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weekly@예술경영]에서는 분야별로 한해를 전망하는 신년특집 ‘2010을 전망한다’를 마련하여 시각, 공연, 정책 등 각 분야 전문가가 2010년 주목해야 할 주요 흐름과 이슈를 제안한다. 연재순서 ① 시각
애초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계약조건에 대한 소신을 정확히 피력하는 것이 좋다. 당장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계약서를 쓰게 되면 두고두고 갈등의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셈이다. 강조하지만, 선택은 프로듀서의 몫이다. 단, 그 조건을 지키는 것 또한 프로듀서의 몫이다.



올 한해는 대형미술전시가 줄을 잇는다. 2010년 9월에 집중적으로 열리는 전시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제8회 광주비엔날레와 제4회 부산비엔날레, 그리고 제6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가 그것이다. 비엔날레라는 제목이 알려주듯 2년에 한 번 꼴로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대형행사, 이벤트는 올해도 멈춤 없이 열릴 것이다. 따라서 2010년 미술계는 우선 그 대형행사에 부단한 관심과 초점을 맞출 것이다. 초기에 비해 관심과 열정이 많이 소진되어 보이는 그 행사들이 왜 그렇게 집중적으로, 거의 동일한 시간대에 열려야 하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도리어 초기의 긴장감과 밀도를 잃어가면서 하나의 큰 전시, 또는 때가 되면 열리는 미술계 이벤트 정도가 되어 점차 노쇠해가는 징조가 보인다면 과언일까?


이제 비엔날레마다 내세우는 그럴듯한 주제란 그저 현란하고 현학적인 레토릭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대규모 행사가 이곳 한국미술계와 어떤 연관성을 지니며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글쎄, 올해는 과연 이런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이곳 미술계는 미술의 새로운 담론, 예술정신, 그리고 미술의 쓰임과 역할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 어떤 관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아마도 시장과 자본일 것이다.


(좌) 제7회 광주비엔날레(2008) 거리 퍼포먼스 (우) 제4회 부산비엔날레(2006)




비엔날레의 해, 담론 없는 미술계 레토릭을 넘어설까


미술은 항상 당대의 삶에서 유래하는 핵심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명한다. 예술은 현존하는 삶에서 늘 새로운 삶, 보다 인간적인 삶을 꿈꾸기에 기존 삶의 가치관이 균열을 일으키는 지점에서, 비인간적인 삶이 강요되는 지점에서 먼저 파생한다. 예술가는 세계와 현실에 대해 불만이 많은 자들, 의심이 많은 자들이다. 세계와 불화하는 이들이다. 그것은 이 세계와 삶이 불만이 아니라 그것이 작동되는 정치적, 사회적 방식에 대한 불만이다. 이런 식의 삶이 아닌 다른 식의 삶에 대해 발화하는 존재가 예술가다.


그러나 이곳 미술인들의 관심은 오로지 시장이다. 자본이다. 대학생부터 중진이나 원로작가나 한결같이 작품판매만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다. 이전에 비해 너무 많은 혜택에 노출된 젊은 작가들은 누가 지원금을 받았고 어느 레지던시에 들어갔으며 누가 잘나가느냐는 정보와 소문에만 귀를 기울인다. 미술은 이제 정보의 문제가 되었다. 그런 정보를 잘 알고 활용하고 그에 맞춰 자료를 만들고 줄을 대는 게 작업이 되고 삶이 되었다. 정글 같은 시회에서, 미술계에서 생존이란 것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인천아트플랫폼, 신당창작아케이드, 경기창작센터-2009년 개관한 레지던시 시설


오늘날 비평 역시 주류에 편승하거나 시장을 따르는 일이 되었으며 모든 큐레이터들은 시장 강박증을 갖고 대중동원과 매스컴을 의식해 기발하고 재미있고 엽기적이며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작품만을 경쟁적으로 선호한다. 당연히 작가들은 비평이나 예술의 역할과 기능, 고민 등에 대한 관심을 버렸다. 보기 좋게 패키지화되거나 시장적 임팩트가 강한 작품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시장에서 선호되는, 뜬 작가들의 작품이 전거가 되고 진리가 되었다. 해서 극도의 이기심과 경쟁논리만이 무성하다. 따라서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미술과 연관된, 삶과 연동된 수많은 논의들이, 문제들이 제기되어도 여론이 없는 이유다.




불완전한 경기회복, 여전한 심리불황
침체기 긍정적 신호 읽어내는 장기 전략 필요


그래서일까, 연초에 올 한해 미술계를 조망하는 기사들은 죄다 미술시장과 경기에 꽂혀있다. 올해의 미술시장 기상도는 지난 2년간 보여준 급락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완만하게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불완전한 회복, 그리고 심리불황에서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한동안 뜨겁게 달궈졌던 미술시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단타족들이 떠나고 따라서 이런 점은 시장의 건전성을 알려주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기존의 미술시장의 관행과 화랑들의 구멍가게식의 상행위를 넘어서려는, 위기에 대처하는 전략을 기대하기란 좀 요원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좋은 작품을 선별해내는 예리한 안목과 작가들에 대한 장기적인 지원과 육성, 그리고 다각도의 마케팅과 홍보 전략이 요구된다. 분명 지난 두 해동안의 불황은 화랑들에게 나름의 반성의 시간과 공부의 필요성을 심어주었으리라 본다.


2009 아트옥션쇼 행사모습 사진제공 서울옥션


그래서인지 국내 화랑들이 최근의 글로벌 시대를 맞아 미술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미술품 거래가 국경 없이 이뤄지는 등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대형 화랑들이 해외의 화랑을 비롯해 미술관, 평론가, 컬렉터와의 국제적인 네트워킹이 중요해짐을 깨닫고 해외에 지사 성격의 갤러리를 열거나 소속 작가 해외 포로모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중요 대형 화랑들이 앞 다투어 뉴욕과 베이징에 화랑을 여는가 하면 옥션 역시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는 후기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판매 상품으로서의 유연성과 자족성의 실현이라는 과제의 실현으로 보인다. 자본이 국경을 무화하고 자족성을 획득하듯이 말이다. 화랑은 이제 단순히 미술작품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를 모색하고 있다.


작가들 역시 이제 거대한 다국적 시장, 세계시장에 노출되어 그곳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내재화할 것이다. 화랑들도 그런 관심과 잣대 속에서만 작가를 선별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로지 시장의 요구와 법칙 속에서만 미술계가 작동되어야 하는가이다. 그에 저항하는 한편 진정한 의미에서 좋은 작품과 의미 있는 미술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이곳 현실에 대해 부단히 발언하고 가치 있는 미술작품에 대한 논의와 고민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말들은 거의 잦아들어서 들을 수 없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면 그 많은 미술인들은 오로지 시장에 대한 관심과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모색 이외에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올해는 미술계와 현실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 미술적으로 고민하고 소리를 내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박영택

필자소개
박영택은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및 제2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기대학교 미술경영학과 교수이자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예술가로 산다는 것』『식물성의 사유』『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미술전시장 가는 날』『가족을 그리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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