)을 개발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데 지역 예술가나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있다. 이 지역은 뉴사우스웨일즈주에서 문화예술분야 종사자의 증가율이 가장 빠른 곳이며, 리스모어 씨티홀은 이러한 지역의 높은 창작 열정과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노파'의 무용작품 <큰 발 작은 발 Big Feet Little Feet> 지역 안무가와 무용가들이 '노파'와 협력하여 만든 작품으로 리스모어 씨티홀에서 공연되고 있다.

리스모어 씨티홀에는 콘서트와 공연이 가능한 664석과 144석 두 개의 극장, 그리고 한 개의 댄스 스튜디오가 있다. 예술감독인 줄리언 루이스는 공연연출가로 신체연극, 다원예술, 어린이 공연 등에 폭넓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호주 여러 지역에서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개발해왔다. 최근 호주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리스모어 씨티홀에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의 자리가 새로 만들어졌는데, 이 새로운 역할을 맡은 캣 존스(Cat Jones)는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한 멀티아트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온 인물이다. 리스모어 씨티홀의 시즌 프로그램은 신체연극, 무용, 음악 그리고 다양한 장르 간의 접목이 이루어진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lsquo;노파&rsquo;의 새로운 작품들과 더불어, 호주 국내외로 잘 알려진 예술단체들과 신인 예술단체들의 수준 높은 작품들로 기획된다.


외부 예술가들과의 교류도 활발

지난 15년 동안 수 백 명의 지역예술가들과 일해 온 &lsquo;노파&rsquo;는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계를 바탕으로 한 창작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다양한 장르가 접목된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극단의 창작 개발 프로그램인 제너레이터(Generator)와 여러 지역 관련 기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작품들을 발전시키고 제작하며, 이러한 작품들은 리스모어 씨티홀의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어 오고 있다.

제너레이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나쁜 신부>(The Bloody Bride)의 공연 장면

제너레이터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외부의 유명하거나 혁신적인 3~4 개의 예술단체들이 리스모어에 단기간 머물면서, 리스모어 씨티홀의 공간을 활용하여 지역예술가와 교류하며 함께 공동작업을 한다. 이를 통해 완성된 작품이나 창작이 진행 중인 작품들이 리스모어 씨티홀에서 공연된다. 창작단계 작품을 소개할 경우, 지역 커뮤니티의 의견과 참여를 수용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lsquo;노파&rsquo;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다양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으며, 지역예술가들은 외부의 실력 있는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기계발을 하고 타 지역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며, 지역주민들은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된다. 작품개발 외에도 레지던시 단체들은 지역예술가들이나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스터 클래스, 워크숍, 포럼 등 여러 활동을 한다. 유명한 단체나 예술가의 워크숍에 참여한 지역예술가나 학생들이 나중에 그 단체에 오디션을 보고 입단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역의 다양한 기관 단체와 창조적 파트너십

&lsquo;노파&rsquo;는 관객이 있는 장소에 대한 독특한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작품들도 오랫동안 만들어왔다. &lsquo;장소의 문화&rsquo;(culture of place)을 모색하고 작품과 커뮤니티의 강한 연대감을 만들기 위해서 뉴사우스웨일즈주를 비롯한 지역의 예술 및 환경 관련 기관, 리스모어 갤러리, 지역 원주민 커뮤니티, 리스모어 등불퍼레이드 행사 등의 지역행사, 리스모어 관광청 등 다양한 곳과 창조적 파트너십을 맺어오면서, 지역의 여러 특정 장소에서도 현대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워크숍 참가자들이 워크숍에서 배운 안무를 야외행사에서 선보이고 있다.
리스모어 씨티홀의 또 하나의 주요 활동은 교육 프로그램이다. 가족연계 프로그램, 리스모어 씨티홀에서 공연되는 작품에 대한 교육 자료,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워크숍 활동 등을 계속해서 강화해오고 있다. &lsquo;노파&rsquo;의 프로그램으로 직접 학교 순회공연을 펼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개최한다. 매년 리스모어 씨티홀의 시즌 프로그램 중 학교에서 관심을 보이는 공연들에 대한 교사 가이드북을 제작하고 있다. 리스모어 씨티홀은 또한 고등학교를 위한 순회공연을 담당하는 지역단체인 워드오브마우스 프로덕션(Word of Mouth Productions)을 후원하고 있으며, 방학기간 동안 열리는 전문가 워크숍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리스모어 및 인근 지역의 신인 및 중견 예술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임보영

필자소개
임보영은 주한호주대사관 문화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인문학부에서 학사를 받고,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지속가능한 유산 경영(Sustainable Heritage Management)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등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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