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은 젊은 분야이다. 그만큼 변화가 크고 빠르며 해외 예술경영 정보도 다양한 채널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각국의 예술계, 예술경영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weekly@예술경영]은 창간 1주년을 맞아 ‘이슈로 보는 세계 예술경영’을 마련했다. 독자 여러분이 구체적인 현안을 통해 각국 예술경영계의 현  단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더불어 세계 예술경영의 흐름을 그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 연재순서: ⑥ 영국
신노동당 집권 12년간의 문화, 예술적 토양은 훨씬 풍족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 그리고 예술경영인들은 엄밀히 말하면 대처와 블레어의 문화정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영국의 문화정책이 여전히 예술적 우수성과 질보다는 그것이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역할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신노동당이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을 과반수가 넘는 지지로 압승하면서 집권을 시작한 후, 블레어의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내세운 사회 곳곳의 개혁노선은 비단 사회, 정치,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기존의 늙고 보수적인 영국의 이미지를 과감히 바꾸기 위해 블레어는 ‘창조적인 영국’(Creative Britain) ‘멋진 영국’(Cool Britannia)을 정책 슬로건으로 내세워 창조산업과 창조교육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인 영국, 젊은 영국을 만드는데 주력했고, 이러한 배경 하에 문화의 중요성은 문화예술계를 넘어 영국의 정책 곳곳에서 드러났다.


영국 문화행정 역사상 처음으로 ‘문화’라는 이름이 들어간 관할부서가 생긴 것도 이때부터였다.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하는 문화미디어체육부(Department Culture, Media and Sport)가 창설되면서, 영국의 문화 관련 예산은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늘어난 문화예술 관련 정부 지원금, 문화예술 지원책은 역대 정부 중 최고를 기록했고, 토니 블레어는 집권 10년째였던 2007년, 현대 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의 연설 중 영국 문화의 황금기가 도래했다고 자축하기도 했다. 그 어느 시기보다 문화예술경영이 주목 받던 신노동당 집권 12년이 지난 지금, 그러나 블레어의 주장대로 과연 문화예술의 르네상스가 왔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더군다나 이제까지 영국형 예술경영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인식되었던 영국 예술위원회, 아트 카운실 잉글랜드(Arts Council England)의 정책적 실패에 대한 비난과 이에 따른 폐지론까지 거세게 일고 있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 예술의 본질적 가치,
신노동당 문화정책에 대한 논란


신노동당 집권 이후 영국 문화정책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회적, 경제적 효과에 입각한 문화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의 당 정책 이념인 ‘다수를 위한 정치’와 궤를 같이 하는 특징이기도 하고, 현대 사회에서 다양화된 문화적 가치와 이에 따른 예술적 가치 판단의 어려움을 반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적 상대주의가 지배적 문화이론으로 자리 잡은 21세기에, 작품의 주관적인 판단만으로 공공의 자금을 예술 지원에 사용하는데 부담감을 느낀 정부가 보다 객관적인 방법, 즉 뚜렷한 수치를 바탕으로 한 문화의 영향을 예술지원의 필수 요소로 요구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공익 자금을 받는 예술은 소수가 아닌 다수가 즐기고, 참여하는 것이어야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로써 예술의 접근성이 예술 지원의 중요 기준이 되었다.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십(Creative Partnership) 브로슈어 표지.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십은 신노동당의 대표적인 창의교육 프로그램으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약 3천억 원 가량의 공공자금이 투입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배경 하에 문화 예술은 사회 통합의 주요 매개로 활용되었고, 창의교육 역시 사회의 소외된 계층들이 차별 없는 교육을 받도록 하는데 집중되었다. 신노동당 집권 이후 다양한 제도적 뒷받침으로 괄목할만하게 확대된 문화의 접근성과 늘어난 문화 예산, 문화의 다양성과 창의교육으로 인한 사회통합 정책, 그리고 복권기금을 활용한 문화 인프라스트럭처의 확대는 영국 문화예술 환경을 변화시키고, 사회 곳곳에 다양한 문화 담론과 문화에 대한 가치를 향상시켰다. 그러나 예술 지원의 원칙이 예술적 우수성에 앞서, 정부의 주요 문화정책을 충족시키는데 맞추어 지다 보니, 예술의 자율성을 해치고, 예술의 질적 우수성을 등한시 한다는 비판도 거세게 일어났다. 특히, 예술가들의 입장에서는 예술창작보다는 자신들의 작품이 사회나 경제에 공헌한다는 점을 수치화 하고 입증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고서 작성에 할애해야 했다. 또한 전반적인 예술 지원금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을 예술교육 관련 업무에 사용하느라 결국 예술창작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금의 확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불만을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논란

테이트 모던(Tate Modem)
사회 통합과 더불어 신노동당은 문화예술이 가져올 수 있는 경제적 이익에 주목하였고, 이에 공연, 영화, 미디어, 미술, 게임, 소프트웨어 등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산업을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으로 정의하며 국가 경제 활성화의 첨병으로 육성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사업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더욱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와 리노베이션이 영국 전역에서 진행되었는데, 뱅크사이드(Bankside)의 오래된 발전소를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으로 변모시킨 것을 위시로 런던의 많은 오래된 건물들이 아트 빌딩으로 그 모습을 새롭게 했다. 또한, 폐광지역을 대규모 온실지구로 만든 콘월(Cornwall)의 에덴프로젝트(Eden Project), 맨체스터 부근 저개발 지역에 설립한 대규모 아트 콤플렉스 로리센터(Lowry Centre), 그리고 리버풀의 유럽문화수도 사업 등 시대의 변화와 이에 따른 산업 구조의 변화 등으로 인해 쇠락한 옛 산업도시나 저개발 지역 등을 문화와 관광산업이 기반이 되는 도시로서 재생시키는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리버풀을 2008년도 ‘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하면서 4년이 넘는 대대적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문화와 서비스 산업이 중심이 되는 도시로 탈바꿈했는데, 이는 중앙 정부와 지역 정부, 민간 기업 등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국가적 사업이었다.


고른 경제발전과 관광객 유치, 일자리 창출, 지역주민들의 자긍심 고취 등의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문화도시재생사업은 그러나 도시 자체의 독특한 문화유산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개발과 이에 따른 지역문화 파괴 그리고 시장 규모를 넘어선 과도한 공간 건립으로 인한 콘텐츠의 부족에 대한 비판도 낳았다. 또한 대규모 쇼핑몰 유치 등 소비지향적 구조로의 탈바꿈은 오히려 생산 활동이 미비한 도시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취약한 산업기반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리버풀만 하더라도 세계 팝 음악의 전설인 비틀즈를 탄생시킬 정도로 독특한 젊은이들의 문화적 전통이 살아있던 곳이며 오랜 이민역사에서 오는 문화적 다양성이 숨 쉬고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2008년 유럽문화수도로 정해진 후, 도시 중앙부를 중심으로 대규모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음반, 공예, 골동품,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던 얼터너티브 마켓 퀴긴스(Quiggins)와 같이 리버풀의 다양한 역사를 공유했던 크고 작은 상점들은 문을 닫아야 했고, 문화수도를 기념해 펼쳐진 대규모 예술 이벤트에서 독특한 리버풀 문화를 만들어왔던 지역 예술가들이 소외되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인가에 대한 비판을 낳았다.


10여년 전 이미 유럽문화수도로서 성공적인 도시재건 사업을 마쳐 ‘글래스고우 효과’라는 신드롬을 낳았던 글라스고우가 최근 리버풀, 맨체스터 등과 함께 여전히 영국 내 가장 경기침체가 심한 곳, 높은 실업률과 범죄율로 인해 가장 살기 어려운 곳으로 선정되면서, 정치적, 경제적 논리로 추진된 도시재건에 대한 비판과 회의도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술의 사회적 효과는 입증될 수 있는가,
아트 카운실에 대한 불신


이전 보수당 시절,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강조하면서 문화에 대한 지원이 크게 위축되고 예술기관들 역시 경제적 자립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난 12년간의 문화, 예술적 토양은 훨씬 풍족해 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 그리고 예술경영인들은 엄밀히 말하면 블레어의 문화정책이 대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영국의 문화정책이 여전히 예술적 우수성과 질보다는 그것이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역할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신노동당의 사회적, 경제적 효과에 천착한 문화정책이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순수성, 그리고 작품의 질적 수준을 저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예술의 본질적 가치가 예술 그 자체가 가지는 근본적인 목적, 즉 예술 작품 자체로서의 가치와 또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 희열, 만족도라고 할 때 과연 작금의 영국 문화정책이 이러한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우수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이로운 정책이었는가에 대한 회의였다.


0밀레니엄을 맞아 새롭게 돔 형식의 천정을 만든 영국 대영박물관.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문화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01년 12월부터 영국 내 모든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의 무료입장 정책을 펴고 있다.


그간 문화의 사회적, 경제적 효과를 증명하려는 신노동당의 보고서와 또 그에 반하여 뚜렷하게 성과를 증명해낼 수 없는 부분에 너무 많은 공적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는 비난이 팽팽하게 대립하여 왔다. 이 안에서 당장 예술가들은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침해와 평가기준의 불공정성에 대해 불만을 쌓아갔고, 급기야 예술지원금의 심사 및 집행기관인 아트 카운실에 대한 회복할 수 없는 불신과 회의를 갖게 되었다.


지난해 영국 문화미디어체육부(DCMS)의 의뢰로 브라이언 맥마스터(Brian McMaster)가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예술 지원의 기준이 타깃 중심의 사회적 가치 제고에서 탈피하여 예술의 우수성(excellence)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 예술계로부터 모처럼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보고서가 발표되기 직전, 아트 카운실에서 2008년도 예술지원금 수혜 단체의 수를 갑작스럽게 200여 단체 줄이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이에 분개한 예술가들이 아트 카운실을 불신임하는 투표를 단행하면서 그간의 불만을 쏟아내는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결국 예술가들과 언론의 거센 비난으로 2008년도 예술지원금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선회했지만, 아트 카운실의 권위와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급기야 올해 4월, 이미 영국예술지원의 공정한 기능을 충실하게 이행하는데 한계를 보이는 아트 카운실 잉글랜드를 폐지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신문화포럼을 통해 발표된 마크 시드웰(Marc Sidwell)의 ‘파국에 이른 아트 카운실’(The Arts Council: Managed to Death)은 아트 카운실에 대한 문제를 조목조목 짚으며 근본적 개혁을 주장하면서 예술경영계에 큰 화제를 모았다. ‘팔 길이 원칙’이 무색하게끔 예술적 가치보다는 정치적 가치로 좌우되는 지원체계의 한계, 증가된 정부의 아트 카운실 예산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예술 외적인 부분에 대한 비용증가, 예컨대 대외 홍보비와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의 증가, 그리고 실패한 정책적 결정으로 인한 공적 자금 낭비 등을 지적하며, 이미 조직 개편만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아트 카운실을 대신할 새로운 조직의 출현이나, 중앙집권적 아트 카운실을 대신하여 지역 아트 카운실이 다양한 가치와 예술적 비전을 담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영국 예술경영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들을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문화예술위원회의 모델이 영국의 아트 카운실이라는 점과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창의교육과 창의산업, 그리고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지원을 둘러싼 논쟁은 전 세계,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 필연적으로 주관적 시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예술의 우수성을 예술 지원의 단 하나의 기준으로 가져간다는 것은 공공 자금 집행이라는 막대한 책임을 가진 정부의 입장에서 손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 본원적 가치는 있는 법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영국의 상황은 과연 균형 잡힌 예술경영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현정

필자소개
이현정은 영국 워릭대학교 문화정책과 경영(European Cultural Policy and Management) 석사과정 중에 있으며, 1995년부터 공연기획업무를 해오고 있다. 현재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장으로서 2000년 LG아트센터 개관 이래 기획공연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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