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 전문성, 인력의 전문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군(무) 분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 예술경영 현장의 요구는 여전히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관리하는 만능인이다. 이러한 담론과 현장의 간극을 살피기 위해 [weekly@예술경영]은 분화가 뚜렷한 직군을 중심으로 각 직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획경영인들에게 각 직군의 경력 개발 과정과 전망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예술경영 전문인력과 직군 분화의 현 단계를 살핀다. 연재순서: ⑤ 홍보마케터




사회 트렌드 전반에 대한 이해 필요


최여정 _ (주)연극열전 홍보마케팅 실장


보다 넓은 안목에서 보면 자신의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과 도전의 경쟁자는 내 주변의 몇몇이 아니다. 홍보, 마케팅의 다양한 이론과 다른 기업군들의 트렌드와 전략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적용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온다. 혹자는 그걸 두고 &lsquo;인생에 찾아오는 세 번의 기회&rsquo;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내 인생의 서른 두 해를 돌이켜보니 공연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아마도 첫 번째 기회이자 행운이 아니었을까. 대학 진학 무렵에는 방송국에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영상제작을 전공했고 원하던 대로 방송국 구성작가가 되어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방송국 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았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두고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의 재미에 빠져 유학까지 결심하던 그 무렵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러가게 되었는데 그 날의 기억은 마치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스위치가 켜진 것 같은 작은 충격이었다. &lsquo;공연의 재미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런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rsquo;.



월간지 제작에서 홍보의 기초를 익히다


그러한 충격이 있고 얼마 후, 수원에 있는 경기도문화의전당의 1기 공채직원 모집공고를 공지 마지막 날 우연히 보게 되었고 논술시험, 영어면접, 임원면접까지 3차에 걸친 시험을 통과하여 매일 공연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첫 발령 업무는 언론홍보와 공연장 회원을 대상으로 발간하는 월간지의 창간준비였다. 입사 3일째 되던 날, 난생 처음 보도자료를 써보라는 사장님의 지시에 당황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경기도문화의전당은 정동극장장으로 재직하며 수많은 홍보, 마케팅 아이디어를 개발하여 정동극장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훈장까지 받으신 홍사종 사장님이 맡고 계셨다. 지금도 지방공연장의 모범사례가 되는 지역소재를 활용한 창작공연제작과 공연장 최초로 장애우석을 도입하는 등 예술의 공공성을 위한 다양한 문화복지정책, 그리고 위탁운영을 맡은 경기도립 4개 예술단의 정기공연홍보에 관여하며 공공예술단체의 효과적인 지원방향까지 공연과 문화정책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또한 매월 발간되는 월간지제작은 기사의 기획, 취재 등 모든 과정에서 홍보담당자로서 꼭 필요한 창의적인 글쓰기와 인쇄물 편집에 대한 이해, 그리고 더불어 문화계 전반적인 동향까지 파악하는 좋은 경험이었다.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의 4년여 시간을 뒤로 하고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의 연극열전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된 건 공연경력에서 또 한 번의 중요한 결심이었다. 누군가는 &ldquo;공기관에서 편히 지낼 것이지 뭐 하러 사서 고생이냐&rdquo;는 걱정도 했다. 보수도 적고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조건이었지만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연극열전 프로젝트에 대한 믿음과 홍보팀장으로서 역할모델에 새롭게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대학로로 출근길을 옮겼다.




공공극장과 민간 기획사

'연극열전2' 제작발표회
그러나 시작은 쉽지 않았다. 같은 공연계이지만 공공기관인 공연장 운영과 예산지원 없이 티켓 매출로 회사의 존폐가 결정되는 기획사의 분위기란 흡사 온실과 전쟁터를 오가는 듯 했다. 2007년 9월에 입사하여 힘든 적응 과정을 거쳐 &lsquo;연극열전2&rsquo; 런칭, 장장 1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숨 가쁜 일정으로 거둔 성과는 27만명 관람이라는 연극계에서는 전례 없던 새로운 기록이었다. 지금은 또 다시 &lsquo;연극열전3&rsquo; 런칭을 마치고 첫 작품 <에쿠우스>와 두 번째 작품 <엄마들의 수다>를 동시에 무대에 올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lsquo;연극열전3&rsquo;의 시작은 나에겐 또 다른 도전이다. &lsquo;연극열전2&rsquo;의 런칭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홍보팀장이 아니라 홍보마케팅 실장으로서 공연의 홍보마케팅 모든 과정에 관여하여 각 부분의 업무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게 되었다.

공연계에 몸담을 때부터 홍보업무를 시작하여 어느 새 6년,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쯤 회사의 이런 제안은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었다. 크게 제작, 홍보, 마케팅으로 나뉘는 공연제작과정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공연계에서는 제작 과정에 깊게 관여하다가 회사를 독립하여 운영할 정도로 제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공연문화가 더욱 발전하고 있는 해외 사례에서 보듯 공연 제작과정에서 홍보마케팅의 업무가 미치는 영향은 날이 갈수록 보다 전문화되고 있다. 더 나아가 능력 있는 홍보마케팅 담당자의 의견 한마디는 작품의 제작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 공연 홍보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연예술에 대한 안목과 비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성이다.


문제는 공연예술 분야에서 전문성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수입되면서 그 예산의 규모에 따라 홍보마케팅도 점차 세분화 전문화 되고 있지만 글로벌한 이미지의 상품제작과 서비스를 하는 대기업군의 수백억에 이르는 홍보마케팅 예산과 비교했을 때 그 규모와 실행전략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뮤지컬도 이러한데 연극이나 무용 공연은 흔히 말하듯 &lsquo;가내 수공업&rsquo;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이나 대학원 학위 수여과정에서 언론홍보대학원이나 경영대학원은 이런 대기업군에 적용할 만한 이론이고 예술경영대학원이 생기면서 많은 공연예술 담당자들이 진학하여 공부를 하기도 하지만 공연예술분야가 발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강의를 맡을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실무진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기존 이론만으로는 부족한 공연예술 홍보마케팅 전문성


연극열전3 <에쿠우스> 출연진들이런 과도기에서 많은 담당자들은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기회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얼마 전에는 한국PR협회가 주관하는 PR전문가 인증교육을 거쳐 PR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그 수업에 참여한 150여 명의 직장인 중에 공연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른 사람들의 여가시간을 위한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담당자들임에도 정작 스스로의 여가 시간도 갖기 어렵고 다른 기업군들보다 보수도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넓은 안목에서 보면 자신의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과 도전의 경쟁자는 내 주변의 몇몇이 아니다. 홍보마케팅의 다양한 이론과 다른 기업군들의 트렌드와 전략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적용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담당자들이 그렇듯 업무에 대한 성취도나 애정은 그 어떤 직업군보다 높다. 그리고 공연예술의 발전 척도는 단지 국민소득과 연결되는 경제적인 수치를 뛰어넘는 그 나라의 국민성과 선진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인 만큼 이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그에 따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100여 개가 넘는 지방문예회관과 대학로 소극장, 그리고 수많은 공연장들의 신축소식이 이어지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공연예술분야의 지원과 발전은 앞으로 더욱 기대할 만하다. 특히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연예술분야의 홍보마케팅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홍보마케팅 업무의 특성상 다른 자질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어떤 업무를 시작하든지 홍보마케팅의 전략 수립 과정은 떼려야 뗄 수 없으므로 이를 아우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최여정

필자소개
최여정은 EBS 교육방송 구성작가와 경기도문화의전당 마케팅팀을 거쳐 현재 (주)연극열전 홍보마케팅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잘 알고 잘 안내하는 것이 중요한 때


정유란 _ 문화아이콘 대표


홍보마케팅은 자신이 다루는 콘텐츠를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전반적인 시장을 읽어내는 눈, 자기가 다루고 있는 작품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얼마나 잘 소통해내느냐가 원하는 목표에 얼마나 가까이 도달하느냐를 결정한다.


여타의 공연계 종사자들이 입직 단계에 어떤 동기 부여를 가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출신성분(?)이 명확한 &lsquo;관객&rsquo;이었다. 대학 시절 극예술연구회 동아리 활동을 통해 연극을 처음 접하면서 연극작업에 대한 흥미를 키웠고, 그 옛날 PC통신 시절 천리안 연극동호회에서 오랫동안 운영진으로 활동하면서 공연 보는 재미를 붙였다. 원래 연극연출을 희망하며 준비하고 있었지만 공연기획사에서 제작전반 시스템을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으로 공연기획사에 들어가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 되었다. 공연기획사의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매우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홍보마케팅 업무였다.


아직 공연계에는 전문적인 홍보마케팅 전문업체 혹은 교육기관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표준화된 매뉴얼이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혹 있다 하더라도 매뉴얼에 따라 할 수 있는 일 또한 아니다. 기초적인 매뉴얼은 가능하겠지만 실무에 들어가면 폭넓고 깊이 있는 경험에 의해서만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다.




창단공연 전문기획팀?


나는 스물여섯이 되던 2000년 2월부터 현재까지 &lsquo;문화아이콘&rsquo;이라는 기획팀을 꾸리고 있다. 새로 시작하는 젊은 팀과 워낙 작업을 많이 해서 한때는 &lsquo;창단공연 전문기획팀&rsquo;이란 소문이 나기도 했다. 창작물이 무대화되는 데 기획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과 젊은 사람들의 판 벌여주기에 관심이 많아서 2001년 봄부터 2005년 봄까지는 혜화동1번지의 3기 동인들과 작업하면서 다양한 팀들의 새롭고 신선한 시도들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맡았던 <볼쇼이 아이스쇼> 공연은 공중파 방송국 사업부와 연계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거대 조직 내에서의 역할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크고 작은 프로덕션에서 나름의 방식들을 접하고 추후 이 케이스들을 확장시키고 발전시켜 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자기만의 내공을 축적하는 과정이 되었다.


예술경영이라는 용어 자체가 국내에서 귀에 익숙해지고 자리를 잡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에 해당하는 영역에 있는 사람들의 자기 자리 찾기 또한 아직 과도기에 있을 수밖에 없다. 입문단계에 있는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한 일인가, 어떤 일인가에 대한 인식 없이 단순 업무로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업무가 분화될수록 전문성이 강화된다기보다는 자기 영역 이외의 것에 대해 무지해지는 순간을 더 많이 만나는 것을 보았다. 요즘 사람들은 영리하게 자기 몫을 잘 찾아가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일단 자기 앞에 떨어진 미션에 충실하고 나머지는 불필요한 요소라고 여긴다. 하지만 전체를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홍보마케터는 자신이 다루는 콘텐츠를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첨예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기사 한 줄을 끌어내는 일이건 관객을 한 명이라도 더 객석으로 이끄는 일이건 세상 누구보다 이 콘텐츠에 대해 상대를 효과적으로 설득해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홍보마케터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전반적인 시장을 읽어내는 눈과 자기가 다루고 있는 작품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 거기에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얼마만큼 잘 소통해내느냐가 원하는 목표에 얼마나 가까이 도달하느냐를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족뮤지컬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 제작발표회, 뮤지컬 <구름빵> 공연장면





홍보-마케팅 분화, 전체를 보는 폭과 깊이 필요


처음 원고 의뢰를 받았을 때 공연예술 분야에 있어 홍보마케터라는 직군이 분류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홍보마케터가 공연 프로덕션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직무라고 인식되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공연팀의 막내가 거리에 포스터 붙이는 일을 하고 나서 크레딧에 홍보라고 이름이 올라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공연계 자체의 흐름은 빠르게 변화해왔고 여전히 변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각 분야별 업무도 분화되면서 홍보마케팅도 업무가 점차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각종 언론과 매체를 통한 홍보 영역과 티켓세일즈를 중심으로 한 광고와 프로모션을 포함한 마케팅 영역으로 나눠서 업무가 추진된다.


홍보마케터로서의 전문성이란 스스로가 가지는 창조적인 마인드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제작이나 기획 혹은 또 다른 창작자의 지향점을 가지고 그저 중간 과정으로서 홍보마케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홍보마케터는 관객과 작품이 만나는 가장 첨예한 위치에서 일한다. 앞으로 이 영역은 계속 확대될 것이다. 잘 만드는 것 이상으로 잘 알고 잘 안내하는 일이 중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특집 [예술경영 전문성과 직군 분화] 다른 기사 보기
① 큐레이터 ② 갤러리스트/아트딜러 ③ 에듀케이터 ④ 프로듀서/프로그래머 ⑥ 예술행정가







정유란

필자소개
정유란은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을 전공하고 연극, 음악, 뮤지컬 등의 다양한 작품을 기획해왔다. 공연프로덕션 실무교육에 관심이 많아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실시하는 교육프로그램에 매년 코디네이터로 참여했고, 올 여름에는 어린이주크박스플라잉뮤지컬 <구름빵>을 제작했으며, 최근에는 중앙일보 틴틴경제 ';정유란의 문화예술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청소년공연 추천 칼럼을 매주 게재하고 있다. 현재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감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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