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전후로 지방자치제도의 본격화, 공연예술게의 성장 등을 거치면서 공연예술축제도 급속히 성장했다. 그에 따라 축제가 지향하는 역할에서도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면서 유통, 예술가 발굴 및 지원, 제작 등 축제 프로그램 또한 다양화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여전히 공적 자금에 의존한 불안정한 재정, 정부 혹은 지자체 정책변화의 영향, 사회적 이슈에의 압도 등으로 축제의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어렵게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극장의 성장 등 예술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특집 '한국공연예술축제, 변화와 진단'은 다양한 관점으로 한국공연예술계에서의 축제의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② 지역문화ㆍ도시활성화 관점에서
공연예술축제가 도시의 진화과정에 동력으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의 정책방향에 맞추기 위한 프로그램의 몰가치를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축제 본래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함으로써 역으로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인식시키고 문화정책방향의 오류를 바로잡는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제도가 본격화되고 ';문화도시'; ';창조도시';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이래, 좁은 의미의 공연예술은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공공영역의 귀빈으로 초대받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근대화 과정의 정치경제중심의 개발사업에 대한 반작용, 21세기 창조산업 기반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공감대, 그리고 문화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확장과 지역자치의 대안적 모델로서의 문화 수용 등이 있다. 특히 관광산업에 대한 요구와 주 5일 근무제의 확산에 따른 여가 및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시대적 조류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인상주기';(장소마케팅/도시재생)와 ‘시민들과의 눈 맞추기';(문화향수/문화복지)라는 두 가지 목적을 충족시키는 데 축제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한 지자체장들의 영악한 판단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좌) 전주세계소리 축제 (우) 거창국제연극제




가치와 경제, 불분명한 목적의 충돌


국가 및 지자체가 공연예술축제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공공성을 근간으로 내건 목적과 기대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지자체들이 축제에 예산지원을 하는 이유를 범박하게 보면, ‘시민들의 문화향유’와 ‘문화복지’를 우선으로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명도가 높은 축제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지자체장의 정치적 명성 및 지역홍보, 관광객 유치 등이 용이해지고 더불어 경제적 효과 및 도시 활성화까지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더 크게 기대고 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라는 삐딱한 평가가 나올 정도의 지나친 양적팽창은 축제 자체가 갖는 본질적인 의미와 고유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으로 이해되기보다는 한정된 재원을 투입하면서 그 이상의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상업주의적 발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관광객 머리수만 세고 있는 대다수의 지자체를 보라)


여기서 우리는 가치중심의 목적과 경제중심의 목적이 불분명함에 따라 충돌이 일어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현장에서 볼 때 이런 종류의 충돌은 하나를 제거하고 나머지 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축제의 목적이라고 내세우는 ‘경제적 효과’ ‘문화향수 확대 기여’, 그리고 ‘도시 활성화’는 서로 다른 차원의 담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를 정면돌파하는 데에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요구 속에서 공연예술축제가 어떤 비전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목표를 어떻게 잡는가가 더 중요하다.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독일의 바이로이트페스티벌이나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페스티벌, 이탈리아의 베로나페스티벌, 미국의 아메리칸댄스페스티벌, 영국의 에든버러페스티벌, 프랑스의 아비뇽페스티벌 등과 일본의 페스티벌/도쿄, 중국의 ‘베이징에서 만나요’(Meet in Beijing), 상하이국제예술제 등 성공한 공연예술축제들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에 적절한 특성을 장착하여 연착륙하고 있으며, 축제의 성공이 결과적으로 도시 활성화 및 지역경제 부가가치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도시 활성화를 위해 축제가 하나의 요소로 겨우 끼어들어간 것이 아니라 축제가 고유한 목적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 도시 활성화라는 과실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100여년의 시간 속에서 중단 없이 진행된 해외의 공연예술축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축제의 성과는 시간의 퇴적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의 지속성 담보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 정권교체가 있으면 과거 정책이 현재로 연동되지 않고 폐기되거나, 혹은 경제적 효과가 지나치게 강요되어 단시간에 큰 성취를 얻고자 하는 경향이 커서 늘 불안정한 재정 속에서 축제가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을 축제 관련자들의 헌신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축제의 성과, 시간의 퇴적이 필요하다


도시(지역)문화 활성화란 단일한 아이디어로 단시일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활기, 즉 생의 에너지와 창의적 아이디어가 만나 제대로 수정되려면 안전한 착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연예술축제가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축제를 치루는 재정의 확보에 안도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도시의 진화과정에 동력으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의 정책방향에 맞추기 위한 프로그램의 몰가치를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축제 본래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함으로써 역으로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인식시키고 문화정책방향의 오류를 바로 잡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려면 공연예술축제가 단단한 기본기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날렵한 움직임뿐만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굳건하게 밀고나가는 뚝심 또한 요구된다. 이는 축제 자체의 성장뿐만 아니라 창조산업의 정신적, 예술적 원동력 혹은 저수지로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공연예술축제의 질적 전환에서 요구되는 몇 가지 항목을 정리한 것이다.

ㆍ공연예술축제의 미션설정
미션설정을 위해서는 축제의 대상지역에 대한 특성과 지역의 문화자원 및 인적자원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한다. 이러한 이해는 문화자원과 인적자원의 매개를 위해 축제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설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만약 장르적 이기주의에 빠진다면 ‘축제를 위한 축제’라는 자기 함정에 빠질 수 있으며, 정치적 외풍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축제의 미션을 설정할 때는 ‘축제고유의 목적이 무엇인가’ ‘시민참여 및 향유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술성 향상 및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해야 하며, 미션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축제의 생명력이 길 것인가 혹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다.

ㆍ재원의 안정적 확보
대개의 공연예술축제는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예산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재원의 지속성을 얻기 위해서는 축제가 명백하게 지역적 가치 및 지역특화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그 방법 중의 하나로 축제가 홀로 고립되지 않도록 공연장에서부터 시민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긴밀한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다. 지역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면 축제가 지역사회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고, 지역사회의 인정은 곧 안정적인 재정지원의 안전판이 될 수 있다.

공연예술축제의 특성화
유사한 국내외 공연예술축제들 간의 차이는 프로그램 개발 정신에서 구별될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이를 실행단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미 검증된 대중의 기호나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몇 년 앞을 내다보면서 가능성과 새로운 흐름을 짚어내는 눈이 필요하다. 멀리 내다보면서 실험적이고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때 문화의 켜는 제대로 쌓여가기 마련이며 축제는 역사성 속에서 존속의 의미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ㆍ일반행정에서 문화행정으로
열심히 일했는데 축제의 질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고 고작 행정절차에 대한 감사만 하는 것에 불만을 품게 마련이다. 이는 문화행정이 따로 정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나 복지 영역의 행정방식이 문화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지자체의 행정가 입장에서는 역으로 행정에 약한 축제기획자들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 공적지원으로부터 젖줄을 대고 있는 공연예술축제의 입장에서는 1) 어떠한 정책적 선택으로서의 공연예술축제인가, 2) 어떤 과정으로 축제가 결정되었는가, 3) 주제와 컨셉의 선택 이유, 4) 축제수행에 따른 예측의 범위, 5) 축제목적과 우선성의 설정, 6) 집행에 대한 분석조건, 7) 축제의 실행에 대한 모니터링과 통제, 8) 축제평가와 리뷰, 9) 축제의 지속성, 연계성 그리고 종료에 대한 다음 단계의 계획 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규명될 수 있는 절차를 통해 행정가와의 상생지점을 찾아야 한다.

[참고] 2009 국고지원공연예술행사와 2008년 시행 공연예술축제 현황




특집 [한국공연예술축제, 변화와 진단] 다른 기사 보기
① 전개와 현황 ③ 예술생태계 관점에서 ④ 좌담





손경년

필자소개
손경년은 영국에서 문화정책과 예술경영을 전공했으며, 부천문화재단 문화정책실장, 문화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추진기획단(현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 도시조성실장 등을 수행하면서 도시 속속을 제대로 알기 위한 연구 및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학생들과 ';문화콘텐츠';의 미로 속에서 ';침착하게'; 빠져나갈 궁리로 세월과 내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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