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환경의 변화에 따라 공연예술 시장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유통구조만을 보더라도 불과 십 수 년 간 극장 이외에 축제, 국제적 견본시 등 새로운 역할이 대두되고 그 비중이 변화하고 있다. 또한 제작자본의 다변화, 공동제작 등 제작환경의 변화와 시장변화가 맞물려 있기도 하다. [weekly@예술경영]은 제작, 유통을 중심으로 공연예술시장의 움직임을 살핀다. 연재순서: ② 공동제작
극장, 축제 등의 공동제작은 제작비 분담, 위험의 투자 분산 등에서 비롯되지만 유통 활로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특히 공공극장의 공동제작은 제작방식의 변화가 유통의 변화로 이어지는 매우 주목되는 사례이다.



최근 국내 공연계의 주요한 변화를 꼽는다면 극장의 역할로 제작이 주목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에 문을 연 명동예술극장, 서울문화재단의 남산예술센터는 공공극장이 대관 위주로 운영되어왔던 것과 달리 제작극장을 표방하고 있다. 앞서 아르코예술극장은 예술감독제를 도입하고 기획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방식이 변화했다. 두산아트센터, LG아트센터, 극장 이다 등 다양한 규모의 민간극장에서도 제작을 시도하거나 제작 프로그램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공연계 제작환경 변화에 일정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연출가나 극단의 대표에서 극장의 프로듀서나 코디네이터로 창작주체의 무게중심이 이동해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극장의 기획력과 제작여건, 시스템이 공연제작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커지면서 극단을 중심으로 한 창작단위를 넘어 개별 창작자들의 이합집산이 국내 공연계에 확대되는 양상이다. 극장이 공연물을 상연하는 단순한 장소적 기능을 넘어 제작, 기획 등의 역할로 확장되고 있으며 극장들에 의해 최종적으로 관객들과 만난다는 의미에서 공연계 지형도에서 극장은 제작과 유통의 주요 거점으로 자리하게 된다.


명동예술극장, 남산예술센터




공동제작 사례


극장을 중심으로 한 제작환경의 변화는 극장간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기획, 공동제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서 언급한 극장의 새로운 역할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 조성된 문예회관이나 신설되는 공공극장들이 늘어나면서 전국문예회관연합회(이하 전문연)나 경기지역문예회관연합회(이하 경문협) 등의 극장협의회가 활성화되었던 데에서 비롯된다. 한편 공동제작은 제작방식의 변화를 넘어 새로운 유통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1996년도부터 실행된 전문연의 우수프로그램 공동제작 사업을 보면 첫해 9개 지역 10회 공연에 불과했던 사업의 규모가 2004년도에 이르러서는 61개 지역 130회 공연으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이고 있다. 양적인 성장이 곧 질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면면을 보면 여러 장르에 걸친 다양한 양질의 공연을 제작하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이는 이후 더욱더 집중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경문협의 공동제작, 부산-경남 권역의 공동제작, 해외를 포함한 외부단체와의 협력을 통한 공동제작 등으로 기획자, 제작자, 예술인, 예술단체, 공공극장 간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오페라<사랑의 묘약>(2009) 대전예술의전당, 고양문화재단 공동제작지역 문예회관들의 공동제작이 좀더 활기를 띠게 되는 것은 경문협에서 2005년 제작한 락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이다. 경기도 내 문예회관들이 공동제작방식으로 제작한 이 작품의 경우도 지금의 극장들 간의 협업이 이루어진 배경과 비슷하다. 이후 경문협에서는 오페라 <나비부인>(2006)과 가족뮤지컬 <개구리왕자>(2007)를 제작했다. 10월에 공연될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고양아람누리와 대전예술의전당, 대구오페라하우스의 3개 극장 합작공연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의정부예술의전당과 하남문화예술회관, 노원문화예술회관의 오페라 <베르테르> 역시 3개 극장이 공동제작방식을 취하고 있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공동제작 이전에 이미 고양아람누리와 대전예술의전당은 오페라 <토스카>(2008)와 연극 <오셀로>(2009)를 공동으로 제작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렇게 공동제작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는 것은 제작비에 대한 공동출자 등으로 제작비에 대한 부담과 투자위험을 나누는 한편 해당 지역에 적합한 콘텐츠 수급을 위한 프로그램 확보라는 이유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문예회관 형태의 공연장들이 많아지면서 극장에서 가동될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공연계 안팎의 인식이 높다. 또한 서울에 집중된 공연문화의 흐름에서 균형감을 이루려는 극장 간의 경쟁의식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쟁을 동반자적 파트너로서 서로에 대한 입장을 공유하려는 것이 지역 공공극장들의 협업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한다.


한편 극장만이 아니라 축제에서도 공동제작이 시도되고 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두산아트센터, 과천한마당축제와의 협업을 통해 프린지페스티벌에 참여한 작품의 향후 유통경로를 마련하고 있다. 축제들 간의 공동기획 내지 공동제작 방식의 경우도 극장 간의 협업과 유사하게 작품의 유통 활로를 마련하는 측면이 크다. 최근 아비뇽페스티벌이나 해외 유수의 축제에서도 주빈 초청 등 축제의 명성을 통한 작품의 유통활로를 기획해서 공연제작에 앞서 미리 투자안을 제시하는 것 내지는 파트너를 만드는 축제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극단 몸꼴 <다시 돌아오다> 2009 안산거리극축제, 과천한마당축제, 고양호수예술축제 공동제작


제작과 유통이 연계되는 또 하나의 주목되는 예는 전문연의 창작팩토리 사업이다. 이 사업은 공공기금의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여건을 마련은 물론 재공연 등 제작 이후 유통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창작팩토리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심사 등을 통해 사업이 진행되는 만큼 제작의 기본 단위는 예술단체이며 전문연은 지원사업의 시행주체이다. 하지만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전문연이 연합회 소속의 회원 극장들에게 작품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공연을 지원하는 것은 제작지원이 유통과 연계되었음을 보여준다. 창작팩토리와 같은 지원 사업은 공공분야가 공연계 유통에 적극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공동제작의 잠재력


그간의 공연기획사, 공연제작사, 예술가, 예술단체, 축제 등이 공급의 축이었다면 공공극장, 사설극장, 일반 관객 등이 수요의 축이었다. 이상적인 제작의 역할은 기획부터 제작, 유통의 전 과정을 컨트롤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기획제작자들은 개인사업자인 관계로 위험 회피형 투자를 선호하게 되므로 장기적 투자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예술가나 예술단체들도 스스로 기획하거나 제작비의 일부를 지원받거나 혹은 기획사의 도움을 받아 공연제작을 하고 있다. 공공극장의 경우는 조금 나은 듯 보이지만 실상은 전문 인력 및 사업예산의 부족으로 직접제작방식, 초청공연방식, 기획대관, 순수대관 등의 방식으로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대관과 같은 단기처방의 부작용 등을 극복하고 장기적 안정적인 프로그램 운영의 필요가 강하게 요구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요구가 공연계 제작환경의 변화를 유도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나마 공공극장은 전문연을 통한 네트워크가 공고하고 전문인력의 확충을 위한 인프라가 있으며, 상주예술단체가 있는 극장도 있고, 공연 전반에 관한 정확한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다. 예산 역시 재정자립도의 강화나 손실보전분에 대한 국가나 지자체의 보조, 기금의 확충 등을 통해 해결해 나간다면 공공극장이야말로 최선의 제작환경을 가진 수요자임과 동시에 공급자로서 일차적으로 문화상품을 소비하면서 일반 향유자들에게는 양질의 공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공공극장의 이러한 가능성은 공연계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 예술단체와의 협력, 타 공공극장과 공동기획 구매&middot;제작&middot;배급&middot;프로그래밍&middot;회원공유,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한 친밀감과 관심의 증대를 유도할 수 있다.

극단 백수광부<미친극> , 놀땅<1동83번지, 차숙이네> 2009창작팩토리 시범공연 지원사업 쇼케이스 (8월21일)


공공극장의 공동제작이 유통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도 공공극장의 이러한 잠재력에서 비롯된다. 공동제작은 공공극장이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정립해가는 과정에서 유통을 비롯한 극장의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는 매우 유용한 시험장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중적이라 기대할 수 있는 뮤지컬이나 큰 제작규모로 인해 단독으로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오페라 등에 한정되어 있는 공동제작 사례들이 좀더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




염혜원

필자소개
염혜원은 연극학을 전공했고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월간 [한국연극] 편집팀장으로 근무했으며 최근에는 공연, 미술, 건축 분야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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