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로듀서를 한다는 것


송한샘 _ (주)쇼팩 대표이사


그러나 사실 프로듀서의 가장 큰 역할은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숫자에 민감해야 하고, 때로는 '돈을 벌기 위해' 악역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스스로 작품에 푹 빠지기보다는 작품에 푹 빠질 수 있는 궁합 좋은 창작자들을 꾸려주는 것이 사실 더욱 중요한 프로듀서의 덕목일 수 있다.


내가 공연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재미있게도 H.O.T의 북경콘서트였다. 당시 LG전자의 해외마케팅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나는 점심식사 후 휴식시간에 인트라넷을 검색하던 중 H.O.T의 공연 소식을 접했다. &lsquo;내가 무대 위에 서지 못한다면 무대 뒤에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rsquo;하는 생각이 가슴을 때렸고, 그 순간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불과 몇 주 만에 회사를 떠났고, 당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준비하고 있었던 오리온그룹의 제미로에 입사하게 되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나의 공연계 입문은 정해진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경험이긴 해도 대학가요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당시 내 앞 번호가 전람회였다, 하하.) 대학 시절 노래패가 실질적인 나의 전공이나 마찬가지였을 만큼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었다. (내 전공은 중어중문학이었다.) 끝내 그것도 모자라 뜻이 맞았던 몇몇이 모여 독립 레이블을 만들었고, MP3로 인터넷에 디지털 싱글을 출시하기도 했다. 결국 이렇다 할 성과는 못 내고 문을 닫았지만 당시가 98년쯤이었으니 우리가 그래도 꽤 앞서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재즈 이론가 이판근 선생님을 사사하며 작, 편곡을 일 년 남짓 공부했고, 재즈 보컬리스트 윤희정 선생님께 노래를 배우고, 클럽과 크고 작은 무대에 서기도 했다. 물론 가수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거치듯 음반기획사에 오디션도 보고, 심지어 음반제작을 하던 와중에 사기도 당했다. 하지만 활동을 하면서 플레이어로서의 나의 자질과 미래에 대한 심한 회의를 떨칠 수 없었고, 결국 음악의 길을 포기하고 대기업이라는 안정된 진로를 선택했던 것이다. 뭐 어쨌든 잠시 후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만 난 나의 길을 제대로 찾아왔고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인생의 업으로 삼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ldquo;내 작품은 내가 번역한다&rdquo;


나는 음반사업팀에서 일을 시작했다. 콘서트와 가요제 등 방송 외주 사업 업무를 먼저 익혔다. 뮤지컬 <캣츠> 내한공연을 시작으로 뮤지컬 업무를 맡았으며 마케팅과 PR 매니저로 경력을 쌓은 후에 제작 업무를 맡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상적인 커리어 패스라 볼 수 있는데 프로듀서가 한 편의 뮤지컬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 대해 꿰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제미로의 체계적인 업무 시스템과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경영진 덕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테니스의 왕자> 한국공연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 공연 관련학과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나나 내 위의 업계 선배님들은 대부분 체계화된 교육 없이 &lsquo;열정&rsquo;과 &lsquo;끼&rsquo;만을 가지고 현장에서 부딪치며 몸으로 지식을 체득했다. 나도 <티스퀘어&디멘젼>(T-Square&Dimension) 조인트 콘서트를 제작하면서 일본 공연계의 시스템을 익혔고 심지어 공연을 하면서대학교 때 교양으로 잠깐 배우고 잊고 있던 일본어를 다시 익히는 행운까지 누렸다. 그때의 인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장동건의 일본 부도칸 콘서트를 연출하고, <테니스의 왕자> 내한공연을 유치했으니 공연계는 정말 좁아도 한참 좁다. 프로듀서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외국어를 어느 정도 이상 구사하는 것은 앞으로 더더욱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lsquo;내 작품은 항상 내가 번역을 하자&rsquo;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작품을 번역하다 보면 누구보다도 그 작품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공부하게 된다. 크리에이티브 팀과의 작업에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어서 프로듀서로서의 직관을 작품에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다. 물론 원작자와의 의사소통이나 계약 시에 굳이 통역의 수고를 빌리지 않아도 되니 상대방도 나도 훨씬 수월하게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뮤지컬을 제작하는 데에는 음악에 대한 기본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로듀서가 음악에 대해 어느 정도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 음악감독이나 작곡가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할 뿐더러 창작자들도 프로듀서를 단순히 비즈니스맨으로 생각하기보다 그야말로 창작팀의 일원으로 존중해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역할은 비즈니스


그러나 사실 프로듀서의 가장 큰 역할은 &lsquo;비즈니스&rsquo;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숫자에 민감해야 하고, 때로는 &lsquo;돈을 벌기 위해&rsquo; 예술가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하기 싫은 악역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스스로 작품에 푹 빠지기보다는 작품에 푹 빠질 수 있는 궁합 좋은 창작자들을 꾸려주는 것이 사실 더욱 중요한 프로듀서의 덕목일 수 있다. 우리는 소위 &lsquo;악역&rsquo;을 하는 프로듀서들보다 예술과 작품의 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프로듀서들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프로듀서가 돈을 벌지 못하고 흥행작을 내지 못하면 결국 그 평가도 점차 희미해지고 만다. 뮤지컬은 상업적인 장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미안한 얘기지만 결국 돈을 벌어야 평가도 좋아지는 것 같다. (내가 돈을 잘 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나도 앞으로 잘 벌고 싶다, 꼭!)


그런데 비즈니스건 작품성이건 결국 모든 것이 &lsquo;사람장사&rsquo;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좋은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진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공연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선하다. 그리고 선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도움을 청하면 항상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좋은 공연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나를 타자화 시켜서 바라볼 때, 내가 과연 많은 창작자들,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대상인가? 그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항상 깨어있고 진심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뮤지컬 <이블데드> 한국프로덕션,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




직무 분화, 다양한 업무 경험 차단할 수도


나나 위의 선배님들은 어찌 보면 공연에 대한 사랑과 열정, 대리만족으로 프로듀서라는 업을 선택하고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젊은 프로듀서들이 많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슬슬 뉴욕과 런던에서 뮤지컬 전문 교육을 받은 창작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니 몇 년 후면 프로듀서군 역시 같은 현상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뮤지컬 제작 스태프의 분화는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되었다. 아직까지 기획인력들의 분화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데 이는 규모가 크지 않은 기획사 인력들이 대부분 일당백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커짐에 따라 기획인력들의 업무 세분화도 시작될 것이다. 이 경우에 우려되는 하나의 단점은 결국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야 하는데 회사의 입장에서 인력교육의 비용 손실을 줄이기 위해 한 업무의 숙련자를 다른 업무로 이동시키지 않으려 할 경우 결국 프로듀서의 자질을 갖춘 많은 사람들이 중도하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업무가 분화될수록 일을 하는 당사자 스스로 한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뮤지컬 프로듀서를 한다는 것. 아직까지 진입장벽도 낮고, 인력풀도 깊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큰 결실을 맺기도 쉬운 분야일 수 있다. 최근 공연계가 흥행부진으로 깊은 시름에 빠져있긴 하지만 열심히 하는 모두가 있기에 결국 다시 따뜻한 햇살을 맞이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송한샘

필자소개
송한샘은 현재 (주)쇼팩의 대표이사이자 충무아트홀 문화예술원 프로듀서과정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쇼노트의 이사, 제미로의 마케팅팀장과 제작팀장을 지냈으며 대표작으로 <지킬앤하이드> 내한공연(마케팅&PR 디렉터), <기발한 자살여행>(프로듀서, 작사), <이블데드><조지엠코핸투나잇><벽을 뚫는 남자>(이상 프로듀서, 번역), <테니스의 왕자><헤드윅>(이상 프로듀서) 등이 있다. 현재 (사)한국뮤지컬협회 사무국장이자 동서대 뮤지컬과, 상명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학부에도 출강하고 있다.







전문성, 효율을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조동희 _ 과천한마당축제 기획실장


직군의 분화를 위한 기본전제는 당연히 전문성의 확보일 것이다. 전문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효율성이라는 명분 하에 직무를 나누고 합치는 기능적인 수단만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직군의 분화보다는 새로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직군의 '출현'이라는 표현이 옳을지 모르겠다.


현재 몸담고 있는 직업과 관련하여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20년 전 대학로를 어슬렁거리던 내 모습과 만나게 된다. 물론 당시 지금하고 있는 일을 하리라는 의지도 없었을 뿐더러 이 분야의 일을 하게 될 줄을 진정 꿈에도 몰랐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당연히 거쳐야하는 과정의 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단언하지만 장래 직업으로서의 고려는 전무했다. 때문에 작품을 벗어난 작품 주변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90년대 말 프랑스로 가면서 바뀌었고, 고백컨대 이 시기조차도 앞으로 예술분야에서 일할 것이라는 막연함 외에 목적은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절대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만은 정확했다.


나는 내 자신이 프로듀서/프로그래머라는 직군에 대한 얘기를 하기에 적당한 인물인지 글을 쓰면서도 무척 의심스럽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된 기간이 채 5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고, 관점에 따라서는 종사하는 분야가 예술계 내에서 조금은 색다른 영역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하지만 약간의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원고 의뢰에 임한 이유는 기존에 알고 있는 것을 벗어난 뭔가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거리예술 에이전시 역할 상당 부분 축소


거리예술 분야에서 소위 기획자라고 통칭하는 부류의 하나인 프로듀서는 그리 발달(전문화)되어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프랑스는 외부기획(에이전시)이 거의 없지만 스페인의 경우는 꽤 발달해 있다- 거리예술 분야에서 에이전시의 역할은 상당부분 축소되어있다. 몇 가지 이유가 떠오르지만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거리예술은 작품과 관객의 직접적인 접촉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위해 예술가가 작품창작에 필요한 직간접적인 부분들을 손수 챙기기도 하고, 작품을 초청하는 단체와 직접 연락하고자 한다. 창작과 관련해서도 거리예술은 작품의 컨셉, 공간의 선정, 작품과 만나게 될 관객 등 작품과 이를 둘러싼 환경들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를 분리해서 사고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작품의 컨셉을 지원기관에 정확히 전달하고 설득하여 예산을 마련한다든지, 공연을 위해 관련 단체에 공간의 허가를 신청하는 문제 등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조차 예술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일로토피 극단의 <색깔 있는 사람들>
둘째, 거리예술의 집단창작 방식과 다원화된 경향성이다. 2005년 과천한마당축제에서 공연한 프랑스의 일로토피(Ilotopie) 극단의 <색깔 있는 사람들>(Les gens de couleur)에 참여하는 프랑스 배우들 중 이른바 정규 연기수업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출신은 다양하다. 건축에 관심 있는 사회학자, 미술가, 사진작가 등. 배우들 이외에 극단의 예산과 배급담당자도 자연스럽게 공연에 참여했다. 단순히 공연에 잠깐 얼굴을 비치는 정도가 아니라, 작품에 참여하는 보통 배우들처럼 온몸에 칠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엄연한 역할이었다.


실제 그들의 작업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이런 집단적인 작업방식과 전문화를 거부하는 듯한 태도가 더욱 두드러진다. 분명히 역할은 구분되어 있지만, 작품과 창작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다분히 집단적이다. 연출, 배우, 행정, 기술 등 창작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조정하여 결정한다. 그러한 합의에 이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배우들의 검고 단단한 손, 예산 담당자의 기름때 낀 손톱 등 그들의 몸속에 이런 태도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다.




거리예술은 집단예술, 역할구분의 의미는


단체 구성원들의 역할과 실질적인 공연진행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2008년 과천을 비롯한 세 개 도시에서 프랑스극단 제네릭 바푀(G&eacute;n&eacute;rik Vapeur)의 <야영>(Bivouac)이란 공연이 펼쳐졌다. 총 6회 공연 중 내가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 서두에 밝힌 바대로 나는 예술가가 될 생각이 없고, 마지막까지 고사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예술가와 기획자의 경계는 의미가 없었다. 15미터 가량의 높이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다소 오금을 저리게 하는 역할이었지만 하루 연습 후에 비교적 무난히-공연진행에 방해되지 않게- 소화했다. 공연 후 며칠간 온몸 군데군데 남아있던 푸른 페인트의 흔적을 기억한다.


또다른 사례는 같은 해에 함께 초청한 프랑스 무용 단체인 엑스 니일로(Ex Nihilo)의 기타리스트인 파스칼 페라리(Pascal Ferrari)의 경우이다. 그는 엑스 니일로의 마지막 공연 후 부리나케 악기들을 정리하여 이어 벌어지는 제네릭 바푀의 퍼레이드 행렬에 참가하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는 이미 뮤지션으로서 이 극단과 여러 번 공연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기타리스트가 아닌 드럼통을 굴리는 배우로서 마지막 공연에 참여했다. 그들에게 역할구분은 어떤 의미인가?


제네릭 바푀 극단<야영>축제로 범위를 좁혀 얘기하더라도 거리예술의 이런 특성은 그대로 들어난다. 관객과의 보다 직접적인 관계를 모색하는 거리예술은 작품의 공간을 선정하는 데 있어 기술적인 논의를 넘어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결정해야 할 점이 많다. 이러한 단계에 이르면 프로듀서와 프로그래머의 경계는 모호하다. 거리예술 축제처럼 야외에서 벌어지는 예술표현 행위는 공간과 시간의 선정이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프로듀서는 작품이 실현될 공간에 대한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프로그래머는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속성을 인식하고 있다. 공간의 정보와 속성에는 공간의 크기, 설치물, 바닥의 재질, 소음정도, 접근의 용이성 등 물리적인 측면뿐 아니라, 지나가거나 머무는 사람들, 주변 공간들과의 관계 등 다분히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측면까지 포함된다. 이런 물리적, 사회적 요인들은 작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종종 프로듀서 개인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작품의 실현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가 된다.





&lsquo;좋은&rsquo; 작품과 &lsquo;맞는&rsquo; 작품은 다르다


따라서 거리예술 축제의 프로그래머들은 축제의 작품이 선보일 공간에 대한 특성과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고 이를 개별 작품에 어울리게 배치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고와 응용력이 있어야 한다. &lsquo;좋은&rsquo; 작품과 &lsquo;맞는&rsquo; 작품의 구분이 공간 등의 조건의 변화에 따라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지만 엄연히 이 둘은 다르다. 즉 프로그래머를 포함한 축제기획자들은 축제가 추구하는 예술적인 경향에 대한 전문가에 준하는 식견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축제에서는 학술적인 논의를 위한 기획 혹은 부대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지만 대부분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축제기획자들의 예술적인 지향성과 전문성이 모호하거나 부족하여, 이에 대한 심층적인 대화보다는 축제를 둘러싼 다분히 기술적이고 환경적인 이야기들만 오가기 때문일 것이다.


직군의 분화를 위한 기본전제는 당연히 전문성의 확보일 것이다. 전문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효율성이라는 명분 하에 직무를 나누고 합치는 기능적인 수단만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직군의 분화보다는 새로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직군의 &lsquo;출현&rsquo;이라는 표현이 옳을지 모르겠다. 새로운 전문성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확장이나 예술을 소통하는 또 다른 방식의 개발과 함께 확보되고 심화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존 예술과 차별화되고 예술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예술표현형식의 개발은 새로운 직제의 출현과 발전을 위한 직접적인 개입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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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희

필자소개
조동희는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리용2 뤼미에르(Lumi&egrave;re)대학 문화기획 석사과정(M&eacute;tiers des arts et de la culture), 부르고뉴(Bourgogne) 대학 문화정책 고등전문연구과정(DESS Action artistique, politiques culturelles et mus&eacute;ologie)을 졸업했다. 2005년부터 과천한마당축제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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