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뚜렷했다. 주민이 참여하고 예술가가 개입하는 이러한 새로운 방식에서 예술은
전문적 영역이 아닌 일상적·시민적·생활적 영역이 된다.
그들은 연극을 만들고, 공연을 관람하며, 지역의 역사를 복원하고 재건하려 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 구는 아마추어 활동을 조직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자기의 구를 세계적인 구로 마킹하려는 노력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말이 아닌 현장 속의 자그마한 변화에서부터, 작지만 강한 의지에서 시작된다.”


작년부터 서울시는 자치구별 문화정책을 평가, 우수한 자치구를 시상하는 “문화정책 인센티브 평가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사업취지는 자치구의 문화정책을 평가, 문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 자치구를 격려하고 서울시의 정책방향에 적합하게 각 자치구의 정책을 이끌어 오자는 것이다. 올해도 10개 구를 대상으로 시상을 준비하고 있으며, 기초적인 평가사업은 종료한 상태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많이 달라졌다. 이는 나를 포함한 심사위원들이 모두가 느꼈던 것이다. 우선 첫 번째 달라진 점은 자치구의 문화정책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작년엔 대부분 자치구가 일상적 사업들을 특성 없이 나열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올 들어 서울시는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라는 새로운 “창의문화도시 계획”을 수립한 바 있는데, 각 자치구들은 이를 모델로 자기 구에 적합한 문화정책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자치구, 스스로에 적합한 문화정책 모델 찾기

예컨대, 우린 컬쳐노믹스를 수립하면서 창의 기반을 마련하는 정책에 집중하였는데, 각 자치구 또한 이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였다. 송파구는 용도를 잃은 지하보도를 ‘창작아케이드’로 만든다고 선언하였고, 구로구는 AMT(Art Market Town)을 만들어 예술가를 유치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낡고 허름한 공장을 사들여 ‘Art Factory’를 만들겠다고 하였는데, 대다수 구에서 폐 동사무소를 활용, 창작기반을 만들겠다고 하였다. 정말 무서운 순간이었다. 시의 정책이 달라진 것이 이처럼 자치구의 정책을 다르게 하나! 서울시의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 내 일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느낀 점은 주민참여 프로그램이 무척 많아졌다는 점이다. 작년에도 이와 관련하여 특이한 프로그램이 발견되었는데, 예컨대 주민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봐 전문배우 1~2명과 극단을 꾸며 연극을 하는 중랑구의 사례다. 중랑구는 지역 내 연극단체인 <중랑연극협회>(회장 경상현)를 중심으로 주민 극단을 꾸려 공연해 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공연료로 쌀이나 라면을 받아 지역 내 복지단체에 기부하는 “좀돌이 운동”을 추진해 오고 있다.

올해는 이런 프로그램이 더욱 확산되었는데, 이젠 아파트 주민에게 쌀을 모아 공연한다고 한다. 그 쌀은 공연 도중 떡으로 쪄지고,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주민들에게 돌려진다. 이른바 떡으로 하는 ‘떡공연’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사례로 용산구에는 동 단위 연극이 있었고, 마포구는 <창조아카데미>란 이름으로 주민 스스로의 연극단체가 만들어졌다. 또한 성북구는 뜨락예술제를, 성동구는 드림시티 성동 문화마당이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세 번째 느낀 점은 전문성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서울지역 자치구 중 문화재단이 설립된 곳은 중구, 마포구, 구로구 등 3곳이다. 그러나 그들 외에도 적어도 3~5곳에서 문화재단 설립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예술경영이 단지 정부 정책이 아니라, 예술가와 주민, 행정가의 협력적 관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지속성과 일관성, 협력적 관계 형성을 위해 각 자치구가 문화재단 설립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자치 단위의 프로그램에 주목하라

그 외에도 예술가 유치를 위한 노력과 세계적인 예술프로그램 개발 등에 주력하고 있었는데, 예컨대 자연스럽게 예술인이 밀집된 문래동의 영등포구는 예술군락지 보전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노원구는 “서울국제퍼포먼스페스티벌”, 성동구는 “아시아연극연출가전”, 용산구는 “서울국제미술제”, 영등포구는 “서울가곡제” 등을 개최, 운영해 오고 있었다.

이처럼 변화는 뚜렷했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강한 번식력을 갖고 있었다. 주민이 참여하고 예술가가 개입하는 이러한 새로운 방식에서 예술은 전문적 영역이 아닌 일상적·시민적·생활적 영역이 된다. 그들은 연극을 만들고, 공연을 관람하며, 지역의 역사를 복원하고 재건하려 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 구는 아마추어 활동을 조직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자기의 구를 세계적인 구로 마킹하려는 노력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말이 아닌 현장 속의 자그마한 변화에서부터, 작지만 의도가 강한 시도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난 문화정책 모델을 항상 ‘모델방식’이라고 말한다. 모델방식이란, 반드시 따라야 할 지침을 제시하는 ‘가이드라인 방식’이나 관리의 규범을 정하는 ‘메뉴얼방식’과 달리 우수한 사례를 보여주고 당신들도 이에 따르면 된다고 말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우수한 사례를 실제 보여줌으로써 각 자치구가 따라 해주는 방식이 문화정책에는 가장 적합한 사업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린 자그마한 동네, 마을, 자치단위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제시해 주는, 트랜드와 당위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례를 보여주는 연구가 필요하다. 머나 먼 외국의 사례들, 그것이 보여주는 멋진 그림보다 우리의 주변과 일상에서 자그맣게 변해가는 그림들을 보여줄 때 우리는 우리에 맞는 문화정책, 예술경영 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라도삼필자소개
라도삼은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신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부터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으로서 문화정책과 도시문화 등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 오고 있다. 저서로 『인터넷과 커뮤니케이션』(한울출판사, 2000), 『블랙인터넷』(자우출판사, 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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