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 전문성, 인력의 전문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군(무) 분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 예술경영 현장의 요구는 여전히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관리하는 만능인이다. 이러한 담론과 현장의 간극을 살피기 위해 [weekly@예술경영]은 분화가 뚜렷한 직군을 중심으로 각 직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획경영인들에게 각 직군의 경력 개발 과정과 전망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예술경영 전문인력과 직군 분화의 현 단계를 살핀다. 연재순서: ⑥ 예술행정가
행정기관의 의사결정은 미션, 비전, 리더십, 전략, 조직, 재무 등의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 예술행정기관이라는 이유로 그 과정이 무시되고 외부 예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예술로 결정할 수는 없다.



매년 공공기관들은 기획재정부의 경영평가를 받는다. 문예진흥기금을 운용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예외는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예술위원회는 그 성적이 좋지 않아 경영평가 ‘꼴찌’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어 있다. 예술위원회가 수조 원대의 예산을 굴리며 수천 명의 직원을 보유한 대형기관들로 구성된 ‘연기금운용 유형’이라는 정글 속에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예술행정이 현재 이 사회에서 보여주고 있는 경쟁력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많이 아는 것, 균형 있게 아는 것


예술위원회에서 예술행정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매년 10월에 지원신청을 받는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예술행정가라고 하면 항상 예술가들과 접촉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계 접점부서에 배치되면 사실 그 예상과 다르지 않다. 예술계와의 접점에 있는 예술행정이 사실 전형적인 예술행정 영역일 것이다. 예술행정에 대한 예술계의 많은 평가 역시 그 접점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행정의 전문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부분이기도 하며 예술가들이 예술행정에 대한 의욕을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필자가 예술위원회에서 10년 간 근무하는 동안 그런 접점부서에 배치되었던 기간은 대략 절반 정도이다. 미술관을 시작으로 지원심의총괄, 국제교류, 전통예술, 무용 등의 담당부서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학부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하면서 문화교류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당시 문예진흥원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접점부서 업무에 별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었다. 접점부서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능력은 예술에 대한 지식과 예술계 네트워킹이었다. 지식의 수준에 대해서 정답은 없겠으나 현장과 접촉이 많은 업무의 특성상 열정을 갖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분야이다. 최근 예술위원회는 책임심의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직원들이 일정부분 공식적으로 심의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를 수 년 전에 도입한 영국예술위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에게 심의에 참여하는 직원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다. 평론가 수준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식의 대답을 예측했지만, 그들의 대답은 많이 아는 것보다는 균형 있게 아는 것이 중요하며 다양한 네트워크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필자 경력의 절반은 예술인 접점 부서가 아니었다. 회사 내부와 상급기관을 상대해야 하는 부서였다. 국회, 기획재정부, 문화관광부를 상대로 예산을 따오고, 경영평가에 대응하는 업무를 진행하고, 내부적으로 중장기전략을 수립하고, 조직의 성과를 평가하고 향상시키는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이런 업무들을 물론 예술과 관계없는 일반행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술지원정책을 집행하는 예술위원회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예산을 따기 위해 예술지원의 정당성을 외부기관에 설득하고, 외부평가를 위해 예술지원사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성과 향상을 위해 예술접점 부서의 퍼포먼스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예술행정기관 고유의 일이기 때문이다.




행정의 총체적 과정에 대한 체계적 접근


이런 부서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예술 접점에 대한 감각 유지와 업무능력, 그리고 경영학적 지식이다. 이 부서에서는 현장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현장과의 감각이 단절될 경우 말 그대로 탁상행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업무능력이다. 예컨대 기획재정부는 수많은 부처와 기관들을 상대로 한다. 예술행정기관이라고 허술한 자료가 용인될 리 없다. 개인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경영학적 지식이었다. 특히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강화되면서 조직 전체 차원에서 경영학에 대한 전문성 부족이 아쉬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국악축전' 행사모습


예술계와의 접점에 있는 예술행정 영역에서도 행정과정에 대한 이해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어떤 단체를 지원하고 안하고를 결정하는 것은 단지 예술적 식견이 아니라, 대내외 환경 속에서 조직의 미션과 비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정된 공공재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총체적인 과정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위원회의 경영평가 결과가 하위 수준을 맴도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계와의 접점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예술계와의 접점에서 일어난 문제를 예술로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행정기관의 의사결정은 미션, 비전, 리더십, 전략, 조직, 재무 등의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술행정기관이라는 이유로 그 과정은 거의 무시하고 외부 예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예술로만 결정하는 것이 많은 예술행정기관의 현실이다. 그러니 기관의 특성상 예술계의 이의 제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납세자인 국민의 편익을 높이고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예술행정이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예술접점만이 아니라 예술행정이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과정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예술행정의 다양한 영역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만 하더라도 사업뿐만 아니라 경영진리더십, 비전 및 전략체계, 윤리경영, 고객만족(CS)경영, 재무예산관리, 조직 및 인적자원관리, 보수 관리, 성과관리체계 등 다양한 분야를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예술위원회에는 기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가 있다. 이 사람이 1% 수익을 더 내고 못 내느냐에 따라 수백 명의 예술인들이 지원을 받을 수도, 못 받을 수도 있다. 흔하지 않은 예이지만 우리의 예술행정에 대한 시야가 너무 좁지는 않은지 고민해볼 일이다.




노벨문학상만이 아니라 노벨경제학상에도 관심을


앞으로 많은 예술행정기관에서 예술적 소양을 갖춘 경영 분야별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할 것이다. 최근 많은 예술행정기관들이 외부 경영컨설팅을 실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점차 예술경영이 아닌 일반 기업체나 공공기관을 상대하는 컨설팅회사의 참여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행정이 경쟁력을 가져야만 한정된 공공재원을 사용하는 사회 속에서 예술의 영역을 확보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형적 예술행정 외에 다양한 분야의 예술행정이 앞으로 주목을 받을 것이다. 어쩌면 예술행정가들에게 필요한 학위는 예술경영학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 MBA일 수도 있다. 예술행정가들이 노벨문학상뿐만 아니라 노벨경제학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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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승

필자소개
이제승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와 국제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99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입사했다. 전통예술, 무용 분야 지원사업 및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2004~2005 국악축전 등 주요 기획사업을 추진한 바 있으며 중장기 전략, 예산, 성과평가 등 다양한 업무 경험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세계문화의집, 영국예술위원회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지금은 예술극장 통합재단법인 준비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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