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전후로 지방자치제도의 본격화, 공연예술게의 성장 등을 거치면서 공연예술축제도 급속히 성장했다. 그에 따라 축제가 지향하는 역할에서도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면서 유통, 예술가 발굴 및 지원, 제작 등 축제 프로그램 또한 다양화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여전히 공적 자금에 의존한 불안정한 재정, 정부 혹은 지자체 정책변화의 영향, 사회적 이슈에의 압도 등으로 축제의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어렵게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극장의 성장 등 예술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특집 '한국공연예술축제, 변화와 진단'은 다양한 관점으로 한국공연예술계에서의 축제의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③ 예술생태계 관점에서


2000년대를 전후로 공연예술축제들의 역할과 정체성이 다변화되기 시작했다.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춘천마임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등에서 축제 전문기획인력들을 중심으로 축제의 기획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일반인뿐만 아니라 공연예술계 전반의 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제현대무용제(MODAFE), 과천한마당축제 등 대규모 축제들과 함께 해외 프로그램이 강화되어 국제적 면모를 갖추게 되면서 세계 공연예술의 경향을 읽는 창으로서의 역할도 축제에 자리 잡게 되었다. 2000년 중반에 들어서면 공연예술축제는 축제성이 강화되면서 야외거리극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새로운 거리축제의 창설과 함께 과천한마당축제,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춘천마임축제, 수원화성국제연극제 등 야외·거리극 중심 축제 간의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한편 장르와 주제가 특화되는 양상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장르 특화형 축제로 의정부국제음악극 축제가 창설되었으며, 다원예술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보여주는 페스티벌 봄이 공연예술시장에 안착했다.


지난 10년간 공연예술축제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다양화, 국제화되었으며 동시에 국내 공연예술축제 간의 협력은 강화되었다. 공연예술축제가 다변화되고, 점차 그 규모가 커지면서 오늘의 축제는 예술가 발굴, 지원, 국내외 공동제작, 국내외 유통 등 다양한 요구와 흐름의 한 가운데 놓여있다.



프리젠팅에서 프로듀싱으로
<노먼>(캐나다) 2009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초청작

축제의 가장 대표적인 역할이자 일반적인 기대는 우수 작품들을 선별하여 예술가와 관객이 만나는 접점을 넓혀주는 것이다. 여전히 축제의 공연작품 프로그래밍은 축제의 성격과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그러한 면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세계 공연예술의 흐름과 미학적 방향성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며, 최근 시작된 페스티벌 봄은 특히 실험과 도전의 새로운 형식의 세계적인 경향성을 소개하고 있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과천한마당축제 등 장르별로 특화된 축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국제 규모의 축제는 비단 관객들에게만 세계 공연예술의 흐름을 읽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현장 공연예술관계자들에게 자극과 도전, 새로운 미학적 시각을 열어주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큐레이팅을 통한 프리젠팅이라는 일반적 기대와 이해를 넘어 축제의 영역을 제작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축제의 제작은 공연예술단체들에게 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창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축제에 있어서는 축제의 이름을 걸고 제작한 작품들을 통해 축제의 예술적 비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또한 야외극, 복합장르 등 작품생산이 활발하지 않은 장르에 기반한 축제에서는 예술가(작품)개발을 목적으로 자체제작의 기능을 확대하게 된다. 이러한 축제의 제작은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검증이 완료된 작품만으로 안전한 프로그래밍을 해왔던 축제의 최대 덕목을 벗고 작품 창작에 대한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는 공연예술축제의 용기 있는 선택이라 볼 수 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지난해 말 공동제작 작품을 공모하여 2010년 축제에서 소개할 연극, 무용, 복합의 8개 작품을 선정하였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공동제작을 통해 충분한 제작기간을 거친 완성도 있는 작품을 제작하여 축제 프로그램에 기여하는 한편 추후 작품의 해외진출까지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존의 프리젠팅 시스템과 달리 제작 리스크 감수와 함께 유통에 대한 책임 및 권리를 가지겠다는 축제의 적극적인 의사표명이다. 축제의 제작 기능은 창작자, 창작단체는 제작 지원기관의 확대를 의미한다. 즉 제작에 참여하는 주체가 많아짐으로 안정된 제작비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제작 협업이 공연기회와 연결된다는 장점을 갖는다.



네트워크의 다각화


과천한마당축제와 춘천마임축제가 시행하고 있는 &lsquo;야외공연작품 공모&rsquo;는 국내 대형 야외극의 부재로 인한 작품 개발의 필요성에서 시작된 축제 간 공동제작 프로젝트이다. 2006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네 편의 작품이 선정, 제작되었다. 심사과정에는 이 두 축제 외에도 여타 대형야외극축제가 참여하여, 자연스럽게 선정작의 공연 공간이 확대되었다. 지금까지 4관객 프로덕션 <사라진 달들>, 공연창작집단 뛰다 <앨리스 프로젝트> 등이 선정, 제작되어 춘천마임축제, 과천한마당축제 외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등에서도 공연된 바 있다.


축제와 극장이 공동제작자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과 두산아트센터가 함께 하고 있는 &lsquo;프로젝트 빅보이&rsquo;가 바로 그것이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가지고 있는 신진예술가 발굴의 강점과 두산아트센터가 가지고 있는 극장이라는 인프라가 공동작업을 통해 상호 보완적인 제작시스템을 기대하게 한다. 축제는 강력한 집중성에 비해 일회성이라는 한계를 갖게 마련인데, 극장의 안정화된 제작시스템이 결합됨으로써 신진예술가들의 작품이 사장되지 않고, 공연예술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십이분의 일>(양손극장) '프로젝트 빅보이' 2009년 공연작품
2000년부터 매해 국제공동제작을 하고 있는 서울세계무용축제는 그간 한국 무용단체와 다양한 해외 축제들의 공동제작을 이끌어왔다. 싱가포르아츠페스티벌, 멕시코 세르반티노페스티발, 프랑스 몽펠리에무용축제, 뉴욕 DTW(Dance Theatre Workshop) 등이 이 공동제작에 참여해 왔다. 국제공동제작은 국내외 단체 간의 공동작업으로 작품에 대한 리스크는 한층 커지고 창작과 행정적 과정 또한 복잡해진다는 점에서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지만 제작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교류의 질과 내용이 확장되는 것은 물론 단체 간의 우수한 콘텐츠 교환, 안정적인 제작환경 및 유통창구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많은 축제들의 관심이 확대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지속적인 역할 역시 요구되고 있다.


거리극(야외극)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과천한마당축제가 2006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국제공동제작은 국내 거리극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공동제작에 참가한 국내 단체는 거리극이 발달되어 있는 프랑스, 네덜란드의 극단과의 작업을 통해 예술적 교류뿐 아니라 거리극 제작에 필요한 기술적 노하우를 습득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2007년 네덜란드 극단 루나틱스와 극단 몸꼴이 공동제작한 <구도>는 한국과 유럽의 축제에서 35회 이상 공연되었다.


한편 공동제작은 축제의 네트워크를 체계화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해외 파트너와의 협력이 다각화되기 때문이다. 예술감독 개인의 해외 네트워크에 기반한 단발적인 교류 형태가 아닌, 해외 유수축제와의 적극적인 제휴를 통해 국제공동제작 및 기 제작된 작품에 대한 해외 유통체계를 개발할 수 있다.



조직구성과 운영의 변화 필요


이외에도 많은 축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동제작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축제에서의 제작기능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축제가 제작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어 몇 가지 고민점과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보인다. 먼저, 축제 공동제작(Commissioning work) 과정에서의 축제가 맡는 역할에 대한 고민이다. 작품을 선정하고 일부의 제작금만을 지원하는 경우에서부터 작가 간 매칭과 펀딩의 공동 조성, 유통창구 개발, 홍보마케팅까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다양한 방식 안에서도 축제의 좀 더 적극적인 참여와 역할이 필요하다. 단체 간의 매칭만을 주선하고 제작의 과정에 함께 하지 않는다면 공동작업을 통한 긍정적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운 질문과 도전을 토대로 한 창작이 이루어지기보다는 도리어 각 단체 간의 예술적 지향과 컨셉이 왜곡되고, 복잡한 작업방식과 행정절차로 인해 모두에게 소모적이고 부정적인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 공동제작에서 축제는 축제가 지향하는 미션의 범주에서 단체와 내용과 방식을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제작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몽키: 저니 투 더 웨스트> 맨체스터페스티벌 제작, 초연(2007)
영국의 맨체스터페스티벌은 제작기능을 강화하고자 하는 국내 축제들에게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2007년에 시작되어 2009년 2회 축제를 개최한 맨체스터페스티벌은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인 축제로 부상하고 있는데 2007년 제작되어 오프닝으로 선보인 공연 <몽키 : 저니 투 더 웨스트>(Monkey: Journey to the West)가 주목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이 축제가 세계 최초의 제작 중심 축제이기 때문이다. 축제에 올라가는 작품은 모두 축제 제작의 신작으로 2009년에는 총 21개 작품이 제작되었다. 페스티벌이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유도 해외의 주목받는 예술가를 찾아 관계를 형성하고, 해외 공동제작 파트너를 찾아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한 체계이다. 축제가 열리지 않는 짝수년에는 축제에서 제작된 많은 작품들이 해외 협력축제 및 공연장에서 투어 공연을 갖는다. 축제의 인력들은 제작과 투어를 함께 담당하고 있어 창작에서 유통까지의 모든 단계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맨체스터페스티벌에서 주목할 점은 조직구성이다. 대부분의 축제 조직이 예술감독과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들, 홍보마케팅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맨체스터페스티벌은 축제감독, 행정감독과 함께 프로듀서군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축제 이전 6개월 동안은 인턴 프로듀서가 결합해 열 명 이상의 프로듀서들이 작품 제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국내 축제들이 제작 기능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그에 따라 조직 구성 및 운영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예술가 발굴, 다양한 사이트로의 연계


축제에서 최근의 주목할 만한 경향 중 하나는 예술가(작품) 발굴이다. 축제는 1차 구매자인 동시에 2차 공급자이다. 때문에 1차 공급자의 역할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축제의 기능에 마비가 오게 마련이다. 공연예술시장에 있어서 원활한 순환구조가 이루어지기 위해 각 축제들은 예술가 또는 예술작품 개발을 위한 축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먼저, 서울공연예술제의 &lsquo;액터스 플랫폼&rsquo;과 &lsquo;서울댄스컬렉션&rsquo;은 각각 연극배우들의 역량강화(발성), 무용안무가 육성을 위한 예술가 개발 프로그램이다. 액터스 플랫폼과 서울댄스컬렉션은 경연대회 형식으로 진행되며, 주로 활동한지 10년 미만의 30대 젊은 예술가가 참가한다. 이곳에서 선정된 예술가는 국제공동제작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되며, 무용의 경우 다음해 공식초청작으로 초청받게 된다.

(좌) 2009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액터스 플랫폼' 본선 모습 (우) 한-불 공동제작 <코뿔소> 연습모습 2009 엑터스 플랫폼 선정 배우들이 참여한다.(제작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춘천마임축제에서 진행하는 &lsquo;도깨비 어워드&rsquo;도 유사한 기능을 한다. 신진작가의 작품 중 한 작품을 선정해 상금을 수여하고, 다음해 공식 프로그램으로 재초청한다. 마임과 같은 비주류 장르의 경우 창작자 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예술가를 발굴,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러한 이유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매해 국제재즈콩쿠르를 통해 기량 있는 우수한 국내 아티스트를 발굴,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신진예술가 발굴․개발, 비주류 장르에 대한 콘텐츠 개발을 위한 예술가(작품) 개발 등은 우리 공연예술시장의 공급과 유통이라는 순환구조에 기름칠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신진예술가 발굴 및 개발 프로그램에 있어 축제의 고민은 신진예술가들이 다음 단계에서 공연예술계에 안착할 수 있는 구조화이다. 서울변방연극제는 젊은 공연예술가에 대한 인큐베이터라는 미션을 가지고 신진예술가의 작품 제작지원과 국내외 유통 지원을 통해 신진예술가들이 공연예술시장 구조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술가는 인큐베이팅 기능의 축제에서 프리젠팅, 제작, 유통 기능의 축제로 옮겨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역량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 작은 축제에서부터 규모 있는 예술계의 주류 축제까지 축제와 축제, 축제와 극장의 소통과 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금형의 경우 서울변방연극제에서 작품을 발표한 후 춘천마임축제 도깨비 어워드 수상, 페스티벌 봄 참여, 서울아트마켓 팜스 초이스에 선정으로 연결되면서 해외에 소개되었다.


공연예술축제는 내용의 변화, 형식의 변화를 꾀하며 2010년의 새로운 축제를 준비하고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축제 간 공동제작, 국제공동제작, 유통, 예술가(작품) 개발 프로그램이 결코 새롭고 낯선 어휘들은 아니다. 과거 축제의 비전과 프로그램 속에 단편적으로 담겨 있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축제의 역할 변화에 따른 조직과 환경의 변화도 필요하며, 국내외 축제 간, 축제와 극장 간에도 예술가 개발, 제작, 유통 협력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특집] "한국공연예술축제, 변화와 진단" 다른 기사 보기
① 전개와 현황 ② 지역문화ㆍ도시활성화 관점에서 ④ 좌담




박지선

필자소개
박지선은 춘천마임축제에서 해외프로그래밍과 기획실장을 담당한 바 있으며, 아시아나우프로덕션에서 유진규네 몸짓, 극단 여행자, 사다리움직임연구소, 공연창작집단 뛰다 등의 단체와 함께 해외 방방곡곡의 축제와 극장을 찾아다니다 2009년부터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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