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 전문성, 인력의 전문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군(무) 분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 예술경영 현장의 요구는 여전히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관리하는 만능인이다. 이러한 담론과 현장의 간극을 살피기 위해 [weekly@예술경영]은 분화가 뚜렷한 직군을 중심으로 각 직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획경영인들에게 각 직군의 경력 개발 과정과 전망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예술경영 전문인력과 직군 분화의 현 단계를 살핀다. 연재순서: ② 갤러리스트/아트딜러



직군, 무게 중심의 차이


정재호 _ 갤러리2 대표


이미 지난 10여 년 간 갤러리와 관련된 직군의 분화는 대부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스트, 아트딜러, 아트컨설턴트, 공공미술컨설턴트 등이 대표적으로 분화된 직군이다. 이 각기 다른 이름들은 어느 업무에 무게를 조금 더 두었는가에 의해 결정될 뿐 많은 부분 같은 업무를 공유하고 있다.


내가 갤러리스트가 된 것은 예정된 우연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작가를 꿈꾸던 20대 초중반, 가끔 갤러리나 아트페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이 일이 직업이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작가가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 한 친구에게서 미술행정(경영)이라는 전공이 있단 얘기를 듣고 무작정 지원했던 순간이 이 직군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술행정(경영) 프로그램들이 비영리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는데 하필 나의 선택은 갤러리와 리테일 미술행정(Gallery & Retail Art Administration) 프로그램이었다. 결국 전, 현직 갤러리 주인들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보낸 2년 간 나는 갤러리를 창업하겠다는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다.




스스로의 안목과 취향이 전문성


경력 개발 과정은 갤러리스트라는 일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라고 생각한다. 갤러리스트라는 직업을 고려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미술 실기 또는 이론과에 진학해서 미술 전반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학창시절 인턴십을 통해 갤러리를 경험해 보는 것이다. 실제 체험 후 이 직군에서 일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바란다.

경험에 비춰보면 본격적으로 갤러리스트로서의 전문성을 쌓는 것은 갤러리에서 일을 시작한 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대학원 과정에 미술행정 전공이 여러 곳 생겼지만 영리와 비영리를 모두 다루며 다양한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집중적으로 갤러리스트만을 위한 실무교육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갤러리스트의 업무는 미술계의 어느 직군보다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작가를 찾고 전시를 기획하며 컬렉터를 만나고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업무들이지만 이것들을 수행하기 위한 수많은 숨겨진 과정들과 디테일들은 모두 현장 경험에서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비전과 생각을 가진 갤러리에서 어떤 비전과 생각을 경험하고 배울 것인가이다.


손동현 개인전 <KING> 개막일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늘 받는 질문이 갤러리스트의 전문성에 관한 것이다. 갤러리스트가 갖춰야 할 전문성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취향과 안목을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경력 개발 과정에서 언급했던 지식과 경험은 결국 스스로의 취향과 안목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모든 예술분야가 비슷하겠지만 특히 갤러리 관련 업무에는 정도가 없다고 느껴진다. 또한 취향과 안목을 갖는 방법도 수백만 가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이 직군에 도전하고 갤러리를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취향을 보여주는 것만이 다양성이 생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현재 내가 느끼는 문제는 다양성의 결핍이다. 모두가 비슷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거래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크고 비싼 전시장을 가지고 있고 많은 돈을 벌고 인지도가 높은 것이 전문성으로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전문성은 각자가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최선을 다해 꾸준히 보여 줌으로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갤러리 관련 직군 공통 업무 많아


이미 지난 10여 년 간 갤러리와 관련된 직군의 분화는 대부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스트, 아트딜러, 아트컨설턴트, 공공미술컨설턴트 등이 대표적으로 분화된 직군(무)이다. 이 각기 다른 이름들은 어느 업무에 무게를 조금 더 두었는가에 의해 결정될 뿐 많은 부분 같은 업무를 공유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새로운 분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비슷한 경우가 될 것이다. 이 직군의 진정한 분화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업무에 무게를 두든 자신만의 개성과 색깔을 보이는 것이 끊임없는 분화가 될 것이며 그렇기에 이 직군의 분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전망 역시 매우 밝다고 생각한다.






정재호

필자소개
정재호는 서울옥션 미술품경매팀, 국제갤러리 디렉터, 원앤제이 갤러리 공동대표로 일했다.





미술시장 확대, 아트딜러 역할 커


윤두현 _ 인터알리아 아트컨설턴트 팀장


미술시장의 규모는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최근 경기 침체로 말미암아 다소 위축되어 있긴 하지만 머지않아 회복될 것이다. 더욱이 국내에서도 아직 미술이 일상화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그 잠재적 가능성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화상(Art Dealer)은 일차적으로 미술가 혹은 미술작품의 시장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유통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화상은 자본을 끌어들여 미술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차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미술사의 흐름에 기여하는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연 거장들의 뒤에는 늘 남보다 앞서 그들을 발견하고 후원한 화상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의 등장은 당시 파리에 &lsquo;루 라피테라(Rue Laffitte)&rsquo;라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던 볼라르(Ambroise Vollard)의 적극적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뉴욕에서 활동한 &lsquo;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rsquo;라는 화상이 없었다면 로버트 라우센버그,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 슈타인, 재스퍼 존스 등 현대미술의 중심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시킨 작가들도 그 이름을 알릴 수 없었거나, 설령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90년대 이후 세계 미술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마크 퀸 등 영국의 와이비에이(young British atist, yBa) 작가들도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레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 제이 조플링(Jay Jopling)과 같은 화상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전 세계로까지 이름을 떨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작가와 화상을 단순히 창작자와 중개자의 관계로만 보는 수동적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창작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지만, 화상은 안정된 창작 환경을 제공하고 가능성을 끌어낼 뿐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미술의 흐름에 기여하는 창조적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사치갤러리 전경, 영국왕립미술원 여름특별전




미술과 시장원리에 대한 균형감각


지난 몇 년 동안 세계경제와 미술시장의 급성장에 힘입어 한국 미술시장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호황을 맞이했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아트비즈니스 분야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고, 각 대학에는 예술경영 관련 학과들이 우후죽순처럼 개설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에 걸맞게 요구되어야 하는 전문성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미하다. 즉 미술의 특수성에 대한 신중히 고려 없이 시장 논리만 내세우거나, 아니면 미술의 특수성만 내세워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별 준비 없이 갤러리를 시작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이는 한 쪽 눈을 가리고 일을 시작하겠다는 것과 같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 무모하고도 위험한 자세다.


다시 말해 미술의 특수성과 시장 원리 중 어느 한 쪽에 치우친다면, 설령 그에 대해 상당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결코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성공적인 아트 딜러가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전 준비로 미술과 시장에 대한 균형감각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술에 대한 전문성과 비즈니스적 소양을 동시에 키워야 한다. 높은 안목으로 어떤 작가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략을 세워 발굴한 작가와 작품을 적극적으로 프로모션하고 마케팅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2009 홍콩아트페어
먼저 미술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미술사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인문학적인 소양도 함께 키워야 한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미술관에서 경력을 쌓은 큐레이터 출신들이 성공적인 화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은 업무를 통해 자연스레 이런 소양을 연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상업화랑과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경력을 쌓으면서 미술 자체에 대해 전문성을 높여왔으며, 이는 현재의 컨설턴트 업무에 든든한 토대가 되어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콘텐츠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상업적 능력이 탁월해도 성공할 수 없다.


다른 한 편으로 화상이란 미술을 매개로 비즈니스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별도의 준비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작가가 있어도 상업적 가치를 창출해내지 못한다면 작가가 지속적으로 작업을 전개하고 또 이를 통해 어떤 발전을 이뤄나가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큐레이터나 컬렉터로 활동해 오던 사람들이 화상으로 전환하면서 이를 미처 대비하지 못해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화상들이 각 대학의 경영자과정 등에 등록하여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것도 당연히 이런 균형에 대한 현실적 필요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누구든 화상을 하겠다면 적어도 3년, 또는 5년 이상의 자금을 포함한 장기적인 사업계획과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경영적 자세가 꼭 필요하다.



고유성과 지구력


한 화상이 모든 시대의 모든 양상을 다룬다는 것은 권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기억해야 할 것은 화상의 신념, 환경에 따라 자기만의 고유한 분야를 개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내의 경우만 보더라도 성공한 화상들은 모두 나름의 색깔을 보유하고 있다. 신진 작가들을 발굴 소개하는 화상, 중견이나 원로 작가들을 주로 취급하는 화상, 해외 주요 작가들을 소개하는 화상, 중국 현대미술을 집중적으로 취급하는 화상 등 고유의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미술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현상인데, 왜냐면 이런저런 다채로운 색깔의 화상이 많아질수록 미술계의 건강한 다양성도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한 화상이 모든 취향을 수용하겠다는 과욕을 부릴 때 생긴다. 정체성 없이 메뉴만 많은 식당들이 흔히 그렇듯 이도저도 아닌 화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렇지만 정체성을 수립해 나가는 일이 결코 단 시간에 해결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인 계획과 치밀한 준비가 요구됨을 반드시 환기해야 한다.


미술사는, 다른 역사가 그러하듯, 대단히 보수적이다. 선구적인 형식이나 사유가 시도되고, 그것이 주류로 인정되기 위해서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모든 새로운 미술은 논란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자기 확신과 인내가 없이는 성공적인 화상으로 거듭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일정의 자본력은 그런 지구력을 담보하는 필수 요건이다. 자본 없이도 화상을 할 수는 있지만, 운영을 위해 단기적인 수익을 이끌어내야 한다면 당연히 많은 무리수가 따른다. 그리고 그것이 미술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물질적 삶에서 정신적 삶으로


이 시대 경제산업 분야 전반에 걸쳐 예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사항이 되었다. 이는 삶의 전반적인 패러다임이 &lsquo;물질적 삶&rsquo;에서 &lsquo;정신적 삶&rsquo;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전제로 한다면, 화상의 미래는 매우 밝다. 얼마 전 취업전문기관에서 조사해 발표한 5년 후 유망한 직종으로 &lsquo;큐레이터&rsquo;가 8위에 올라 있는 것은 이를 반영하는 하나의 상징적 신호라고 본다.


미술시장의 규모는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기존 서구 중심의 미술시장에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못했던 거대 국가들이 경제 성장과 함께 점차 미술시장으로 유입되며 그 판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만 봐도 그렇다. 최근 경기 침체로 말미암아 다소 위축되어 있긴 하지만 머지않아 회복될 것이다. 더욱이 국내에서도 아직 미술이 일상화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그 잠재적 가능성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듯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더 문화예술로 집중될 것이 자명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집 [예술경영 전문성과 직군 분화] 다른 기사 보기
① 큐레이터 ③ 에듀케이터




윤두현

필자소개
윤두현은 단국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예술기획과를 수료했다. 박영숙화랑 큐레이터, 영은미술관 학예연구원을 지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