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은 젊은 분야이다. 그만큼 변화가 크고 빠르며 해외 예술경영 정보도 다양한 채널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각국의 예술계, 예술경영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weekly@예술경영]은 창간 1주년을 맞아 ‘이슈로 보는 세계 예술경영’을 마련했다. 독자 여러분이 구체적인 현안을 통해 각국 예술경영계의 현  단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더불어 세계 예술경영의 흐름을 그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 연재순서: ② 미국
전통적인 예술 소비자와 예술 공급자 간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 이제 예술 소비자들은 좀 더 참여적인 형태의 예술적 경험을 추구하는 셀프 큐레이터가 되어가고 있다. 즉 비공식적이고 아마추어적이며 적극적인 소비자들의 참여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예술 공급자 역할을 하는 예술가와 예술단체들의 역할도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



미국은 현대적인 의미의 예술경영이 처음 시작된 나라다. 하지만 그런 미국조차도 예술경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이에 기초한 전문인력 양성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 이후로 이제 겨우 반세기를 이어오고 있다.


현대적인 예술경영이 태동한 1960년대의 미국은 오늘날과 매우 다른 환경이었다. 2차대전 이후 이어져온 긴 호황을 바탕으로 러시아와의 냉전과 체제 경쟁이 지속되는 상황이었고, 이 과정에서 미국공보원(USIA) 등을 통한 전략적 예술지원이 이루어졌다. 또한 케네디 대통령부터 시작된 국가 차원의 예술지원 정책 논의가 결실을 맺어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NEA)이 설립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 포드, 록펠러, 카네기멜런 등 일련의 성공한 기업인들이 설립한 대규모 재단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예술 분야를 비롯하여 사회 각 부문에 대한 지원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국가와 사회로부터의 예술지원이 본격화하면서 외부로부터 투입된 자원의 효율적 활용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기 시작했으며, 좀 더 정교하고 세련된 방식의 경영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내외부의 요구를 바탕으로 경영학, 행정학, 경제학 등 인접 분야의 연구성과들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예술경영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발전 기반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몇몇 대학이 시작한 예술경영 교육은 꾸준히 확산되어 이제는 40여 개 대학에서 예술경영 관련 전공과정을 두고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이후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며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아울러 예술에 대한 지원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예술계도 질적으로 그리고 양적으로 꾸준한 성장을 지속해왔다. 하지만 1989년 메이플소르프와 시라노의 전시에 대한 국립예술기금의 지원이 외설 예술에 대한 지원 시비를 겪으면서 미국 사회는 이른바 문화전쟁(Culture War)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연 국가가 예술가나 예술작품을 선별하여 지원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문화 등 온갖 층위에서 전개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국립예술기금은 엄청난 타격을 입은 채, 결국에는 1995년에 이르러 대학살로 일컬어지는 40% 이상의 조직 축소와 예산 축소를 겪게 된다.


이후 국립예술기금은 이전의 장르별 예술 지원에서 탈피하여 지원정책의 중점적인 방향을 예술교육 확대, 예술에 대한 접근권 신장, 예술단체의 경영 안정화 등 간접적이고 중장기적인 방향으로 대폭 전환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정책 방향은 이전의 정책이 주로 공급 부문에 중점을 둔 것에 비해 수요 창출과 매개 강화에 중점을 둔 것이다. 이로서 미국의 예술정책에서는 예술교육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이후 예술과 예술교육은 뗄 수 없는 하나의 짝으로 여겨지면서 예술 부문과 교육 부문 간의 적극적인 협력과 교류가 이루어지게 된다.




2000년대 새로운 변화들


'American for the Arts'의 연례 컨벤션 행사 모습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 급작스럽게 겪은 9/11은 직접적인 테러 피해만이 아니라 경기 침체와 더불어 미국의 예술계 전반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인구구조 변화와 기술 발전 등 외부 요인의 영향으로 예술환경이 급격히 변화되었고, 이에 따라 이전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여러 원칙과 방법론들에 대한 전면적인 재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5년 여 동안 이루어진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변화 양상은 미국의 예술계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규모 속도로 진행됨으로써 예술계 전반이 이에 대한 위기의식을 크게 느끼고 있다.


이에 미국예술진흥협회(Amricans for the Arts)에서는 기획과 연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에이엠에스(AMS)에 의뢰하여 미국의 예술계가 직면한 변화와 위기의 양상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 에이엠에스에서는 2003~2007년까지 5년간 미국의 예술계가 겪어온 변화 양상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전통적인 예술 소비자와 예술 공급자 간 관계 변화이다. 이제까지의 예술계는 전문예술가 및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비영리 예술단체들에 의해 독점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예술 소비자들이 과거의 수동적이고 관찰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좀 더 참여적인 형태의 예술적 경험을 추구하는 셀프 큐레이터가 되어가고 있다. 즉 제도화되고 조직화된 이전의 예술단체들과 달리 좀 더 비공식적이고 아마추어적이며 적극적인 소비자들의 참여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예술 공급자 역할을 하는 예술가와 예술단체들의 역할도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


둘째,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예술의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이는 주로 예술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논의로 나타나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개별적인 마을이나 도시 단위의 논의와 함께 국가 단위의 논의까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지구적인 연계와 협력 그리고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도시 간, 국가 간 경쟁 또한 격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좀 더 창조적인 지식노동자 계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예술을 통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셋째, 예술단체와 예술산업을 둘러싼 사회 환경의 변화이다.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국가 전체 및 예술단체가 활동하는 지역사회의 인구구조 변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를 바탕으로 큰 어려움 없이 예술계가 성장해온 것에 비하면 현재의 환경은 이전과 전혀 다른 양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1960년대 이후 예술계를 이끌어오던 리더십의 교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지난 10여 년 간의 예술공간 건립 붐의 여파로 인해 만들어진 수많은 예술공간들이 과잉공급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개별 공간 차원에서는 운영난이 가속화되고 있다. 더욱이 여기에 소비자들은 점점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더 똑똑해져가며 예술상품의 제작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와중에 대규모 예술단체는 기존의 내외부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소규모 예술단체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중간 규모 예술단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넷째, 교육 정책의 변화이다. 여기에는 이른바 엔씨엘비(NCLB, No Child Left Behind) 법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법의 취지는 모든 학생들이 교육현장에서 낙오되지 않고 최소한의 학력수준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와는 다르게 교육현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예술 교과의 경우 핵심 과목 중 하나로 선정되기는 했지만, 읽기(국어), 수학, 과학 등의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처하게 됨으로써 시간, 자원, 관심 등의 배분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 정책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교육 간의 생산적 관계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다섯째, 사회 전반의 철학 변화이다. 이는 예술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인식변화를 의미한다. 과거와 달리 예술이 갖는 아우라는 점점 사라지고 경제 불황에 따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예술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점차 축소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미국예술진흥협회가 2005년도에 개최한 ‘전국예술정책라운드테이블’(National Art Policy Roundtable)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1992년도와 2005년도를 비교할 때 미국 내 전체 기부활동에서 예술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8.4%에서 5.2%로 하락하였다. 이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보다는 좀 더 직접적인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자선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예술진흥협회에서는 이러한 다섯 가지 대표적인 양상 외에도 예술작품 제작 기반이 급격하게 변화하여 예술장르, 예술형태, 제작방식, 전달유형 등에 있어서 기존 틀이 붕괴되는 점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비영리예술단체 비즈니스 모델이 그 기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는 창작하는 예술작품의 내용과 그 전달방식에 있어서 이제까지의 전통적인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예술가와 새로운 예술작품의 창조에 대한 지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제기된 과제


이러한 변화 양상에 따라 미국예술진흥협회는 수많은 논의과정을 거쳐 2009~2011년까지의 3년간 실행해갈 전략기획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전략적인 목표를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미국의 예술계가 스스로에 대해 촉구하는 적극적인 변화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리더십의 강화이다. 이는 지식과 경험 및 창의적인 사고로 무장된 새로운 리더들이 예술계 수혈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요구는 비단 예술단체를 이끌어가는 프로페셔널 예술경영인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예술단체의 이사회에서부터 현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로 참여하는 전문적인 혹은 비전문적인 자원봉사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개인들이 예술과 예술교육이 번성하고 좀 더 활력 있고 창조적인 지역사회가 되도록 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둘째, 예술을 위한 자원 확대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에는 예술단체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물적, 인적, 재정적 자원 등 다양한 자원이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이러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공 및 민간 영역에서 예술계를 위해 의미 있는 정책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예술의 가치에 대한 인식 제고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예술교육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예술현장에서는 이와 더불어 예술에 의해 가시적이고 계량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예술이 문화관광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예술의 가치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이 높아질 수 있다.


넷째, 예술단체의 안정적인 운영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침체 및 예술의 창작과 전달방식의 변화에 따라 전문적인 예술단체의 존립기반은 점차 흔들리고 있다. 예술이 무엇이고, 누가 예술을 만들고,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 예술을 전달하는가에 관한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변해가고 있다. 이처럼 재원조성 모델에서 비즈니스 관계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변화된 환경 속에서 예술단체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줌으로써 이들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고 환경변화에 대해 창조적인 도전을 계속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예술협회에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목표 설정과 더불어 예술가와 관객, 즉 예술공급자와 예술소비자 간의 경계, 비영리 예술과 상업 예술간의 경계, 프로페셔널 예술가와 아마추어 예술가의 경계, 공식적인 조직과 비공식적인 모임의 경계가 다 함께 모호해지고 붕괴되는 현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변화된 게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예술계의 역설적 여건


차기 국립예술기금 의장으로 인준된 Rocco Landesman예술계에서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 하원에서는 2010년 국립예술기금 예산으로 1억7천만 달러를 승인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상당히 증액된 수준이다. 적어도 오바마가 이끄는 민주당 정부 하에서는 국립예술기금에 대한 지원 역시 최소한 감액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아울러 미 상원에서는 2009년 8월7일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출신의 로코 랜디스먼(Rocco Landesman)을 국립예술기금 차기 의장으로 인준했다. 이제까지 주로 연극인이었던 제인 알렉산더(Jane Alexander), 작가였던 데이너 지오이아(Dana Gioia) 등 창작 예술가들이 이 자리를 맡아온 것에 비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미국 예술계의 변화된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상에서 미국의 예술경영 현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최근의 주요 이슈를 미국예술진흥협회의 연구조사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우리는 흔히 상식적으로 미국의 예술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나은 지원시스템 속에서 좀 더 편하게 예술단체를 경영하고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이 처한 여건이 우리보다 결코 낫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국가적으로 예술정책의 비중은 훨씬 낮은 편이며, 여러 가지 환경변화에 맞물려 내외부로부터의 변화와 압력도 우리에 비해 훨씬 심한 편이다.


몇 년 전부터 미국예술진흥협회에서 연구발표해오고 있는 보고서 「예술과 경제적 번영」(Arts & Economic Prosperity)는 미국의 예술계가 처해있는 여건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3차까지 진행된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예술은 1,66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활동을 매년 창출해내며, 57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러한 수치라도 제시하지 않으면 예술계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 자체가 위축될 수 있는 여건이 바로 미국 예술계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참고문헌
Americans for the Arts, Monograph: A Time of Change. A Time for Change (April 2009)
Americans for the Arts, National Policy Roundtable - The Arts and Civic Engagement: Strengthening the 21st Century Community (2008)
Americans for the Arts, Strategic Plan 2009-2011
AMS Planning & Research, Americans for the Arts Environmental Scan (December 2007)
AMS Planning & Research, Renegotiation: An Overview of U.S. Arts Industry Insights, 2003-2007
Bill Ivey, arts, inc.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8)




용호성

필자소개
용호성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 아메리칸대에서 예술경영학 석사, 경희대에서 예술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 예술교육연구센터에서 객원연구원을 하였으며, 뉴욕대 미술품감정사 전문과정을 수료하였다. 월간 [객석]의 음악평론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국무총리실 문화체육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역서에『예술경영 어떻게 할 것인가』『예술경영』『컬덕시대의 문화마케팅』『예술단체의 재원조성』『전석매진: 필립 코틀러의 공연마케팅 전략』『공연예술 전문인력 구조와 정책 지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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