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전후로 지방자치제도의 본격화, 공연예술게의 성장 등을 거치면서 공연예술축제도 급속히 성장했다. 그에 따라 축제가 지향하는 역할에서도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면서 유통, 예술가 발굴 및 지원, 제작 등 축제 프로그램 또한 다양화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여전히 공적 자금에 의존한 불안정한 재정, 정부 혹은 지자체 정책변화의 영향, 사회적 이슈에의 압도 등으로 축제의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어렵게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극장의 성장 등 예술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특집 '한국공연예술축제, 변화와 진단'은 다양한 관점으로 한국공연예술계에서의 축제의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① 전개와 현황
현대축제의 조건 속에서 많은 지역축제와 경쟁하고 비교됨에 따라 공연예술축제는 외적 환경에 더 많은 구속력을 가지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외적환경은 축제 목적, 내적 준비 정도와는 별개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국제화의 열망, 축제 목적보다는 소재적 차별성과 프로그램 선점에 대한 노력, 관객소통 프로그램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대중추수적 프로그램 등으로 현상화된다.



공연예술축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공연예술 활동을 축제적 계기로 묶어주기도 하고, 또 축제를 통해 공연예술 현장에 새로운 흐름과 활기를 만들어 주는 전환점으로 작동하기도 하는 연례적 특별 이벤트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에든버러 축제, 아비뇽 축제 등은 영국과 프랑스의 공연예술 문화지형, 유럽의 공연예술 문화지형에 연례적으로 예술적 계기를 만들고, 또 예술적 영감과 사회적 파급력을 구축해왔기 때문에 세계적인 예술축제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를 전후해서 공연예술축제는 예술적 목적을 넘어 지역과의 관계 속에서 또 다른 기대치를 가지게 한다. 공연예술축제는 지역의 문화예술 콘텐츠로서 지역마케팅, 또는 지역관광의 중요한 창의적 자산으로 이해되고, 이러한 열망이 때로는 지나쳐 가시적이고 성급한 경제효과나 정치, 사회적 파급력을 만들기 위한 경쟁적 상황으로 몰리게 하고 있다. 그 결과는 국제화의 열망, 정형화된 프로그램의 복제 등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인간의 삶과 예술에 대한 질문, 그리고 사회적 공유라는 공연예술축제 본연의 정체성보다는 소재적 차별성, 대외적 성과에 집착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종합예술축전에서 단일 장르 중심으로, 다시 복합 공연예술축제로


공연예술 장르의 특성을 기반으로 예술적 목적을 정체하게 다듬고,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축제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세분화하여 적절한 예술인들과 예술관객이 축제의 장으로 모이게 하는 현대적 개념의 공연예술축제는, 한국에서 그 역사가 길지 않다. 한국의 역사만큼이나 한국축제의 역사 또한 유구하지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치루면서 전개된 100여년의 현대사적 굴곡 속에서 우리 축제는 전통에서 현대로 온전히 이어지지는 못했다. 공연예술축제가 전개되어온 과정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 현대예술축제의 모태인 영남예술제가 전신이 된 개천예술제의 2007년 행사모습


종합예술축전 형태로 진주에서 1949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한 영남예술제는 현대적 형태의 한국 예술축전의 모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을 제외하고 꾸준히 개최되어 온 이 축제는 10회를 맞이한 1959년 개천예술제로 개칭되었고 1980년대 중반까지 종합적 예술축전으로 지역예술축제의 중요한 거점을 구축했었다.


1977년 서울연극제를 시작으로 국제현대무용제(1982~), 전국연극제(1983~) 등이 만들어지면서 개천예술제와 같은 종합 예술축전의 형태를 벗어나 단일 장르 중심의 공연예술축제로 분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적 예술축제로의 진화과정에서 단일 장르 중심의 예술축제로 분화과정이면서 서울 위주의 중앙집중화 현상의 단면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전국적 경연 방식의 순회 예술행사로 전국연극제, 전국무용제(1992~) 등이 개최되면서 서울 중심의 중앙집중화에 대비되는 전국적인 균형감과 안배의 차원에서 예술적 창의력을 모아내고자 하는 당시의 상황이 부분적으로 반영된 현상이기도 하다.


1980년대 후반 춘천에서 인형극제를 비롯해 마임축제가 예술가들과 축제기획자 그룹이 주체가 되어 개최되기 시작하고, 거창과 마산에서 지역예술인들이 독자적인 연극축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현대적 공연예술축제가 태동하기 시작한 분기점이라 할 것이다. 특히 춘천인형극제와 춘천마임축제는 그동안 연극과 무용의 전형적인 예술 장르 중심으로 축제가 만들어진 것을 넘어 인형극과 마임이라는 구체적인 장르로 들어가 축제화한 것은 한국의 공연예술축제의 지형을 다양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거창국제연극제도 초기 수년간의 어려운 과정을 넘어 최근 몇 년 사이에 경남지역의 대표적인 여름공연예술축제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국제적인 교류가 축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2010 의정부음악극축제 포스터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실행된 이래 관광축제 중심의 지역축제가 광범위하게 증가하는 가운데 공연예술축제도 2000년대를 전후하여 보다 다양한 성격의 공연예술축제가 현대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개최되기 시작했다.

연극축제에서는 야외극을 중심의 과천한마당축제, 양평세계야외공연축제, 보다 현대적인 실험과 대안을 추구하는 연극축제로서의 변방연극제, 극단(연희단거리패)이 지역으로 들어가 상설적인 연극촌을 운영하면서 지역연극제를 개최하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음악극을 중심으로 지역의 대형 공연장을 거점으로 개최되는 의정부음악극축제, 거리극을 중심으로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 등이 새롭게 개최되기 시작하였고 빠르게 고유한 축제성격을 구축해가고 있다.


무용축제의 경우, 다른 예술영역에 비해 변화가 적은 가운데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창무국제예술제와 안성죽산국제예술제는 뚜렷한 축제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축제이다. 창무국제예술제는 한국, 아시아의 전통 춤을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국제화하고자 하는 지향을 가지고 있었고, 안성죽산국제예술제는 전위무용가 홍신자를 중심으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국내외 무용을 축제로 교류하고자 했다. 2000년을 전후해서 기존 무용축제의 전형성을 넘어선 다양한 국제교류와 네트워크, 새로운 축제운영방식을 추구하며 서울세계무용축제가 만들어지고, 유사한 맥락에서 서울현대무용제가 과거 틀을 과감히 벗고 새롭게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음악축제는 1990년대 이전에는 없었지만 1993년의 서울국제음악제, 1995년의 제주관악제를 필두로 2000년도 전후로 다양한 음악형식이 활발하게 축제화 되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인 록음악축제, 드럼축제, 합창축제, 한국의 고유한 소리(sound)를 중심으로 한 전주세계소리축제, 한국 현대음악가 윤이상을 기념하는 음악제에 출발해 국제적인 현대음악제를 지향하는 통영국제음악제, 오페라하우스를 거점으로 국제적 오페라축제를 지향하는 대구오페라축제, 세계적 수준의 클래식 음악축제를 지향하며 수준 높은 마스터 클래스를 축제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는 대관령국제음악제, 지역에 재즈센터를 설립하여 일상적으로 활동하면서 재즈애호가들과 재즈 뮤지션들의 축제를 만들고자 하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등이 개최되고 있다.


단일 예술장르에 기반을 둔 공연예술축제가 다시 복합적인 공연예술축제 형식으로 모색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도를 전후해서이다. 연극과 무용의 경계,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넘어서 공연예술의 본질을 새롭게 추구하고자 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기존의 틀을 벗어난 실험예술을 추구하는 한국실험예술제, 기성예술의 전통적 규범이나 자본의 논리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독립예술 창작과 교류를 활성화하려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등이 다양한 예술장르가 복합적으로 구성된 축제로 개최되고 있다.

(좌) 2009 대관령국제음악제 (우) 2007 통영국제음악제


이상과 같이 살펴본 것처럼 한국의 공연예술축제는 1949년 개천예술제로부터 출발해 현대적 형태의 예술행사가 모색되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 단일 장르 중심의 예술행사로 분화되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현대적인 축제형식으로 개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을 전후해서 그동안 사회적으로 쌓이고 공유된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 장르별로도 다양한 주제로 분화되면서 국제적인 예술행사로서의 면모를 만들어가기 시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공연예술축제는 축제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제 토대를 만들고 있는 단계라 할 수 있으며, 최근 몇 년 사이 그 변화와 성장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각 축제들은 아직은 뚜렷한 전통으로 형성한 것보다는 새롭게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수정해나가는 부분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으며, 공연예술축제로서의 사회적 가치를 보다 객관적이고 광범위하게 만들어나가야 함과 동시에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적인 운영체계를 구축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공적 기금 여타 축제들과 경쟁, 사회적 가치 증명해야

2009 춘천마임축제 개막행사 '아수라장'
한국에서는 연간 1170여개의 크고 작은 축제들이 개최되고 있다. 한국에서 개최되고 있는 축제는 65% 이상이 1995년 이후 새롭게 개최되기 시작한 것으로 상당수 축제들이 축제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해가고 있는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다. 1170여 개의 축제 중에서 공연예술, 시각예술, 영상예술까지 포함하는 예술축제는 약 70여 건으로 전체 축제의 약 6%에 해당하는 적은 비중이며, 80% 정도는 자연환경, 역사문화, 음식문화, 지역특산물(농산물), 역사적 인물, 민속 등을 소재로 하는 관광축제에 속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공연예술축제는 전체 예술축제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다. 전체 예술축제가 약 70여건 정도인데 이중에서 영화제 등과 같은 영상예술축제는 작은 영화제까지 포함해서 약 20건,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큰 시각예술행사와 작은 미술축제까지 포함한 시각예술축제는 6~7건, 지역단위의 복합적인 작은 예술제가 약 15건 등이고, 약 35건이 공연예술축제이다.


공연예술축제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축제 수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상황은 대부분 공적 지원으로 개최되는 현대축제의 조건 속에서 공연예술축제와는 개최목적, 프로그래밍, 사회적 파급효과가 다른 수많은 지역축제와 경쟁하고 비교됨에 따라 공연예술축제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외적 환경에 더 많은 구속력을 가지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의미이다. 공적지원을 안정적으로 받기 위해 축제가 가진 사회적 가치를 가시화, 계량화하고, 또 예술적 목적보다는 사회적 목적에 부합하는 미션과 프로그램으로 수정해야 하고, 또 수시로 변화하는 예술적 트렌드에 부합하는 축제 목적과는 다소 이질적 프로그램도 그때그때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축제 목적, 내적 준비 정도와는 별개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국제화의 열망, 축제 목적보다는 소재적 차별성과 프로그램 선점에 대한 노력, 관객소통 프로그램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대중추수적 프로그램 등으로 현상화 된다.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교류할 것인가


그러나 한국 축제지형 속에서 차지하는 공연예술축제의 비중이 문제가 아니라 공연예술축제가 어떤 사회적 가치와 무게감을 가지고 있냐에 대한 문제가 더 중요하다. 공연예술축제는 현대사회 환경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유형의 축제들 가운데 공연예술축제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에 충실할 때 가치가 제대로 살아날 것이며,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현대환경 속에서 공연예술이 처한 상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또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공연예술축제를 통해 예술현장, 그리고 축제를 찾는 관객에게 어떤 예술적 영감, 창의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예술의 국제적 동향과 교류 자체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교류할 것인가? 등의 질문들은 지금 우리 공연예술축제가 각각의 축제미션과 프로그램을 통해 본질적으로 던져야 할 화두들이다.



특집 [한국공연예술축제, 변화와 진단] 다른 기사 보기
② 지역문화ㆍ도시활성화 관점에서 ③ 예술생태계 관점에서 ④ 좌담





추미경

필자소개
추미경은 1968년생으로 영문학과 공연예술학을 공부하고 영국에서 문화정책을 전공했다. 1998년 설립된 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 창립 스태프로 시작해 현재 동 연구회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으며, 문화인력/축제/지역문화전략 분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적 지역다움을 찾아가는 ‘지역다움 30년 프로젝트’의 틀을 닦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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