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은 젊은 분야이다. 그만큼 변화가 크고 빠르며 해외 예술경영 정보도 다양한 채널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각국의 예술계, 예술경영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weekly@예술경영]은 창간 1주년을 맞아 ‘이슈로 보는 세계 예술경영’을 마련했다. 독자 여러분이 구체적인 현안을 통해 각국 예술경영계의 현  단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더불어 세계 예술경영의 흐름을 그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 연재순서: ⑦ 독일
최근 5년여 동안 연방정부 차원의 문화예술 지원예산은 10% 이상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왔고, 2010년에도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유럽 통합 이후 주도적인 역할을 위해 노력해온 독일 정부가 문화예술을 단순히 지원의 대상이 아닌 '미래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로 간주하며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햇수로 정확히 20년 전인 1989년 12월 25일,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당시 동베를린에 위치한 샤우슈필하우스(Schauspielhaus)에서 동ㆍ서독 및 분단 당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음악인으로 구성한 대규모 연합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솔리스트들을 이끌고 축하 연주를 가졌다. 베토벤의 나인 심포니 4악장 가사 가운데 ‘환희(Freude)’를 ‘자유(Freiheit)’로 바꿔 부른 이날 연주회는 음반으로 남아 아직까지 당시의 열띤 분위기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베를린은 도시를 둘로 나눈 장벽의 붕괴를 축하하는 음악회로 통일 독일의 새로운 수도이자, 유럽의 새로운 중심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화려한 등장을 알렸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베를린은 또다시 해외 음악잡지의 기사거리로 등장했다. 이번에는 막대한 통일 비용으로 신음하던 베를린 시당국이 문화예술 지원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베를린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던 세 개의 국립오페라극장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사했던 것이다. 거의 재정파탄 지경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던 시당국의 고충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당시 이 소식은 음악인과 애호가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10여 년이 흐른 얼마 전, 베를린은 문화 명소의 하나인 ‘박물관 섬(museuminsel)’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와 증축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연방정부가 재정으로 지원한다는 소식으로 또 다시 매스컴을 탔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여파 속에서도 문화 예술 예산을 비교적 큰 폭으로 늘려온 독일 연방 정부의 의지와 자부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베를린 박물관 섬의 현재 모습(좌)과 전면개보수 후 조감도(우)



총선 후 정책 변화? 아직은 시기상조


지난 9월 27일 치러진 독일 총선 결과는 정치 지형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어느 정도 예측은 나왔던 터지만 결국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과 기사당 그리고 자민당의 보수연립정부 출범이 예상되는 가운데, 그동안 대연정 파트너였던 사민당의 참패와 녹색당, 자민당, 좌파당이 각각 10% 이상의 득표율로 약진한 것이 두드러졌다.


통독 이전부터 헬무트 슈미트-헬무트 콜-게르하르트 슈뢰더-앙겔라 메르켈로 이어오며 권력을 주고 받아온 기민당과 사민당은 그간의 대연정으로 인하여 정책의 차별화가 희석되었다는 것이 중론인데, 문화예술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기민당의 입장에서는 연정의 파트너가 상대당인 사민당에서 좀더 우경화 경향의 자민당으로 바뀜에 따라 어떤 정치색깔을 띠게 될 지는 앞으로의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독일 사회의 느려 터진 변화 속도를 감안하면 단기간의 문화적 이슈 등장이나 정책의 변화를 감지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연방정부의 문화부 장관격으로 최근 수 년 간의 문화 예술 예산 확대의 일등공신인 베른트 노이만(Bernd Neumann)의 유임이 점쳐지며, 독일의 문화예술위원회격인 쿨투어라트(Kulturrat)www.kulturrat.de를 이끌고 있는 올라프 짐머만(Olaf Zimmermann)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듯 아직까지는 변화의 파고는 아주 낮아 보인다.




최근 5년 10% 이상의 가파른 증가세


문화예술 활동을 뒷받침하는 예술경영에는 법과 제도, 인프라, 콘텐츠와 프로그램, 재원, 전문인력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베를린의 최근 사례처럼, 독일뿐만 아니라 여느 국가의 문화 예술 정책 현안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보자면, ‘재원의 안정적인 확보, 효율적인 분배’로 귀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 ‘경영’이란 용어자체부터 일정 정도 경제적 가치를 전제로 깔고 있는 개념이 아닌가.) 즉, 문화예술과 관련한 재원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늘려나가고, 어떤 관점과 기준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하여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통독과 관련한 이슈는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이 논의되고 있지만, 적어도 경제적인 비용 측면에서는 세계 각국의 우려 섞인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잘 버텨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유럽 연합 최고의 경제 대국 독일을 비켜가지 않았다.


최근 5년 여 동안 연방 정부 차원의 문화예술 지원예산은 10% 이상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 왔고, 2010년에도 같은 추세가 지속될 거라는 소식이다. 여기에 경제 위기와 함께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타계하기 위한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Konjunkturpaket)의 일환으로 대규모로 투여되는 재원 가운데 문화 예술에 간접적으로 지원될 예산도 상당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여전히 긍정적인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문화예술계에는 당분간은 희소식임에 틀림없다. 참고로, 특이한 점은 지방정부와 연방정부가 각각 부담하는 문화예산 비율이다. 연방정부의 예산 지원은 대규모 재원이 필요한 큰 프로젝트에 한정될 경우가 많고, 대부분 예산부담은 주정부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연방정부의 주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문화예산 지원은 3% 이내라는 통계가 제시되어 있다.



문화예술 예산 우선순위 높아


개보수를 앞두고 있는 베를린 축제극장


최근 2~3년간 독일 연방 정부와 문화위원회의 문화 예술 지원 계획을 보면, 우리의 문화 예술 지원 예산처럼 ‘어떠어떠한 대규모 프로젝트에 몇 억 유로’와 같은 식이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연방정부의 문화 예술 지원은 주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 프로젝트 위주이기 때문이다. 이는 낙후된 문화 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 박물관 소장품 개선 등 유지보수 사업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미래의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베를린 박물관 섬 프로젝트(2015 Museuminsel Berlin), 독일 디지털 도서관(Deutschen Digitalen Bibliothek), 독일 음악산업 및 교육을 지원하는 이니티아티베 무지크(Initiative Musik), 프로이센 문화유산 재단(Stiftung Preußischer Kulturbesitz) 등이 그렇다. 또 베를린 축제극장(Berliner Festspielhaus)과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Martin Gropius Bau)의 보수 지원 등은 경기 부양책 예산 중 문화 예술에 투여되는 지원 프로젝트로 예정되어 있다. 유럽 통합 이후 주도적인 역할을 위해 노력해온 독일 정부가 문화 예술을 단순히 지원의 대상이 아닌 ‘미래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로 간주하며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일의 문화예술 정책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투자이다. 앞서 언급한 베를린에 관한 에피소드에 덧붙이자면, 최근 국내 언론에서도 주목받아온 빈곤층 청소년 대상 음악 교육 프로젝트,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통하여 성장했고, 어린 나이에 베를린 필까지 지휘한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의 사례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바다 건너 남미 베네수엘라 사례이지만, 독일의 문화예술 교육은 오히려 이보다도 탄탄한 청소년 문화예술 교육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학교 밖 박물관, 문화의집, 뮤지컬 극장 등 다양한 문화 시설, 문화교육단체, 청소년 대상 예술학교 등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분야의 문화 예술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에게 방과후 프로그램 또는 학교 밖 사회교육 프로그램으로 제공된다. 프로그램 운영에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재원이 지원됨은 물론이다.


0구스타보 두다멜 내한 공연 연습 장면


문화경영(Kulturmanagement), 보다 넓은 외연


예술경영 분야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비교적 그 역사가 짧고 아직 저변이 넓다고 보기는 어렵다. 분류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독일어권 전체로 20여 개 대학에 관련학과가 개설되어 있으나, 국내에서의 관심은 영미권은 물론 이웃한 프랑스보다도 저조하다. 특이한 점은 영미에서 출발한 ‘예술경영(arts management)’ 개념보다는 ‘문화경영(Kulturmanagement)’이라는 개념과 용어가 독일에서는 좀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예술의 경영적 측면이라는 상대적으로 협소한 개념보다는 ‘문화’로 포괄할 수 있는 보다 넓은 외연을 다루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문화예술 교육 차원에서도 ‘개인’보다는 ‘사회’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여러 정책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담론의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논의와 성찰은 깊어질 수 있다.


격동과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는 독일의 저력에는 문화예술이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유럽연합 최고의 경제대국일지라도 문화예술 재원이라는 파이는 한정될 수밖에 없고, 이와 같은 분배의 효율성에 대한 논의는 언제든 다시 이슈화되고, 또 반복될 것이다. 이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문화와 예술이 정치, 경제와 맺고 있는 숙명적인 관계가 아닐까. 단지 얼마만큼 경제 논리에 휘말리지 않는 든든한 뿌리와 논의 구조, 사회적인 합의가 존재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박남진

필자소개
박남진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공연을 전공했다. 예술의전당 공연기획, 홍보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했으며, 메타기획컨설팅 문화사업팀장, 전국문예회관연합회 사업팀장을 지냈다. 성공회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화여대에 출강한 바 있으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기획홍보팀장, 학교교육팀장을 거쳐 현재 경영혁신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