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 전문가 바라보는 우리 예술현장의 현안은 무엇일까? <@예술경영>은 창간특집으로 공연, 시각 및 정책일반의 전문가들에게 예술계 현황을 진단하고 전망을 모색하는 설문을 실시했다. 예술현장의 현안, 제도 정책에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 발전 가능성이 높은 예술경영분야 등을 묻는 설문에 31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답변을 보내왔다. 이번 특집은 총 6회에 걸쳐 설문 분석과 개별 현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고를 게재할 예정이다.

예술가의 생애 주기를 통해 창작의 동기를 유지, 강화시키고 예술가의 자생적 문제의식 형성을 돕는 것이 예술정책의 최우선의 과제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자신의 강력한 창작 동기가 강화되지 않고서는 예술가들의 자존도 침해될 뿐 아니라 예술활동을 통한 자립의 계기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정책이 예술의 수요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는 방식을 벗어나 창작의 자극을 활성화하고 작업에 몰입할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예술의 창의력을 다시 생각하며


최근 창의력은 미래 사회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분위기다. 창조경영, 창조사회, 창조도시 등 창의력에 기반 한 사회구성원리가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핵심적 가치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 혁신자들의 스토리가 미덕이 되고, 유목적 사고방식으로 전환하자는 논의도 드물지 않다. 현대 사회와 경제에서 독창성과 창의력은 거의 생존의 문제처럼 간주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창의력을 강조한다고 해서 창의적인 사회 환경이 마련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우리가 창의력의 문제를 기업의 생산력을 증진하는 차원 정도의 문제로 인식하는 한, 창의력을 키우려는 강박적인 노력 속에서 서로 자유롭고 관계지향적으로 만나면서 창의적인 사고를 해나갈 시간과 공간의 경험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극단적 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가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사회의 가속화는 창의력의 문제를 생산력의 문제로 과잉 일반화하고 환원한다. 그래서 다양한 삶과 사고방식의 가치를 보존하지 않는 신자유주의 논리는 사회의 창의력 증진이라는 과제와 가장 먼 극단적인 대립점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술도 이러한 신자유주의 논리에서 예외적이지 않다. 전통적으로 예술은 초월적인 자각과 삶에 대한 숙고를 통해 사회에 창의력과 상상력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상품과 예술이 결합하고 문화와 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사회에서 예술의 가치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일면적으로 규정되고 다원적인 모색과 실험의 의미는 아주 제한적인 맥락에서만 인정된다. 따라서 좀더 풍부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가치가 생산되는 창조사회로 진전되기 위해서라도 예술의 창의력을 제고하려는 예술정책의 맥락은 좀더 세심하게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예술가와 예술정책


지난 몇 년간 정책적 맥락에서 예술의 수요는 크게 확장되었다. 문화예술교육, 지역문화, 공공예술 등의 흐름은 사회와 예술이 새롭게 만나는 장을 열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문제해결을 위한 예술에 동참하였다. 이러한 정책적 성과를 분명히 인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관여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정책적 수요에 반응하도록 구조화된 것도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다.


지난 6월30일부터 7월11일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동주최로 새로운 지원정책 방향 모색을 위해 <예술지원 정책 릴레이 토론회>가 열렸다.



정책적 수요가 팽창함에 따라 일부 예술가와 예술단체들은 과부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는 이 과부하가 생산적 부하가 아니라는 데 있다. 많은 예술가와 단체들이 정책에 부합하는 제안서를 쓰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낯선 행정적 처리 기준을 억지로 맞추어내고 있고, 평준화된 정책적 요구에 맞추어 자신의 작업을 조율하고 있다. 또한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lsquo;선택과 집중&rsquo;이라는 예술지원정책의 향방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고, 예술기관의 운영자들은 책임경영의 논리에 따라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는데 내몰리고 있고, 예술행정가들은 건조한 성과지표를 만들어내고 평가를 진행하는 식의 반복적인 과정에 온 시간을 쏟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술이 정책, 경영, 행정과 관계 맺는 방식은 새롭게 정의되어야만 한다. 물론 기존의 예술정책을 다양한 각도에서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원방식이 고착되어 있는 문제, 예술지원이 예술계의 이해관계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는 문제, 예산 지원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새로운 방안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정책이 예술가와 수치와 지표로 만나서는 예술의 가능성과 잠재적 가치를 고갈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창작의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예술가의 생애 주기를 통해 창작의 동기를 유지, 강화시키고 예술가의 자생적 문제의식 형성을 돕는 것이 예술정책의 최우선의 과제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자신의 강력한 창작 동기가 강화되지 않고서는 예술가들의 자존도 침해될 뿐 아니라 예술활동을 통한 자립의 계기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정책이 예술의 수요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는 방식을 벗어나 창작의 자극을 활성화하고 작업에 몰입할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예술과 창조 사회


창조사회는 예술을 기능적, 도구적으로 활용하여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사회는 예술가의 존재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예술의 내재적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예술가 커뮤니티가 활기차게 움직이고 새로운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될 때 창조사회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예술가 커뮤니티가 서바이벌 문제로 국한되면 될수록 예술의 존재가치는 점점 상실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예술의 가치를 신화화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예술과 정책, 예술과 사회, 예술과 경제가 직접적으로 연결될 때 예술은 기능적이고 도구적인 포지션을 점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상실할 위험성을 갖는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예술이 가지는 창의적 힘은 도구적이고 기능적인 활용을 통해서는 점차 고갈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술은 정책과의 거리, 상품질서와의 차이를 통해서만 창의적 속성을 전개시킬 수 있다.


예술가와 정책이 맺는 관계와 유사하게, 창조사회와 예술정책의 관계 또한 직접적이지 않다. 사회의 창의력은 한 개인의 속성으로 간주될 수 없으며, 사회적 구성원리와 환경이 내재하는 속성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예술정책 역시 창의력이 보존되는 사회 환경을 구축하는 매개의 역할을 크게 벗어날 수는 없다. 예술가의 자생적 문제의식에 부합하는 정책을 만들고 창작의 동기와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세심한 지원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문제의식이 소통되고 교류되는 탈국민국가적 장을 만들어내는 일, 신진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장르를 넘어 새로운 자극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일, 예술적 문제의식을 정교화 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 예술정책이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다.


예술의 중요성은 사회 흐름으로 볼 때 점점 커질 것이다. 하지만 예술 생태계를 관리하는 세심한 방안이 고안되지 않으면 예술이 쉼쉬는 창의사회는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동종복제형 사회에서 벗어나 창의성이 확장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술정책 역시도 창의성을 국가가 관리할 수 있다는 단기적 발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술정책이 자신의 세심함을 보충하고 지원정책의 역할을 다시 자각하는 계기일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효관

필자 소개

전효관은 사회학 박사로 문화정책과 문화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하자센터부소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이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