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은 젊은 분야이다. 그만큼 변화가 크고 빠르며 해외 예술경영 정보도 다양한 채널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각국의 예술계, 예술경영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weekly@예술경영]은 창간 1주년을 맞아 ‘이슈로 보는 세계 예술경영’을 마련했다. 독자 여러분이 구체적인 현안을 통해 각국 예술경영계의 현  단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더불어 세계 예술경영의 흐름을 그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 연재순서: ⑧ 러시아
최근 문화부 예산의 증액 등은 푸틴 정부가 강조하는 '러시아 정부의 자존심'이 만들어낸 문화예술 프로젝트이다. 볼쇼이극장 리모델링, 마린스키극장 신관 건축 역시 경제적인 안정과 문화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려는 푸틴의 야심찬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이미 상당한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진척이 순조롭지 못한 두 프로젝트가 자칫 예산 먹는 하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러시아 정부는 매년 650억 루블에서 680억 루블(한화 약 2조 6-7천억 원)이던 러시아 연방정부 문화부의 예산을 2009년인 올해 들어 1,000억 루블(한화 약 4조원)로 증액하였다. 전격적으로 단행된 러시아 연방정부의 문화부 예산 확대는 파격적인 것으로 러시아의 문화예술계를 술렁이게 했다.




문화부 예산 파격적 증액

알렉산드르 압데예프
러시아 연방 문화부 장관인 알렉산드르 압데예프는 2008년 12월 29일 모스크바 ‘베스티’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우선적으로 극장과 도서관, 박물관의 리모델링과 신축에 대해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며, 두 번째로는 문화예술분야 종사하는 예술가와 기획자, 행정가들의 월급을 30% 정도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여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지방의 문화시설 관계자와 예술가에 대한 월급을 올릴 수 있도록 주지사들과 지속적으로 면담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볼쇼이극장의 리모델링 공사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고 밝히며 2010년 말이면 공사가 끝날 것이고 4~5개월의 시험운전기간을 거쳐 2011년에 첨단기술과 최신의 무대, 최상의 안전과 방염 시스템을 갖춘 볼쇼이극장에서 러시아 예술의 자존심인 볼쇼이발레와 오페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또한 마린스키극장은 제3신관(콘서트홀) 개관을 언급하며, 현재 진행 중인 제2신관(공연장)의 건축 안이 변경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초공사(2미터 두께, 18미터 깊이의 쇠파이프를 지반에 고정시키는 일.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기초지반이 약한 늪지대이다)는 건축양식이 바뀐다 하더라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며 변동 없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터 파기공사와 지반공사에 변함이 없다는 것은, 반대로 건축설계는 바뀐다는 강한 뉘앙스를 감지하게 하는데, 극장측은 2010년 공사 완료 후 2011년 ‘백야축제’는 마린스키극장의 제2신관(공연장)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볼쇼이극장 리모델링, 마린스키극장 신관 건축의 난제


전면에 가림막을 하고 공사 중인 볼쇼이극장, 주변정리가 끝나지 않아 가림막을 세운 마린스키극장 콘서트홀 입구


러시아 연방 문화부의 직접지원을 받는 러시아 전역의 60여개의 극장 중 가장 대표적인 모스크바 볼쇼이극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은 지금 건축과 예산 전쟁 중에 있다. 이런 와중에 두 극장의 리모델링과 신축과 관련하여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오페라-발레극장인 볼쇼이극장(GABT, 국립 아카데미 볼쇼이극장의 약칭)은 2005년 7월에 2008년 재개관을 기약하며 대규모의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2005년 필자가 볼쇼이극장을 방문했을 때 아나톨리 익사노프 극장장은 2008년에 재개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노력해야 한다는 모호한 발언을 했으며 실제로 그것은 현실로 드러났다.


총 25억 루블(한화 약 1조원)이라는 연방 문화부 예산을 투입할 예정인 공사는 진척되지 않고 있으며, 이마저도 15억 루블로 예산이 삭감되었다. 익사노프 극장장은 올봄, 2011년 10월 이전에는 볼쇼이극장의 리모델링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압데에프 러시아 연방 문화부장관의 이야기는 희망이고 실제 재개관은 2011년 겨울에나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문화부 내부에서도 실질적인 재개관 시기에 대해 익사노프 볼쇼이 극장장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실질적인 재개관 시기는 더욱 늦어질 수 있으며 공사를 무리해서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기약 없는 볼쇼이극장의 리모델링 못지않게 러시아 공연예술계를 시끄럽게 하는 것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마린스키 극장(GAMT,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아카데미 마린스키 극장의 약칭)의 제2신관 건설 공사이다. 마린스키 극장은 2006년 콘서트홀을 미리 개관하며 공연장 콤플렉스를 구성하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 중에 있다. 극장의 외형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반대가 있기는 하지만 러시아 문화예술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랜드마크로서 공연장 신관 건축 계획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무한한 지지를 받고 시작했으나 현재는 벽에 부딪힌 상태이다.

마린스키극장의 신관공사는 2003년부터 계획되어 2006년 국제공모를 통해 프랑스의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설계안을 선정했다. 현재까지 이미 1천6백억 원이라는 예산을 들여서 터 파기와 바닥 다지기 공사를 포함한 지반공사를 진행 중이다. 공모작 당선 때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에게 찬반 양론을 불러왔던 마린스키극장 신관 건축공사는 마린스키극장에서 설계안의 기술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새롭게 건축안을 공모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솔솔 퍼져 나오고 있다.


마린스키극장 신관 조감도‘황금 지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마린스키극장의 신관은 도시 전체의 미관을 해친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재공모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화 시키고 있다.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는 러시아 연방 문화부장관인 알렉산드르 압데예프와 마린스키극장의 예술총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참석한 ‘페테르부르크의 대화’라는 포럼에서 구체화됐으며, 이 자리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건축적인 괴물’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건축안의 변경을 시사했다. 문화부장관인 압데예프도 마린스키극장의 신관 건축과 관련하여 반드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민과 예술계가 원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여 재공모를 기정사실화 하였다. 이러한 추이는 국제적인 신뢰 관계까지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으며, 특히 일부 러시아인들은 프랑스와의 외교적인 관계를 걱정하고 있다.




푸틴 정부의 야심찬 기획이었으나


러시아를 대표하는 두 극장의 리모델링과 마린스키극장 신관 신축은 전혀 다른 프로젝트이지만 동일선상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똑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 볼쇼이극장의 경우는 문화재로서 볼쇼이극장의 건축과 역사를 그대로 보존한 채 세계 최첨단의 극장으로 탈바꿈 시키려는 것이고, 마린스키극장의 경우는 새로운 랜드마크 건설을 통하여 문화예술의 수도로서의 긍지와 러시아 정계를 주도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들의 힘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기획들은 푸틴 정부가 강조하는 ‘러시아 정부의 자존심’이 만들어낸 문화예술 프로젝트로, 경제적인 안정과 문화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려는 푸틴의 야심찬 계획의 일환이었다. IMF 이후에 유가상승으로 안정적인 국가예산을 확보하며 연임할 수 있었던 푸틴과 메드베데프 대통령 등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행정부는 12년 간 장기집권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안정적인 집권이 예상되고 있다. 이런 정치적 배경을 바탕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아나톨리 익사노프를 볼쇼이극장장으로 앉힌 푸틴은 국민들에게 문화적 자부심을 줄 수 있는 볼쇼이극장의 리모델링과 마린스키극장의 신관 건립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화재의 보존과 세계 최첨단 극장의 건립(볼쇼이극장)이라는 계획과 새로운 시대, 새로운 도시의 랜드마크(마린스키극장)라는 계획은 실질적으로 생각보다 많은 예산이 필요했다. 결국은 연방 예산이 얼마나 투입되느냐에 따라 건축 완공 시기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1조 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될 볼쇼이극장의 리모델링이나, 이미 1천 6백억 원 정도의 예산이 집행되었지만 바닥공사도 마무리 되지 않은 마린스키극장의 신관은 예산 먹는 하마가 될 것이 분명하다.




개관 시기는 기부자들의 손에


초기의 순조로운 분위기와는 달리 유가하락으로 러시아 경제에 먹구름이 끼자 예산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 두 극장의 대규모 공사는 용이하지 않게 되었다. 볼쇼이극장은 정부에게 예산에 대한 해결책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이나 정부의 예산이 순조롭게 집행될 것 같지는 않다. 볼쇼이극장은 새로운 지원책으로 모스크바 시장인 루시코프에게 손을 벌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산 넘어 산이다. 오히려 루시코프 시장은 공사에 대한 감독이나 소음, 분진 문제 등을 문제 삼으며 트집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예정된 1조 원보다 그 규모가 커질 것이 분명하다는 이야기가 공사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마린스키극장 콘서트홀 로비에 있는 기부자 명단. 개인기부자와 다국적 기업의 이름이 보인다.
마린스키극장의 경우에도 연방정부 편성 예산인 3천9백억 원으로는 건설이 불가능하여 연방정부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정부 사이에서 예산에 대한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기부를 통한 건축자금의 마련이다. 이미 마린스키극장 콘서트홀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건립된 바 있다. 2층 로비에는 건축자금을 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개인 후원자, 그리고 후원 기업들의 명단이 보인다.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인 BP(영국의 석유화학회사), 지멘스, 네슬레, JT인터내셔널(일본담배회사) 등과 루코일 등 러시아 기업들의 이름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보여줌으로써 후원자들에게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볼쇼이극장의 관계자는 이미 개인 및 기업의 기부 유치를 위한 업무는 시작되었으며, 일부 선택받은 기업(?)만이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마린스키도 개인과 기업의 기부 없이는 공사가 완료될 수 없다는 분위기로 설계안이 다시 확정되고 나면 새로운 기부활동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볼쇼이극장 리모델링과 마린스키극장의 신관 건축은 기부자들의 손에 개관 시기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러시아의 대표적인 극장인 볼쇼이와 마린스키가 순조롭게 개관하기를 기대해본다.



류상록

필자소개
류상록은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배우가 되고자 1992년에 러시아 모스크바로 유학을 갔다가 극장경영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빠져 상트페테르부르크 연극대학에서 극장경영을 전공하고 귀국, 동숭아트센터 기획실장을 거쳐 현재 국립극장 홍보마케팅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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