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예술경영이 팽창이나 폭발이라 할 만큼 성장했지만, 예산, 시설, 운영인력 등의 문제는 늘 해결되지 않은 채 이리저리 흔들려 왔다. 이제는 여러 예술경영 관련 주체들(협회, 학회, 학교, 기관 등)이 이슈를 만들고 이를 풀어나갈 아젠다를 형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weekly@예술경영]은 창간1주년을 맞아 각국 예술경영 이슈를 통해 세계 예술경영의 흐름을 살피고자 ‘이슈로 보는 세계 예술경영’을 진행 중이다. 이번 좌담은 시야를 집중해 한국 예술경영계를 조망하고자 마련되었다. 한편 1년 전 창간특집으로 진행한 예술경영 전문가들이 말하는 ‘오늘의 예술’에서 진단한 한국예술경영의 현안과 미래를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정책환경으로나 예술경영의 발전 단계로나 변화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 예술경영의 다양한 양상을 짚어봤다.



일 시 | 2009년 10월 22일(목) 오후
장 소 | 대학로 카페 장
사 회 | 김소연 편집장
참가자| 김노암 _ 본지 편집위원, 상상마당 전시감독
박신의 _ 경희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이용관 _ 한국예술경영연구소 소장
정재왈 _ 전 서울예술단 이사장





지난 10여 년의 흐름이 변화하는 시기

사회 먼저 지난 해 창간특집에서 진단한 예술경영 현안과 전망이 여전히 유의미한가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았으면 한다. 창간특집 설문에서 예술경영 전문가들은 예술현장의 현안, 제도 정책에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 발전 가능성이 높은 예술경영분야에 대해 각각 ‘창의력 제고’ ‘정책의 통합적 비전’ ‘예술경영의 세분화와 전문화’라 답했다.


박신의(이하 박) 창간특집에서 드러난 답변들은 참여정부 시절의 기억을 토대로 정리된 듯 한 느낌이 든다. 되돌아보면 지난 10여 년은 문화정책이 활성화되면서 예술경영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격히 팽창한 시기였다. 문화예술 시설 확충과 운영 활성화가 정책적 화두가 되면서 예술경영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분명 있었고, 일면 그 성과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해와 올 해 사이에 체감되는 정책적 변화가 크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창의성’과 ‘예술의 사회화’ 등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한다는 역할에 집중했다면, 이번 정권에서는 시장 논리의 적용과 이에 따른 경쟁력 개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변화가 읽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시설에서의 경쟁 개념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운영의 자율성을 얻고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것이지만, 자칫 내적 역량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공공성의 상실과 상업화의 소지를 안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고 본다. 현재 국립기관의 법인화 문제 등이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예술경영에서도 다른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본격적인 시장 논리를 수용하면서도 어떻게 공공성을 보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의 예술 경영은 문화정책의 흐름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발전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용관(이하 이) 물론 변화의 시기이긴 하지만 지난해 정리한 쟁점들은 여전히 중요한 것들이다. 지난 해 설문 답변들을 보면서 예술경영 전문가들이 전반적으로 폭넓게 짚어줬고, 깊이 고민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매우 다양한 얘기가 나왔었다.


각각을 살펴보면 먼저 ‘창의력 제고’는, 정책이건, 예술경영이건 혹은 창작현장이건 평생을 지고 가야 할 문제이다. 많은 사람이 말한 과제라면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손에 들고 있어야 할 화두이다.


‘정책의 통합적 비전’ 역시 길게 봐야 할 문제이다. 정부가 바뀐 후 여러 변화가 있었는데, 거칠게 비교해 볼 때 지난 정부까지는 큰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면 새 정부는 실천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정부의 창의한국, 새예술정책 등은 예술정책, 문화정책이 나가야 할 철학적 기조를 세우려는 노력이었고 이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구체화시키고 현장의 정책으로 소화시킬 것인가는 논의하다 말았거나 혹은 그 과정에서 현실감각이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반면 간접지원, 선택과 집중, 사후지원, 생활 속 예술 등 새정부의 예술정책은 실천의 문제에 더 가깝다. 그런 것들이 지난 정부에서 세웠던 기조와는 어떻게 이어지고 또 어떻게 진화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 즉 정책의 일관성과 통합적 비전이 아쉽다는 이야기인데, 환경이 바뀌고 또 시간이 지나서 변화해야 할 부분이 있더라도 이전 정부와의 단절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장점은 취하고, 약점은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예술경영의 세분화, 전문화 역시 앞으로의 전개 방향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 세부적인 변화를 두 어 가지 살펴보면, 합의된 의견이라기보다는 나 개인의 분석이지만, 주식으로 치면 주도주라 할 만한 것의 변화가 보인다. 지금까지 서울, 서울에서도 대형 문화시설이 시장을 이끌어왔다면 앞으로는 지역으로 주도주가 넘어갈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지역에도 대형문화시설이 속속 들어서 왔고 또 90년대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기획예산이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예컨대 고양, 성남 등은 예술의전당보다 많은 기획예산을 운용하고 있다. 프로그램 등 시장을 받쳐주고, 끌고 가는 중심이 지역으로 이동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또 예상되는 다른 변화는 예술단체를 가지고 있는 극장의 경우 지금까지의 극장 중심에서 앞으로는 단체 중심으로 프로그래밍의 주도주가 이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계속되는 제도의 과잉

사회 두 분 모두 변화의 시기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새정부의 새로운 정책방향에서 비롯되는 변화가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수요가 폭발하면서 급속히 성장한 예술경영 분야가 성장기 이후의 조정기에 들어서면서 비롯되는 변화도 있다는 지적이다. 두 요인이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일 텐데 이렇게 ‘이슈’ 사건으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주목해야 할 사안들도 있을 것 같다.

김노암(이하 김) ‘창의력 제고’나 ‘정책의 통합적 비전’은 크게 바뀌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특히 정책의 경우에는 이미 이야기 나올 것은 다 나왔고 그러한 논의들을 수렴하고자 여러 제도들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여러 단계, 여러 이해 당사자가 얽히면 취지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전진하지 못하는 상황이 흔히 벌어진다. 그런 점에서 입장차,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실무, 창작, 매개자의 실제적인 관계가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것이 우리 상황이다. 실행단계에서 기획단계의 비전과 미션이 작동이 안 된다. 지금은 우리가 설정했던 비전, 방향과 잘 부합되는 방법론이 필요하다. 제한된 자원으로 어디에 방점을 찍고, 어디에 투여해야 다음단계로 넘어갈 것인가를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좌담중인 정재왈, 박신의정재왈(이하 정) 제도의 과잉이라는 지적에 동감한다. 제도와 정책의 과잉으로 오히려 본질이 외면되는 현실이 아닌가 한다. 본질은 뭔가? 한마디로 말 하면, 좋은 문화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일이다. 문화예술 지원 정책은 당연히 이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러한 목표가 제도로 구체화될 때 그 본래의 목표와 가치는 어느새 숨어 버린다. 이후부턴 ‘제도의 전쟁’이다.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제도가 제도를 낳고, 또 제도를 낳고 하는 형국이랄까. 이런 현상을 보면, 아직도 문화예술이 행정 영역에 많이 예속돼 있다는 느낌이다. 예술경영이 이를 개선, 보완하는 역할을 하여야 하는 데 제도의 전쟁 속에서 제 몫을 찾기 매우 힘들다. 예술가들이 창작 대신 제도를 연구해야 한다면 곤란하지 않나.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예술경영이 산다.

제도 과잉이라는 문제는 일종의 ‘제도 만능주의’와 같은 접근에서 비롯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미 지난 정부에서 국립극장과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제로 전환한 바 있고, 이제 다시 법인화 논의로 접어든 상황이다. 하지만 조직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정작 시설의 전문성과 경쟁력은 얼마나 얻어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런 상태에서 제도 교체라는 것이 과연 무슨 효과가 있을지 하는 물음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문화예술시설에 대한 경영 평가 지표를 볼 때 그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공공기관의 기관장 평가에서 그 기준은 고용인원 100명을 전후로 나뉜다. 특히 100명이 안 되는 기관에서는 정성평가를 하지 않고 관람객 수나 시설 가동률 등의 계량 평가만을 실시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시설들은 전시와 공연기획, 학예연구와 같은 내용적인 전문성에 노력을 들이지 않게 될 수 있다. 또한 최근 들어 문화예술시설 기관장으로 기업 출신 CEO가 선호되고, 관람객 수를 확보하기 위한 무료관람 정책 등은 시설의 전문성을 더욱 어렵게 하는 함정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술경영이 추구하는 조직의 전문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시장적 경쟁력을 갖게 되는가를 명확히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에서 예술경영의 역할과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근래 제도 정책이나 또 예술경영에서도 수익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창의력과 수익성은 어떤 점에서는 같은 말이다. 레토릭이 다를 뿐이다. 특히 공공영역의 경우에는 수익성과 창의력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 재정자립도의 경우, 수익성과 창의력을 함께 가져가기 위한 적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좌담중인 김노암, 이용관
사회마다 예술계, 예술경영의 현실이 다르지만 세계적인 트렌드도 있다. 국가지원체계가 가장 확실하다는 독일조차도 문화시설의 운영이 독립체제로 바뀌고 있다. 심지어 주식회사(GmbH) 형태도 많다. 이제 독일에서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공연장은 없다. 프랑스에서도 그런 변화가 있다. 미국, 영국은 이미 그런 형태였다. 국가의 문화재원은 항상 불안정하고 문화예술이라는 것은 비용이 빨리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국가나 지자체가 무한정 책임질 수 없는 상태에서 경영효율성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 같은 경우 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바비칸센터, 국립극장 등의 평가기준도 대처정부이래 관객을 늘리고 경영성과를 올리도록 변화해왔다. 세계적으로 그런 추세이다. 우리도 10여 년 전부터 단순한 수익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효율성을 높이라는 것이 사회적 요구였다. 법인화 등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이것이 단지 정책 담당자의 요구인가. 그렇지는 않다. 국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비용효율성, 경영전문성, 자율성에 대한 요구이다. 관객기반을 튼튼히 해라,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재원을 국가나 지자체에만 의존할게 아니라 자체 노력으로도 충당해라 하는 요구는 무리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인화 논의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경영 내적 역량 강화가 필요한 때


사회 제도과잉의 문제라든가 공공기관의 수익성과 창의력, 공공성과 효율성 등의 문제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었던 문제인 것 같다. 최근에는 이에 대한 논의 자체도 소강상태인 듯 하지만 말이다.


제도과잉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제도라는 틀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현실을 변화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다. 법인화는 상징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법인화 문제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데, 한편으로는 공공성을 저해한다고 우려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성, 자율성의 확대를 기대할 수도 있다. 예술경영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지금 교육받는 인력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영역도 생겨나는 것이다. 문제는 정신없이 제도만 바꾸려 하다 보니 정작 내적 역량의 성숙이 이루어질 틈이 없다는 것이다. 공공성과 경영효율성이 같이 가야 한다는 요구만 하더라도 그런 것들을 예술경영의 입장에서 소화하고 풀어낼 시간을 줘야한다. 기다리지 않고 다시 다른 제도를 성급하게 요구하는 것이 반복되는 현실이 문제이다.


문화예술시설이 경영에서 자율성을 얻기 어렵고, 또 여러 제도적 장치로 시달리는 이유는 곧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공적 기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경영은 단순히 시설 활성화에 전념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성격과 채널의 재원을 조성하고, 운영에서의 효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얻어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며, 다른 한편 예술의 창조적 결과물을 매개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등의 과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게다가 현재 법인화 논의가 되는 시설들이라는 것이 극장이나 미술관과 같은 20세기적 시설 개념이지 않은가. 오히려 다양한 활동과 재원 조성을 새로운 유형의 시설과 활동을 통해 발굴해 가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발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공공과 시장의 협업, 담론장의 중요성




사회 지금까지의 이야기 들어보면, 예술경영의 세계적 추세, 한국예술경영의 성장과정에서의 현 단계, 새정부의 새로운 정책 환경 등 세 가지 축이 움직이면서 예술경영의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예술경영 내적으로도 역동적인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시기에 주목해야 할 예술경영의 주요 현안들은 어떤 것이 있겠는가.


예술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공적영역과 시장이 어떻게 협업하느냐의 이야기이다. 작년부터 세계금융위기가 있었다. 아직 2008~2009년 통계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0년 전 아이엠에프 경제위기 때보다는 그 충격이 훨씬 덜 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공연시장만을 봤을 때 가장 큰 요인은 공공공연장이 지방에 많이 들어서고, 일부지역이지만 기획예산의 확보와 전문적 운영이 뒷받침된 것 즉, 문화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작품유통을 주도하는 등 시장을 받쳐준 것에 있다고 본다.


경제가 나빠지면 뮤지컬 등 시장영역도 그렇지만 특히 비영리성격을 갖는 예술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이 영역을 공공인프라가 수용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생태계를 건전하게 끌고 가는 공공영역의 역할이다. 시장영역이라 하더라도 우리처럼 좁은 시장에서는 늘 전망이 불투명하다. 이 역시 공적영역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예술 생태계를 얼마만큼 건강하게 만들어주느냐에 대해 공적영역과 시장이, 문화정책과 예술경영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할 부분이다. 전국 문예회관의 기획예산 확보를 보편화 하고 전문 운영인력 투입을 유도하는 정책적 개입도 한 예가 될 것이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을 비롯해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정책들을 연구하고 소개해왔다. 이미 좋은 예는 다 연구했다. 그런데 그것을 취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모델이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그것을 정제하는 과정이 너무 짧다. 미술 분야에서는 영국이 중요한 벤치마킹의 예를 제공한다. 영국에서도 미술 관련 기관이나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제도를 시행하는데 있어서 주민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공청회를 수백 회 이상 개최한다. 충분한 검토단계를 거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야 한다. 훌륭한 취지의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는 제도라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취지와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최근 담론의 장이 협소하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적 현실이다. 80~90년대 중반까지는 미술 쪽에서 담론형성이나 매체가 활동적이었다. 그러나 아이엠에프 이후에는 비평과 담론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비평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계 전체의 문제이고 예술경영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책의 지속가능성과 예술경영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우리의 경우를 보면, 예술경영이 본격화 된 것을 10여 년이라 할 때, 그동안은 정책 툴로써의 예술경영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하지만 이쯤에서 다시 짚어야 할 것은, 예술경영이지 경영예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술경영에서의 ‘경영’은 예술 활동을 증진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에 머물러야지 그게 목적이 되면 곤란하다는 점이다. 물론 민간영역, 예를 들어 상업뮤지컬 하는 사람은 예술보다 경영이 목적일 수 있다. 예술경영 10년의 역사가 축적된 만큼, 이제 ‘예술경영’의 성공 롤 모델이 나올 때가 됐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회의적일 때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예술 정책의 지속성, 예측 가능성이 매우 중요한데 과연 그런가? 하위 전술만 있고 원대한 비전이 부족한 시대라면 예술경영은 여전히 정책의 한 과정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예술경영이 풀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과제는 문화예술시설들이 내적 역량을 갖추고, 이를 기반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시장논리라는 것도 사실 문화예술의 전문성과 예술적 수월성을 토대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를 관람객 증대나 단순한 재정 자립도 등의 성과지표로 풀어가는 것은 사실 예술 경영이 지향하는 시장 논리에 절대로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일테면 서울시립미술관이 자체 기획보다는 블록버스터 명품 전시회를 위해 대관을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관람객 확보를 자신의 성과로 거론할 수 없는 것이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역시 같은 성격의 전시회를 위해 엄청난 액수의 대관료를 받고, 이로써 재정자립도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문화예술시설의 법인화가 그런대로 유지되는 경우는, 시설 자체의 전문성과 경쟁력이 받쳐주는 한에서 가능한 것이다. 또 사회적으로 다양한 재원 조성이 가능한 성숙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아직 어떤 문화예술시설도 국제적 수준에서의 기획력과 프로그램 개발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또 우리 시설의 국제적 인지도 역시 너무도 낮은 수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료 관람에 대해 부연하자면, 복지로서의 문화예술 정책과 예술경영의 역할이 모호하게 설정돼 있기 때문에 충돌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복지정책의 일환이라면 그 정책이 목표하는 향유층이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해야 한다. 그 외 예술경영 활동 영역에서 ‘무료 관람’은 일종의 시장교란 행위가 아닌가 한다. 일례로 공공극장이 있다고 치자. 한쪽에선 열심히 표 팔아서 돈 벌라 하고, 다른 한편에선 무료 관람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이는 뭔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어떤 경우든 문화예술 상품이 값을 지불하고 사는 구매의 대상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게 진정한 문화예술교육이자, 예술경영 발전의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


당장 기술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다 보니 자꾸 숫자만 세게 된다.




예술경영 가치 창조와 전문인력 성장 기반



사회 오늘 논의들은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문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이슈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 트렌드이든, 한국 예술경영의 발전단계이든, 정책의 변화이든 현재 우리 예술경영이 변곡점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변곡점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현안을 이야기하면서 좌담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느 한 영역이 발전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척도는, 인력들의 집적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10년 간 예술경영에 관한 관심도는 매우 높았다. 대학에는 우후죽순처럼 관련학과가 생겼고, 학생들은 높은 경쟁을 뚫고 입학했다. 1990년대 한국영화의 발전도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력들이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 때문에 영화계에 진출한 토대 위에 이루어졌는데, 예술경영의 영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나도 이런 붐 덕택에 대학 강의도 수월찮게 했는데, 처음엔 그런 현상에 고무돼 예술경영의 미래를 매우 낙관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점점 세월이 지나면서 그렇지만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학생들에게 ‘환상을 깨라’고 주문하는 데, 그만큼 현실은 냉혹하다는 이야기다. 관련 인력들이 많이 늘고 있지만 기존 현장의 답답함이랄까, 이들의 참신한 생각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풍토가 아쉽다. 이럴 때 역시 중요한 게 교육이다. 예술경영 교육의 패러다임, 커리큘럼 등 재조정 하는 시기가 오지 않았나 싶다.


2007년도 메세나협의회 발표에 의하면 기업 문화재단의 관심이 공연에서 미술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열 중 일곱이 공연이던 것이 2007년 여름을 기점으로 열 중 일곱이 미술이 되었다. 그러한 변화가 왜 일어나는 것인가 생각해봤는데, 언론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2005~2007년 미술시장이 워낙 붐이다 보니 하루걸러 미술시장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가치든 비전이든 자꾸 이야기해야 한다. 예술경영의 역할, 가치 등을 쉬운 레토릭으로 설명하고 그것을 자꾸 이야기해서 사회적으로 각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고지식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담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공공의 책무인 것 같다.





예술경영인, 예술경영계의 내적 변화와 각성이 필요하다. 온갖 복합적인 변화들을 읽어내고 정리하면서도 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현장의 경우 시스템 혁신 등 경영모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극장이나 예술단체만 하더라도 합의된 경영모델이 없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외부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만들어내는 협업을 했으면 좋겠다.


또 지금껏 예술경영이 팽창이나 폭발이라 할 만큼 성장했지만, 현장의 예산, 시설, 운영인력 등의 문제는 늘 해결되지 않은 채 일관성 없는 정책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려 왔다. 이제는 예술경영 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여러 예술경영 관련 주체들(협회, 학회, 학교, 기관 등)이 이슈를 만들고 이를 풀어나갈 아젠다를 형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이제는 적극적인 개입을 할 필요가 있다.


비록 짧은 역사이지만 성과는 적지 않았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시설 운영과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전문인력의 배치가 실제로 많은 부분 이루어진 점을 주요 성과로 들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전문인력의 활동이 어려운 것은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실제로 많은 문화예술시설이나 기관들이 공적 기금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행정적 관리 체계가 엄격하고, 또 그로 인해 조직문화가 권위주의적이고 여전히 행정 인력이 승진 등에서 우세한 것이 현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예술시설이 오히려 반문화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시설에 대한 평가가 관람객 확보와 재정자립도로 일관할 경우 전문인력이 설 자리는 더욱 더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경영 스스로 새롭게 자기 역할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문화예술시설의 내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어떻게 시장성을 갖는지를 증명해 내고, 공적 기금 외에도 다양한 성격의 재원을 조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다.


좌담중인 정재왈, 박신의, 김소연, 박신의, 정재왈





김소연

정리
김소연 편집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 등의 비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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