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 낙찰총액은 감소했지만 거래 작품 수는 늘었다. 중저가 거래가 많았다는 것이다. 아트페어, 대형 이벤트 형 전시 성행 등 미술 향유문화의 확산으로 볼 수 있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고 했던가.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명언이다. 이 말은 ‘탄생-B(birth)’과 ‘죽음-D(death)’에 이르는 인생의 여정엔 ‘선택의 순간-C(choice)’이 늘 함께 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2009년과 2010년 사이 우리 미술시장도 선택의 순간을 맞고 있다. 과연 2005년 이후 몇 년간 반짝 특수를 맛봤던 옛 영화를 되찾을 것인가, 아니면 끝 모를 바닥으로 침잠한 채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는 순전히 우리 선택의 몫이다. 성패의 갈림길과 과도기의 혼돈일수록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는 이 시점에서 2009년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피카소:총벽> (Picasso: Mosqueteros)

경기불황이 장기화 되면 기업들의 투자심리 또한 크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불안정한 시장경기에 따른 수요자들의 심리적 위축감은 상상보다 더 크다. 이는 현대미술의 동향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일까, 작년의 화두는 &lsquo;다시 클래식으로&rsquo;였다. 경기불황의 정점을 이뤘던 작년 초반, 뉴욕 첼시지역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전시는 바로 가고시언갤러리의 《피카소》展(3.26~6.6)이었다. 시장의 꽃으로 군림하던 데미언 허스트나 제프 쿤스가 아닌, 피카소의 후기 작품을 모은 전시《피카소 : 총병》(Picasso: Mosqueteros)이 그 주인공. 10주 동안 관객 8만 7500명을 모았으니, 1주일에 8750명, 하루에 약 2천여 명이 다녀간 셈이다. [뉴욕타임즈]는 이 전시의 성공을 &lsquo;불경기 증후군&rsquo;(Symptom of Economy)으로 분석했다. 불황기일수록 실험적인 경향보다 검증된 안정적인 작가와 작품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해석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피카소야말로 가장 완벽한 보증수표임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모네의 수련》(2009.9.13~2010.4.12), 뉴욕 구겐하임 50주년 기념 전시《칸딘스키》(2009.9.18~2010.1.13) 등으로 재확인 되었다. 이렇듯 현재 현대미술 분야는 투기와 거품이 많이 빠지면서 투자자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시장의 유동성이나 규모도 2~3년 전과 비교해 50%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중산층 위주의 미술컬렉션 지형도

국내 미술시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시장경기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경직되었다. 2009년은 전체 유통시장이 올 스톱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작가나 화랑, 딜러 등 거의 전 방위적으로 예외가 없었다. 가령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공동대표 이호재, 이학준)의 낙찰총액은 전년(약 695억 원) 대비 44% 감소한 387억 원이었다. K옥션(대표 김순응) 역시 4차례 메이저 경매의 낙찰액은 총 185억 원으로 2008년의 295억 원보다 40% 정도 감소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소도 있었다. 서울옥션의 경우 전년의 9차례보다 훨씬 늘어난 총 14차례의 경매횟수에 낙찰 작품수량 역시 2008년 496점에서 1382점으로 무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물론 낙찰작품의 평균가격은 1000만원 내외의 중저가였다. 이런 점은 바로 중산층 위주로 미술컬렉션 지형도가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를 이끌어내고 있다.

아트페어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져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아트페어는 경매와 함께 국내 미술시장을 이끌고 있는 쌍두마차이다. 공개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치러지는 아트페어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미술의 향유문화가 널리 확산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트페어 시장은 이젠 연중 무휴상태에 접어들었다.

1. 화랑미술제-부산 2.서울포토 3. 서울오픈아트페어 4.서울아트살롱

대중의 큰 인기를 끌었던 주요 아트페어만 순차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3월 첫 포문은 국내 최초의 화랑중심 아트페어인 &lsquo;제27회 화랑미술제-부산&rsquo;(3.19~23, 부산 벡스코 제3전시장)이 열었다. 이어 4월엔 서울 코엑스에서 &lsquo;제1회 서울 포토 2009&rsquo;(4.8~18)와 &lsquo;제4회 서울오픈아트페어 SOAF&rsquo;(4.15~19)가 열렸고, 연예인 마케팅으로 시끌벅적했던 &lsquo;서울아트살롱&rsquo;(4.16~20, AT센터)이 이어졌다.

5월엔 &lsquo;한 지붕 두 가족&rsquo;으로 구성된 &lsquo;2009한국구상대제전&rsquo;과 &lsquo;2009아트서울&rsquo;(5.22~6.4, 한가람미술관)이 &ldquo;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rdquo;이라는 슬로건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어 6월엔 같은 장소에서 기획전 성격의 아트페어인 &lsquo;블루닷아시아&rsquo;(6.20~25), 7월엔 신세계 갤러리 광주점에서 &lsquo;제4회 신세계아트페어&rsquo;(7.27~8.3), 8월엔 &lsquo;2009 코리아 아트서머페스티벌&rsquo;(8.5~9,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과 &lsquo;2009 통영아트페어&rsquo;(8.11~17, 충무실내체육관) 등이 눈길을 끌었다.

또한 비수기 휴가철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로서 호텔아트페어가 개최되어 새로운 전시형식을 선보였다. 우리나라에 호텔아트페어라는 새로운 유통망을 만드는 시발점이 된 &lsquo;알토부산아트페어&rsquo;(8.14&sim;16, 부산 해운대 센텀호텔)가 열렸는가 하면, 2008년 일본 도쿄에서 처음 시작된 &lsquo;아시아 톱 갤러리 호텔아트페어&rsquo;(8.21~23, 서울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가 큰 성황을 이뤘다.

성수기의 초입인 9월 역시 아트페어의 본격 시즌이었다. 먼저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주관 &lsquo;2009 KPAM 대한민국미술제&rsquo;(9.2~7, 한가람미술관), 세계 최대 규모의 판화 사진장터인 &lsquo;서울국제사진판화아트페어&rsquo;(9.12~16, 한가람미술관), 한국 최대 규모의 아트마켓인 &lsquo;한국국제아트페어(KIAF) 2009&rsquo;(9.18~22, 서울 코엑스 대서양홀&컨벤션홀) 등이 치러졌다. 성수기의 절정인 10월엔 국내 처음으로 &lsquo;아트페어&rsquo;라는 용어를 사용한 &lsquo;제15회 마니프(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rsquo;(10.14~25, 한가람미술관)가 열렸으며, 11월엔 인사동 화랑가를 중심으로 한 &lsquo;인사미술제&rsquo;(11.18~24)가 새로운 재미를 선사해줬다. 이외에 전국으로 추산한다면 30여개의 군소 아트페어가 성행한 것으로 짐작된다.


대형 이벤트 형 미술전시 성행

아트페어 전성시대 못지않게 &lsquo;미술전시 대형 이벤트&rsquo;의 성행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블록버스터급 대형 기획전의 특징은 바로 일반의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나 작품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는 서두에 불황일수록 &lsquo;클래식&rsquo;에 관심이 쏠린다는 말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비록 엄청난 로열티와 진행경비 지출로 외화낭비라는 지적도 있겠지만, 국내의 &lsquo;미술문화 향유계층 확산&rsquo;이란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는 자명한 사실이다. 2009년을 달군 빅 이벤트 대형전시는 적지 않다.

첫 출발의 주인공은 1월 6일부터 3월 25일까지 일산 아람미술관에서 열린《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전시였다. 이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르누아르 90주기를 맞아《행복을 그린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전(5.28~9.13)이 열렸다. 황금빛 색채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화가《구스타프 클림트》(2.1~5.15, 한가람미술관)도 한국을 찾았다. 또한 뚱뚱보 그림으로 이름난 콜롬비아 화가《보테로 특별전》(6.30~9.17, 덕수궁미술관)에 이어, 앤디 워홀의 초상화 작품 250여점이 선보인《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12.12~2010.4.4)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행복을 그린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구스타프 클림트>, <보테로 특별전>

이외에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백남준 3주기 기념 《백남준&middot;강익중 2인전》(2.4~4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 유물을 전시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집트 문명전-파라오와 미라》(4.28~8.30)와 잉카문명으로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태양의 아들 잉카전》(2009.12.11~2010.3.28) 역시 다수의 마니아층을 만들어 내었다.


내실을 다지는 휴지기

2009년은 결국 미술시장의 외형적인 팽창보다 미술계의 내실을 다지는 휴지기였다고 볼 수 있겠다. 영국의 미술 잡지 [아트 리뷰]의 2009년 &lsquo;세계 미술계의 파워 인사 100명 리스트&rsquo; 결과 역시 이런 점을 뒷받침해준다. 2008년 1위는 미술시장의 태양으로 군림했던 데미언 허스트였지만, 2009년은 42세의 젊은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차지했다. 이는 소비위주의 유통시장보다 생산위주의 전시계에 더 큰 비중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세계 미술시장은 체질개선으로 새로운 몸만들기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 미술시장도 총체적인 난국을 지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심기일전이 중요하다. 사르트르가 인생을 정의한 &lsquo;B(birth)&rsquo;와 &lsquo;D(death)&rsquo; 사이의 &lsquo;C(choice)&rsquo;를 넘어, 새롭게 행복의 순간을 맞이할 &lsquo;기회(Chance)&rsquo;를 잡느냐 혹은 못 잡느냐는 순전히 우리가 풀어야 할 숙원과제인 셈이다.





김윤섭

필자소개
김윤섭은 1995년 월간 [미술세계] 취재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과 월간 [아트프라이스] 및 월간 [아트옥션]의 편집이사를 지냈다. 2007년 9월 국내 대학교 처음으로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에 미술시장 전문강좌 ';아트마켓&아트테크'; 특별강좌를 개설해 주관하고 있다. 또한 미술시장과 아트재테크 관련한 외부 강연 및 미술품 투자전략에 관한 폭넓은 컨설팅을 전개 중이다. 현재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과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가격심의위원, 문화체육관광부 시각예술 국고지원사업 평가위원, 울산대 객원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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