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극장에서 예술가와 관객의 자리는 무대와 객석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극장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사람들이 좀 더 친근하게 극장을 드나들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고안하거나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예술가, 새로운 작업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극장은 공연예술 생태계의 거점이자 사회적 소통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weekly@예술경영]은 공연예술 생태계의 거점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가는 극장의 운영사례를 싣는다.
20세기 예술운동에 있어 카바레는 관객을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수용자/소비자로 고착화시키는 것에 반발하여 공연자와 관객과의 관계, 공연프로그램과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과의 관계에 대한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실험을 감행한 새로운 예술운동이었다. 미국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 예일대학에 있는 예일 카바레는 청년 예술가들의 실험적 작업이 지역 관객과 친밀하게 만나는 레스토랑이자 극장으로, 이러한 카바레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0세기 초 독일 뮌헨에 있었던 카바레 짐플리치시무스(Simplicissimus), 혹은 간단히 짐플(Simpl)이라고 불리던 예술가 주점에는 다음과 같은 ‘카바레 생활 십계명’이 회자되었다.

“가능하면 늦게 나타나 다른 관객들로 하여금 당신이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 일단 아무데나 시끄럽게 자리에 앉는다. 물질적 편안함에 관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면 공연에 참여하라. 시작부터 진행자를 경멸의 눈길로 쳐다보며 그가 바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정신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라. 시끄러운 감탄사를 공연 중간 중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넣어라. 이는 공연을 엄청나게 생기 있게 만들어준다. (…) 가수가 노래를 할 때는 담배연기를 무대 쪽으로 뿜어라. 가수는 기꺼이 연기를 들여 마실 것이며 연기는 가수의 목소리를 부드럽고 윤기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

이 십계명에는 당시 카바레의 실제 분위기를 그려볼 수 있는 물적인 정황과 함께, 19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을 뒤흔들었던 ‘부르주아 타파’(épater les bourgeois)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카바레의 정신이 담겨있다. 카바레는 당시 진지한 부르주아 문화가 향유되던 유사 종교적인 분위기와, 일상화된 극장공연 관람이라는 경직된 예술소비 양태에 대한 반기로부터 출발했다.

<Cabaret at the Cabaret>(1999)카바레는 관객을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수용자/소비자로 고착화시키는 것에 반발하여 공연자와 관객과의 관계, 공연(프로그램)과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과의 관계에 대한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실험을 감행한 새로운 예술운동이었다. 일인극, 짧은 소품, 시낭송, 음악레뷰, 춤이 올라가던 카바레는 공연프로그램으로만 놓고 보면 당시 대중적인 엔터테인먼트였던 보드빌이나 뮤직홀, 나이트클럽 등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이들 공간에 비해 훨씬 협소한 공간에서 관객들과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공연이 개최되는 공간이면서도 카바레는 카페나 레스토랑에서와 같이 먹고, 마시고, 떠들고, 담배연기가 가득 차있는 친교의 장이었다. 카바레에는 당시 극장에서 공연을 거부당했던 예술가나 예술경력이 짧아 기존의 보수적이고 전문성을 요구하는 공간에서 공연기회를 잡을 수 없던 젊은 예술가, 카바레 설립자와 유사한 정치적 이념과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 그룹이 관객들과 만나는 곳이었다. 이런 연유로 카바레에는 공연자들과 관객들 간에 끈끈한 동지애가 존재했다.


청년 예술가 그룹의 자치공간

청년 예술가 그룹의 독특한 실험공간으로 관객과의 친밀한 교감을 이끌어내는 식당식 극장이라는 점에서 예일 카바레(Yale Cabaret)는 현재적 모습으로 기능하는 카바레의 흥미로운 예이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문을 연 예일 카바레는 교수진의 간섭 없이 드라마스쿨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공간이다. 예일 카바레는 드라마스쿨이나 예일 레퍼토리 씨어터와는 다른 독자적인 예술적 미션과 운영방식을 가진다. 학교당국의 역할은 교수진이 참여하는 카바레 이사회를 통해 일 년 단위로 교체되는 아티스틱 디렉터와 매니징 디렉터의 공모와 선출을 책임지고, 연간 운영예산을 지원하며, 이사회를 통해 연간 운영실적을 보고받는 일에 국한된다.

,카바레 입구, 매표소

미국의 극장은 조직의 예술적 미션을 정초하고, 시즌 프로그래밍 및 프로덕션을 통해 조직의 예술적 성취도를 책임지는 아티스틱 디렉터(Artistic Director)와 조직의 인력, 재정, 마케팅 등 예술적 활동 이외의 여타 조직관리를 전담하는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의 이원화된 리더십체계를 갖는 것이 보통이다. 예일 카바레는 드라마스쿨 극장경영과 3학년에게 실무수업(job rotation)의 일환으로 1년간 매니징 디렉터의 책임을 맡기고, 이외 학과(주로 연기, 연출, 극작과) 2, 3학년 중 희망자가 예술적 미션, 지향하는 리더십 역할, 매니징 디렉터와의 협업방식에 관한 포트폴리오를 제출하여 이사회를 통해 아티스틱 디렉터로 선출된다. 이렇게 매년 아티스틱 디렉터와 매니징 디렉터가 교체되기 때문에 예일 카바레는 해마다 새로운 예술적 미션과 비주얼 아이덴티티가 작성된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늘 &lsquo;실험&rsquo;과 &lsquo;도전&rsquo;, &lsquo;다양성&rsquo;과 &lsquo;대화&rsquo;, &lsquo;위험&rsquo;과 &lsquo;질문&rsquo;이라는 핵심어들이 들어있다.

<Major Barbara>(1975)
카바레 작업에서 드라마스쿨 학생들은 서로의 작업을 위한 협업자이자, 경쟁자, 가장 헌신적인 관객이자 평론가가 된다. 이곳에서는 조명디자이너가 연출을 하고, 연출이 무대를 디자인하고, 배우가 무대감독을 맡는다. 카바레에는 학과의 구분이나 학년의 차이가 무의미하다. 비전공자의 재능 넘치는 협업은 언제나 환영이며, 타과 전공 기술과 경험을 얻고자 하는 동료에게는 지원과 격려로 새로운 도전을 함께한다. 미국의 유명 극작가이자 연출가, 연기자인 크리스토퍼 듀랑(Christopher Durang, 극작 &lsquo;74 졸업), 배우 시고니 위버(Sigourney Weaver, 연기 &rsquo;74),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연기 &lsquo;76), 존 터투로 (John Turturro, 연기 &lsquo;83)는 카바레에 헌신했던 드라마스쿨 출신들로, 학교 프로덕션이나 예일 레퍼토리 씨어터에서보다 동료들과 함께 밤새우며 작업했던 카바레에서 무대와 관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웠다는 이야기들을 전한다.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지역극장

그렇다고 예일 카바레를 학생들의 단순한 아마추어 실험실로 생각한다면 이는 오산이다. 매년 시즌프로그램과 캠페인의 성공여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예일 카바레는 250명 내외의 시즌멤버십 구매 회원들(subscribers)을 확보하고 있다. 공연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매주 90석 미만의 좌석이 판매되는 공간의 협소함을 감안할 때 이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매주 카바레 지하세계를 찾는 멤버 및 관객들은 대부분 뉴헤이븐 지역주민들로, 이중 몇몇은 30년 이상 꾸준히 예일 카바레의 시즌을 구입하는 최장기 멤버들이다. 5년 이상의 장기 시즌구매자들의 경우, 적게는 몇 십 달러에서 많게는 몇 백 달러에 이르는 기부금을 흔쾌히 기부하는 헌신적인 지지그룹을 형성한다. 입장료와 기부금 수입, 레스토랑 수입 등 수입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카바레의 헌신적인 멤버들이 대부분 예일 레퍼토리 씨어터의 연간회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창작희곡 제작과 고전에 대한 동시대적 해석으로 토니상에서 수여하는 ';탁월한 비영리 지역극장';으로 선정된 예일 레퍼토리 씨어터와 아방가르드적 실험과 도전을 수행하는 예일 카바레가 뉴헤이븐 지역주민을 두고 서로 다른 타겟 관객을 확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Electronic City>(2006) <Brand>(2007)

예일 카바레에서 매주 새롭게 올라가는 프로덕션은 [뉴헤이븐 애드보킷](New Haven Advocate) 같은 지역신문사의 전문기자가 공연을 관람하고 신문에 평론을 게재한다. 이들은 시즌이 바뀌면 누가 카바레의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와 매니징 디렉터를 맡게 되며, 어떤 프로그램으로 시즌이 구성될지에 대한 심층인터뷰를 지면에 소개할 만큼 카바레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술적 성취도가 비평가들의 관심과 관객의 애정을 성공적으로 만나는 경우, 카바레는 지역신문에서 예일 레퍼토리 씨어터도 얻지 못하는 &lsquo;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지역극장&rsquo; 타이틀을 부여받기도 한다.


&lsquo;예측 불가능성&rsquo;의 매력

2002~2003년에 실시한 회원설문에 의하면, 카바레 관객들은 프로덕션의 &lsquo;예측 불가능성&rsquo;과 &lsquo;실험성&rsquo;, &lsquo;프로덕션과 공연자의 질&rsquo;, (50분을 결코 넘지 않는) &lsquo;러닝타임&rsquo; 등을 카바레의 매력으로 꼽은 바 있다. 예일 카바레의 연간 시즌은 가을 시즌과 봄 시즌으로 나누어 각 10개 프로덕션으로 구성, 모두 20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시즌 프로그램은 아티스틱 디렉터와 매니징 디렉터,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다섯 명 내외의 예술자문단에 의해 선정되며, 후보작들을 오픈콜로 신청 받는다. 신청자격은 드라마스쿨 학생 및 스태프, 예일대 학부 및 타 대학원생, 외부 예술가들에게 모두 열려있다.

카바레 스테이지에 오르는 작품들은 인종, 국가, 페미니즘, 젠더이슈와 같이 아이덴티티에 관한 것에서부터, 현대 미국인의 삶과 사회적 이슈에 관한 비판, 다국적인 드라마스쿨 학생들의 배경에서 기인하는 개별 역사, 사회ㆍ문화적 텍스트, 고전에 대한 초현대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카바레는 이들 프로덕션에 대해 125 달러(2002-2003 시즌 기준)의 제작비를 지원했다. 이처럼 프로덕션 제작경비가 저렴할 수 있는 이유는 드라마스쿨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존 세트, 의상, 소품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의 저장창고(warehouse)는 학생들이 프로덕션을 올리기 위해 반드시 사전 방문하고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무대, 의상, 소품은 대부분 창고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활용하고 있다. 의상에 대해서는 드라이클리닝 비용만을 실비로 지원한다.

<Bone Songs>(2006)2008~2009 가을 시즌과 봄 시즌 멤버십은 일반이 65달러, 학생이 45달러로 각각 판매되었으며, 시즌 멤버십을 구입하지 않고 예약이나 현장 구입을 할 경우 개별 티켓이 일반 15 달러, 학생 10달러로 판매되었다. 카바레 스테이지는 매주 프로덕션이 교체되며, 목요일 1회(저녁 8시), 금요일과 토요일 2회 공연(저녁 8시, 11시)으로 총 5회 공연이 올라간다. 풀코스 음식이 서비스되는 것은 1회 공연에 한하며, 2회 공연의 관객들은 스낵과 디저트, 주류와 음료를 즐길 수 있다. 매주 예기치 못할 변화무쌍한 작업이 올라가는 프로덕션에 비해 레스토랑은 전문 요리사의 음식을 각종 주류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카바레의 또 다른 매력이다. 레스토랑의 메뉴는 공연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매주 교체되는데, 무대에 올리는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특성과 개성을 살린 메뉴를 만들어 레스토랑 수입을 올리기 위해 매니징 디렉터는 매주 요리사와 긴밀히 협의한다. 예일 카바레에서 근로의 대가로 급료를 받는 사람 중 학생이 아닌 외부인은 레스토랑의 요리사가 유일하다.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산실이 되었던 지난 세기의 모습에 비해 오늘날 카바레는 형식적 명맥만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프랑스에서 수학한 자유극단 대표 이병복, 화가 권옥연 부부가 1969년 충무로에 문을 연 &lsquo;까페 떼아뜨르&rsquo;가 카바레와 가장 가까운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김정옥 연출)로 문을 연 까페 떼아뜨르는 개관 두 달도 안 되어 공연법과 보건법 위반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이유는 찻집과 경양식 집으로 영업허가를 받은 공간이 연극을 하는 것이 부적합하며, 공연장이라면 법규상 필수적으로 구비해야 할 화장실 규모와 관련 소방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연극계 중진 24명의 진정서 제출로 구명된 까페 떼아뜨르는 싸롱드라마, 모노드라마를 유행시키고 1975년 문을 닫았다.





필자소개
정순민은 이화여대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근무하던 중 삼성 멤피스트 장학생으로 뽑혀 예일대 드라마스쿨에서 극장경영을 전공했으며 2002~3년에는 예일 카바레 매니징 디렉터로 일했다.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 공연전시팀장, 인사미술공간 프로젝트 매니저, 아르코지원컨설팅센터 기획실장을 거쳐 현재는 프로젝트 그룹&reg;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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